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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기사
미술에서 만화읽기와 만화에서 미술읽기

만화 + 미술

 
글 | 박창석(한국만화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 egon17@hanmail.net)
 
 만화는 제9의 예술이면서 종합예술이다. 만화는 사진처럼 보는 요소(그림), 문학처럼 읽는 요소(문자와 내러티브), 미술처럼 보고 읽고 해석하는 요소(그림과 도상학), 음악처럼 듣는 요소(리듬과 운율), 영화처럼 연속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요소(이야기와 연출)들이 모여서 만들어졌다. 그런 점에서, 만화는 독립된 예술장르인 동시에 모든 예술장르를 통합하는 종합예술이다.
하지만, 종합예술인 만화는 미술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래서 만화의 미술적인 코드를 풀지 않고는 만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대체 만화는 미술에서 무엇을 배웠기에 그렇게 중요하다는 말인가. 시각예술로서 만화는 미술의 어떤 요소를 이용하고 있는가. 한편, 만화는 미술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이런 물음들이 만화와 미술의 역학적 관계를 풀어내는 밑바탕이 된다. 미술과 만화의 관계를 이해하다보면, ‘만화는 종합예술이다’라는 명제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될 것이다.
이 카툰은 일단 그림(미술)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컵이 있고, 그 컵 안에 배 한 척이 험난한 여행을 떠나고 있다는 내러티브(문학)를 갖고 있고, 파도의 흐름에 따라 몸을 내맡기는 배의 움직임에서 우리는 리듬감(음악)을 느낄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컵이라는 틀 속에서 배가 움직이는 모습은 영화적 연출(영화)이다. 이처럼 만화는 모든 예술의 요소를 담고 있는 종합예술이다.

만화는 미술에서 무엇을 배웠나
 
- 만화를 위한 감각적 인식, 연상작용을 얻다.
 일단, 만화는 사물의 거리감과 공간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미술에서 원근법을 배웠다.  또한 만화는 미술에서 사물을 인식하는 또 다른 능력을 배웠다. 그것이 바로 연상(잔상)작용이다. 이러한 연상(잔상)작용을 통해서, 평면예술인 미술과 만화는 인간에게 3차원 혹은 4차원 예술이 된다. 다시 말해, 가상의 공간과 시간을 현실적 공간과 시간인 것처럼 보이도록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용은 만화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만화에서 두 가지 역할을 담당한다.
 하나는 단순하며 간략하게 그려진 그림(만화)을 마치 현실의 사실적인 사물인 것처럼 인식하게 만드는 역할이다. 단순화된 그림은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감상자에게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형태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것을 우리는 도식화 작업이라고 한다. 이러한 도식화는 사람들 사이에 섬을 세운다. 보편적 인식과 공감대라는 섬을.
 나머지 하나는 이전의 칸과 다음의 칸의 단절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칸이 말하는 이야기를 이어서 인식하고 이해하도록 만드는 역할이다. 이런 연속적 인식능력은 바로 연상(잔상)작용에서 나온 것이다.  그 덕택에, 만화의 값진 보배 칸은 협소한 평면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고무줄처럼 늘이고 줄일 수 있으며, 또한 이야기마저 담고 있다. 이러한 연상(잔상)작용이 없었다면, 만화는 한 낱 낙서조각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매너리즘 화가 아르침볼디의 <겨울>, 강일구의 <휴식> 그리고 임옥상의 <만능요리박사>이다.
- 아르누보 미술에서 만화의 화려한 옷 스크톤과 장르를 얻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에세이 경향의 만화책들은 대부분 컬러다. 이 같은 컬러 이미지는 유럽 예술만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만화는 흑백이다. 흑백의 면과 다양한 선으로 구성된 만화는 독특한 표현기법을 통해서 이미지를 화려하게 만든다. 이러한 표현기법 중 하나가 바로 스크린톤이다. 이 스크린톤은 만화의 옷이나 다름없다.
 화려한 선과 문양으로 인쇄된 스크린톤은 인물의 의상과 형태, 색, 배경, 의성어, 의태어, 사물의 윤곽과 질감 등 다양한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다. 그 표현의 한계가 없을 정도이다. 그만큼 스크린톤은 만화를 그리는 데 있어, 없으면 안 될 존재가 된지 이미 오래이다. 이 같은 만화에 화려한 이미지를 불어넣는 이 스크린톤은 바로 아르누보 미술에서 나왔다.
 아르누보는 19세기 유럽에 유행했던 새로운 예술문화운동으로 세련되고 세밀한 선의 기교와 화려한 문양이 그 특징이다. 다시 말해, 아르누보는 장식예술이다. 이 같은 경향의 그림들은 순수미술로서 인정받기보다 응용미술 혹은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런 점에서, 아르누보 미술은 만화와 많이 닮아있다. 첫째, 많은 아르누보 미술은 판화작품이거나 인쇄를 통해서 창작되어졌다. 둘째, 표현기교의 측면에서 흑백의 조화와 선의 기교, 다양한 문양을 통해서 인물의 소품을 그려내고, 심지어 인물의 감정마저 표현해냈다.
비어즐리의 <포도밭의 함정>, 성인만화잡지 <헤비메탈>, 19세기 마지막 상징주의자 귀스타브 모사의 <그녀>, 미우라 겐타로의 <베르세르크>다. 비어즐리의 그림과 <헤비메탈>의 표지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모습이 흡사하다. 악녀로 변한 포도는 남자를 유혹하고, 기괴한 기형인간인 여자는 남자를 위협한다. 한편, 아돌프 모사의 그림과 미우라 겐타로의 그림은 똑같다. 무수한 시체더미 위에서 그림 밖을 노려보는 악녀와 시체들만 가득한 암흑의 세계에서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오는 악녀. 비어즐리와 아돌프 모사의 그림은 팜므파탈을 소재한 그림이지만, 현대의 성인만화와 너무 닮아있다.
19세기 아르누보 화가 비어즐리의 <헬렌의 화장>, 이애림의 <new ray> 그리고 이태영의 <백합향기>, 박상선의 <왕비를 위한 레퀴엠>이다. 이 네 그림을 자세히 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인물의 윤곽을 그려내는 유연한 곡선이고, 다른 하나는 배경과 소품을 장식하는 다양하고 반복된 아름다운 문양이다. 비어즐리의 복잡하고 화려한 선의 반복과 꽃문양 장식은 현대 만화에 그대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이애림의 그림배경을 장식한 기괴한 꽃문양장식과 박상선의 그림에서 등장인물이 입고 있는 바지의 반복된 꽃문양은 아르누보적인 요소를 보여준다. 비어즐리의 그림이 없었다면, 현대 만화의 화려함은 더욱 늦게 빛을 보았을 것이다.

또한 미술은 만화에 장르라는 개념을 선사했다. 특히, 19세기 초현실적인 그림은 대부분 중세적 환상주의를 바탕으로 성적인 욕망과 악마적 내러티브와 결합되어 창작되었다. 그것이 바로 아르누보 미술과 상징주의 미술이다. 이 두 장르에서 미술의 에로티즘을 읽을 수 있다. 한편, 이 당시의 미술들은 소설이나 희곡작품에서 따온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 많았다. 그래서 많은 그림은 연작으로 그려졌고, 이 연작들은 하나의 내러티브를 이어갔다. 종합해서 말한다면, 아르누보 미술은 에로티즘이 담긴 이야기 미술로 19세기 판 장편 성인만화였던 셈이다.
1980년대 미국 현대미술가 아이다 아펠브루그의 <내일의 땅>, 프랑스 구상주의 화가 로베르 꽁바스의 <그림연작 1>, 강성수의 <슬픈나라 비통도시>, 권가야의 <남자이야기>이다. 이 네 작품은 칸의 연출효과를 효율적이면서 독특하게 풀어내고 있다. 아펠브루그는 그림의 틀을 칸으로 구성된 막대로 대신했다. 이 칸들에는 어린 여자의 성장기가 그려져 있다. 권가야의 그림은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을 불규칙하게 분할된 칸과 도출된 칸을 통해서 그려내고 있다. 한편, 꽁바스의 그림은 바둑판처럼 칸이 나눠져 있다. 이 칸들 속에는 벌거벗은 남자의 어린 시절과 감정들이 그려져 있다. 강성수의 그림에서도 바둑판같은 칸을 만난다. 아펠브루그와 꽁바스는 만화의 칸효과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현대 미술가들이다. 이처럼, 만화에서 차용한 칸은 미술에 시간과 공간을 다양하게 변형하는 능력을 선사했다.

만화는 미술에 무엇을 가르쳤나

- 만화의 칸이 미술을 점령하다.
만화를 이루는 기본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칸이다. ‘만화는 스토리를 가지고, 의도된 순서로 나란히 놓인 그림과 글의 조합’이다. 여기서 나란히 놓여 있는 그림을 형성하는 기본 단위가 바로 ‘칸’이다. 만화는 칸으로 시작해서 칸으로 끝난다고 할 정도로, 만화에서 칸의 중요성은 남다르다. 만화는 칸을 통해서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규정하고 대립시키는 철학적 변증법을 배웠다. 수많은 과학자와 철학가들이 평생을 두고 연구하고 해석했던 시간과 공간을 만화는 칸이라는 네모박스 하나로 해결해버렸다.
 만화는 한 칸 속에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그려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기와 저기, 거기를 다 그려낼 수 있다. 더 나아가 칸은 시간은 물론, 공간마저 캐릭터의 배역에 맞게, 처한 상황에 맞게, 닥친 시간에 맞게 규정하고 제어한다. 이러한 조정력은 컷이라는 요소에서 나온다. 칸이라는 프레임 안에 여러 컷을 나눠 사용할 수 있다. 칸 속에 컷이, 그 컷 속에 그림이 있다. 여러 컷 속의 각 그림은 독립적이다. 칸은 하나지만 여러 가지 내용이 있고, 다양한 시간과 여러 공간이 공존한다.
바바라 크루거의 <살인과 함께 떠나라>, 에곤 실레의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자화상>, 권가야의 <남자이야기>, 김재희의 <미키마틴 오다!>, 양영순의 <세상스케치>, 존 하트필더의 <독일, 모든 이의 위에 있는 독일>의 장면들이다. 반전사상을 그린 바바라 크루거의 그림에서 움켜진 손가락 사이를 벗어나는 비행기가 내뿜는 연기는 비행기의 속력을 표현했고 빨간색 문구가 말풍선을 대신한다. 포토몽타지 효과를 창조한 존 하트필더의 그림에서 입 밖으로 나오는 글이 말풍선의 효과를 사용했다면, 양영순은 사진과 말풍선을 포토몽타지 만화를 창작했다. 에곤 실레의 그림과 권가야의 그림에서 미술과 만화에서 유사하게 사용된 기막힌 동작선을 발견할 수 있다.
- 만화기호가 미술에 움직임과 소리를 불어넣다.
 만화는 미술에서 나왔고, 미술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러나 만화감상에는 미술보다 더 고차원적인 인식단계가 뒤따른다. 그것이 바로 미술에는 없는 만화기호다. 만화는 선의 변형, 칸, 말풍선, 문자배합이라는 만화기호를 통해서 시간과 공간, 인물의 성격, 물체의 움직임, 감정, 인물 사이의 대화, 사물의 소리, 형태의 움직임을 표현한다. 그때 비로소 만화는 글과 그림의 완성된 형태가 된다. 주목해야 할 것은 표현된 만화기호의 형태는 그리는 작가나 보는 독자에 따라 그 표현과 해석이 다양할 수 있다. 이 점이 만화를 더욱 예술적이게 한다. 또한 미술보다 고차원적인 인식단계를 거쳐야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미술보다 더욱 쉽게 만화를 감상할 수 있게 만드는 이유이다. 
 만화는 정지된 화면이기 때문에 그림 속 인물과 사물의 움직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동작선’이라는 요소를 필요로 한다. 동작선은 만화에 있어 역동성과 운동의 절제를 대신해주는 기호다. 만화는 소리와 대사를 표현하기 위해 ‘말풍선’과 ‘다양한 글자의 변형’을 사용한다. 말풍선은 일반적으로 음성대화를 문자기호로 변환한 것이다. 다양한 글자의 변형은 여러 문자를 합성하여 의성어와 의태어를 표현한 것이다.
 만화는 평면의 정지화면에서 인간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정말 복잡하다. 그러나 정말 독창적이다라고 할 정도로, 만화는 이 같은 인간의 감정을 절묘하게 표현해내고있다. 미술이 색과 형태의 변형에 의존했다면, 만화는 흑백(색)의 조화, 선의 다양한 변형에서 만들어진다. 만화는 흑백(색)의 배합과 선의 다양한 움직임으로 분노, 기쁨, 절망, 불안, 맛 등과 같은 감각적인 반응을 느끼게 한다. 만화기호는 정지된 화면인 미술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표현주의 화가 에곤 실레의 <포옹>, 권신아의 <공상과학 자장가>, 팝아티스트 리히텐슈타인의 <차안에서>, 김은희 <온화한 하루>이다. 이 네 그림을 비교해보면, 만화와 미술의 경계를 모호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실레의 그림은 의외로 만화답고, 권신아의 그림은 일러스트레이션이다. 한편,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은 만화다. 그에 비해, 피카소의 <해변을 달리는 두 여자>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김은희의 그림은 미술이다. 이제 만화와 미술은 구분할 수도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만화가 미술이고, 미술이 만화다. 이것은 미술가와 만화가, 두 사람 모두의 화두다.

무엇이 만화이고 무엇이 미술인가

사실, 미술과 만화의 벽은 이미 100년 전, 1890년대 영국 아르누보 화가며 일러스트레이터 오브리 비어즐리에 의해서 무너졌다. 그는 그림에 스토리를 담았고, 다양한 선의 반복과 화려한 문양으로 강렬한 흑백의 대조를 보여주는 그림을 그렸다. 그런 표현기법은 스크린톤의 바탕이 되었다. 비어즐리 이후, 독일 만화가며 화가였던 조지 그로츠와 미국 팝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을 거치면서 만화는 미술이 되었다. 결국 ‘무엇이 만화이고 무엇이 미술인가’라는 물음은 이미 낡고 상투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문제를 다시금 되뇌어 보아야 한다. 순수예술인 미술과 달리, 만화는 공급과 수요라는 소비구조를 따라야 하는 대중예술이다. 그런 이유로, 만화는 예술을 위한 예술로서 대접받지 못한다. 하지만 미술과 만화의 경계가 무너져버린 이 시점에서 다시금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만화가 진짜 예술인지, 아니면 잠시 동안의 즐거움을 주는 오락인지. 이에 대한 해답은 작가와 독자들에게 맡겨두고 싶다.
2005-10-14 18: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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