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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기사
내가 겪었던 순정만화의 실종과 발견 - 김동화
History - 작가, 그 오래된 기억 속으로


내가 겪었던 순정만화의 실종과 발견

 

글 | 김영진 기자 (innakim@Qcomic.com)  사진 | JAY”S STUDIO 

 
김동화  1950년 생. 1975년 <나의 창공>으로 데뷔했다. <우리들의 이야기>, <요정 핑크> 등 다수의 순정만화 작품을 발표했으며,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황토빛 이야기>, <기생 이야기> 등 성인독자들에게 어필하는 서정적인 작품을 선보인다. 현재 <조선일보>에 작품 <빨간 자전거>를 연재 중.

 

과거 어느 때보다 만화계의 한복판에 굳건하게 자리매김한 순정만화. 그러나 그다지 길지 않은 우리만화의 역사에서 순정만화가 사라졌던 시기가 있다면 쉽게 수긍이 갈까? 힘들었던 그 시절을 온몸으로 겪어내었던 작가 중 한 명인 김동화 선생. 그 오래된 기억창고의 빗장을 열어본다. 

“한 7, 8년 정도 우리 만화 역사에서 순정만화가 ‘실종’된 시기가 있었지.”
그 ‘실종’의 출발점은 다름 아닌 만화가게(지금의 대본소)였다고 한다. “60년대만 해도 만화가게는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드나드는 곳이었어. 당시 만화를 볼 수 있는 곳은 만화가게밖에 없었으니까.” 당시 만화가게는 여러 사람들이 손쉽게 왕래하는 개방적인 이미지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화를 즐겼고, 만화를 접하는 방법은 만화가게밖에 없었기 때문.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만화가게에서 여성들이 점점 안 보이게 되었다고 하더라고. 변화하는 사회 탓이었을까, 일부 남성 독자들의 짓궂은 행동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차츰 여성들의 발길이 뜸해지게 됐다는군.” 그리고 1970년대 초, 어느새 독자를 잃어버린 순정만화는 점차 출판할 기회를 잃게 되었고, 이렇게 순정만화는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50년대의 작품 중에는 하드커버 만화가 있었고, 농담 조금 보태자면 만화 한 권의 원고료를 리어카로 끌고 올 정도였다지.”

70년대 이후의 독자들이라면 대부분 만화책을 읽다가 부모님께 혼난 경험이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60년대까지만 해도 만화에 대한 시각은 나쁘지 않았다. “전쟁을 겪은 후 당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매체로는 만화가 유일하지 않았나 싶어. 모든 사람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었으니까.” 작가들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기 마음껏 창작을 할 수 있었다. “오죽하면 ‘100인 100색’이란 표현이 있었겠어? 내용도 외국을 배경으로 한 만화, 역사만화, 순정만화, 탐정만화 등 작가마다 한 가지씩 장르가 있었을 정도였지.” 그림이 누구와 비슷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분해서 잠을 못 잤을 정도였다고. 인기작들의 취향을 좇아 그림체가 변덕을 부리는 요즘과 비교한다면 정말 복에 겨운 환경이 아니었을까.
때문에 당시 순정만화는 지금처럼 확실한 영역 구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수많은 장르의 만화 중 ‘여성 취향 소재의 만화’ 정도로 생각되었다고나 할까. 60년대, 일명 ‘봉선이 시리즈’를 선보이며 활동했던 권영섭 선생을 필두로 엄희자, 송순희, 장은주, 박수산, 김용도 등 여러 작가들이 활발한 작품활동을 했다. 더불어 만화책 자체의 수준도 상당히 높아, 우리들이 2000년대부터 접하게 된 고급 하드커버 만화책이 1950년대에 이미 <세태만상>(김성환) 등의 작품으로 발간되었다. 

“일반 상식과 만화 실기로 만화가 자격시험을 치렀다면 믿겠어?”
60년대, 순항 중이던 만화계에 폭풍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그 첫 번째는 심의다.  60년대 초 심의는 자율적으로 시작됐지만, 60년대 말부터 심의의 주체가 공권력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그 엄격함은 70년대에 절정에 다다른다. “원고 한 권에 두세 번의 수정은 기본이고, 재미있을까 없을까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심의에 걸릴까 안 걸릴까가 문제였지. 엄청나게 힘들게 작업했던 거야. 오죽하면 당시 함께 활동한 동료 작가들끼리는 서로를 ‘전우’라고 불러. 왜냐하면 그 힘든 시기를 잘 견뎌내 줘서 아직도 서로가 고맙고 대견스러워서.” 당시의 심의는 스토리, 그림체, 연출, 표지까지도 제재를 가했는데, 이것이 당시의 순정만화를 출간하는데 또 하나의 큰 제약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두 번째는 출판사의 독과점 문제다. “당시 만화를 내는 출판사는 단 두 개가 있었는데(합동, 소년한국일보), 그 중 한 출판사에서 작품을 하다가 잘리게 되면, 다른 출판사로 옮길 수 없었어. 두 출판사에서 그런 묵계가 있었거든. 또 출판사가 작가의 영향력에 따라서 작품량을 할당해 준다고. ‘당신은 한 달에 반 권, 당신은 한 달에 두 권, 당신은…’ 하는 식으로 말이지.” 이런 출판사의 잇속에 의해 독자가 줄어든 순정만화는 밀려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만화와 만화가에 대해 낮아진 인식을 꼽는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만화는 사회적으로 좋지 못한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만화가 또한 그 대우가 엄청 떨어졌지.” 실제로 지금으로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만화가 시험’제도가 있었다고 기억을 들춘다. 김동화 선생이 데뷔한 시기가 바로 70년대인데, 이때는 만화가가 되기 위해 시험을 치러야 했다. 만화 실기와 더불어 ‘일반상식’이란 과목의 시험에서 합격한 사람만이 ‘만화를 그릴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만화계 전체는 긴 아픔의 시간을 견뎌야 했으며, 그 중 순정만화는 아예 그 모습을 감추게 된 것이다. 그리고 순정만화를 발표하던 작가들은 명랑만화로 전환하든가, 아니면 본의 아니게 절필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캔디 캔디>가 기폭제였지, 문제는 독자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야.”
<캔디 캔디>. 만화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제목만은 알 것이다. 그러나 만화에 대해서 웬만큼 아는 사람이라도 이 작품이 우리 순정만화 부활의 신호탄이 되었다는 사실은 잘 모를 것이다. “<캔디 캔디> 해적판이 문방구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는데 그 인기가 엄청났거든. 조악했던 만화가게의 책과는 달리 화려한 컬러 표지가 있었고, 내용도 평범한 드레스를 입은 공주 이야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한 편의 드라마였으니까.” 대본소에서 사라졌던 독자들의 수요가 판매용 책으로서 새롭게 창출된 것이다. 그리고 <캔디 캔디>에 이어 <베르사유의 장미> 등 일본의 대작들이 잇따라 나오면서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자연히 우리 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내가 데뷔할 때만 해도 우리 만화계의 사정 때문에 순정만화를 그릴 수가 없었지. 하지만 <캔디 캔디>가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 용기를 갖게 됐어.” 김동화 선생과 함께 순정만화 2세대라 할 수 있는 한승원, 황미나가 창작을 시작한 것이 이 시기이며, 이후 계속해서 현재 순정만화의 버팀이 되는 작가들이 줄줄이 데뷔하기 시작한다. “<캔디 캔디>의 성공에서 가장 큰 요인은 기존의 만화가게가 아니더라도 새롭게 책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거야.” 새로운 접근방법. 지금 출판시장 속에서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고민이 아닐까.

“작가들도 이제 시야를 더욱 넓혀야 해. 애들만 생각하며 그릴 게 아니지.”
요즘 사방에서 앓는 후학들의 소리를 많이 듣는다. 그럴 때마다 더욱 힘을 내라고 말을 하고 싶단다. 특히 순정만화에 있어서는 좀 더 폭을 넓힐 때라고 주문한다. “그 동안 30, 40대의 여성들이 볼 작품들을 그릴 수 있는 작가가 없었어. 당시의 순정작가들은 20대였으니 30, 40대의 마음을 알지 못했거든. 하지만 이제는 달라. 웬만한 중견 작가들은 자신들이 일상에서 겪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그릴 수 있는 나이가 됐거든. 지면? 인터넷이 있잖아. <파페포포 메모리즈>나  <마린 블루스>는 괜히 유명해진 게 아니라구.” 더불어 해외시장에 대해서도 상당한 자신감을 보인다. “이제는 우리도 일본과 맞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예전에는 일본 만화를 흉내내기에 바빴다면, 이제는 우리의 그림체와 소재 그리고 연출력을 갖게 됐거든. 환경면에서도 그들과 충분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어. 계속 어리광 부릴 때가 아니라구.”

신세대 못지않은 패션 감각과 꽁지머리 헤어스타일이 트레이드마크인 김동화 선생. 기억을 더듬으며 푸근한 웃음을 짓지만, 가끔 쓴 웃음이 묻어나고 언뜻 눈에는 물기도 고인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시기가 생각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엄청난 시기를 견뎌내었듯이 이제는 세계시장을 바라보자며 우리 만화의 새로운 ‘발견’을 이야기한다.

2005-10-12 14:4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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