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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기사
다시 문제는 창작이다 2 - 일본 만화의 창작 시스템
 
잡지 중심의 단일시장 대량 생산체제
 
글 | 이현석 (본지 일본 통신원 warmania@hitel.net)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일본 만화구조는 잡지를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1959년 <소년 매거진>과 <소년 선데이>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잡지 만화 시대가 열리고, 이들 지면을 통해 내놓은 무수한 만화들이 일본 만화의 토대를 닦았다. 그리고 1990년대 후반 잡지 만화는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하여 <소년 점프> 650만부 전설이 탄생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신고서점 등 여러 가지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상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간 약 5조원에 육박하는 거대한 시장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들어 미주 지역과 유럽 지역에도 출판만화 분야의 영향력을 강화시켜 나가고 있다. 이런 일본 주간만화 시스템의 기본적인 틀은 ‘박리다매 구조’와 ‘대량 투입 구조’, ‘철저한 사전 프로듀싱을 통한 선별과 교육’ 등으로 이야기될 수 있다.
 
일본에서 가장 싼 문화 상품 - 만화  일본의 길거리에서 팔리는 만화잡지들을 보면 대개 230엔에서 300엔대 정도의 가격이고, 서점에서 팔리는 단행본들은 390엔에서 500엔 정도의 가격대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이 책들의 볼륨과 재질을 생각해 보면 엄청나게 싼 가격이다. 일본은 자판기 음료수 가격이 120엔 가량이고, 과자가격도 비슷하다. 한국에서 물가평균 기준으로 흔히 자장면이 버려진 잡지를 모아 100엔에 파는 가판 행상도 불황으로 성행하고 있다.이야기되는데, 일본의 상황으로 말하자면 라면 정도가 될 것이다. 이 라면 가격은 400~500엔 정도로, 만화잡지 가격은 이 절반 정도의 가격이 되는 셈이다. 더 나아가 다른 문화 상품과 비교해 보면 만화책 가격은 아예 터무니없어 보일 정도다. 신작 비디오 한 편의 렌털 비용이 300~400엔, 게임 소프트웨어의 경우는 5,000엔대 안팎, 일반 하드커버 서적의 경우는 3,000~5,000엔대, 문고판 소설도 1,000엔 안팎의 가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일본에서 만화잡지는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주머니에 들어간 동전 두세 개로 별 생각 없이 살 수 있는 상품이다. 이렇게 저가로 가격이 형성되었으니 만화를 주로 소비하는 소년, 소녀 계층들이 마음껏 사 볼 수 있었고, 그 저변이 광범위하게 확대되는 것이 가능했다.  결국 초기부터 정착된 싼 가격으로 인해 일단 많이 팔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일본 만화의 구조이고, 기본적으로 고수하는 전략은 ‘박리다매’다. 그리고 현재의 잡지 시스템이 성립 가능하게 되면서 이른바 ‘대량 투입 시스템’이 정착되게 된다.
 
일본 만화계의 골칫거리 중 하나인 북오프. 하지만 이런 중고서점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가격에서의 매력이 아니라 상품의 다양함이다. 일본에서 만화는 충분히 싸기 때문에 애써 싼 가격에 끌릴 이유는 없는 것이다. 사진은 북오프의 외부와 내부 모습.작품의 축적, 대량 투입을 가능하게 하는 잡지구조  현행의 일본 잡지는 대개 20여 종의 만화가 동시 연재되는 구조를 기본으로 한다. 그리고 이들 만화는 3개월이 지나면 연재된 분량을 단행본으로 내어놓아 본격적인 이윤을 창출하게 된다. 이런 체제의 유지를 위해서는 항시 만화잡지에 일정한 숫자의, 일정한 페이지의 만화가 ‘반드시’ 연재되고 있어야 하며, 일정한 부수의 단행본을 기대하기 힘든 비인기 연재작들은 바로 퇴출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만화 출판사들은 대개 3~4개월에 한 번씩 출판회의를 통해 잡지에 등장시킬 신작을 결정한다. 새로 실릴 작품이 결정된다는 것은 인기 없는 다른 작품이 잡지에서 사라진다는 의미다. 밀려난 비인기작들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서는 항시 작가 예비군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일본 만화 편집인들은 보통 한 사람당 10명 가량의 작가 예비군을 관리하고 있다. 작가 예비군들을 모으고, 자사의 만화 잡지지면에 걸맞는 만화를 그려낼 역량을 가진 예비군을 가려내는 필터링 장치가 바로 ‘신인 만화작가 콘테스트’다.  일본에서 만화 편집인으로서 일정한 지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이렇게 모여진 작가 예비군을 잘 관리하여 우수한 원고를 제작할 능력을 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다보니 한국에도 잘 알려진 ‘지독한 편집 프로듀싱’이 등장하게 된다.
 
편집의 가장 중요한 기능 - 작가 예비군의 선별과 생산기능  콘테스트를 통해 선별된 예비군들은 기본적인 만화 제작 능력이야 갖추었겠지만, ‘그 잡지의 성격에 맞는 만화를 만들 수 있는지’, ‘주간  20페이지의 연재가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가 없다. 때문에 편집자는 이들을 일정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훈련을 시킨다. “소년 만화의 경우 한 페이지 당 컷 수는 6개를 넘어선 안 된다.”, “모든 스토리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흘러가야 하며, 첫 회에서 독자에게 캐릭터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등의 주문은 기본이며, 잡지 게재가 가능한 수준에 이를 때까지 수정은 몇 번이고 반복된다. 그렇다고 일본의 편집자가 작가 예비군을 단순히 만화 그리는 기계로 취급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작가를 운명공동체적인 동반자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고, ‘우리가 월급을 받는 것은 만화가들의 고생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근저에 깔려 있다.  이렇게 준비된 작가와 작품은 일 년에 약 10~12편 정도에 달하게 되며, 일본 전체 만화계로 환산해 보자면 약 100여 편이 넘는 신작이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등장한 작품 중 아주 소수만이 성공을 거두게 된다. 한국에서 일본 만화를 관찰하면 성공작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지만, 그 성공작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실패작 위에서 등장하는 것이다.
 
한국 잡지 구조와 일본의 잡지 구조는 무엇이 달랐을까   간단하게 일본 잡지 시스템을 지탱하는 몇 가지 요인을 살펴보았는데, 한국 만화 잡지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비록 일본에서 잡지 구조를 수입하기는 했지만, 이러한 뒷배경을 철저히 연구하는 데는 소홀하였다. 때문에 초기에 축적된 작가들을 10년 정도의 시간 동안 모조리 소비하였고, 새로운 예비군 투입이 요구되었지만, 신인 작가를 키울 안목을 지닌 전문적인 편집 인력이 턱없이 모자랐다. 저변이 불충분하고, 작품 독해력도 일본에 못 미치는 상태에서, 끊임없이 작가 예비군의 작품을 적절한 시기에 원활하게 생산, 공급하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 한국 만화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매우 높다. 그리고 이런 염려는 편집체제와 잡지 구조의 이해부족과 시스템 설계 오류에서 비롯하는 바가 크다. 우리 앞에는 두 가지 선택이 놓여 있다. 시스템을 근본적인 부분부터 재설계할 것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접근방식에 기초하여 새롭게 시스템을 설계할 것인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는 자명한 것 같다.
 
 
2005-10-18 17:5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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