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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기사
이진경의 실험 For Our Fenerzation Readers
이진경의 실험 For Our Fenerzation Readers

글 | 노수경 (서울대 여성학 협동과정 raspberry@nate.com)

이 글에 이진경이 구사하는 매력적인 펜터치와 미장센, 유화적인 느낌의 채색에 대한 칭찬은 없다. 그것이 작품의 인상을 강하게 하고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고 있지, 이 글은 그 매력보다는 그녀와 그녀의 독자들의 실험에 대한 것이다.
 
 
‘순정만화’를 읽다
 
여전히 순정만화라는 장르는 매력적이다. 대체로 여성들에 의해 기획되고 진행되는 순정만화는, 많은 경우 여성인 작가가 여성인 독자를 상정하고 있다. 또 유행에 민감해서 현실을 사는 여자아이들의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물론 그 욕망들이 누가 주입한 것이거나 세월을 따라 조용히 학습된 것이거나, 혹은 자신의 치밀한 계산에 의해 계획된 바람이 마치 욕망으로 행세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어떻게 된 결과건, 욕망은 여자아이들이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그녀들이 바라는 돈 많고 잘생긴 남자, 영원한 사랑, 따뜻한 심성, 친절함은 신데렐라 같은 이야기에서 학습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실제의 그녀들을 바로 이 사회에서 살아남게 하는 최소한의 외부적 도움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여자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 고달픈 이 사회에서 편히 살기 위한 가장 손쉬운 접근은 바로 ‘신데렐라식의 배우자 찾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 성공할 수 없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돈과 가족, 이웃들을 남자의 도움으로 갖추려고 하는 이 전략은, 거의 성공할 수 없는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소녀들의 마음 속에서 가장 손쉽게 계획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순정만화의 소재로 등장했고, 가장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이 되었다. 순정만화는 실패한 현실과의 간극을 환상과 기만으로 메워 독자들을 위로하고 지친 가슴을 달래며 새로운 희망을 언제든지 던져줄 수 있었다.
여성의 욕망을 이토록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일은 상당히 재미있다. 이들은 - 여성 독자와 작가, 편집자 - 서로 상호작용하며 그 욕망을 파헤치고 세련되게 만들고, 그 욕망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분명한 것은 이제 여자아이들은 순정만화와 그 주변이 만들어내는 세계에서 욕망의 주체라는 점이다. 상당히 구체적으로 욕망을 해소하고 있다는 점에서 - 특히 야오이 - 순정만화라는 장르는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게다가 순정만화는 ‘이성애적’ 배우자만 즐길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허락 받지 않은’ 다른 욕망들을 채우는 데도 적극적이다. 여자 친구들을 사랑하고, 소년의 탈을 쓰기도 하며, 또 스스로를 물신화하여 나르시시즘적인 쾌락을 느끼기도 한다. 자신을 대상화함으로써 굴욕감을 느끼거나 수동적인 감정에 휩싸여 감상(感傷)적이 되기보다, 거울 속의 나르키소스가 되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다.
이 다양한 현상들이야말로 공고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균열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들은 힘주어 말하더라도, 금세 잊혀지는 것들이다. 누군가 적극적으로 모아 주고 정리하지 않으면 사방으로 튀어 버린다.
그래서 그 빈자리는 언제나 자본주의적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제 한 몸 보존하기 전략’으로 채워지고 만다. 물론 태엽장치 인형이 가부장제를 유지하는 것과 여성 주체들의 - 독자, 작가, 기획자 - 직간접 경험에서 우러난 적극적인 계획과 사고를 통해 채택된 전략이 가부장제에 부합하는 것을 동등하게 취급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적극적이고 뒤틀린 실천 전략임에도 불구하고, 그 때문에 더더욱 불평등한 사회를 조장하는데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었다는 결론을 끄집어내는 것이 전부라는 매번 실오라기 같은 희망만 보여 준다면 참으로 맥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진경을 읽다
하위문화인 만화, 그 중에서도 특히 순정만화를 소비하는 ‘생각 없는 독자’가 주문이 너무 많은 건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자본주의 - 가부장제와 공모하지 않으면서 소녀들의 욕망을, 여성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질문도 가능하겠다. 남자(이성애자건 동성애자건) 없이 순정만화장르에서 살아남는 것이 얼마나 가능하겠는가, 이것도 의문이다. 남자 없는 내러티브가 어떻게 가능하며, 소녀들은 그녀들의 욕망에서 어떻게 구원 받을 수 있을까?
이진경의 만화는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 물론 이진경 만화만이 대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조금이라도 괜찮은 남자라곤 나오지 않는 이 만화들은, 관례를 깨고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물론 연재가 중단되거나, 한 번에 이어지지 못하거나, 다른 지면으로 옮겨야 하는 등 작가나 독자 입장에서 여러 가지 불편한 점들의 연쇄 속에서 이루어진 작업이긴 하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거나 소멸하거나 변하지 않고 어떻게든 이어올 수 있었다는 것은 작가의 역량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성주의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이진경의 작품은 가상 도시 C-타운에서의 레즈비언 커플을 중심으로 한 여성들의 경험에 관한 에피소드들 <피플>과 아직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네 명의 여자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집요하게 그린 이야기 <사춘기> 등이 있다. 그녀 작품은 대부분 레즈비어니즘 혹은 분리주의와 명백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를 이성애자로 규정하고 있는 여성들도 그녀의 작품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그림이 주는 매력만큼이나 그녀가 현재, 실존하는 여성의 욕망과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다루고 있는 ‘페미니스트적 사안’들은 - 특히 <피플>에서, 거식증, 레즈비언 커플의 아이 입양 문제, 남성의 폭력, 권위에 대항하는 여학생들, 다른 섹슈얼리티 - 휴머니즘적인 논리의 진행이나 계몽으로 드러나지 않고 여성들의 삶에, 그녀들의 욕망과 함께 녹아 있다. 현실이 그렇듯이 이 인물들의 욕망은 이성애적 연애 판타지 안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슈퍼마켓에서, 집안에서, 친구와 동료들 사이에서 욕망은, 애정과 친밀감과 함께, 또 동시에 권력 문제와 함께 존재한다. 이전부터 계급의 문제는 순정만화의 판타지를 완성시키는 중요한 갈등 요소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과 남성 사이의 권력의 - 미시적이든 거시적이든 - 문제는 달콤한 연애 판타지 안에서 고민하지 말아야 한다든가  잠시 생략되어야 할 것처럼 여겨지곤 했다.
이성애 판타지로부터의 탈출은 수많은 이야기를 작품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남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연애 감정이나 스캔들, 혹은 그로 인한 증오 외에는 장르의 특성상 어울리지 않아 배제되거나 생략되어야 했던, 남자 동업자, 게이 친구, 재수없는 남자들 혹은 같이 공부해야 할지도 모르는 남학생들에 대한, 하나일 수 없는 감정의 경험들을 그려낼 수 있게 했다 - 순정만화의 (이성애자) 여자들은 남자만 보면 그 남자와 사귈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바쁘지 않은가. 세련된 문법의 순정만화라면 대부분의 그런 어처구니 없는 행위는 독자가 자동적으로 하게끔 떠넘겨 버렸지만.끝나지 않은 실험 ‘퀴어만화’ 임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는 그녀의 만화는, 소재로서 퀴어를 다루고 있는 ‘인권’에 대한 관심이나 ‘휴머니즘’적인 노선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레즈비어니즘이 남성동성애자 주도의 동성애자 인권운동과 분명히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것처럼 이진경의 ‘퀴어만화’는 여성의 경험을 중심으로 여성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거칠고 대범하고 위계적인 남성성의 반대항에 있는 그 ‘여성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성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일련의 사건들의 서사라는 점에서 여성적인 이야기이다. 그런 면에서 ‘퀴어만화’가 하위문화인 ‘만화’의 ‘순정만화’ 그 안에서 생겨나고 위치 지어지고 함께 이야기 되는 게 우연은 아니다. 나는 앞에서 순정만화와 그 독자들간의 상호작용에 대해, 특히 여성 독자들의 자율성에 대해 말했다. 여성 독자들은 분명히 순정만화가 생산하는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여 가부장제와 공모하고도 있지만, 그것은 철저하게 순응하고 있거나 조종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정도 계산과 계획에 의해, 자신의 안락한 삶을 위해 연기되고 반복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그 자율성은 다른 텍스트/내러티브에 의해 독자의 행동이 영향 받고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 준다. 그래서 독자와 텍스트, 혹은 독자와 작가의 상호작용이 활발한 이 ‘순정만화 시장’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희망적이며 가장 기대할 만한, 그래서 쉽게 절망하는 곳이기도 하다. 절대로 왕자도, 공주도, 판타지도 없는 이진경의 만화가 10년 동안 순정만화라는 장르에서 잊혀지지 않고 매번 불려 나오는 이유는 달콤하고 씁쓸한 이성애 판타지 없이도 우리 삶의 이야기가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독자들 덕분이다. 우리들의 욕망이 이성애자 연애 판타지 안에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독자인 우리들은 변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이진경의 ‘페너제이션 소녀들’이 되어 버렸다. 자라난 자의식은 이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 것이다. 우리들은 이미 삶에서 남자 없이 가능한 이진경의 내러티브를 흉내 내고 직접 생산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이미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그것이 반복 수행되고 다시 변형되어 사용될 때만 지긋지긋한 자본주의 - 가부장제 사회가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달콤한 꿈속이나 넓고 따뜻한 남자의 품속에서가 아니라 끝나지 않은 이진경의 작품들이 어떤 대안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지금의 나로서는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나름의 길로 갈 수 있기 위해서는 작가의 노력만이 아니라 독자인 우리들의 노력 또한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대동제, 여성주의 문화제 때만 멋진 구절들 인용할 게 아니라 공들여 꼼꼼하게, 페너제이션 걸들이 되어 보자. ‘애니’와 ‘맥스’를 코스튬 플레이하고 - 상당히 쉬울 것 같다 - ‘지영’이나‘인형’들이 하는 말들을 사용해 보자. 페너제이션의 세대답게 이진경의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인용하고 변용하고 반복할 때, 우리들은 이진경의 (아직은) 미완의 실험을 함께 하게 될 것이다.
2005-10-12 16: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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