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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심의 어디까지 왔나 2

절대 심의는 절대 부당하다

글 | 서찬휘 (만화 평론가 seochnh@manhwain.com)

예부터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는 늘 공권력에 의거한 심의의 대상이 돼 왔다. 심의는 늘 ‘대중을 사회악을 조장할 우려가 높은 것들에서 보호하고 건전한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조치’라는 그럴듯한 표면상의 명분을 지니고 행해진다. 하지만 통제 수단으로서의 심의는 명분과는 별개로 엄연히 ‘무기’이며, 집행은 곧 ‘무기 휘두르기’다. 이는 곧 강력한 강제력을 공적(公的)으로 행사함을 뜻하며, 이는 필연으로 대상과 대상의 기반에 심각한 ‘균열’을, 또한 힘을 가한 만큼의 ‘반발’을 야기하고 만다. 통제자들은 이러한 위험성에 대한 확실한 보험으로 강력한 ‘명분’을, 그리고 그 명분에서 벗어나지 못할 담보를 마련해둔다.

희생양’인가, ‘필요악’인가

한국 만화 심의사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작품 <천국의 신화>(이현세 작). 작품의 내용을 고려치 않은 채 선정성만을 이유로 음란물 시비에 말려들었던 대표적 사례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이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해가 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전제를 제시하고 그 대상으로 그 아이들이 주로 본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꼽는다면? 거기에서 아이들이 ‘안 좋은 것’을 배운다고 한다면? 심지어 그 ‘안 좋은 것’이 다른 것도 아닌 음란과 폭력이라면? ‘아이 보호’라는 공감대 아래에서만큼은 적용 범위를 사회 전반으로 넓힐 수 있고, 통제를 위한 ‘기준’이 미약해도 “애들한테 나쁘다는데.” 한 마디면 무마할 수 있는 편리함이 있다.
그 특성상 주 수요층이 성인 이전의 세대가 수요와 소비의 상당 영역을 차지하고 있게 마련인 대중문화는 이러한 전제가 깔린 공격에 속수무책이다. ‘아직 보호받아야 할 대상을 사회악에서 안전하게 지킬 의무’라면 어느 정도의 규제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게 사회 통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커다란 문제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대중을 대상으로 한 문화는 무엇이 음란이고 무엇이 폭력인지, 어디까지를 상한선과 하한선으로 둬야 할지, 무엇이 사회악이며 또 어느 선이 건전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 따위를 애초에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지 사회통념에 근거한 ‘전통’ 가치관이 있을 뿐이나 이는 정리된 기준으로 적용될 수 없으며 시대에 따라 변하기까지 한다. 이 때문에 각 나라의 헌법에서도 ‘성문화된 법률로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내용’을 추측이나 유추, 사회 통념으로 대변되는 전통 등을 근거로 법이란 이름으로 처벌해선 안 된다는 취지로 ‘죄형법정주의’란 개념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해 법집행기관의 자의 판단으로는 함부로 처벌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는 곧 대중문화에 함부로 기준을 들이대는 것 자체가 이러한 죄형법정주의를 위반하는 결과를 낳는 셈이며, 하물며 무려 위헌이다.
둘째, 심의는 권력과 법에서 나오는 ‘공권력’이지만 정작 심의라는 수단으로 보호받는 것은 언제나 한 사회를 움직이는 위치에 있는 자 혹은 그 세력들이 주도하여 형성하고 있는 사회의 가치관과 이를 기반으로 해야만 유지할 수 있는 기득권이란 점이다. 역사는 시대와 국가를 불문하고 유달리 자신들이 서 있는 기반에 콤플렉스와 위험요소를 품은 자들일수록 대중들의 문화생활과 문화 형성 과정 전반을 통제하려는 데에 각별한 노력을 들였음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는데, 흔히 우민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설명되는 이 대중 통제의 목표는 정작 청소년의 계도와 사회 건전화도 아닌 대중의 관심을 다른 곳- 즉 자신들의 ‘체제 유지 공정’ 밖으로 돌리기 위함에 있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방법은 여러 가지다. 단편으로 흩어져 있는 사회 문제를 언론을 이용해 크게 키운 후 심의와 검열, 단속 등을 이용해 ‘사회 정화’의 인상을 남기며 책임을 정화 대상의 문화 매체에 떠넘긴다든지, 또는 자신들을 비판할 수 있는 요소의 싹이 될 수 있는 대중 매체에 심의를 세게 걸어 정·폐간을 시킨다거나 하는 식이며 때론 정치 세력이 사회의 이슈들을 통해 기성세대의 지지도를 높이고자 할 때에도 곧잘 활용된다. 안타깝게도 어느 나라 어느 체제든, 제아무리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이들이라 하더라도 이 편리한 ‘무기’의 유혹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이런 탓에 주로 심의 강화와 사회 안정, 청소년 보호 등의 화두를 집어 드는 쪽은 주로 수구·보수 세력으로 구분되는 정치인들과 사회지도층 인사, 언론 등이다.
결국 심의를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필요악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 판단기준은 언제나 통제를 하고자 하는 자들의 임의 기준과 상황에 맞춰질 수밖에 없으며 언제나 본래의 목적과 표면상의 목적이 괴리되는 양상을 낳는다. 죄형법정주의가 아닌 죄형전단주의(권력자 마음대로 범죄와 형법을 주무르고 결정하는 것)인 셈으로, 헌법조차 무시하는 점에서 파시즘 독재와 다를 바 없다.
이쯤에서 존 액튼 경의 경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했던가. 그와 함께 이런 말도 따라다녀야 옳지 싶다. “절대 심의는 절대 부당하다.”

만화 심의의 역사적·사회적 맥락

여러 대중문화 중에서도 만화는 유난히 많은 고초를 겪어왔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만화가 굵<주희주리>(양여진 작)가 작품 연재 당시 출판사 임의의 판단으로 삭제, 수정되었던 부분.직한 시빗거리가 되는 이유는 만화가 지닌 특성과도 무관하진 않을 듯싶다. 보통 쉽게 읽히고 종수가 매우 다양하며, 여타의 매체와는 달리 대상 연령층의 시작이 매우 낮다(즉 어린이들부터 많이 찾는다.). 더군다나 읽기 쉬운 만큼이나 빠져들기도 쉽고, 그만큼 독자층이 매우 광범위하다. 심지어 접하기도 쉽다. 이 점은 각각이 장점이라면 장점임에도 불구하고, 학력 중시(매진) 사회를 살고 있고 또 시대상 학력 콤플렉스를 지닐 법한 사연이 많은 현재의 기성세대에겐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할 시간에 만화나 보고 논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역할도 하고 만다. 물론 만화의 죄는 아님에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눈에 잘 띈다는 점에서 미운털이 단단히 박히게 마련이다.
이는 오랜 기간에 걸쳐 만화를 ‘사회 정화’와 같은 부적절한 심의의 대상에 빠지게 하기 쉬웠던 중요한 요인이었다. ‘만화 따위에 시간을 빼앗기는 수많은 청소년들의 수많은 부모들’은 여타의 대중문화 매체에 비해서 악질 프로파간다에 이용당하기 가장 쉬운 부류가 되고 말았다. 멋모르는 기성세대들이 TV 뉴스와 신문 등의 언론에 선동당해 갖가지 ‘불량만화’에 분노하면, ‘아이들’과 ‘만화를 보는 일부 성인들’의 목소리는 아랑곳없이 사회 전반에 걸쳐 ‘사회악에 대한 처치를 수락한다.’는 범사회적 허락이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멋지게 형성된 공감대 위에서 열심히 몽둥이를 들고 ‘단속’함으로써 사회 정의를 구현하던 공권력은 다른 한편으로는 각기 정권 유임(1972년 박정희의 제 7대 대통령 당선 직후)이나 반체제 세력의 억제(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무력진압), 또는 사회 문제가 될 법한 충격적인 사건의 발발(1997년 일진회 사태) 등의 시끄러운 사안을 희석시키고 있었다.
물론 창작의 자유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기준이 합당한지조차 고려될 리가 없었으며, 단지 늘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나 ‘해이한 사회 기강’에 만화를 어떻게든 연결시켜 놓으려는 약은 수만 프로파간다와 함께 설파되고 있었을 뿐이다. 말하자면 ‘절대 부당’한 심의가 보여 줄 수 있는 최대 폐해의 성립 조건을 만화만큼 확실하게 갖춘 대중문화도 사실 흔치가 않았던 셈이다.
이에 대해 기성세대를 탓할 건 못 된다. 가장 중요한 건 만화가 시대상의 정리를 위한 ‘희생양’으로 선택될 수밖에 없었던 요인을 직시하고 앞으로 허튼 시도가 일어나도 비웃을 수 있을 만큼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준비 해 두는 일이다.

만화 심의가 가야 할 방향

흔히 오해하는 것과는 달리 ‘청소년 보호’라는 명제 그 자체는 사회의 약속으로 ‘오류’는 아니다. 단지 대중문화라는 창작의 영역에서는 그 어떤 것도 청소년에 유해한 요소라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청소년 보호라는 허울 속에서 결국은 정치와 상황 논리에 따라 만화를 희생양으로 삼아온 것이 문제인 셈이다. ‘이성간의 연애관계를 묘사해선 안 된다.’, ‘만화책 표지에는 빨간 색을 쓸 수 없다.’ 같은 옛 규정을 꺼내들지 않더라도, 대중문화에 대한 심의 규정이란 것은 결국 상식과 사리에 맞는 내용보다는 당시의 사회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회초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현세 씨의 <천국의 신화>를 음란물로 몰았던 미성년자보호법의 ‘불량만화’ 조항이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돼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았듯, 대중문화는 심의를 적용해 재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 미성년자보호법은 위헌판결 이전에 이미 청소년 보호법으로 흡수돼 있었고, 그 독소조항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는 형편이다. 이 탓에 현재 간행물윤리위원회와 청소년보호위원회의 권한으로 유해매체에 대한 사후심의가 여전히 전방위로 이뤄지고 있으며, 심지어는 출판사가 심의 규제를 두려워한 나머지 원고에 멋대로 ‘자체검열’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모호한 기준은 이토록 창작에 벽이 될 수밖에 없다.
청보법의 전면 철폐와 같은 과격한 주장으로는, 청보법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원조교제 방지 등 실제 벌어지는 청소년 범죄의 예방에 필요한 요소들마저 무시할 소지가 있다. 단지 만화계뿐 아니라 대중문화 영역의 창작자들이 창작을 하는 데에 지금까지와 같은 벽이 없게 하기 위해서는 범위를 한정지을 수 없어 말 그대로 심의 하는 사람 마음대로일 수밖에 없는 다섯 개의 독소조항들만큼은 반드시 법령에서 지워내야 한다.
그러나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는 게 필요악과 같은 존재인 만큼 최소한의 규정은 있어야 한다는 현실론이다. 엄중히 따지자면 창작의 자유 침해라는 점에서 청보법의 독소조항은 미보법과 마찬가지로 위헌이다. 하지만 현실론을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면, 먼저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사회 구성원이 납득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명확하고 합리성 있는 기준을 정할 수 있게끔 만화계의 주체들(작가, 출판사, 독자)이 주도하는 정부차원의 공청회를 여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2005-10-19 16: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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