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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기사
다시 문제는 창작이다 - 창작 주체들의 역할, 진화의 과정

만화가, 스토리작가, 편집자는
어떻게 진화하나, 그리고 독자는?
 
글 | 김은미 (웹진 ‘두고보자’ 편집위원)
 
 
         서울애니메이션센터는
 
대자연의 법칙에서, 환경의 변화 속에서 멸종당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의 기쁨을 만끽하는 것은 결국 진화를 이룩해내는 종뿐이다. 창작 환경도 이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창작 주체들은 창작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다시금 자기 역할규정을 해야 한다. 지금 한국에서 만화창작의 환경은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다. 따라서 “창작에 관여하는 모든 주체들이 작품의 목적과 의미에 적합하도록 서로 잘 뭉쳐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자.”라는 뻔한 일반론적인 결론이 불가피할지라도, 구체적으로 이들의 세부적인 역할변화 과정을 살펴보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만화가: 종주권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흔히 만화가는 ‘혼자서 모든 것을 창작하는’ 작가주의적인 직종으로 여겨지곤 한다. 실제로도 다른 주류 대중문화 장르에 비해서 그런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만화창작의 넓은 스펙트럼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우를 범하기 쉽다. 당장, 가장 주류적인 대중만화의 창작에 만연해 있는 문하생과 어시스턴트들의 존재, 화실과 스튜디오 개념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엄청난 원고 생산량을 자랑하면서도 컬러링을 제외하고는 혼자서 모든 작업을 담당하는 <시민쾌걸>의 김진태 같은 작가도 있지만, 최근 출간된 <태극기 펄럭이며>의 마지막 페이지 문하생 모집광고에 ‘화실 내 식당운영’이라고 공지해놓을 정도인 김성모 같은 작가도 있는 것이다. 작가는 연재 형식, 그림체 등 다양한 변인에 의하여 가장 합리적인 창작 방식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처음의 명제는 “만화가는 작품을 혼자 창작하는 것부터 속칭 공장제로 생산해내는 일까지 선택의 폭이 넓다.”고 수정되어야 한다.
실제로는 어떨까. 주간이나 격주간 만화잡지 연재가 주류 만화의 방식으로 개가를 올리고 있을 당시에는 5~6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중간급 화실이 전형적이었다. 하지만 전통적 시장의 축소와 함께 이것은 운영상의 한계에 부딪혔다. <힙합>의 김수용, <짱>의 임재원 등 수년간 주간 소년만화잡지의 수위를 달리고 있는 소수의 작가들만이 안정적인 현상 유지가 가능한 상황에서, 선택은 크게 두 가지 갈림길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일인 작업으로 회귀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분업화된 전문가의 길이다.
일인 작업으로의 회귀는 특히 젊은 신인작가들에게 있어서 뚜렷한 경향이다. 이것은 무엇보다 중소형 화실 개념의 쇠퇴, 잡지 공모전의 감소 등 기존의 창작 지면에 진입하는 경로 자체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비주류적 감수성 때문에 할 수 없이 그 길을 선택하는 경우와는 다르다. 예를 들어 단편 ‘공룡둘리’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최규석의 경우, 이전의 기준에서 보자면 공모전 수상 - 주간지/격주간지 잡지연재 - 중소형 화실 형성의 전형적인 패턴을 걸어갈 수 있었던 작가다. 하지만 변화하는 창작 환경과 스스로의 작가의식 속에서 아직은 1인 작업의 길을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온라인을 중심 무대로 삼아 활동하는 만화가들은 1인작업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심지어 독자와 만나는 유통과정의 일부분까지도 일임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명실공히 2003년의 최대 화제작으로 꼽히는 정철연의 <마린블루스>는 분명히 주류적인 감수성의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1인작업을 통해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스스로 유통시키고 있다. 하지만 1인작업의 단점 역시 명확하다. 작품에 대한 작가 개인의 통제력이 상승하는 대신, 경우에 따라서는 독자들과의 연결고리를 놓치고 매니악한 취향으로 한정될 위험- 따라서 상업적 성공 가능성을 희생할 위험이 있다. 나아가 작업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린 편이어서, 주류 장편만화 스타일의 호흡에는 맞지 않다. 현재 휴식중인 형민우의 <프리스트>가 그러한 괴리의 대표적 사례다.
이에 비해서 분업화 된 전문가는 일정 속도 이상으로 원고가 나와야 하는 주류 오락물에 적합한 형태로, 분업화된 작업공정 속에서 연출과 작화를 맡는 전문 기술인으로서 기능한다. 작화 과정 자체도 여러 단계(배경-인물-소품, 또는 콘티-데생-펜선-스크린톤 등)로 구분되며, 각 단계에 있어서 전문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 중 전체 감독의 위치에 서게 되는 만화가는 개인 차원의 창작능력 이상으로 경영관리 능력이 요구된다. 한국의 경우 아직은 전문 기술인으로서의 만화가에 대한 인식이 낮으며 대표적인 성공사례를 꼽기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실제로 미국 등에서는 각 분야대형 프로덕션체제 화실의 진화 가능성은 없는가. 토드 클라인은 <샌드맨>의 작업을 통해 레터링의 장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의 문하생시스템도 이같은 진화를 통해 질적 발전을 추구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볼 일이다. 사진은 성인만화 프로덕션으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김성모 화실의 최신작 <태극기 펄럭이며> 표지. 자유구역 출간.마다의 전문성을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샌드맨 Sandman>시리즈를 통해 명성을 확고히 한 토드 클라인의 경우, 레터링의 전문가다(말풍선에 글을 넣는 작업). 그것은 단순히 타이프를 넣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각 캐릭터의 발언에 적확하게 손으로 쓴 개성적인 글씨체를 부여함으로써 작품의 품격을 창조하는, 작화 분야의 장인이다. 우리의 경우 작화 도우미들이 문하생 개념에서 어시스턴트 개념으로 변해가는 현실 속에서, 작화가로서 만화가의 입지는 더욱 굳건해질 수 있다. 사실 본격적인 상업적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주류 오락만화 장르를 이런 식으로 더욱 체계화, 고효율화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그 속에서 각 파트를 일임하는 성원들의 최종 목적이 기존에는 ‘자연스러운 지면 데뷔’였다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그 분야 자체에서의 장인이 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 김성모 화실, 박봉성 화실 등 수십 명 이상의 규모를 자랑하는 대형 만화 프로덕션에 소속된 수많은 만화 작화가들에게 보다 현실적인 목표가 되는 것이다.
 
 
만화 스토리작가: 이야기의 힘은 그림을 삼키나
만화 스토리작가는 아직도 대중적으로 크게 인정받지 못하는 업종이다. 많은 작품들이 작화와 스토리가 동일한 창작자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야기 자체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부족했다는 것이다. 화려한 특수효과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정작 시나리오의 빈곤으로 인하여 실패하듯이, 이야기의 힘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특히 90년대 후반 들어서 일본 만화의 엄청난 유입과 함께 ‘보편적으로 멋있는 주류적 작화 기술’을 습득하고 재현하는 것이 손쉬워진 지금, 차별화의 방법은 결국 천재적이고 독창적인 새로운 시각연출 또는 훌륭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밖에는 없다.
9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야설록, 김세영, 윤인완 등 일부 스타급 인물들의 활약에 힘입으며, 만화 스토리작가들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표면화되고 있다. 특히 주류 오락만화는 더욱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생산되기 위하여 시나리오를 강조하며, 시나리오 작가의 작품 전반에 대한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 90년대 중후반부터 두각을 나타낸 만화 및 무협지 제작사인 ‘야설록 프로덕션’을 필두로, 현재 스포츠 투데이에 연재중인 ‘김세영’의 <갬블>은 이러한 전망을 뚜렷하게 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작품 연재에서 그림을 담당하는 작화가의 이름이 아예 표기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만화가의 이름에 가려 스토리작가가 그림자의 영역에 머물렀던 허영만/김세영 콤비의 <오! 한강>이 연재되던 80년대 후반의 상황과 완벽하게 대비되고 있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스토리작가의 이름이 저자 이름으로 표지에 나란히 실려 있는 경우가 있다. 즉 스토리작가가 운영하는 프로덕션에서 책이 나오면서, 스토리작가 이름만 넣으면서 스토리작가 두 사람이 들어간 경우이다. 13권까지 나와 지난해 12월에 완간된 <광야>의 저작인 안향기, 조성황 씨가 이런 경우이다.  
특히 이런 움직임은 만화계 불황과도 연관이 있다. 즉 불황 속에서 기획력을 갖춘 스토리작가의 비중이 더 커진 것이다. 스토리작가들은 코믹스나 대본소 만화, 혹은 학습만화 분야에서 기획자의 몫을 동시에 맡아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대개는 그림작가와 파트너로 공동 작업을 수행하고 서로 훌륭한 조언자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이런 기회에 스토리작가들로서는 자신들의 입지를 판권에 이름 표기, 프로덕션 운영 등으로 찾을 것이 아니라, 기획력을 시험하는 것으로 다질 필요가 있다. 우리 만화처럼 기획력이 떨어지는 조건에서 스토리작가들에게 더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편집자 혹은 기획자 :  대등한 파트너로서 전문성을 갖출 수 있는 기회가 올까
한국에서 만화를 기획한다는 것은, 학습만화 장르 등 일부 영역에서만 통용되는 개념이었을 뿐, 실제로는 당대에 유행하는 소재를 하나 던져주는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작가가 그려온 만화를 출판사 편집부에서 ‘선택’하는 식의 진행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뚜렷한 컨셉트를 가지고 처음부터 공동 설계해 나가는 방식의 만화 창작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기본 전제처럼 여겨진 잡지 모델이 쇠퇴하고 단행본 시장의 거품이 사정없이 빠져나가면서, 만화에서도 기획 개념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그런 와중에 지난 1~2년간 <파페포포 메모리즈>, <그리스 로마 신화>의 대성공과 <마법천자문> 등 작품적 재미와 학습효과를 고루 갖춘 신개념 학습만화의 등장으로 기획의 힘이 본격적으로 부각되었다.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인 치밀한 전략은 비단 완성된 작품의 마케팅 차원에 머물기를 거부했다.
예를 들어 <마법천자문>의 경우 작품의 세계관과 학습 컨셉트 등에 대한 구체적인 구성이 완성되어 있는 상태에서, 소년 만화풍의 그림체와 연출을 진행할 수 있는 만화가를 나중에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만화를 그리는 작가의 역할이 줄어들었다는 한탄 섞인 푸념보다는, 목표와 수단이 뚜렷하게 정해져 있는 만화에서 기획자가 창작의 대등한 파트너로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왜냐하면 좋은 기획과 좋은 작가는 결국 좋은 창작물, 나아가 예상 가능한 긍정적인 독자반응으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여러 주류 만화 출판사 편집부의 경우, 수년 전까지만 해도 적극적인 기획 개념에 회의적이었다. “일본에서는 인기작 하나에 5~6명씩 붙어서 같이 기획하고 자료수집도 한다. 하지만 기자 한 명이 작품 4~5개를 담당하는 한국 만화출판계의 현실에서는 적극적인 기획이 불가능하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종수를 줄이고 확실한 히트를 노리는 방식으로 새로운 시장 모델을 구축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편집부는 최초의 컨셉트 및 세계관 구성, 타깃과 종합적인 마케팅 연계 설계까지, 만화 창작 자체에 깊숙이 개입해 나가고 있다. 비록 작가와의 역할분담에 있어서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나가기에는 아직은 시행착오가 많은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그러한 움직임 또는 의지를 보여 주는 작은 의지의 표현 중 하나가  몇 년 전부터 일부 잡지에서 도입하고 있는 ‘담당기자 표시제도’ 같은 경우이다. 연재작품의 작가 표기란 밑에, 담당기자의 이름을 같이 병기함으로써 창작에 대한 참여지분을 상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은 지극히 미온적이고 형식적인 조치일 뿐이고, 보다 적극적인 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의 마련이 필요하다. 
사실 만화의 기획은 전통적 개념에서는 출판사 편집부 내부의 임무에 불과했다. 하지만 중소형 출판사의 선전과 다양한 지원사업의 확대로 만화 출판과 유통의 경로가 다양해진 지금, 전문 기획자 개념이 새로 생겨나고 있다. 만화에 대한 전문적인 경험과 식견을 가지고 있으면서 특정한 출판사에 소속되어 있지는 않는 개인, 또는 소규모의 기획사가 작품의 내용에서부터 출판의 방향, 마케팅까지도 설계해서 출판사에 프로젝트를 제안하며 작가와 출판사를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자청하고 있다. 이들 역시 창작의 구체적인 부분에 개입하는 또 다른 창작주체이며, 시나리오 작가, 작화가, 편집부 등 여러 다른 주체들에 이은 새로운 힘이다. 예를 들어 여러 작가들의 단편을 하나의 컨셉트로 담아낸 모음집 <김광석 프로젝트 스무 살>을 기획하고 진행한 것은 ‘병준그림방’이라는 기획사로, 만화가로서 좋은 작품활동을 보이고 있는 변병준의 기획자로서의 활약에 다름 아니었다. 
 
 
진화의 다음 단계는?
고병규의 <먹통X>. 작가의 팬이 복간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사전 구매자를 모아 출판까지 연결시켰다. 이는 독자가 창작주체로 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창작에 개입하는 방식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창작자’가 아닌 ‘창작 주체’라는 용어를 사용해왔다. 그렇다면 이 다음 단계의 진화는 무엇일까? 수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이후에 새롭게 급부상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주체들은 바로 창작의 반대편에 있는 것으로만 여겨졌던 독자들일 것이다. 비단 큰 인기를 등에 업고 급속히 주류급의 영향력을 확보해 나아가고 있는 동인만화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구체적으로 독자들이 창작의 한 주체로서 다가올 가능성은 싹이 트고 있는 중이다. 작년에 컬러원고와 이전의 편집문제를 수정한 완전판 개념으로 복간 출시된 <먹통X>의 경우, 팬을 자처한 한 독자가 신진 만화 기획사에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직접 사전 구매 인력을 모집하여 출판까지 연결시킨 사례다. 이것은 기존의 출판사 관행이나 개념으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유연한 발상이 만들어낸 성과로, 이후 독자들이 창작 주체의 하나로서 만화의 발전에 어떤 기여를 할지 새로운 기대를 가득 품게 만들고 있다.
 
 
 
일본 만화 편집부의 만화 창작지원시스템: 고단샤 편집부 현장 연수기
집단 담당제로 기자 교육,
전문성 확보에 주력하고 출판사 적극 투자
  
글 | 진상진 (학산문화사 <찬스>편집장 badajin@haksanpub.co.kr)
 
일본의 만화 전문서점 망가노모리 작가와 편집자의 공동 작업은 결국 여기서 평가를 받게 된다. 일본의 만화편집자들은 대개 고학력 엘리트들이라 만화 독자층의 간절한 ‘바람’을 잊지 않으려는 세밀한 노력을 기울인다.
 
일본의 만화 3대 메이저 출판사의 하나인 고단샤(講談社)의 간판 잡지인 <소년매거진>은 1959년에 창간되었다. 흔히 일본은 오래 전부터 만화가 국민적 사랑을 받았고, 그 지지기반 아래 만화잡지가 생겨났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1970년대 이전까지 고단샤 만화 부문은 적자를 면치 못했다고 한다. 그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킨 것이 <내일의 죠>와 <거인의 별>의 등장이었고, 이 두 작품의 이면엔 공히 편집자의 힘과 철학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필자는 지난해 10월 고단샤 편집부 연수를 통해 일본 만화 편집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창작시스템과 편집부의 일상을 약간이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이는 일본에서 따온 잡지 시스템, 그리고 비교적 비슷한 독자 성향을 지닌 국내 만화계의 창작 방법론 언급에 있어서도 참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발행부수 주간 약 310만 부로 <소년점프>(슈에이샤)와 1, 2위를 다투고 있는 <소년매거진>의 편집부의 기자 수는 약 30여 명이다. 이 잡지의 연재작 수가 22~23개 정도이고, 이 부서에서 연재작 수가 약 10개인 <매거진 SPECIAL>까지 맡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거의 한 작품당 한 명의 담당 편집자가 있는 셈이다. 산술적으로는 그러한데, 실제로는 대부분의 편집자가 2개 내지 3개 작품의 담당을 맡고 있다. 이것이 바로 <소년매거진> 특유의 ‘집단 담당제’로서, 한 작품당 2~3명 이상의 복수 담당 편집자를 두는 체제이다. 예를 들어 <레이브>라는 작품의 경우, 경력 15년 이상의 부편집장과 경력 7년의 편집자, 그리고 입사 2개월의 수습, 이렇게 3명이 한 팀을 이루고 있다.
이 팀이 실제 작품 제작에 있어 어떻게 움직일까? 마침 작가와 편집팀의 미팅이 있는 날이었다. 작가가 한 회분 콘티를 짜서 팩스로 보내면, 우선 편집팀이 콘티에 대한 의견 교환을 하는데 수습인 막내의 어정쩡한 의견에 대해서 선배들의 날카로운 반문이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런 다음 작가가 편집부로 찾아와 콘티에 대한 편집팀의 의견을 듣는다. 10페이지 증면된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내용 진전 없이 지난 회와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다는 문제 제기에 작가도 공감하고, 바로 옆의 콘티실에서 콘티 수정에 돌입한다. 그로부터 4시간 후, 수정 콘티를 제출하고 OK를 얻어낸 뒤 작가는 돌아간다. 경력이 다양한 여러 편집자의 시선이 작품에 투영되는 장점 외에도, 신예 편집자의 마인드 단련에도 실질적인 효과가 있다고 하는 것이 <소년 매거진>식 ‘집단 담당제’이다. <소년탐정 김전일> 같은 추리물의 경우, 신입이 편집팀에 배치되면 한동안은 (작품 속에 담을 추리의)트릭 개발만 시킨다.
고단샤 만화잡지 편집자의 출근시간은 오후 1시이다. 동반자적 관계에 있는, 그리고 대개 야행성인 작가들과의 생활리듬을 맞추기 위해서이다. 사식 및 편집 작업은 모두 아르바이트 요원들의 몫이고, 편집자는 오로지 작품 진행에만 몰두하면 된다. <겟 백커스>의 담당은 작가가 심각한 슬럼프일 때, 아예 1주일을 작가랑 함께 생활한 적도 있다 한다. 이토록 작품 진행에 있어 편집자의 역할이 엄청나게 중요하지만, 과거와 비교했을 때 실제로 편집자가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케이스는 많이 줄었다고 한다. <내일의 죠>나 <거인의 별>, <북두의 권> 같은 경우엔 아예 편집자가 스토리 작가 역할을 했지만, 점차 편집부가 스토리까지 깊숙이 관여한 작품보다 작가성이 최대한 발휘된 작품이 더 잘 팔리는 현상이 많이 나타나면서, 편집자의 역할은 좀 더 객관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는 편이라고 한다. 대신 작품 진행을 위해 이루어지는 출판사측의 투자와 전문성 확보에 대한 노력은 엄청난 수준이다. <미스터 초밥왕> 마지막 권에 실린 한국 특별편 40여 페이지를 위해 작가, 편집자가 함께 서울, 부산의 다양한 초밥집, 어시장 등을 취재한다든가, 월드컵 당시 홍명보 선수에 대한 단편 만화 한 편을 위해 일본에서의 홍명보 선수 인터뷰는 물론 한국의 생가, 출신교, 동대문 운동장 등을 취재하면서 그들이 보여 준 집착(?)은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일본 스토리 작가와 한국의 권가야 씨가 함께 작업한 <푸른길>의 경우, 일본의 기차역 배경 하나가 나올 때마다 사진첩 한 권 분량의 자료들이 스토리와 함께 전달되어 왔다.
물론 어떠한 작품을 만듦에 있어서도, 작가와 편집자의 진행 방식이나 관계는 정해진 공식이 있는 건 아니다.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접점에서 드라마가 발생한다.”는 <영매거진> 타나카 씨의 말처럼, 작가와 편집자 모두 인간이기에 그 두 존재가 어떠한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어 가는가는 공식화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몇몇 베테랑 편집자들과 이야기하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건, 좋은 작품은 시대가 어떻든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눈으로 독자의 마음을 읽기 위해서 집 근처 중학교에서 하루 종일 아이들의 대화나 행동을 체크했다는 <월간 매거진>의 경력 20년차 이시이 씨라든가, TV 드라마 1회는 최대한 모두 섭렵하고 본인과 다른 사람의 감상을 체크한다는 <모닝>의 19년차 히로카와 씨는 “최근의 만화 편집자들은 거의 풍족한 환경과 동경대나 와세다 등 일류 대학 출신이기 때문에, 만화 독자층의 간절한 ‘바람’이나 ‘노력’ 등의 가치를 많이 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말도 덧붙였다. 무언가 손에 넣고 싶은 걸 사기 위해 상상 속에서 수백 번이나 그것을 산 후의 기쁜 감정을 떠올렸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아이들의 그러한 마음 말이다.
“만화시장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작가층이 다르더라도 타깃으로 삼은 독자층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게 한·일 편집자들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겠느냐.”는 일본 편집자들의 말은, 지극히 원론적이면서도 또 지극히 중요한 이야기였다.
2005-10-11 14:3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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