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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문제는 창작이다 - 그들은 어떻게 창작하는가 : 서문다미
서 문 다 미
 
글 | 김영진 기자 (innakim@Qcomic.com) 사진 | JAY’S STUDIO
 
 
 
 
서문다미 | 1976년 7월 28일 생. 1996년 이슈 공모전에서 작품 <귀향>으로 데뷔. 현재 잡지 <슈가>에서 <그들도 사랑을 한다>를, <파티>에서 <RURE>를 연재 중이다. 강렬한 연출과 스토리 전개 그리고 적절한 코믹을 통해 독자들을 자극하는 자칭, 타칭의 공인된 ‘사기꾼’.
 
한 컷의 이미지에서 출발한 순정만화의 새로운 문법
만화가들은 창작의 실마리를 어떻게 잡을까? 그리고 싶은 주제를 어떻게 정할까? 어떤 작가는 꿈에서 본 내용으로, 또 다른 작가는 자신이 평소 좋아하는 소재를 통해서 창작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그리고 이 작가는 막연한 한 컷의 이미지 속에서 받은 영감을 주제로 삼고서 스토리를 뽑아낸다. 바로 작가 서문다미가 작품을 창작하는 방법이다. 
 
 
장르? 소재? - 이야기의 부수적인 아이템일 뿐
다섯 쌍둥이를 둘러싼 SF 드라마 , 평범하지 않은 아이들의 일상적 이야기 <그들도 사랑을 한다>, 시공을 초월한 본격 판타지 를 비롯, 총 4편의 장편과 다수의 단편을 발표하며 현재 한국 순정만화계에서 확실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가 바로 서문다미이다. 일반적인 학원물에서부터 세심한 설정을 요구하는 판타지까지, 비극적인 드라마부터 한없이 유쾌한 코미디까지 서문다미의 작품세계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대부분의 영역에 관여한다. 이렇게 다양한 장르를 오갈 수 있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작가의 독특한 창작법에 있다. 서문다미는 ‘이미지’를 통해서 창작한다. 이미지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장르가 수반되는 것이고 소재가 선택되어지는 것이다. 때문에 장르의 구분이라든가, 어떤 소재를 사용하는가는 서문다미의 작품에 있어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작품 <END>의 총체적 이미지. 나선형, 직각, 폐쇄적, 완벽한 단절과 차단, 그 속에서 벌어지는 끝임없는 반복과 충격이 느껴진다. <NEW YORK CITY> Courage Books, 1998.이미지가 모든 것의 근원 - 이야기는 머릿속에서 터져 나온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이미지를 보여 주고 싶다’고 대답한다. 서문다미에게 있어서 작품이란 ‘이야기를 말하는’ 장르라기보다 ‘이미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주제란 언어로 표현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작품 의 주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 장의 사진을 꺼내서 보여 준다. 끝없이 뻗어 있는 직각 모양의 층계를 아래에서 올려다보며 찍은 사진. 너무나 추상적이다.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는 초능력을 가진 다섯 쌍둥이를 둘러싼, 초능력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SF물이기 때문이다. 이후 오랜 대화의 끝에 ‘직각의 폐쇄된 이미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끝없이 싸우는 이들의 모습’이라는 말로 정리했다. 그러고 보니 어느 정도 그 의미를 이해를 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100% 적절한 표현은 아니라며 아쉬워한다. 그녀는 이러한 자신의 창작을 ‘세탁’에 비교한다. “옷에 껴 있는 때를 세탁 효소가 분해하죠. 이 효소는 때와 함께 어울려서 새로운 덩어리를 만들고… 또 분해하고… 어렵나요?” …솔직히 어렵다. 하지만 작가의 책상. 마감은 끝났지만, 정리는 없다. 평소 순간순간 생각나는 걸 포착하기 위해 항시 작업이 가능하도록 준비되어 있다. ‘그것의 이미지’는 떠올릴 수 있다고 하니 바로 그런 것이란다.  일반 사람들은 이미지를 머릿속에서 떠올렸을 따름이고, 서문다미는 그 이미지를 다시 작품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 혹은 그림을 보던 중 문득 머릿속에 팍 꽂히는 이미지. 그걸 이야기로 풀어낸다. 덕분에 머릿속에는 언제나 이야깃거리가 넘쳐흐른다. 오히려 체크해두지 않으면 잊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한다. 작가의 입장에서는 행복한 고민이지 싶다. 아마도 언어적 주제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것, 일반적 의미로서의 ‘주제’와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서문다미의 작품에 신선함을 더해 주는 것이리라.
 
 
나 자신이 제1의 독자 - 하고 싶은 얘기는 바로바로 하자!
한창 작품의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는 중 돌발상황이 발생한다. 어떤 그림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팍 떠오른 것이다. 그럼 신속하게 이야기로 풀어 작품 속에 집어넣는다. 이것이 바로 서문다미의 방식, 하고 싶은 얘기는 곧바로 해야 덩치가 산만한 고양이가 여덟 마리 있다. 작가를 닮아서 원고를 좋아하나보다. 촬영 중에도 끊임없이 작가에게 놀아달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후련한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자신의 작품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 같다. 서문다미는 ‘작가는 제1의 독자’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자신의 작품이 자신을 이해시키지 못하면, 자신을 재미있게 만들지 못하면 안 된다. 작가 자신이 재미의 흐름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전체 줄거리에 피해가 가지 않은 선에서 종종 새로운 스토리를 삽입한다. 이런 변화의 결과 의 경우 최초 설정에서 3권에 나오기로 했던 부분이 실제로는 7권에서 등장하게 되었다. 거의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그렇다고 나쁠 건 없잖은가? 재미있으니까! 때문에 콘티란 무의미하다. 최초 콘티를 짜도 수정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콘티작업을 하지 않는 또 하나의 독특한 이유가 있다. 콘티작업을 마치고서 그림으로 옮길 경우 똑같은 경험을 두 번 하게 되기 때문에 재미가 반감된다는 것이다. 정말 철저한 ‘독자(=작가)’중심이다.
 
 
폭넓은 관계의 설정 - 언제나 여지를 남겨놓을 수 있도록
톤 상자. 깔끔하게 정리해서 붙여놓은 이름표가 인상적이다. 일반적으로 연재가 길어지기 시작하면 작품이 초기의 신선함을 잃어가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처음에 만들었던 설정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전개상의 미비점이 하나둘 씩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편 연재를 계속하고 있는 서문다미의 작품 중에는 아직까지 그런 경우가 없었다. 여기서 그 노하우를 밝혀 보자. 서문다미의 장편들을 잘 살펴보면 복선의 역할을 하는 듯한 장면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분명히 차후에 중요한 역할을 할 법한 복선인 것 같은데 결국 아무런 의미 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기에 바로 서문다미의 비밀이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이야기가 꼬이지 않도록 복선을 여럿 깔아 두고, 전개에 맞춰 그 복선 중 한두 가지를 선택한다. 나머지는? ‘버린다!’ 이런 방법을 통해서 이야기가 이후에 꼬이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다. 일종의 보험이라고나 할까? 결과적으로 이러한 작품의 창작방식은 독자들이 보기에 억지스러움도 덜고, 여러 복선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는 기회를 제공해 읽는 재미를 두 배로 만들어 준다.

더 나은 작품을 위한 새로운 도전 - <그들도 사랑을 작품 <END>의 공격적인 이미지. 사진 속 칼의 광택과 색상, 흩뿌려진 물의 느낌 등을 전투에 임하는 캐릭터들에게 심어 주고 싶었다. <COMBAT LIFE> バウハウス, 2000.한다>
2002년부터 연재를 시작한 <그들도 사랑을 한다>는 서문다미에게 있어서 새로운 시도다. 기존의 작품들은 이미지를 스토리로 풀어나갔다면, 이 작품은 일단 캐릭터를 만들고서 한 회, 한 회씩 스토리를 진행하는 중이다. 때문에 작가 자신조차 앞으로의 스토리는 알지 못한다. 평소와는 다른 스타일로 작품을 진행하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예전에는 스토리에 맞춰서 캐릭터들의 성격을 만들어갔는데, 이 작품은 캐릭터의 성격을 통해서 스토리를 만들어가니까. 4명의 개성적인 캐릭터를 창조하고 그들의 심리상태를 끊임없이 분석한다. 그리고 한 가지 상황을 던져주면 각각의 캐릭터는 서문다미의 머릿속에서 자의식을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서문다미는 단지 그것을 원고지로 옮겨놓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즉흥곡을 연주하는 음악가의 모습과 비교할 수도 있겠다. 때문에 스토리가 나오지 않을 때는 ‘무너진다’고 표현할 정도로 괴롭지만, 잘 풀릴 때는 재미가 그 곱절이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 작품은 ‘2002년 독자만화대상’에서 대상과 장편상 그리고 올해의 출판물 등 총 3개 부문을 수상했다. 실험적인 작품치고 엄청난 성공이 아닐까. 물론 이 실험작 하나로 인<RURE> 1권 작업 중 누락된 원고. 작업이 마무리 되었어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이유는 캐릭터 몸짓의 이미지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 원본과 비교해 보시길. 해 전체 작품의 스타일이 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도 사랑을 한다>보다 뒤늦게 동시 연재에 들어간 작품 는 이미지에서 시작하는 기존의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으니까. 다만 전작들에 비해 캐릭터의 생동감이 한층 더해졌다는 것이 <그들도 사랑을 한다>를 통해 얻어진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일러스트? NO~! - 그림은 연출을 위한 도구일 뿐
서문다미는 만화라는 장르의 큰 매력은 연출에 있다고 본다. 물론 예쁜 그림도 좋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연출로서 독자들에게 이미지를 확실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하다 도중에 그만뒀다. 정지된 한 장의 그림으로 모든 걸 표현하는 방식이 자신과는 잘 맞지 않았던 것이다. 어릴 적부터 멋진 연출이 등장하는 만화를 볼 때마다 ‘feel’을 받았다는 서문다미. 히지리 유키 원작의 <초인로크> 애니메이션, 프랭클린 J 샤프너 감독의 <혹성탈출> 오리지널 버전, 강경옥의 장편 <별빛속에>, 타카야 요시키의 <철인전사 가이버>, 이현세의 단편 <호랑이 사냥 이야기> 등 수많은 작품들을 보면서 생각지도 <그들도 사랑을 한다>의 캐릭터를 잡는데 가장 도움이 되었던 책. 표지와 본문에 나오는 황당한 문구들은 캐릭터들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다. <혈도 호신술>, 서문실업(주), 1973.못했던 앵글과 표현법을 배웠다. 서문다미의 작품 중에 판타지가 많은 이유는 아마 이런 작품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독서 그리고 과제 - 힘 있는 작품을 그리고 싶다!
사실 서문다미는 엄청난 독서광이다. 작가치고 책 많이 읽지 않은 사람 누가 있겠느냐만, 서문다미의 경우 그 다양함에 있어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고등학교를 다닐 당시는 학교 바로 옆에 위치한 거대한 3층짜리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시간만 나면 그곳에 가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는데, 장르를 불문하고 전체 도서의 2/3 정도를 읽었단다. 실제로 그녀의 집에서 발견하게 되는 책들은 도무지 예상<RURE>의 총체적 이미지. 현실과는 다른, 현실과 분리된 이질감과 공간감. <ORIENTALISM>, The 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2001.을 할 수가 없다. 만화가인 만큼 다량의 만화책은 기본, ‘어린이 명작 동화 전집’부터 시작해 각종 미술서적, 건축서적, 사진집, 스타워즈 설정집, 곤충도감, 한국 복식문화사전 등 실로 다양한 책들이 집의 빈곳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다. 작가로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소설가 최인호의 <지구인>. 그걸 읽으면서 진짜 ‘힘 있는’ 작품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잔잔하게 흐르는 내용 속에서도 말로는 표현되지 못하는 어떤 충격을 받았으며, ‘와! 진짜 쎄다!’라는 전율이 느껴지는 작품. 서문다미가 그리고 싶은 작품은 바로 그런 작품이다.
 
 
작가 서문다미 - 그리고 그 미래
지금 구상 중인 작품은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란다. 시대적 아픔을 부각시키려는 게 아니라, 다만 그 시절의 어떤 이미지에게 붙잡혔을 따름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시작할 수 없다. 턱없이 부족한 자료가 걸림돌이다. 과연 그 머릿속에 그려진 일제시대는 어떤 모습일까 벌써부터 궁금하다.
2005-10-11 16: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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