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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문제는 창작이다 2 - 일본 동인만화 창작환경 분석

독자가 직접 창작하는 문화를 통한 소구층의 확대
 
글 | 선정우 (만화 칼럼니스트, 코믹팝 엔터테인먼트 대표 mirugi@mirugi.com)
 
 
보통 일본의 만화시장, 만화산업의 규모를 이야기할 때 비중 있게 고려되는 부분은 말 그대로 단행본과 잡지 출판시장, 혹은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비즈니스 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간혹 그 사이에서 일본의 동인만화에 대한 다소 믿기 힘든 이야기가 들려온다. 일본 최대 규모의 동인지 판매행사로 1년에 두 번 개최되는 ‘코믹마켓’은 한 번에 약 3만 5천 동호회가 참가하며, 약 50만 명에 이르는 인원이 방문하는 세계 최대의 만화 행사다. 총면적 23만m²의 도쿄국제전시(BigSight) 전체를 3일이나 빌려 개최하는 것만으로도 그 규모를 짐작케 한다. 코믹마켓은 1975년에 첫 번째 행사를 개최한 이후 2004년 여름, 66회 행사까지 3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런 거대한 일본 동인만화 시장은 단순히 그 규모뿐만이 아니라,주류 시장과는 독립된 시장이라는 점과 나름의 창작방식의 틀이 확립되어 있어 별도의 분석을 요구한다.
 
일본 동인만화의 역사와 현재
일본에서 만화 동인지의 역사는 만화가 지망생들이 모인 ‘만화연구회’가 전국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한 19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당시의 만화연구회는 이후 일본을 대표하는 거장으로까지 성장한 만화가들(<사이보그 009>의 이시노모리 쇼타로, <도라에몽>의 후지코 후지오, <천재 바카본>의 아카cm카 후지오 등)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는데, 인쇄나 복사 기술이 발달되지 못한 시기인 탓에 그때의 동인지는 그야말로 실제 원고를 철해서 만든 ‘회람지’였다. 이것이 현재의 동인지로 이어지는 시초에 해당한다.
1970년대에 일본의 동인만화는 복사기의 대중화를 통해 커다란 전기를 맞게 된다. 복사기의 대중화와 인쇄기술의 비약적 향상에 힘입은 저가경쟁이라는 비용의 절감을 통해 동인지는 만화가 지망생만의 전유물에서 학생들도 가벼운 마음으로 자유롭게 낼 수 있는 존재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1975년 12월 21일 제1회 판매전을 개최한 코믹마켓의 탄생(제1회 당시 참가 동호회 수 32개, 입장자수 600~700명)은 바로 이런 ‘일반인으로서의 동인문화’의 번성에 박차를 가했다.
코믹마켓의 출발로 인하여 동인지의 존재는 만화와 애니메이션 팬들이 모이는 ‘팬덤의 공간’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패러디’와 ‘팬 픽션’은 만화를 즐기는 새로운 방법으로 1980년대 이후 일본 만화문화의 새로운 일면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는다. 그리고 그것은 1990년대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폭발적인 히트와 함께 이전부터 진행되어 오던 원작과 패러디, 상업주의와 아마추어리즘, 작가와 독자의 관계를 무너뜨리는 데에 일조하게 된다. 이런 부분은 1990년대 후반 이후 일본의 만화·애니메이션 연구에서 자주 등장하는 포스트모던론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일본에서도 동인만화는 포스트모던적 비평에서 많은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대상이 되고 있다.
 
일본 동인만화 시장의 현황
그렇다면, 과연 일본의 동인만화 시장의 모습은 어떤가. 일단 동인지의 형태부터 알아보자. 일본의 동인지는 대개 100페이지 이하, 주로 20~50페이지 전후의 두께에 500~1,000엔 정도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대략 한 번에 5십 부에서 1천 부 사이의 부수를 인쇄하여 코믹마켓 등의 이벤트와 통신판매를 병행한다. 복사기(최근은 PC의 프린터)를 이용해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소위 ‘카피지’는 인쇄할 만큼 많은 부수를 찍을 수 없거나 행사를 며칠 앞두고 떠오른 착상을 인쇄할 시간도 없이 급히 만들고 싶을 때 이용하는 것으로, 보통 10페이지 전후에 몇 십 부 정도를 찍어 100엔에서 300엔 정도의 가격으로 판다.
코믹마켓이 열리는 일본의 도쿄 국제전시장 ‘도쿄 빅사이트’의 모습. 총 10개의 전시관을 포함한 총면적이 총면적 23만m²에 달하는 일본 최대 규모의 전시장으로, 코믹마켓은 이 전체를 빌려 진행한다. 물론 여러 가지 예외가 존재한다. 인기 동호회의 경우 상업지 단행본에 버금가는 5천 부 정도의 부수를 찍어 판매일 단 몇 시간 만에 매진되기도 하며, 성인용인 ‘18금 동인지’는 두께에 비해 일반 동인지보다 꽤 비싼 1,000엔 이상의 가격으로 판매되기도 한다. 또한 아무리 5천 부 정도를 찍는다고 해도 역시 상업 단행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은 부수이기 때문에, 인기 작가나 동호회의 동인지는 인터넷 경매·동인지 전문서점 등을 통해 상상하기도 힘든 고가에 거래되는 일도 있다. 그 때문에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동인지 판매행사에 일본의 세무서에서 찾아오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되는 등(동인작가를 위한 세무상식을 안내해 주는 동인지가 등장할 정도다.) 동인시장이 대중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일부의 예일 뿐 거의 대부분의 동호회는 큰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판매전의 참가비도 부담이 된다. 부스 참가비가 7,000~8,000엔이며, 코믹마켓이 아닌 여타 판매전 중에는 구입만을 위한 참가자에게도 팸플릿의 강제구입 조항을 두는 등 실질적인 참가비를 받는 곳도 있다. 필자는 올해 초 코믹마켓 준비위원회의 요네자와 요시히로 대표에게 코믹마켓의 현황에 대해 직접 코멘트를 얻은 적이 있는데, 코믹마켓 참가 3만 5천 동호회 중에서 흑자를 보는 것은 단 3%뿐이고 나머지 97%는 적자를 기록한다고 한다. 하물며 지방 참가 동호회는 숙박·교통비까지 고려했을 때 적자 규모가 더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참가자 본인이 판매전 참가 자체를 ‘즐기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엄청난 규모의 판매를 하는 동호회가 극히 일부 존재한다고 해도, 수천, 수만에 이르는 동호회 대부분은 여전히 충분히 ‘아마추어’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한국 동호회도 일본 동인지 판매전에 참가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그 대표적인 경우인, 동호회 ‘mirugi-com’의 일본 판매용 동인지 그렇다면 그 내용은 어떨까? 일본의 만화를 세계의 다른 만화와 구별하는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을 내용과 수용자층의 다양성은, 동인만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SF·판타지 등 장르 만화는 기본이고, 에세이나 육아, 사회 상식이나 역사, 애완동물 동인지, 로리타 콤플렉스부터 근친상간에 이르는 남성취향의 에로틱 동인지, 야오이 동인지, 심지어 역사상의 인물에 대한 가상에서부터 실제 가수나 연예인을 그린 내용까지 천차만별이다. 그 전부를 ‘패러디’라고 부르기 때문에, 일본의 동인지 대부분이 패러디라고 할 때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특정 작품의 팬 픽션만이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일본의 동인시장이 이렇게 활성화된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주류 시장에 대한 강력한 ‘저항’으로 볼 수 있다. 고정된 틀에서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고, 자기들 방식대로 만화시장을 이끌어가는 대형 출판사에 대한 반발이 생긴 것이다. 90년대부터 동인시장이 일정한 규모를 갖추면서 프로로 데뷔한 작가들이 동인지로 되돌아오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온전하게 작가의 의지대로 작품을 할 수 없다는 점과 연재에 따르는 강도 높은 노동조건은 작가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다. 결국 일본의 동인시장과 동인지를 중심으로 한 창작 환경은 거대한 일본만화구조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주류 잡지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기들의 세계를 구축해 가는 문화현상이다.
 
동인만화 문화의 미래
동인시장이 일본의 만화문화에 있어서 가지는 중요한 의미는 바로 ‘수용자의 적극적 참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고 있다는 부분이다. 본래 예술이란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고 또 동시에 수용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만화도 사실 상당히 특수한 기술이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도, 현재와 같은 동인지 시장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이를 잘 말해 주는 것이다. 누구나 갖고 있는 표현의 욕망을 만화라는 장르에 집중시킬 수 있다면, 만화의 소구층은 보다 넓어질 수 있을 것이고 만화시장의 지지기반도 보다 튼튼해질 수 있을 것이다.
2005-10-18 18: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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