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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기사
만화전시 행사에 대한 비판과 고찰

전시회·박람회로서의 만화전시에 대한 평가
매체 특성 고려한 ‘변화’ 개념 담아내야 한다

글 | 김기홍 (객원기자 firefox9@nownuri.net)

국내 최대 규모의 만화·애니메이션 축제인 SICAF는 만화 전시와 산업 박람회를 모두 포괄하는 종합행사로 기획되었다.199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만화의 문화산업적 가치에 대한 기대가 커지지면서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의 관련 행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부천만화축제 국제코믹북페어(BICOF), 동아LG 국제만화페스티벌, 춘천애니타운페스티벌, 캐릭터페어, 경주만화페스티벌, 디지털콘텐츠전시회(DICON) 등이다. 모두 관련 기업들이 유료로 참가하는 산업박람회나 전시회 행사들이다.
지난 수 년간 해마다 이들 행사에 가해진 관객의 흔한 비판 두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상업성에 함몰된 시장판’이라는 것과 ‘전시가 볼 게 없었다’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이 비판은 오래되었지만 해묵은 추억거리는 아니다. 해마다 끈질기게 반복되기 때문이다. 올해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똑같은 비판의 반복은 우리 만화행사들에 뭔가 근본적인 결락이 상존할 가능성을 암시한다.
두 가지 비판은 ‘박람회’와 ‘전람회’가 뒤섞인 이들 행사의 전시복합체적 성격을 잘 드러내 준다. 이는 전시회 역사의 맥락에 기인하는 현대적 특징이기도 하다. ‘복합’ 자체는 문제되지 않는다. 정리되지 않은 가운데 혼재되어 행사의 성격을 모호하게 만든다는 점이 분석과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본 논의에서 만화 행사의 복합체적 성격을 미술전시적 성격과 박람회적 성격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각각에 가해진 팬들의 불평들이 어떤 결핍과 모호함에 기인하는 갈증인지 생각해 본다.

미술전시적 성격

전시가 이루어지는 대표적 공간으로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다. 모두 영어로 ‘뮤지엄(museum)’이다. 둘은 대중성과 전문성이라는 지향점을 기준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특히 관객들을 어떻게 규정하는가가 성격적 차이를 가져온다.
박물관 유형의 전시는 특수한 관심과 영역을 망라한 대중 전시를 지향한다. 박물관의 탄생기였던 계몽주의시대 백과사전적 철학을 반영해 일정한 기준으로 구분된 다종다양한 대상을 전시하는 특성이 있고, 연대기순으로 전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직선적인 서구의 진보사관을 반영한다.
지난해 열린 SICAF Seoul 2003 부대이벤트인 대한민국 대표 캐릭터 퍼레이드. SICAF는 만화애니메이션 관련 회사들이 유료 부스를 통해 홍보를 진행한다는 점에서 산업박람회에 속한다.미술관 유형의 전시는 전문성을 지향하며 학문적 배경을 가지고 순수미술을 대하는 일부 사람들에 의해 유지, 확산되었다. 유파, 지리적·미학적 명제 등 주제 중심 전시가 특징이다.
만화와 전시의 관계를 미술전시적 입장에서 정리해 보자. 이제까지는 순수미술계가 만화를 창작의 아이템으로 차용한 정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대중사회가 도래했고, 대중예술인 만화가 대중들에게 대단히 영향력 있는 시각매체여서, 관객과의 관계나 정치·사회경제적 맥락을 중시하는 현대미술의 입장에서 ‘사용’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테인과 같은 팝아트 작가들이 만화작품을 차용한 사실은 유명하다. 이런 경향은 근래에 와서 더욱 강해지고 있다. (다음글 ‘미술 전시 속의 만화에서 찾아본 만화전시의 방향’ 참고)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만화매체의 시대적, 사회적 맥락을 실험적으로 재현한 순수미술의 영역이다. 현대사회에서 만화매체가 가진 힘과 가치를 느낄 수 있지만, 그 작품의 전시는 결국 ‘미술전시’지 ‘만화전시’가 아니다.
그렇다면 ‘만화전시’는 무엇인가. 답을 얻기 위해 본질적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미술작품은 본래부터 전시라는 형식을 필요로 한다. 만화라는 미디어가 살아가는 기본 틀은 신문, 잡지, 단행본 등의 출판인쇄물 속에서 완성된다. 이는 발터 벤야민의 ‘기술 복제 가능성의 시대’, ‘아우라의 상실’ 개념 정도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미술작품은 ‘유일무이’를 전제로 하며 작가의 천재성이 형상화 된 것으로, 그 생명력은 아우라로 표출된다. 일부 행위예술이나 설치미술의 경우 ‘유일무이’라는 희소성에 시간적 제한성까지 덧붙여진다. 회화든 설치든 행위든 순수미술은 수용자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와 행사를 필요로 한다. 전시를 통해 미술은 비로소 소통할 수 있고, 심하게는 유일한 존재방식이기도 하다.
반면 만화책은 ‘원본’ 개념이 없다. 만화작품의 가치는 희소성이나 작가의 직접적인 행위에 있지 않다. 책으로 출간된 만화는 그 자체로 존재가치가 완성된다. 전시 없이도 만화는 완전체다. 어째서 만화를 전시해야 하는가. 그것을 통해 발생하는 가치와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만화매체에 덧붙여지는 부차적인 것인가, 독립적인 존재방식이 창출된 것인가. 만화전시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여러 시도들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순수하게 만화의 입장에서 만화매체와 전시의 관계를 규정할 충분한 미학적 논의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우리 만화전시에 대해 ‘볼 게 없다’라는 푸념은 ‘어째서 만화가 전시되어야만 하는가’란 의문에 대해 충분한 미학적 검토가 전제되지 않아서 생겨난 근본적 불만이 거칠게 표출된 것이다. 만화와 관련된 그림이 전시되어 있지만, 미술작품이 전시된 것과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그것은 매체의 어떤 성격을 재현하는가, 관람행위를 통해 어떤 미학적 만족을 거둘 수 있는가. 이런 의문들이 해마다 반복되는 것이다.

박람회적 성격

지난해 부천만화축제 전시장에서 열린 만화 원화 판매전. 산업박람회로서의 만화전시는 ‘발전’ 대신 ‘변화’를 중요시해왔다. 그에 대한 우리 만화업체의 결론은 새로운 상품의 소개였다.앞서 살펴본 ‘박물관식 전시’ 유형과 관련하여 서구에서 다양하게 발전해온 전시의 한 축은 박람회다. ‘기계연구소 박람회’와 같이 공업생산물과 산업재료들을 전시하는 행사는 흔했으며, 자연사 박물관 건립 등에 힘입어 박물관 전시가 독립적 학문영역으로 자리잡아 갔다. 그 집대성이 1851년 영국의 대박람회였다. 
이후, 종합전 형식이던 박람회는 분과별, 산업별로 세분화되었으며 전시컨벤션을 기획, 진행하는 전문적인 업체들이 생겨났다. 각 산업군의 이익단체들이 주최하는 이런 박람회는 현대사회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개최되고 있다. 만화애니메이션 관련 회사들이 유료부스를 통해 홍보를 진행하는 SICAF나 BICOF 등도 기본적으로 산업박람회다. 
박람회는 ‘진보’라는 서구의 역사관과 실용적 성격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그 기본 잣대는 ‘성능의 발전’이다. 공구, 자동차, 건축자재, 전자제품 등 대부분의 산업박람회의 경우 기본적으로 웅변하고자 하는 것은 올해의 모델이 작년에 비해 발전된 형태라는 점이다. 만화와 같이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산업인 게임계의 전시회도 전자 하드웨어 플랫폼 기반이라는 본연적 성격 때문에 ‘성능’이 언제나 중요한 이슈가 된다.
그러나 만화라는 문화상품은 이런 종류의 ‘시간축에 따른 직선적 발전’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 ‘재미’, ‘작품성’과 같은 개념은 본질적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는 있을지언정  컴퓨터의 연산처리속도와 같이 정량적, 직선적으로 발전하는 개념이 아니다. 만화는 ‘성능’을 따지지 않는 것이다.
결국 산업박람회로서의 만화전시는 ‘발전’ 대신 ‘변화’를 중요시 해왔다. 그에 대한 우리 만화업체의 결론은 새로운 상품의 소개였다. 만화산업박람회를 둘러보며 해마다 드는 답답함은 ‘신간홍보’ 이상의 새로움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이다. 출판사 부스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구간만화 정리처분행사는 전시주체인 만화출판사들 또한 행사의미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는 점을 방증한다. 만화방에서 접할 수 있는 정보를 뛰어넘는, 매체 전반을 아우르는 ‘발전’의 맥락이 짚어지지 않기 때문에 전시주체나 관객 모두 혼란스러운 것이며, 그래서 박람회가 상업적 성격을 갖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상업적’, ‘시장판’이라는 새삼스러운 비판이 해마다 가해지는 것이다.

SICAF, 부천, 동아LG 등의 만화행사는 기본적으로 종합전의 성격을 띤다. 앞서 밝힌 바 ‘복합’이라는 성격은 문제될 게 없으며, 오히려 ‘대중 페스티벌’이라는 점을 부각하는 장점이 있다. 다만, 복합이기 때문에 중구난방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만화전시’, ‘산업적 박람회’와 같은 기본 성질들을 적절하게 개념화하고 잘 정돈하지 않으면 어지럽게 혼재되기 십상이다.
전시·박람회 개념의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흔히 ‘기획전시’의 형태로 진행되는 만화전시는 대상 선정과 전시방법을 논하기 이전에 만화가 어째서 전시되어야 하는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이번엔 누구의 만화그림을 갖다 걸까’를 넘어서는 기획이 나오기 위해서 필수적인 고찰이다. 산업 박람회로서의 만화는 만화산업의 무엇을 ‘박람’할 목적으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근본의문을 검토해야 한다. 신간만화 홍보를 넘는 일관된 목적성을 담지하지 않으면 만화산업 박람회는 성격이 애매한 구간만화 처분 중고시장이 되고 만다.
근본적인 문제는 단칼에 해결하려 들면 탈이 난다. 통찰력 있는 학예연구가(큐레이터)의 발굴을 통해 꾸준히 고민해야 문제해결이 가능하다. 전시를 하나의 학문적 영역으로 발전시킨 미술 분야처럼, 우리 만화계도 대학을 포함한 다수의 연구기관을 활용해 만화전시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이제 여름의 SICAF와 동아LG, 가을의 BICOF 등 만화전시행사가 줄을 잇게 된다. 매체 종사자로서 성황을 기대하는 마음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지금 만화계는 정신 바짝 차려서 다른 볼거리, 즐길거리에 팬들을 빼앗기지 말자라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만화전시행사도 같은 배를 타고 있다. 넓은 스펙트럼의 연구와 고찰, 관객 비판의 건설적인 수용을 통해 단발적인 이벤트의 연속이 아닌 영속적인 시민문화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2005-10-19 12: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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