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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기사
다시 문제는 창작이다 - 대담 허영만 이희재
 
 
대담

허영만  이희재
 
글 | 이재식 기자 (lee@Qcomic.com) 기록 | 김상희 객원기자 사진 | JAY’S STUDIO
 
 
만화의 창작 자체가 위태로운 때에 창작 현장을 맨 앞에서 지키고 있는 작가 두 분을 초청했다. 허영만, 이희재.
두 분은 70년대에 데뷔해 창작 일선에서 전쟁을 치르듯 우리 만화판을 지켜왔다. 검열과 심의, 만화를 대중문화의 사생아로 보는 어긋난 시각들이 만화를 때리던 오랜 역사의 터널. 이 속은 김동화 선생의 말을 빌리면, “전쟁터였고 따라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생사를 같이한 전우들”이다. 최근에 이것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청소년보호법이 고개를 내밀면서 빚어진 97년의 ‘만화사태’.
당시 두 분은 화실을 뛰쳐나와 거리에 있었다. 허영만 선생은 “제발 (우리를) 내버려 두기만 하라”(씨네21 인터뷰)고 목소리 높였고, 이희재 선생은 심의의 부당성을 알리는 거리 서명에 나섰다.  
또다시 만화가 위협받고 있다. 이번엔 전과 다른 방식으로 만화가 궁지에 몰려 있다. 이현세 선생의 말에 따르면, “사전 심의와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 외에는 한번도 경쟁자가 없었던 우리 만화가 이제는 전쟁을 치러야 할 때”이다(이 책 24쪽 칼럼). 결국 생존을 위한 우리의 투쟁은 계속된다. 우리는 어떤 지혜를 빌려야 할까. 서둘러 결론만 말한다면, 2시간 30분 동안 계속된 대화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일치하는 하나의 결론으로 맺어졌다.
허영만, 이희재 선생의 우리 만화의 오늘에 대한 진단과 내일을 이끌 젊은 작가들에 던지는 메시지를 대담으로 구성했다.
 
 
대담 | 허영만, 이희재
진행 | 이재식
시간 | 3월 10일
장소 |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상담 회의실
 
 
이재식 두 분 선생님 바쁘신 중에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대담은 두 분 선생님의 대화의 흐름에 맡기고 진행자는 최소한의 참여만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희재 ‘지금 만화 환경이 왜 이렇게 됐을까’라고 했을 때 ‘우리에게 한 번의 기회가 있었다’고 봅니다. 모든 것이 혁신되는 과정에는 자기 살도 깎아내며 감내하는 것이 필요한데, 우리는 이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테면 우리 만화가 이전에 대본소 중심의 골목문화라는 특수한 시스템으로 커왔단 말이에요. 하지만 70, 80년대를 거치면서 잡지라는 통로를 통해서 한 줄기가 성장해 왔고, 90년대를 지나면서는 대본소 구조라는 것은 도리 없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느끼지 않았습니까. 나는 90년대 말쯤, 20세기 안에 대본소는 종언을 고하리라고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IMF가 닥쳐왔습니다.
IMF로 출판계가 큰 타격을 입고 부도가 나고 난리가 났었죠. 그런 위기를 극복하려고 구조조정을 하면서 자기 몸을 잘라내고 다듬는 고통스러운 개선, 개혁의 몸부림 과정을 겪었어요. 우리 만화계 역시 내부 모순을 안고 있는 중에 위험이 닥쳐왔으니 스스로 구조조정을 해야 할 상황이었죠. 살을 깎고 혁신하고, 새로운 기획을 내놓는 고민을 해야 되는데…. 그런데 위기의식을 느낀 출판사들이 선택한 돌파구가 무엇이었느냐? 우리가 이야기하는 이른바 코믹스라는 책들입니다. 이 코믹스 시장에는 무엇보다 엄청난 물량 공급이 필요했습니다. 대본소처럼. 그때까지는 일본 만화를 많이 출판하지 않던 때였는데, 때맞춰 일본 문화개방을 시작하고 제일 먼저 만화는 완전 개방되었죠. 그러니까 출판사들이 기회다 싶어 일본 만화에 매달리기 시작합니다. 이 결과로 일본 만화가 시장의 80%까지 차게 된 것이고요. 나는 그때 이것은 우리들의 위기를 벗어나는 도피처로는 한 2년 정도는 유효할지 모르지만 4, 5년이 지나면 한계점에 도달할 것이고 그 모순점이 더 불거져 만화계 전체의 위기로 다시 돌아올 것으로 봤습니다. 지금 그렇게 나타난 거죠.
허영만 이 선생이 90년대에 대본소가 없어질 걸로 봤다고 했지요. 일본이 도쿄올림픽 이후로 대본소가 없어졌다고 하는데, 우리도 애쓰지 않아도 88올림픽 이후로 없어질 걸로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다행히 그때에 잡지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분위기가 돼가는구나 생각했습니다. 많이 팔리는 책이 생기면서 잡지와 대본소용 만화는 완전히 구분이 되었지요. 그런데 잘 나가다가 청소년 보호법이 딴지를 걸더라구요. 나는 청소년보호법이 만화 침체의 결정적 원인이라고 봅니다. 90년 중반에 소년잡지는 30만 부, 성인만화는 5~8만 부 나가던 것이 없어져 버렸잖아요.
이희재 청소년보호법이 참 묘합니다. 이전에는 미성년자 보호법이었는데 그 구식법을 가지고 안 되니까 청소년보호법으로 바꿨는데, 청소년 보호하자는데 별탈 있겠나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이 청소년보호법의 위력이라는 게 결과적으로 어느 분야의 산업 자체가 아주 눌려 버리는 일이 있을 수 있더라는 겁니다. 그 법이 나오고 3~4년 지나면서 만화계 전체 파이가 줄어들어 버렸어요. 왜냐면 시장이 줄었거든요. 예를 들어 교보문고 만화코너가 있었는데 어느 날 가 보니까 없어졌어요. 19세 이하한테만 안 팔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팔고 안 팔고 이전에 시장을 없애 버린 겁니다.
 
 
길바닥에 쓰러진 사람마냥 스스로 일어날 용을 안 써
허영만
지적한 것은 외부적 요건으로 이해됩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보기에 도대체 만화를 제대로 그리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화광인 한의사가 있어서 우리 만화를 어떻게 보는지 물으니까 “우리 만화는 정보가 없어요.”라고 답하더군요. 일본 만화는 우리가 평소에 접해 볼 수 없는 고급스런 얘기가 재미있게 펼쳐지는데, 그러자면 취재를 하고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을 두고 취재하면서 그 사이에 원고 한 페이지를 그리는 건 참 힘든 일입니다.
지금 작가들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건 피해가는 형편인데, 앞서 말한 외적인 요인이 그렇게 돼있다면, 내적으로는 취해서 길바닥에 쓰러진 사람처럼 스스로 일어날 용을 전혀 안 쓰고 있는 겁니다. 결국 외적인 요인들과 출판사의 안이함, 그리고 작가들 스스로가 이런 환경을 만들었다고 봅니다. 작가들이 공부하는 분위기가 되고, 스스로를 자극해서 만화를 제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는 후배들한테 노력하는 작가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칼싸움하는 만화는 칼을 예리하게 그려서 손만 대면 벨 정도로 그리고, 서부만화는 말을 잘 그려야 되고, 음식만화는 음식을 잘 그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먹고 싶을 정도로.
<식객> 하면서 원고를 신문사로 보내기 전에 검토하면서, 사람 잘못 그려진 부분은 고치는 정도로 하는데, 음식 장면은 다시 그리게 합니다. 새로 그리려면 음식을 직접 구해야 합니다. 언젠가 한 장면을 그리는데 양념이 여러 가지가 나와 마늘, 파, 고추 등 여러 재료가 필요했습니다. 재료를 사다 쌓아 두니 적지 않은 양인데, 한 컷 때문에 이렇게 하자니 참 힘들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음식만화 그리면서 이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고기를 소재로 한 작품에서 고깃살을 애써서 그렸는데, 한 선배가 “어떻게 그렸냐, 정말 실감나게 그렸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얘기 들을 때는 정말 기분 좋습니다.
외부의 요건과 상관없이 작가 스스로 납득할 만한 작품을 만든다는 신념이 없는 것 같아요.
이희재  "문제는 창작이라고 하는데, 결국 콘텐츠의 질입니다"이희재 말씀하신 것은 세부 밀도 또는 전문가의 전문성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볼 문제 같습니다. 전문성을 확보한다, 질감이 나게 그린다, 밀도를 높인다는 것은 작가가 작품에 몰두해 깊이 빠져들 때, 자신도 모르게 독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은 단계로 들어가서 정보와 정서를 끌어내 전문가다운 면모를 보여 주는 것이죠.  그런데 우린 어떤 소재를 선택하고 끌어가는 과정에서 말초적인 감각이나 유행하는 흐름에 쓸려서 큰 줄기의 바람에 같이 흘러가는 경향이 짙습니다. 우리 만화판을 볼 때, 전체 시장의 사분의 일 정도를 겨우 취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10대 또는 어린이 세대, 기껏해야 20대 정도를 대상으로 삼고 있거든요. 이걸 확장해야 합니다. 김동화 씨가 신문에 노인들을 등장시켰는데, 신문에도 하고 음식만화처럼 새로운 소재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파이가 늘어나는 거지요.
허영만  "결국 남는 것은 스스로의 자생력, 실력이 관건이죠"허영만 야구를 보면 감독이 대타를 쓰는데, ‘대타 누구’라고 자기 이름이 불릴 때 몸 풀기 시작하면 좋은 경기를 보여 줄 수 없을 겁니다. 그렇듯이 준비를 하고 있고, 해나가야 됩니다. 예전에는 만화방 만화와 잡지 몇 개밖에 없었지만, 그 뒤로 잡지가 많이 나오고, 스포츠신문에서도 만화를 많이 싣고, 일간지에서도 만화에 관심을 갖고, 이제는 지하철 무가지로도 번지고, 인터넷에서도 연재될 정도로 다양한 지면이 생기고 있어요. 문제는 준비된 타자가 과연 충분히 있느냐는 겁니다. 일간지에 판타지를 그릴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중요한 게 우리 만화의 맥이 자꾸 끊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동만화가 있다가 없어지니, 지금 애들이 보는 만화는 만화를 이용한 교양서나 동화 같은 것입니다. 애들이 볼 만한 만화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성인만화도 그 맥이 끊겼는데, 제대로 되려면 성인만화를 뛰어 넘어 실버만화까지는 나와 줘야 할 텐데 말입니다. 그 연결고리가 뚝뚝 끊겨서 어디까지가 만화를 좋아하는 세대인지 알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신문에 연재를 보람을 느끼는 것이 딱딱하기 짝이 없는 신문의 고리타분한 독자들도 만화를 보고, 젊은 독자들도 많이 유입된다는 거예요. 이게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만화 독자들의 밥상 위에 새로운 메뉴를 올려 줘야
이희재
우리가 만화 수요자들한테 메뉴 개발을 안 했던 것이죠. 만화라는 밥상에 올릴 다양한 메뉴를 개발해야 하는데…. 내가 일본만화를 관찰하면서 느낀 게 일본은 새 작품을 준비하면서 밥상, 즉 판을 분석한다는 점입니다. 밥상에 먼저 놓인 이 반찬, 저 반찬을 분석하며 거기에 들어 있는 양념도 따져 보는 거지요. 그리고 여기서 빠진 걸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누가 이 반찬만 잘 먹는다 하면, 계속 그 반찬만 내밀고 말죠.
허영만 그런 반찬들이 여러 가지로 집약되어 있어야 하는 곳이 잡지인데, 잡지에서 너무 획일적으로 몰아가고 있어요.
이희재 일본 만화가들이 말하길 자기들은 출판사나 잡지사, 작가들끼리 경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른 매체와 경쟁한다는 거죠. TV, 영화, 컴퓨터, 게임 같은 경쟁 매체를 살피는 겁니다. 만약 A잡지사가 B잡지사와 경쟁하려면 다른 틀거리로 접근해야 하는데, 한 쪽이 좀 잘 된다면 같이 달라붙어서 먹으려고 하다가는 낭떠러지로 같이 뛰어내리는 꼴이 될 수 있습니다.
허영만 잡지 표지를 뜯어놓으면 어느 잡지인지 모를 정도로 성격이 없어요. 게다가 요즘은 잡지를 보면 얼마나 열심히 안 했는지 탁 털어서 후루루 불면 그림들이 다 쏟아져 내리고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아요.
이희재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지요.
이재식 만화잡지가 작품을 담는 그릇이나 홍보 매체 또는 새로운 실험대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고, 이런 시스템 자체가 한계에 봉착됐다면 그 대안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이희재 문제는 대안인데, 참 어려운 일입니다. 80년대 초에 보물섬이 있었고 나름대로 독자적으로 만화잡지를 끌고 왔습니다. 80년대 말, 90년대로 진입하면서 <아이큐 점프>, <소년 챔프>가 등장해서 새로운 감각의 일본 것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우리 만화의 큰 줄기를 이루어 왔습니다. 그런데 90년대 중반, 특히 IMF를 겪으면서 편집자들이 메뉴 개발을 안 한 것 같습니다.
허영만 한때 만화작품 표지에 담당기자 누구하고 이름이 나왔는데, 그게 왜 나왔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자기 이름이 들어가니까 자기가 담당하는 연재물의 인기도 책임져야 하는 걸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폭력물하면 중간쯤은 가니까 웬만하면 폭력물하라는 식인 것 같아요.
이희재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지 않고 당장의 경향만 좇아가다 보니까 시간이 흐르면서 잡지 부수, 독자들의 파이가 자꾸만 작아지게 되죠. 자기 크기가 자신도 모르게 오그라들었는데, 사실은 스스로 오그라뜨린 걸로 보입니다. 편집자들이 해야 할 일이, 작가들 원고 받아서 사식 넣어 제때 넘기는 건 현안 실무지만, 저 작가는 무엇을 제일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김수용은 <힙합>은 잘하지만 5년 뒤에는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을까? 어떤 지면을 내줄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 사회를 끌고 가는 코드는 무엇인가? 엽기라면 엽기 말고 다른 것은 무엇이냐?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근본적으로는 인간적인 휴머니즘이라든가 감성적인 것을 잘할 수 있는 작가가 필요할 테니 작가를 개발하고 취약하면 시간을 주고 그래야 하는데, 한 작가가 잘하면 바로 굴려먹기 바쁜 처지였습니다. 신문사에서 연재 청탁이 왔는데, 언제부터냐고 하니 한 달 뒤라고 하더라고요. 지금 할 생각도 없고, 준비도 안 되어 있지만, 만약 할 것 같으면 6개월 시간을 달라고 했어요. 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줘야 하고, 또 물론 작가도 미리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하고요.
허영만 출판사들이 잘 나갈 때, 작가들도 작품이 좋을 때 다음에 뭘 할 것인가, 총알을 미리 준비해야 하고, 편집자들은 저 사람들이 뭘 해야 잘할 수 있을까, 담당자들끼리 머리 맞대고 같이 연구해야 되는데 그게 잘 안 되어 왔죠. 출판사는 자기들끼리는 자구 노력을 했다고 하고 또 했겠지만 제대로 해왔다고 보긴 힘들어요.
이희재 그래서 거시, 미시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현재 당면 문제도 면밀하게 바라보면서 3년, 5년 뒤에 어떻게 흘러 갈 것인가 진단을 해야 하는데 그 시각이 없어요. 미시는 있는데, 예컨대 재빠르게 현실은 따라가는데, 거시에 대한 것은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 하고,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습니다.
허영만 이제는 잡지사에서도 더 투자할 여력이 없는 것 아닙니까.
이재식 만화가게용 만화(대본소) 분야는 더 심해서 고사 직전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도저히 길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요.
허영만 그것도 스스로 자초한 일 아닌가 싶어요.
만화방은 고향 같은 존재이지만 이제는 논의 대상 안 돼
이희재 우리 역시 대본소에서 자랐고, 그곳이 고향 같은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모순, 한계는 도리 없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대본소 구조는 저개발 사회단계에서는 매력적이었고,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21세기가 시작된 지금, 그 구조는 개인적으로 빨리 사라질수록 좋다는 희망사항을 안고 있습니다. 다만 현실 속에서 이 구조에 생존방식을 기대고 있는 사람이 우리 친구, 동료들이기 때문에 갑자기 말 한마디로 사라져야 한다고 하기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경우에 따라서 공존방법을 찾아야 하고, 개선을 해서 바꿔나가야 하는 게 남겨진 과제라고 봅니다.
왜 만화방이 빨리 없어질수록 좋다고 하냐면 이 방식은 창작인력이 전문성을 확보하거나, 공부해서 질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절대 작동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질의 하향화를 필연적으로 부를 수밖에 없는 거죠. 나는 만화가들이 창작한 작품이 한 달 수명도 못 가고, 한 보름 돌다가 땅 속에 버려진다는 게 소름이 끼칩니다. 이건 끔찍한 비극이거든요. 이제는 새로운 무대를 선택해서 우리의 창작 에너지를 쏟아내는 것이 훨씬 희망이 있고 비전이 있다고 봅니다.
허영만 대본소 만화가 공장형으로 변해가고 있을 때 제일 안타까웠던 게 유능한 인재들마저 공장 형태에 휩쓸려서 녹아 없어져 버린 겁니다. 언젠가부터는 대본소 만화에 국적도 없는 무협지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또 부수가 떨어지고 제작비를 감당할 처지가 못되니까 미얀마, 중국, 필리핀, 베트남에서 작품을 제작해오더군요. 누군가 “중국에서 만화제작하고 있다.”며 대단한 수출역군처럼 이야기하는데 참 어이가 없습니다.
대본소 체제는 많은 사람들이 투입돼 양산을 하다보니 유능하든 그렇지 않든 전부 절름발이식으로 만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배경만 해서 나이 사십이 넘는다든지, 인물 그리면서 마스크를 못 그리는 인물 터치가 있고, 또 마스크를 그리는데 주인공만이나 엑스트라만 그리는 사람이 있고. 이 사람들은 절름발이식으로 조각조각 그림을 그리는 기능인에 불과하니까 예전처럼 개성 있는 만화가 나오기란 기대하기 힘들죠. 정말 안타까운 게 새로 만화를 배우려는 젊은이들까지 대본소에 휩쓸려 처음 가졌던 청운의 꿈이 몇 년 안 가서 사라지는 경우가 있더라는 겁니다. 대학서도 취업률 때문에 나중에 어떻게 되든 대본소에 보내고 취업했다고 합니다. 그런 곳에 가서 도대체 뭘 할 수 있을까요.
이희재 한 사람의 만화가가 배출되는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문하생으로 들어가서 선생님 밑에서 배웠는데 그 구조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어요. 구체적인 그림 실무에 대해서는 질기게 세부적으로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었는데, 분업화돼서 총체성이 없다는 것이 단점입니다. 어떤 사물을 그릴 때는 기술도 받쳐져야 하지만, 그 기술로 담아야 될 내용, 세계관, 정서 같은 걸 함께 고민해야 하는데 우리가 수련기에 배운 것은 주로 기술 중심이었습니다.
만화에 대한 갈증을 가진 후배들에게 대안을 제시한 시도는 제도교육 밖에서 먼저 시작된 것 같습니다. 대학을 비롯한 제도권 교육 안에서도 만화교육이 정착해 가고 있고 총체적인 관점에서 교육을 이루고 있어 보입니다. 이런 전통이 제도권과 사적 영역에서 각기 대략 10여 년 정도의 역사를 이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까지는 거기서 배출된 인력들이 커다란 성과를 얻진 못했지만, 인력들이 누적 되어 저변을 이루면서 일정한 성취를 이루고 있고, 이제는 솟구치게 될 시기라고 봅니다. 이제는 우리 만화의 미래를 담당하게 될 무리가 될 것 같아요.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야외에 전시된 젊은 작가들의 정부 지원 작품을 보며, 우리 만화의 희망과 작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원정책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문양성소를 만들어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방안도
허영만
대학교육은 시간 낭비가 많은 곳이던데, 집중적으로 투자해서, 예를 들면 휴대폰 같은 것도 다 끊고, 공부해야 할 시기라고 봅니다. 또 대학교육 현장에는 실기 중심으로 무장하고 있는 사람이 몇 안 돼 보입니다. 따라서 이런 문제는 학생 스스로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전문양성소를 만들어서 저녁마다 토론하고 공부시키는 게 낫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래도 그 중에서 이른바 싹수가 보이는 젊은이들이 있던데, 이런 인재들이 희망이 되지 않을까요. 장기적으로 보면 희망적인데, 현재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하면 어느새 새싹들이 자라서 제 역할을 할 때가 오겠지요.
이재식 이들 젊은 세대들은 컴퓨터세대들입니다. 만화를 그리는 주 도구가 컴퓨터인데, 말하자면 컴퓨터가 화구인 셈입니다. 활동 무대도 인터넷인 경우가 많습니다. 온라인 만화에 대해서 어떻게 보고 있고, 적응하고 있습니까. 
이희재 예전에 만화가협회에서 인터넷만화를 주제로 세미나를 했는데, 일본 저널리스트 한 명이 질문하더군요. “인터넷만화 이야기하는데 왜 스캔만화만 이야기하느냐? 한국이 인터넷 환경이 발전됐다고 해서 다른 뭔가가 있을 것 같아 왔다.”고 말입니다. 결론은 스캔 해서 올린 만화는 의미가 없습니다. 종이에서 모니터로 본다는 착각 정도지요. 오히려 인터넷에 만화방을 차려 싸구려 역할만 한 것 같습니다. 나는 만화는 게릴라적인 성격이 있는 매체라고 봅니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작업할 수 있고, 인터넷이 있으니 시골서도 전송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게릴라가 폭탄을 터뜨리는 것, 총으로 쏘아 맞추는 것은 성능, 즉 콘텐츠의 질이라는 것입니다. 만화의 내용이란 말이죠. 그게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중요한 건 얼마나 매력있는 콘텐츠냐는 거지요. 다만 인터넷 무대가 신인들에게 유리한 건 있을 겁니다. 오프라인 매체에는 신인이 접근하기 힘들지만, 인터넷은 자기가 만들어서 올리면 되니까.
예를 들어 강도영(강풀)을 봅시다. 강도영은 재주가 모자라, 기술로 보면 한참 혼나야 됩니다. 그런데 정열이 있고, 가슴이 뜨거워요. 그래서 인터넷에 만화를 올렸는데, 엄청난 사람들이 봤지요. 또 인터넷에 올린 게 책으로도 나오고. 강도영이란 존재는 눈에 안 띄던 신인이었는데 스스로 무한대의 사이버 공간에서 자기 세계를 구축했던 거죠.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그야말로 평등해,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질 수 있는 곳이죠. 이런 특성을 만화가를 꿈꾸는 세대들이 잘 활용해야 된다고 봅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온라인 매체라고 해서 특별할 건 없다는 사실입니다. 신인에게 무한대의 기회가 주어지지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자신의 실력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준비한 내용을 가지고 기회를 응용하는 거니까, 문제는 창작이라고 하는데 문제는 다시 콘텐츠의 질이 되는 것입니다.
허영만 만화하고 인터넷은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은데, 아직은 무엇인가 감은 못 잡겠고, 이 선생 말마따나 균등한 기회로 돈 안 들이고, 아쉬운 소리 안 듣고 연재할 수 있고, 평가도 빨리 받을 수 있는 성질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쪽으로 너무 치우쳐져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이 다는 아닐 거라고 봅니다. 나 같은 경우는 크게 배우고 싶지는 않은 게 지금 그거 배울 시간에 만화 열심히 그리고 나중에 이런저런 연재 끝내고 그때 가면 재밌는 놀잇감이 되겠다 싶어요. 인터넷과 출판만화가 같이 클 수 없을까 고민을 해봐야 하고, 기술적인 문제는 가능하면 이용하면 되겠지요.
이희재 해방 후 90년대까지 만화가들이 몇 명이나 나왔는가를 따져 본 적이 있는데 그리 많지가 않았습니다. 숫자로 치면 4백 명 정도. 90년대에 만화학과가 처음 생겨서 지금까지 15년 정도 흐르면서 나온 인력들이 숫자로만 치면 50년 동안 나온 숫자 못지않게 많습니다. 40~50년 동안 성장한 만화창작 인력 못지않은 저변이 15년 사이에 깔린 셈인데, 이 저변은 앞으로 우리 만화를 담당할 주력군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또 정부나 서울시, 애니메이션센터 같은 데서 많은 지원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전 세대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우리 때는 만화만 그리도록 내버려두기만을 바랐는데, 지금도 청소년보호법 같은 한계도 있지만, 잘하는 사람은 상금도 준단 말입니다. 그런 기회를 십분 활용하고, 또 우리 선배들은 그런 제도적인 뒷받침을 더 넓혀야 될 테고요.
허영만 요즘 이런저런 만화상이 있고, 나도 얼마 전에 ‘오늘의 우리만화상’이라는 상을 받았는데, 사실 돈 주는 상은 처음이었어요. 옛날엔 만화가협회 사무실 임대료를 못 내서 임원들의 주머니돈으로 감당하며 임대료 걱정을 했는데, 그래도 여러 지원책이 따라서 만화가 단체들이 입주하는 공간도 있어 좋습니다. 뭔가 좀 그럴 듯해 보이고 번듯해 보이는 면이 있긴 합니다. 모자란 것도 있지만 많은 조건이 충족됐다면, 이제 남은 것은 스스로의 자생력, 그게 관건인 것 같습니다.
 
 
작품 소재 골라내는 밝은 ‘선구안’을 길러야   
이희재 그렇습니다. 결국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마냥 정부가 도와줄 수도 없는 것이고, 결국은 자기 자신입니다. 나는 데츠카 오사무 작품 중에 <아야코>라는 작품을 최근에 읽었는데, 일본이 패망한 후에 겪는 사회적인 갈등이나 정체성을 다룬 내용입니다. 이 작품을 보면서, 작가는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를 선구한다는 의미에서, 데츠카가 보여 준 선구안에 대해 놀랐습니다. 마치 야구에서 공을 선구하듯이, 소재를 잘 골라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선구안을 가지려면 눈이 밝아야 하는데,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안 밝아집니다. 정보든 지식이든 지혜든 세상에 대해 공부를 해야 선구안을 가질 수 있습니다. 결국 메뉴 개발, 앞서 말한 밥상 하고 같은 얘긴데, 얼마나 독특하고 맛있는 것을 올려놓느냐는 문제이지요. 이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다져진 작가의 내공에 다름 아닙니다. 작가가 내공이 부족하면 다른 회로에서 잘 골라낼 수 있는 것도 작가의 일입니다.
이재식 두 분 선생님께서 말씀을 나누는 중에 일치하는 결론에 이른 것 같습니다.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꾸준히 노력해 실력을 연마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나 앞으로 하시고 싶은 작업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허영만 지금까지 만화 그리면서 <식객>처럼 오래 준비한 적도 없었고, 열심히 공부한 적도 없었습니다. 음식 종류가 많듯이 얘깃거리가 많아 앞으로 한눈 안 팔고 계속할 작정입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영화를 봐도 총 쏘는 것은 질립니다. 아, 이거 허구인데 싶어서. 그래서 만화 자체도 허무맹랑한 것은 견디기 힘들 만큼 그리기 싫어졌습니다. 그 대표적인 게 <짜장면>을 하다 만 일입니다. 현실적으로 주위에 흔히 있는 건데 그 동안 모르고 있었구나 싶은 얘기를 찾아서 만화로 그리고 싶습니다.
이희재 손꼽아 보니 어느새 만화에 들어온 지 35년이 넘었더군요. 35년의 내공이 얼마나 될까하니 한주먹도 안 되는 것 같은데, 그러면 모골이 송연해지고 머리가 쭈뼛 섭니다. 모자란 것을 조금씩 공부를 해나가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우리 인간들이 역사를 통해서 쌓아온 고전들에 관심이 갑니다. 또 한편으로는 뚜렷한 것은 아니지만, 만화를 손으로 그리는 것도 있고, 머리로 그리는 경우가 있는데, 내 몸을 통해서 배어나오는 만화는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를테면 내가 여행을 가다가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런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이 만화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무대는 몽골이 될 수도 있고, 파리나 남해안의 어느 해안선일 수도 있을 텐데, 어쨌든 내가 존재하는 그 터에서 만화를 몸으로 건져 올리는 작업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재식 오랜 시간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선생님들께서 강조하신 결론 말씀이 우리 만화의 짐을 버겁게 지고 있는 작가와 편집자를 비롯한 모든 만화인들에게 적지 않은 힘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허영만 선생은 앞으로 “우리 일상의 주변 이야기를 끄집어 내보고 싶다.”고 했고, 이희재 선생은 ‘몸에서 배어나오는 작품’을 건져 올릴 구상을 하고 있다.
2005-10-11 12: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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