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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몽타주이론

만화, 칸 사이로 날다

칸과 칸이 시간과 공간을 지배한다

 

글│이대연 (서강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antizine@hanmail.net)


그룹 자우림의 ‘하하하쏭’은 그 흥겨운 리듬뿐만 아니라 독특한 구성의 뮤직비디오로도 관심을 끈다. 무대 중앙에 위치한 사각의 링 안에서 자우림 멤버들은 온 몸을 흔들며 제목 그대로 ‘하하하’ 즐겁게 노래 부른다. 하지만 링 밖에선 많은 관중들이 서로 거칠게 싸우고 있다. ‘하하하쏭’의 뮤직비디오는 이 상반된 두 장면을 빠르게 번갈아가며 보여 준다. 시청자들은 번갈아 보여지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독특한 감흥을 얻는다. 여느 액션 영화보다도 거친 모습으로 싸우던 관중들은 노래가 끝날 땐 모두 죽은 듯 쓰러져 있다.
이것은 몽타주 이론을 완성했다는, 에이젠슈테인 몽타주, 특히 충돌몽타주의 좋은 예이다. 선배 연구자들의 이론을 이어받은 에이젠슈테인은 쇼트들을 병치시키면 그것들이 충돌하거나 갈등하게 되고, 이 충돌로부터 의미가 생성된다고 주장했다. 몽타주에서는 두 개의 쇼트들을 빨리 전환시킴으로써 그것들이 충돌할 때 어떤 의미가 발생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영화’ 몽타주에서 주목할 단어는 ‘병치’다. 병치, 즉 같은 자리에 나란히 붙어있어야 할 그림(장면)이 사실은 (필름 상)위, 아래로 붙어있다. 영화는 시간의 예술이기 때문에 설사 그것이 동시에 벌어지는 사건이라 할지라도 스크린에 비춰지는 영화의 러닝타임으론 순차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다만 영화를 보는 현명한, 또는 길들여진 관객들이 그 번갈아 보이는 장면이 동시에 벌어지는 사건이라고 인식해 줄 뿐이다. 분명히 노래를 부르는 장면 다음에 관객이 싸우는 장면이 나오지만, 아무도 노래를 듣고 난 후 싸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화에선 ‘병치’라고 할지라도 동시에 보여 줄 수 없다. 이것이 영화의 몽타주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 MBC에서 방영 중인 외화시리즈 <24>는 하루 동안에 발생한 일들을 한 시간짜리 24개 에피소드로 나눠 보여 주는 독특한 형식의 하드보일드형 미스터리 액션 드라마다. <24>라는 제목이 시간을 강조하는 것처럼, 현실에 가까운 ‘리얼타임 진행’의 독특한 방식으로 동일한 특정 시간대에 각기 다른 곳에 위치한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분할?교차편집으로 보여 주면서 사건을 전개한다. 그림에서 보이듯 여러 곳의 사건을 한 화면 속에 담아냄으로서 쇼트를 빨리 전환한다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같은 시간에 벌어지는 서로 다른 사건을 좀 더 긴박하게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하지만, 이것은 ‘영화적인 몽타주’라기보다 어딘지 만화에 가깝게 느껴진다. 분명 영화를 보고 있지만 그 모습은 마치 만화의 어느 한 페이지를 펼쳐놓은 듯하다.
그림은 <슬램덩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경기 장면의 하나다. 펼쳐진 두 페이지에 총 7개의 칸이 배치되어 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 일본 만화이므로 독자는 큰 그림을 가장 먼저 읽고 순서대로 위에서 아래로, 우에서 좌로 읽어나간다(당연하지만 일본만화이므로). 하지만 그 각각의 인물들이 파도타기를 하듯이 차례대로 놀라는 표정을 짓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이 상대선수를 과감히 제쳐내는 순간, 그를 지켜보는 팀원들, 관중들의 반응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그려냈고 독자들은 칸 순서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동시에 발생한 일이라고 인식한다.

만화에서의 몽타주

몽타주에 대한 가장 간략한 사전적 정의는 ‘다른 그림(특히 사진) 요소들 간의 결합’이다. 어떤 이미지들의 결합이 몽타주라면 만화는 몽타주 예술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정의만을 두고 보자면 영화용어가 아니라 만화를 위한 이론 같아 보인다.
우리가 어떤 형상을 만화라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세 가지 공인된 약속 때문이다. 만화적인 글, 만화적인 그림, 그리고 칸이다. 만화를 만화이게 하는 것들은 말풍선과 의성어?의태어 같은 만화적인 글, 생략되고 과장된 배경?주인공의 모습들, 움직임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동작선과 여러 표현기호, 그리고 칸이다. 이 중 가장 만화적인 요소는 단연 칸이다.
좌측의 그림은 박광현이 1958년 발표한 <그림자 없는 복수>라는 작품이다. 글과 그림이 같이 내용을 전달하고 있음에도 머릿속으로 떠올린 요즘의 만화와는 거리가 있다. 글과 그림이 물과 기름처럼 아직 서로 융합 되지 못하고 분리되어 있는 초창기 만화 형태이기 때문이다.
반면 우측의그림 4와 5는 우리가 기대한 만화의 모습이다. 그림 4는 무기로 변해 버린 여주인공이 사랑하는 남자 친구에 대한 안타까운 감정을 표현하는 <최종병기 그녀>의 장면. 작가는 그 애틋함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등장인물이 눈물을 흘리는 그림보다 대사로만 내용을 진행시킨다. 그림 하나 없지만 우리는 어느 만화보다도 감동적인 만화라고 느낀다. 이 장면이 소설이 아니라 만화라고 생각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칸에 있다. 작가가 의도한대로 칸의 크기와 위치, 그 칸에 담긴 대사들을 읽다보면 그 어떤 작품보다 완성도 있는 만화로 느껴진다.
좌측의 그림도 <베르세르크>에서 여자 주인공을 구하려는 카츠의 몸부림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흔한 의성어 하나 없이 정말 몸부림치는 그림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것을 단순히 그림이 아니라 만화라고 여기는 것은 칸 때문이다.
만화에서 이러한 칸의 역할을 가장 잘 규명하는 용어가 바로 몽타주다. 칸과 칸의 연결을 설명하고 그 사이에서 생기는 의미를 파악해 내는 것은 다소 학문적인 접근처럼 보이지만 만화를 읽는 그 누구라도 본능적으로 그 의미를 파악해 낼 수 있다. 스콧 맥클루드는 저서 <만화의 이해>에서 칸이 연결되는 6가지의 양상을 제시하며 각각의 연결방식에 따라 의도하는 효과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설명한 바 있다.
만화의 모든 페이지, 모든 칸들이 몽타주로 얘기되어질 수 있지만, 대표적인 유형을 몇 개 살펴보자. 좌측의 그림은 <요츠바랑>의 한 장면이다. 요츠바는 이웃집 언니 아사기가 선물을 사올 것이라는 기대로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기다린다. 이윽고 언니가 도착하자 쏜살같이 달려 나가 선물을 사왔느냐고 묻는 요츠바. 그러나 아사기는 선물 사오는 것 자체를 잊었다는 표정이다. 기대에 찬 요츠바의 표정에서 실망으로 바뀌는 찰나가 두 칸에 연이어 그려져 있다. 미소를 머금고 있다가 입이 살짝 작아지는 것은 실제시간으로 보면 0.5초도 안 걸린다. 하지만 작가는 그 짧은 시간을 구분한 다음 다시 맞붙여놓았다. 두 그림 칸에서 달라진 것은 요츠바의 미묘한 입 크기 뿐이지만 독자들은 맞붙여놓은 이 두 칸을 보며 요츠바의 감정의 변화, 그 실망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만화가는 이처럼 치밀한 계산 속에 칸을 구분하고 배치하면서 보다 높은 예술적 감흥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계산된 창작의 의도를 잘 드러내는 예 중 하나가 다음 그림이다.
 
좌측의 그림은 <신암행어사>에서 암행어사 문수가 괴물 뱀을 해치우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장면. 문수는 뱀에게 밀리다가 급기야 어깨를 물리고 만다. 하지만 문수는 떼어내지 않고 뱀을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듯 머리를 꾹 누르고 있다. 그리고 뒤를 향해 “꼬마야 지금이다”라고 소리친다. 흠칫 놀란 뱀은 서둘러 문수의 팔을 뿌리치고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본다. 여기까지가 펼쳐진 페이지의 끝이다.
다음 장(우측 그림)을 넘기기 전까지 문수의 작전이 무엇인지 독자는 알 수 없다. 독자는 만화 속의 뱀과 마찬가지로 당황하며 서둘러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하지만 다음 페이지에서 총이라도 겨누고 있을 줄 알았던 꼬마는 여전히 묶인 채 영문 몰라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뿐이다. 문수의 작전에 뱀도 당했지만, 같이 긴장했던 독자들도 더 큰 재미를 느낀다. 이 칸들이 한 페이지 안에서 연결되었다면 독자들의 재미는 반감되었을 것이다. 종이 책의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은 만화의 쾌거다.
<아색기가>는 단행본으로 묶여져 나오면서 이러한 재미를 위해 편집을 다시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아색기가>가 4페이지의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높은 이유는 마지막 반전이 압권이기 때문이었다. 한 남자가 벽에 뚫린 구멍에 우연히 손가락을 넣어 본다. 그러자 벽 맞은편에서 강아지가 손가락을 핥아 준다. 그 느낌이 맘에 든 남자는 야릇한 상상을 하고 기대감에 넘쳐 자신의 물건을 구멍 안에 넣는다. 여기서 출판사는 편집의 묘미를 한껏 부렸다. 재미의 핵심인 마지막 칸을 강제로 비워 다음 페이지로 넘긴 것이다. 독자는 다음 페이지에 기대를 건다. 다음 페이지엔 아까의 귀여운 강아지 대신 날카로운 이빨의 사냥개가 입을 벌리고 있다. 남자의 결과는 안 봐도 뻔하다. <식스센스>를 뛰어넘는 기막힌 반전이다.

당연하지만, 만화 몽타주의 핵심은 칸이다.

앞에서 보듯 만화에서 몽타주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좀 더 실증적으로 만화에서의 몽타주를 논의해 볼 좋은 거리가 있다. ‘애니코믹스’라는 만화 시리즈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각종 상을 휩쓸고 여러 흥행 기록들을 갱신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애니메이션의 감흥을 어느 때고 다시 곱씹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또 그 인기를 바탕으로 부가적인 수익을 올리기 위해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만화책의 형태로 재구성돼 출판되었다. 애니코믹스는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화의 형태로 구성, 책으로 출간하는 시리즈의 이름이다. 만화 시장이 무르익은 일본에선 ‘필름코믹’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시도되는 형태다.
지면을 꾸미기 위해 작가가 새로 그리는 것이 아니고, 만화로 제작될 때와 달리 표현의 한계도 있지만 그 형태가 만화임을 부정할 순 없다. 그것은 소년동아일보에 연재된 <싸커보이 토토>를 보면 더욱 두드러진다.
<싸커보이 토토>는 2003년 1월부터 EBS를 통해 방영된 20분짜리 26부작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TV방영 말고도 <소년동아일보>라는 ‘지면’에 2003년 3월부터 8월까지 총 41회가 그림 12와 같이 연재되었다. 하지만 4칸 만화도 아니면서 마치 애니메이션의 필름을 붙여놓은 듯한 이 형태는 만화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하지만 책 형태의 애니코믹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펼치는 순간 ‘이것은 만화다’라고 느낀다. 작가가 책을 위해 그림을 그린 것도 아니고 단지 애니메이션을 컷, 컷 잘라서 옮겨 붙였을 뿐이지만 분명 만화처럼 보인다. 만화책 형태에 맞는 감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만화적인 언어’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말풍선도 있고, 동작선도 있지만, 번역의 핵심은 다름아닌 칸 배치다. 작가(여기서는 책으로 출판한 편집자)는 의도적으로 키우고 줄여가며 칸을 배치한다. 스크린에 흘러가는 애니메이션의 영상을 작가의 상상력이라고 가정한다면 애니코믹스를 분석해 보는 것은 작가의 의도가 어떻게 구조화되고 만화의 형태로 구체화시키는지를 실증적으로 입증하는 좋은 틀이 될 것이다.

의도된 결합과 독자의 자유로움

좌측 위 그림은 주인 없는 음식점에서 탐욕스럽게 음식을 먹어치우는 치히로 부모의 모습이다. 애니메이션에선 1→2→3→4→5→6의 순서로 장면이 연결되어 있다. 만화를 읽을 경우에도 일반적인 만화읽기에 따라 번호대로 읽어나간다. 그게 정석이다. 1,2,3의 칸 새와 4,5,6의 칸 새는 매우 가까운 반면, 1,2,3 그룹과 4,5,6 그룹의 사이의 칸 새는 다소 넓게 그려져 있다. 아빠 칸에서 엄마 칸으로 넘어가는 시간의 흐름이 칸 새의 폭만큼 크다는 뜻이다
하지만 독자는 다른 순서를 선택할 수도 있다. 즉, 1→4, 2→5, 3→6의 순서로 읽을 수 있다. 이렇게 번갈아가면서 읽으면 영화의 교차편집 같은 느낌을 얻는다. 먹는 속도가 더욱 빠르게 느껴지며, 아빠와 엄마가 더욱 허겁지겁 먹는 듯 보인다.
우측 그림은 부모님이 식사를 하는 동안 치히로가 골목을 살피고 있는 모습이다. 독자는 평상시와 같이 1에서 6까지 순서대로 읽어 내려간다. 앞 페이지에서 번갈아 읽었던 경험이 있어 ‘다른 읽기’를 시도해 보지만 이 경우엔 그 방법밖에 없다. 앞과는 미묘하게 다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오른쪽 세 칸이 조금 높게, 왼쪽이 조금 낮게 배치되어 있다. 높은 것부터 순서대로 읽으라는 작가의 지시다. 아빠와 엄마의 칸들을 같은 높이로 나란히 배열했다는 것은 다른 재미를 선사하기 위해 작가(편집자)가 뚜렷한 의도로 칸을 구성했다는 반증이다.
좌측 그림에서는 유바바의 방 앞에 도착한 치히로가 마법에 의해 긴 복도를 통해 끌려간다. 당연히 애니메이션에선 치히로만 점점 멀어질 뿐 스크린의 화면이 작아지진 않는다. 하지만 애니코믹스에선 칸을 점점 작게 구성해 영상에서보다 더 아득히 깊은 곳으로 사라지는 느낌을 준다.
이번엔 막무가내로 일자리를 달라는 치히로에게 화가 난 유바바가 무서운 기세로 날아온다.(우측) 물론 애니메이션에서도 날아오는 유바바는 충분히 위압적이지만 만화는 이 느낌을 한층 더 배가 시킨다. 고정된 프레임에서 유바바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칸을 점점 키우면서 그 위력을 높인다. 게다가 마지막 큰 칸에선 중앙에서 바깥으로 동작선을 넣음으로서 속도감을 더욱 실감나게 하는 센스를 잊지 않았다.
 
좌측 그림은 용으로 변한 하쿠의 등에 탄 치히로가 물에 빠진 자신을 하쿠가 구해 줬던 과거의 일을 떠올리는 장면이다. 애니메이션에선 치히로의 머릿속으로 그때의 기억이 Flash Back으로 순간 떠오르고 현재와 과거가 교차 편집된다. 만화에선 독특하게 페이지 바탕에 과거의 기억을 크게 깔고 현실의 모습을 곶감처럼 사이사이에 끼워놓았다. 두 장면을 병치해 현재에서 과거를 떠올리는 효과를 내면서도 현실 장면을 중앙에 배열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무엇인가 중요한 사실을 떠올린 치히로의 표정에 주목하게 한다.
만화 몽타주는 영화 몽타주와 달리 프레임(칸)의 크기와 위치로 감정을 조절한다. 보여 주는 순서대로 볼 수밖에 없는 애니메이션 영상에서와 달리 작가는 폭넓게 표현할 수 있고, 독자는 (한정된)자율성을 가지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만화는 다양한 결합을 통해 그 어느 예술매체 이상의 효과를 낸다.

시간을 대신하는 칸의 크기

매체 특성상 영상이 순서대로 흐르는 것처럼 만화가 종이 위에 의도된 위치로 배열되는 것이라면, 만화 몽타주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 중 하나는 크기다. 칸의 크기는 통상 특정 장면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시간을 규제하기도 한다. 시간예술인 영상과 달리 공간예술인 만화가 시간을 표현하는 방법은 칸의 면적이나 개수밖에 없다. 때문에 정확한 계산이 있어야 감흥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애니코믹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총 3,971개의 그림칸으로 124분에 이르는 애니메이션을 담아냈다. 이 애니메이션이 일반적인 극장용 애니메이션 처럼 1초에 24프레임이 쓰인 풀 애니메이션이라고 본다면 총 17만 9,208개의 정지된 그림 중에서 작품의 감동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3,971개의 그림을 골라냈다는 말이다. 산술적으로 계산해 보면 만화 한 칸엔 애니메이션에서의 러닝타임 약 2초가 흐른다. 하지만 만화에선 이렇게 정해진 대로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작가가 의도한 대로 각각의 칸에는 각기 다른 시간이 흐른다.
그림은 일어나지 못하는 치히로의 다리에 하쿠가 주문을 건 직후부터 둘이서 돼지우리를 가로질러 도망가는 장면이다. 애니메이션에서 여러 장소들을 거치고 재빠르게 도망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33초다. 이 33초가 만화에선 39개의 칸으로 구성됐다. 한 칸이 평균 2초지만, 이 장면에서의 한 칸은 불과 1초다. 반면, 그림 18에서 나타나는 긴 한 칸은 애니메이션에션 13초의 긴 시간이 흐른다. 만화는 긴박함을 나타내는 방법이나 시간의 조급함을 나타내는 방법이 영상과는 다르다. 눈 깜짝할 새 지나간 애니메이션의 장면을 역설적이게도 만화에선 많은 칸을 오랜 시간을 들여 읽어야 그 긴박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역동적인 움직임과 웅장한 사운드를 가진 애니메이션의 예술적인 감흥을 종이 위에 ‘그대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꼬마 쥐로 변한 보의 아기자기한 움직임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면 그 재미를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 또 별도의 OST 음반이 팔릴 만큼 매력적인 이 애니메이션의 사운드를 종이는 재현할 수 없다. 하지만 독특한 칸 구성력을 가진 만화 몽타주는 그 한계를 충분히 극복하고 남을 만큼의 독자적인 언어를 구축해놓고 있는 것이다.
만화는 앞으로도 상상치 못한 새로운 기술의 도전을 받을 것이다. 현재도 인터넷이라는 강력한 환경에서 만화는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 하지만 만화는 그 스스로가 가진 뛰어난 적응력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계속 탈바꿈할 것이다. 물론 그 변신의 원천은 칸과 칸 새에 있다.
2005-10-13 17:4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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