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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방 간판타자 야컴의 <도시정벌> 성공요인 분석
기획 무협물이 낳은 200만 부의 신화

글 | 손기영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 만화창작과 교사 pcnsky@hanmail.net)

대본소 시대는 완전히 죽었다고도 하고 대여점을 통한 만화 공급체제가 한국만화를 두 번 죽이고 있다고도 한다. 서점용 학습교양만화가 권당 1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장기 불황의 출판시장에 톡톡히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고도 하고 인터넷 웹툰이 네티즌의 인기를 얻으며 단행본으로 묶여져 단숨에 100만부 이상의 경이적인 판매를 기록했다고도 한다. 이런 출판만화계의 급격한 변화와 부침 속에서 이젠 만화계의 타자가 되어버린 대본소 만화제작 시스템과 대여점 유통체제에 의지한 채 무려 8년간을 꿋꿋이 생존하며 롱런 가도를 달리는 작품이 있다. 그것도 종수 합계로 130여 권, 총판매부수 200만부를 훌쩍 넘어서며 지금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연구대상임에 분명하다. 이 흔치 않은 사례를 좀 더 깊게 들여다보고 일련의 성공요인을 분석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타깃 세분화로 전략적 접근
 
대본소용 무협만화를 주로 제작해온 출판사 야컴이 신형빈(글), 김종석(그림) 작가를 내세워 지난 1997년 발표한 성인하드보일드류의 현대물 <도시정벌>은 1부 12권, 2부 16권, 3부 35권, 4부 25권, 5부 42권이 완결되어 대여점 및 대본소의 서고 한 켠에 넓은 평수를 분양받아 지금도 떵떵거리고 살고 있다. 현재는 6부의 신생아 4권이 출산되어 선대가 이루어낸 결실보다 더 큰 활약을 기대하며 세대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이쯤에서 먼저 현재 국내 만화서적의 유통구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크게 세 가지 루트로 구별해 볼 수 있겠는데 70~80년대 황금기를 이루며 소위 만화가게 또는 만화방이라고 불리는 대본소용 만화(일판만화)가 유통되는 시장이 그 첫 번째이다. 90년대 후반 IMF를 전후해 급격하게 확산되어 한 때는 전국적으로 2만개가 넘는 매장이 성업하며 만화 공급 시장의 주 판매루트 역할을 담당했던 대여용 코믹스 시장(현재는 8천 개여 업소가 운영 중), 그리고 일반 서점에서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서점용 만화를 공급하는 시장이 나머지 두 개라고 할 수 있다. 
<도시정벌>시리즈를 탄생시킨 야컴은 엄밀히 구분해 볼 때 대본소용 만화책을 제작하는 만화전문출판사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도시정벌>은 기획단계에서부터 대본소가 아닌 대여점 시장을 겨냥한 성인물 코믹스로 기획되었고, 야설록 사단(야컴의 창업자이자 실 소유주)의 또 다른 축인 무협소설전문출판사 뫼가 닦아놓은 대여점 공급라인과 축적된 노하우를 십분 활용해 이 시장에 성인만화로 남은 한쪽 발을 들여놓게 된다. 하지만 <도시정벌> 시리즈는 1부 2, 3권이 발표되던 초기부터 뜻밖에도 대본소 쪽에서도 주문이 밀려드는 기현상을 보이면서 대여점과 대본소 시장을 함께 아우르는 베스트셀러로 각광받기에 이른다.
이 시리즈물은 한국만화를 깊숙이 잠식하고 있는 일본만화와, 그 비슷한 부류의 국내 청소년 코믹스물에 익숙한 현재의 만화 주 독자층인 10대가 아니라 80~90년대 대본소만화 세대로서 지금은 주류 만화 독자의 자리에서 밀려난 20·30대를 겨냥한 성인액션물로 기획되었다. 다시 말해, 이 시리즈물은 만화방을 드나들며 야설록류의 무협물에 익숙한 충성도 높은 20·30대 독자들을 애초부터 핵심 타깃층으로 설정함으로써 위험 부담을 회피한 전략과도 무관하지 않다. 야컴도 이러한 만화 독자층의 ‘타깃 세분화’를 통한 전략적 접근이 <도시정벌>의 성공과 마니아 형성에 결정적이었던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것은 한 번 더 뒤집어 생각해 보면 현재의 10대 청소년층 또는 20대 초반의 청년층만이 한국 만화 시장에 있어 독자의 전부는 아니라는 반증이다. 동시에 킬링타임을 위한 오락산업이 만화방 이외엔 마땅치 않았던 80~90년대에 대본소를 통해 형성되어, 지금은 드러나 보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잠재하고 있는 만화 수요 시장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들은 만화방의 추억과 향수라는 공통분모를 지닌 나름대로의 충성도 높은 독자층이었다. 그러므로 이들 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을 개발해 그들을 다시금 만화 시장으로 돌아오게 할 수만 있다면 우리 출판만화 시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으리란 기대도 가능하게 한다.
<도시정벌> 시리즈의 성공은 바로 이러한 죽어 있는 시장의 개발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절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원래 어느 분야에서건 대형 히트작의 탄생은 핵심 공략 타깃층을 확보한 후 이를 넘어서서 그 위와 아래 타깃층으로 확산될 때만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 야컴의 최성근 사장은 “기획 초기엔 20대 후반, 30대의 향수층을 겨냥했던 것이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20대 초반의 대학생 및 젊은 청년층으로 확산되었고, 더욱 고무적인 사실은 무협에 기반을 둔 남성 취향의 액션물임에도 불구하고 20대 여성층의 관심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현상이다.”고 전하면서, 최근 인터넷에 <도시정벌> 동호회 카페가 여럿 생겨날 정도로 다양해져가는 독자층에 대해 희망적인 기대감을 나타내었다.
 
기존 야설록 사단과 다른 접근방식
 
야설록이라는 스토리작가와 야컴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이라면 그들이 과거 한국 무협소설 시장을 활보하던 무협소설 1세대 작가들이란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또 1980년대 초 국내 무협만화 시장이 붕괴될 무렵 만화계로 발을 넓혀 이현세의 <아마게돈>, <남벌>을 비롯한 80~90년대 인기 절정의 만화 스토리를 공급해온 일단의 걸출한 스토리 작가들이 주축이 되어 탄생시킨 만화전문출판사라는 이미지도 떠올릴 것이다. 이에 따라 <도시정벌> 시리즈 또한 야설록 사단의 당시 일반적인 스토리 제작 방식처럼 집단 창작 시스템에 의해 기획되어 스토리가 만들어진 후 데생 작가를 영입해 제작하는 스토리작가 중심의 독특한 제작시스템에 의해 탄생된 만화일 거라고 막연히 추측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러나 사실 <도시정벌> 시리즈의 경우 야설록 사단은 글, 그림 작가들에게 보다 나은 제작 환경을 조성해 주는 범위 정도로만 자신들의 역할을 스스로 국한시키고 있다. 야컴에서는 이 시리즈물의 성공 요인의 하나로 뜻밖에도 바로 이 점을 꼽고 있다.
작가 지명도에 대한 의존성이 절대적이라 할 수 있는 대본소 및 대여점 체제에서 ‘야설록’이란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득보단 실이 다분히 많을 수 있었다. 따라서 당시 무명에 가까운 김종석·신형빈이라는 작가의 이름으로 책을 낸다는 것은 일견 무모한 시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야컴의 전략이 결과적으로 김종석·신형빈 콤비는 ‘자기 이름을 걸고 하는 작품’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뚜렷하게 인식하는 기회를 얻게 됨으로써 최선의 작품을 위해 자신들의 능력과 열정을 온전히 쏟아낼 수 있는 강력한 동기유발을 이끌어낸 것이다.
또한 야컴의 이런 전략적인 노력은 작가들과의 계약 관계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대본소 및 대여점 만화작가들의 경우, 원고제작비를 받고 판권에 대한 권리를 넘기는 이른 바 ‘매절’이라 불리는 럼섬 방식으로 맺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다. 하지만 야컴의 경우엔 <도시정벌>의 작가들과 인세 계약 방식을 채택하였다. 간단히 말해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작가에게 수익이 많이 돌아가는 방식으로 계약을 했다. 이런 계약 방식은 작가로 볼 때 원고료에 의한 초기 수입 부재, 출판사의 불투명한 판매관리 등의 문제로 히트 가능성에 대한 확신과 출판사에 대한 신뢰가 충분히 선행되지 않는 한 성사되기 쉽지 않은 계약 형태이다. <도시정벌>의 경우 이와 같은 ‘인세’ 계약의 결실이 대본소용 만화 형태를 띠고 있는 작품의 품질과 상품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모티브로 활용한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무협물이다!
 
이 만화의 주인공 백미르는 무협소설의 정형적 설정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는 캐릭터이다. 1부에서는 한국 대통령 메이커 ‘일진회’와 맞서 싸워 결국 한국의 정·재계를 뒤집어 놓는 영웅이며, 2부에서는 일본의 차기 천황이 될 애인을 위해 일본 정계와 귀족들을 상대로 한판 승부를 벌이고, 3부에서는 대통령의 아들로 등장하여 자신의 아버지를 암살한 배후이자 세계 경제를 암중 조종하는 에쿠스라는 미국의 큰손들에 맞서 종국에는 그들을 실업자로 만들어버린다. 4부와 5부에서는 중국과 우리나라 무예의 달인으로 분해 무예의 본산인 중국을 휘젓고 다니며 미국 CIA의 음모를 분쇄하는 열혈강호인으로 한바탕 활약한다. 다원화된 현대 사회의 복잡 다변한 이야기 틀 속에 동질감을 느끼기 힘든 신화적 캐릭터인 주인공을 등장시켜 무협적인 플롯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다소 황당한 발상이 과연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이런 다분히 모험적인 시도는 <도시정벌>의 기획 당시 한국만화 시장의 절박함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에 대하여 야컴의 최 사장은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대본소 중심의 만화시장이 급격히 붕괴되고 그나마 열악한 국내시장 규모에 일본만화가 70%까지 잠식해 들어온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이때 생존을 위해 어떤 만화 장르가 일본만화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일본만화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나름의 마니아층을 갖고 있는 독특한 장르인 국내 무협만화의 네러티브를 더 폭넓은 독자층을 갖고 있는 현대물에 접목시키는 시도를 통해 그 돌파구를 찾는 것이 가장 현명한 대안적 선택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
다소 모험적인 이러한 시도가 어쨌든 독자들에게 먹혔다는 의미는, 종래의 무협의 틀과 재미의 요소를 현실 세계로 끌고 와서 오늘의 우리들 삶과 얘기 속에 치환시키는 스토리방식이 적절했음을 보여준다. 요컨대, 직접적인 화법을 통해 익숙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환상의 세계가 아닌 보다 더 강렬하고 현실적인 공간에서의 대리만족의 쾌감과 재미를 느끼게 하는데 일단은 성공했다는 결과론적인 분석을 가능하게 한다.
 
문화콘텐츠산업의 뿌리로서의 만화
 
이제 만화산업도 토털 유즈(total use)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만화가 성공한 후 애니메이션도 만들고 게임도 만들고 캐릭터상품으로 연계하는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multi use) 전략은 이제 진부한 비즈니스 모델이 되었다. 문화콘텐츠산업의 원작(source)산업으로서 초기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미 연관된 산업으로의 진출을 염두에 둔 다양한 전략이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그것이 2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빅히트작을 내고서도 낮은 수익성 때문에 마음껏 웃을 수 없는 출판만화계의 현실을 뛰어넘어 진정한 ‘대박’ 신화를 이끌어내는 유일한 비즈니스 모델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2005-10-12 14: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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