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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섬에 대한 순수 긍정, <이노센스>

“ 고독할 때조차 거침이 없는 저 코끼리처럼

 
글  한영주 (만화평론가, 본지 기획위원 machth@hanmail.net)

인형: “도와줘.” 그러나 그것은 인형이 되고 싶지 않았던 여자 아이의 목소리였다. 아, 제 목소리를 내는 것들은 행복하여라!

1. 쿠사나기

“자, 어디로 갈까. 네트는 광대해.”
사라져간 그녀, 쿠사나기 모토코 소령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노센스>에 대한 나의 관심은 바로 그것이었다. 사실 쿠사나기 모토코니, 소령이니 하는 명칭은 적절하지 않다. 왜냐면 여기에 등장하는 소령은 인형사와의 융합을 통해 탄생한 제3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이제 더 이상 인형사라는 프로그램도, 소령이라는 여자도 존재하지 않아.” 그렇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 인형사가 남성의 목소리였음을 기억한다면, ‘그’ 혹은 ‘그녀’라는 표현도 적당치 않다. 하지만 이름이란 본래 그런 것 아니던가. 어린아이 때 덧붙여져 어른이 되고나서도 버리지 않는 것.
여하튼 오시이 마모루 감독도 마찬가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시나리오를 쓸 때,)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쿠사나기다. <공각기동대>에서 몸이 없어져버렸지만 그녀를 제외할 마음은 없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등장시킬까?’하는 것이다. 현지 인터뷰에서 오시이 감독은 이를 부재(不在)라는 방식으로 풀고자 했다고 한다. 부재하는 식으로 존재하는 것. 얼굴이나 신체가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연상에 의해서 존재하는 인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과연 인간과 프로그램의 융합체라는 이 신종의 생명체를 표현함에 있어서는 감독 역시 골머리를 썩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고정된 캐릭터로써 내보낸다면, 어떤 종류의 반응을 일으킬 수는 있지만, 역으로 그 범위에서밖에 일으킬 수 없다.” 인간을 넘어선 인간, 혹은 인간 이후의 인간을 상상하는 것은 그런 존재가 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법이다. 감독은 여기서 하나의 우회로를 생각해낸다. 그것은 바로 바토라는 인물이다.
소령: 인간을 넘어선 소령, 초인의 웃음

2. 바토

감독은 네트 속으로 사라진 소령을 현실로 불러내기 위해 바토를 전면에 배치한다. 소령을 사랑했던 그라면, 그녀가 부재한 현실 속에서 매순간 그녀의 부재를 절감할 것이기 때문이다. 표정 없이 굳어진 얼굴, 가라앉은 음성, 극중에서 그의 분위기는 무겁디무겁다. 그에게 의미 있는 것이란 빈 아파트를 지키는 커다란 귀를 가진 한 마리의 개와 소령과의 재회를 암시하는 패스워드 ‘2501’ 뿐이다.
그런데 그가 우울한 것이 그저 실연의 상처 때문인가? 우리는 바토가 소령의 파트너였으며 자기정체성으로 고민하던 시절의 소령을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소령이 인형사와 합체하던 순간을 지켜본 유일한 목격자였다는 점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바토는 소령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소령을 이해하지 못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소령이 인간을 넘어서서 ‘초인’이 되었을 때, 그는 ‘최후의 인간’으로 남아 인간의 자리를 고수했다. 바토의 슬픔은 변이하지 못하고 남겨진 인간의 비애는 아닐까. 그래서 감독은 자기보존(self-preserving)을 택했던 그에게 다시 한 번 자기극복(self-overcoming)의 기회를 부여한 것은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나는 <이노센스>가 바토의 러브스토리에 그치지 않기를 바랐다.
소령의 빈자리를 절감하는 것은 바토 뿐만은 아니다. 공안9과에서 소령의 빈자리는 여전히 크다. 특히 카리스마 넘치던 아라마키 부장은 몰라볼 정도로 늙어 버렸다. 그가 읊조리는 불가의 말씀에서 인생의 공(空)함보다 허(虛)함이 크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약해져 보이는 겉모습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부장님, 저(=토구사)를 선택하신 이유는 뭡니까? / 너를 관할서에서 빼온 것이 소령이었기 때문이다.” 신임하던 부하의 부재. “최근의 그 녀석(=바토)을 보고 있으면 실종되기 전의 소령이 생각나더군.” 전편에서 부장은 소령의 자발적인 실종을 예감하고 있었지만 막을 수 없었다. 이것이 그가 슬픈 이유다.
또 새롭게 바토와 파트너를 이루게 된 토구사는 자신이 소령의 흔적을 지우기라도 할까 봐 늘 어색해하고 미안해한다. 마치 소령의 부재는 다른 이에 의해 채워져서는 안 된다는 듯이, 아니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것이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공각기동대>에서 토구사를 선택한 것은 쿠사나기였다. “소령,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왜 나 같은 남자를 본청에서 뽑은 거죠?/ 너 같은 남자가 필요했기 때문이야. 일부 전뇌화(電腦化)하기는 했어도 뇌는 잔뜩 남아있고, 거의 생(生) 몸.1) 전투 단위로서 어느 정도 우수해도 같은 규격품으로 된 시스템은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지. 조직도 사람도 특수화의 끝에 있는 건 느슨한 죽음…그것뿐이야.” 그러나 그를 선택한 존재가 사라진 지금 그는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일까. <공각기동대>에서 타고난 ‘감’으로 범인의 침입 사실을 간파했고, 낡은 권총을 첨단 장비에 못지않은 무기로 사용했던 그가 <이노센스>에서는 어정쩡하고 불안한 존재로 서 있다.2)
요컨대 9과에서 소령은 부재하지만 또한 존재한다. 그녀의 빈자리의 크기가 그녀의 존재감의 크기다.
가브리엘: 수태고지의 천사 가브리엘. 그러나 그에 대한 바토의 사랑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3. 인형 혹은 인간

오시이 감독은 ‘인형’을 생각했을 때 쿠사나기 소령을 다룰 수 있는 방식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인형이라는 것을 끌어내지 못했다면, … (소령의) 신체를 그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인형이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내용물은 없는 것! 바로 그 순간 내용물은 있지만, 사람의 형태 자체가 없는 것이 떠올랐다.” 요컨대 인형과 소령은 ‘내용물 없는 신체’와 ‘신체 없는 내용물’이라는 점에서 서로 대칭적이고 대조적인 존재가 된다.
이것은 재미있는 발상이지만, 새로운 것은 아니다.3) <공각기동대>에서의 인형사의 정체가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정보의 바다에서 탄생한 프로그램인 인형사는 그의 말 그대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육체를 소유한 적이 없었”던 존재였다. 한편 그에게 해킹 당했던 수많은 신체들을 기억하는가. 그리고 인간들은 언제든 해킹 가능한 기억을 담고 있는 인형에 불과했다. 아내와 딸이 있다는 허위기억의 독신자 청소부가 조사를 마치고 짓던 표정이 바로 인형이었고, 도망치다 소령에게 잡혀 처참하게 맞았던 범죄자가 쓰러진 뒤 짓던 표정이 바로 인형이었으며, 비오는 날 거리를 무심히 걸어가던 행인들의 표정이 바로 인형이었다. <이노센스>에서는 신체에 대한 해킹이 공안9과에까지 뻗쳐왔을 뿐이다. 식료품점에서 킴에게 해킹당하는 바토, 비싼 전뇌라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생활습관을 고정시키면 함정을 설치하기도 쉬워진다.” 변화하지 않는 인간은 인형과 다를 바 없다.
사실 인간은 원래부터 인형이다. 인형이 인간을 닮았다는 사실은 그 외양의 유사성에만 있지 않다.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부모에 의해, 학교에 의해, 사회와 국가, 자본에 의해 인간으로 길러져 왔으며,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와 딸’(토구사의 경우) 그리고 ‘애완견’(바토의 경우)에 의해 자발적으로 인형이 된다. 인간은 인간에 의해서 인간이 되어 왔으며, 또 인간에 의해서 인형이 되어 왔다. 그러므로 인형이 인형인 것은, 인간이 인형인 한에서만 그렇다. 이런 맥락에서 “아이 키우기는 인조인간을 만들겠다는 오랜 꿈을 가장 손쉽게 실현한 방법이었다.”는 검사관4)의 말은 아주 적절하다. 사실 인간은 신의 형상을 본떠 창조되는 순간부터 하나의 인형이었으며, 인간이 신의 행위를 모방하는 순간부터 이미 ‘인형’이자 ‘인조인간’이었다.
‘인형의 受胎’ 과정을 묘사한 <이노센스>의 오프닝은 인형의 생산과정을 인간의 탄생 과정처럼 묘사하고 있다. 감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완벽한 이 오프닝은 인형이 나사와 톱니바퀴 몇 개, 금속판 몇 개로 조립된다는 통념을 깨뜨린다. 인형은 조립되는 것이 아니라, 수태를 통한 복잡하고 정교한 과정을 거쳐서 태어나는 존재다. 그러나 우리는 반대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우리에게 인간의 탄생으로 알려진 그 신비한 과정이 사실은 인형이 생산되는 과정이었다는 것.
生死去來  삶과 죽음, 가고 옴.
棚頭傀儡  무대 위의 꼭두각시.
一線斷時  줄 하나 끊어질 때,
落落磊磊  크고 넓어 아득해지리.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 작품 속에서 자주 반복되는 이 시는 우리에게 깨달음을 재촉한다. 우리가 곧 인형임을 깨달아라! 인간은 무대 위의 꼭두각시. 그가 어떤 춤을 출지,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어떤 줄에 매달려 있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인간이란 매번 자신의 의지로 살아간다고 확신하지만, 사실은 줄을 이끄는 손의 움직임에 놀아나는 수동적인 존재일 뿐이다.
그런 인간이 크고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있는가. 그것은 오직 줄을 끊는 것일 뿐! 과연 인간은 자신을 얽매고 있는 줄을 스스로 끊어버릴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매달려 있는 것이 허무한 일이라면 끊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줄 위의 존재라고. 하지만 오시이 감독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인간은 줄에 매달린 존재라고. 매달려 있는 것도 끊는 것도 쉽지 않다. 낙낙뢰뢰(落落磊磊). 크고 넓어 아득해지리.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절대 절명의 위기.
심연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인간을 막아선다. 그러나 이러한 공포가 또한 인간을 얽매고 있는 줄의 근원이다. 줄이 우리를 매달고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줄에 매달려 있는 것 아닌가. 이 줄을 놓으면 우리 존재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공포. <공각기동대>에서 소령은 인형사에게 그것을 물었다. 합체 후에도 내가 나로 남을 수 있는 보장이 있는가. 그때 인형사는 말했다. 그런 것은 없다! 메시지는 단순했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 죽음의 공포를 이기는 자만이 삶을 얻는다. 결정적인 그 순간에 한 번 더 도약하는 자만이 해탈한다.
바토와 소령: “네가 네트워크에 액세스할 때, 나는 반드시 너의 곁에 있어.” 소령은 부재하는 게 아니라 편재(遍在)한다.

4. 다시 바토

바토에게는 두 명의 천사가 있다. 애완견 가브리엘과 위기의 순간마다 자신에게 속삭이는 수호천사 쿠사나기. 어쩌면 이 둘은 하나인지도 모른다.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수태를 고지(告知)했던 천사가 아닌가. <공각기동대>에서 쿠사나기에 다가온 인형사처럼, <이노센스>의 쿠사나기 역시 바토에게 다가와 끊임없이 무언가를 고지하는 천사가 아닌가.
문제는 바토다. 그는 옆에서 속삭이는 신호와 조짐을 읽는 데 둔하다. 그의 사랑이 그를 그렇게 만든다. 아니 사랑이 아니라, 그가 ‘사랑’이라고 믿고 있는 ‘집착’이 그를 눈멀게 하고 귀멀게 한다. <공각기동대>에서 그는 쿠사나기를 끔찍이 사랑한다. 쿠사나기에 대한 집착. 합체 후의 쿠사나기가 과거의 쿠사나기인지에 대한 걱정. 그러나 자기 집에 머물 것을 권하는 바토 앞에서 쿠사나기는 쉽게 떠나버렸다. <이노센스>에서도 바토는 쿠사나기에게 묻는다. 행복하냐고? 그러나 쿠사나기의 답변은 한결같다. 행복? “그리운 가치관인데.” 그러나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 갈등은 존재하지 않아.”
나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과거에 대한 집착. 그것이 바로 바토의 존재이고 바토의 한계이다. 수호천사인 쿠사나기에 대한 사랑? 그러나 바토의 사랑이란 게 무엇인가. 그의 집에 있는 천사 가브리엘에게 그가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라. 그것이 그의 사랑이고 행복이다. 가브리엘은 온종일 그를 기다려주고, 그가 집에 오면 큰 기쁨을 표시한다. 가끔 자기 멋대로 행동하지만, 그의 감정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무엇보다 그가 준비한 선물에 크게 기뻐하며, 그가 마련해준 안락함을 맘껏 향유한다. 결코 그를 의심하지 않으며, 그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가 <공각기동대>에서 쿠사나기에게 자신의 집에 머물러달라고 말했던 것이 이것을 위해서였던가. 그의 사랑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랑이다.
이런 삶, 이런 사랑이라면 그는 결코 가브리엘의 수태 고지를 들을 수 없을 것이다. 불행히도 임신과 출산은 들을 수 있는 자에게만 가능하다. <공각기동대>의 쿠사나기가 인형사의 속삭임을 듣고 <이노센스>의 쿠사나기를 임신하고 출산했듯이. <공각기동대>에서 인형사는 쿠사나기에게만 다가온 것처럼 묘사되지만, 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쿠사나기만이 곁에 있던 인형사의 존재를 알아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인형사는 계속 신호를 보내고 그것을 듣고 해독할 수 있는 귀만이 거기에 화답한다. <이노센스>의 쿠사나기는 바토에게 다시 말한다. “나는 반드시 너의 곁에 있어.” 신호는 계속해서 날아오고 있다. 바토도 속삭임을 들었다. 그는 ‘사태를 동일하게 반복하는’ 순환의 고리 속에서 영원히 헤맬 뻔했다. 그러나 다행히 신호를 알아차렸다. 킴이 설치한 ‘동일한’ 반복의 고리 속에 ‘차이’가 있음을. 쿠사나기의 코드 ‘2501’. “속삭이고 있단 말이다. 나의 고스트가.” 그러나 조금 더 나아가야 한다. 그가 그것을 해독할 수 있는가. 조짐은 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코끼리: 불가에서 코끼리는 구도자 혹은 수행자를 상징 한다.

5. 다시 쿠사나기

오시이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이번 작품의 중심이 ‘신체’에 있음을 명시적으로 밝혀왔다. “인간을 인간이라 할 수 있는 근거는 과연 무엇일까. <공각기동대> 당시엔 그것을 기억이라고 생각했지만, 10년 정도 세월이 흐른 지금은 신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그는 또 말한다. “인간이 사이보그화되는 과정이 이미 진행 중”이라고. <공각기동대>가 인간을 인간으로 해주는 기억이 조작되고 재구성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면, <이노센스>에서는 인간을 인간이게 해주는 신체가 이미 재구성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일까.
기억의 재구성 못지않게 신체의 재구성 또한 중요한 문제이다. 기억을 외부 장치화 하는 것만큼이나 인간에게 위험해 보이는 일은 신체의 탄소적 배열을 실리콘 배열로 바꾸기 시작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이노센스>와 <공각기동대>의 어떤 단절을 형성하는가. 앞서 인형의 문제가 <공각기동대>의 연장선에 있었듯이 신체의 변이 문제 또한 이미 <공각기동대>에서 충분히 다루어졌다고 믿었던 나는 오시이 감독의 말에 조금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무엇보다 감독이 설파하는 신체론과 앞서의 인형론은 위험해 보인다. 인간의 문제는 정신과 신체의 대립이 아니며, 정신과 신체 어느 한 쪽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과연 정신 없는 신체와 신체 없는 정신에서 어떤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다시 <공각기동대>의 소령을 떠올려 보자. 과연 쿠사나기는 신체의 제약을 벗어나기 위해 영혼의 영역으로 사라져버렸던가. 소령이 넘어서고자 했던 것은 신체만큼이나 영혼에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소령은 오히려 자신을 규정하고 속박하던 개별화된 의식, 개별화된 신체에서 벗어난 것이다. 나를 제약하는 개별화된 의식(기억)만큼이나 나를 제약하는 개별화된 신체를 넘어서기. 그래서 그녀는 인형사와의 합체를 통해서 개별 기억을 넘어서는 방대한 기억(정보)을 얻었을 뿐 아니라, 개별 신체를 넘어서는 광대한 네트워크 또한 얻었던 것이다. 그것이 그녀의 영혼이고, 그것이 그녀의 신체 아닌가. 그러므로 <이노센스>의 문제는 영혼과 신체의 대비에 있는 게 아니라, 개별화된 영혼, 개별화된 신체에 대한 집합적 영혼, 그리고 집합적 신체의 대비에 있다고 봐야한다.
그래서 나는 오시이 감독의 인터뷰에서 어떤 불편함을 느낀다. 쿠사나기의 ‘부재’. 나는 부재라는 말에 따옴표를 친다. 소령이 없다는 것은 특정한 장소, 즉 개별화된 신체 안에 없다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네가 네트워크에 액세스할 때, 나는 반드시 너의 곁에 있어.” 그녀는 부재하는 게 아니라 편재(遍在)한다. <공각기동대>의 인형사가 그랬듯이, 소령은 모든 곳에 존재하고 어디서나 출몰하는(ever-changing and omnipresent) 존재인 것이다.

6. 너머(beyond)

쿠사나기, 그녀는 확실히 ‘너머’의 존재다. 그녀는 그녀를 ‘그녀’로 만들어 줌으로써, 또한 그녀를 제약했던 한계들을 넘어가버렸다. 하지만 그녀가 간 곳은 초월의 세계가 아니다. 그녀는 개별적인 한계를 넘어섬으로써, 어디든 존재할 수 있는 자가 되었다.
내재하는 넘어섬. 우리에게 관건은 그것이 아닐까. 오시이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성을 절대시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성 상실을 부른다.”고. 하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또한 인간성 아니던가. 집착하고 의지하는 것. 인간 그 자체에서 지키려고 발버둥치는 것.
우리가 니체의 말처럼 인간성 상실을 기뻐할 수 있다면, 우리는 초인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죽음으로써 새로 태어나는 것. 탄생을 죄로, 죽음을 그에 대한 벌로 간주했던 정통 철학자들에게 니체가 말하지 않았던가. 생성은 무구하다고. Innocence of Becoming. 죄도 벌도 두려움도 없다. 태어남에는 악이 없다. 그러니 죽음 또한 벌이 아니다. 단지 한 발 더! 고독할 때조차 거침이 없는 저 코끼리처럼.
고독히 걸어가며,
악을 낳지 않으며,
원하는 것은 적다.
숲 속의 코끼리처럼.

<각주>
1) 전뇌(電腦)란 전자두뇌(電子頭腦)의 약자로 디지털 전자장비와의 접속이 자유로운 디지털화 된 뇌라고 생각하면 된다. <공각기동대>의 요원들은 대부분 전뇌화되어 있는데, 뇌 전체가 전뇌화 된 소령과 바토에 비해 토구사는 부분적으로만 전뇌화 되어 있다. 즉 다른 팀원들과의 통신 정도만 가능한 수준. 게다가 토구사는 부분-전뇌를 제외하면 전혀 사이보그화하지 않은 상당히 ‘인간적’인 혹은 ‘비-기계적’인 존재인 것이다.
2) 유전조작 옥수수의 치명적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준비해둔 원시 옥수수처럼 그는 시스템의 보완적 요소다. 그러나 그는 작품 전체에서 그는 전뇌화가 초래할 공상성을 항상 현실로 끌어내리는 존재이기도 하다. 바토를 비롯한 다른 캐릭터들이 철학적 고담준론(高談峻論)에 빠져있을 때, 이들을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토구사의 몫이다. “자 이제, 슬슬 현실적인 얘기를 하지 않겠습니까?” 잠언 모음집으로 전락할 뻔한 <이노센스>를 구해내는 것이 그의 역할인 듯!
3) 하지만 <이노센스>가 인형을 표현하는 데 들인 엄청난 공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왜냐하면 감독도 지적하듯, “애니메이션이 인형을 테마로 삼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인형과 다른 살아 있는 캐릭터와의 차별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실사와는 달리 애니메이션 속에서 인형을 인형답게 보이게 하는 것, 혹은 인형을 인형답게 움직이게 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살아있는 인간과 개가 ‘실사 영화’에서와 같은 실재감을 주어야 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차(茶)시중을 드는 태엽인형의 달그락거리는 움직임이나, 오르골 소리에 맞추어 기지개를 켜는 강아지 인형의 느린 속도감에, 그리고 감독의 애정을 한 몸에 받았다는 가브리엘(바토가 키우는 개)의 풍부한 표정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4) 해러웨이라는 이름의 이 검사관은 ‘사이보그 선언문’을 작성했던 미국의 사이버네틱스 연구가인 다나 해러웨이를 오마주한 것이다. 오시이 감독이 참고했던 그녀의 저서,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동문선)는 국내에도 번역, 출간돼 있다.

<참고한 글들>
고병권,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린비 2003)
고병권, ‘신체는 어떻게 자신을 변이시켰는가’, <이것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문학과경계사 2002)
인터뷰, ‘알 수 없는 현실을 헤매는 것이 인간’ (김혜선기자), <필름2.0> 2004. 10. 15.
'애니메이션의 작가주의, 오시이 마모루의 <이노센스> 해부1-3', <씨네21> 2004, 10.
森山和道, 인터뷰
-http://books.yahoo.co.jp/featured/interview/20040304oshii/01.html
-http://books.yahoo.co.jp/featured/interview/20040304oshii/02.html
Todd Glichrist, Interview: Mamoru Oshii,
- http://filmforce.ign.com/articles/548/548854p1.html
- http://filmforce.ign.com/articles/548/548854p2.html
Jasper Sharp, 'INNOCENCE',
- http://www.midnighteye.com/reviews/innocence.shtml
2005-10-12 19: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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