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뱅을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 등록하기 VIP
HOME | 로그인 | 회원가입 | 고객센터
통합검색
인기검색어
신형빈    |    고행석    |    예스마이보스
상세검색
이벤트 툰크샵 충전소
미니 코믹뱅
만화
무료
순정9+
뱅스DB
마이페이지
array("/images/main/top/top_menu_right_event_160.png","/regular_exposure/event_detail.php?ce=160"), array("/images/main/top/top_menu_right_WEBTOON.png","http://www.comicbang.com/free/webtoon_detail.php?idx=11262"), array("/images/main/top/top_menu_right_1.png","/regular_exposure/mini_introduction.php"), 코믹뱅
인기만화 핫클릭 평점순위 베스트댓글 스마트 만화검색 도서검색 만화기사
결제안내
찜목록
책갈피
마일리지 응모
최근본만화
운영자에게 쪽지 보내기
순정9+ 블로그로 가기
코믹뱅 트위터로 가기
아이디저장
본인인증로그인
아이디/비번찾기
뱅's DB
뱅스 만화방 정보
인기만화
핫클릭
평점순위
베스트 댓글
스마트 만화 검색
운영자 추천 정보
테마만화
한 줄 재잘재잘
뱅스 만화방 정보
도서검색
만화기사
event
코믹뱅은 면세사업입니다.
19세
만화기사
언더그라운드 만화 2

1968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COMIX

글 | 김성훈 (한국만화문화연구원 연구원 wasoung@hanmail.net)

2004년 봄호에서 언더그라운드 만화의 시대적 배경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이번 여름호에서는 그 주요한 공간적 배경에 대하여 살펴볼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지도
“1967년 나는 유일한 재산이었던 스테레오 카세트를 언더그라운드 만화 출판을 위해 팔아버렸다. 그 돈으로 인쇄기를 마련했으며, 그 장소는 샌프란시스코였다. 그리고 그 해 헤이트 거리에서 사랑의 여름을 보내게 되었다.” - 돈 도나후(Don Donahue)

림1. <Cartoonists Co-op Press>를 알리기 위한 광고 전단지. 윌리 머피(Willy Murphy)에 의해 제작되었다. 만화가이자 출판가인 도나후가 회고한 이 두 문장에 1960년대 샌프란시스코의 분위기가 어떠하였는지 함축적으로 드러난다. 그 시기에는 약간의 돈만으로 누구나 출판을 할 수 있었으며, 그리하여 샌프란시스코 거리 모퉁이마다 과 같은 타블로이드 신문을 팔 수 있는 시절이었다. 꽃향기와 기타 소리 속에서 소규모 출판 산업은 바야흐로 융성의 시기에 있었고, 누구나 자유로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이러한 언더신문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전달했다. 특히 언더그라운드 만화(underground comics, 이하 Comix라 칭한다)가 실린 신문들은 히피들과 샌프란시스코를 찾아온 수많은 여행객들에게 전달되어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있었다.

If you going to SanFrancisco

헌데, 왜, 어째서 샌프란시스코였을까? 그에 대한 답은 1960년대 샌프란시스코를 둘러싸고 있던 전반적인 문화적 환경을 통해 들여다보아야 한다. 당시 이 도시를 감싸고 있던 ‘반골’의 기질은 표면적으로 반전운동을 통해 조직화 및 이론화 되었고 그 방식은 다양한 문화운동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1960년대 미국 최초의 하드코어 포르노가 제작된 곳도 이곳 샌프란시스코의 해변가였으며, 소규모 자본의 라디오방송국들이 생겨나서 청취자들에게 다양한 음악을 선사했던 것도 1960년대 말의 샌프란시스코였다. 다운타운 남부의 카스트로 거리는 동성연애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어서 지금은 동성애자들의 메카로서도 유명한 곳이 이 곳 샌프란시스코이다. 
1960년 초·중반, 다양하고 개방적인 문화의 태동을 보여 주기 시작한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의 거대자본이 키워온 미디어들과의 연관고리를 끊는 움직임으로 그 역량을 키워나가기 시작한다. 그림4. 새로운 대중매체인 텔레비전과 기존 문화에 대한 비판을 보여준 제이 린치의 작품. <Gothic Blimp Works> #3에 실렸다.의 설립자 가운데 한 명인 앨란 코헨(Allan Cohen)은 “은 계획되어진 것이 아니라 발견되어진 것이다.”라고 이야기함으로써 이 매체가 가진 실험성을 강조했다. 이를테면, 그래픽 측면에서 언더그라운드적인 혁명을 보여 주었는데, 회화와 파인아트 그리고 사이키델릭한 드로잉 등의 특징을 (결과적으로)적당하게 맞춤으로써 틀에 얽매이지 않는 예술적인 이점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언더매체의 특성은 얼마 뒤 거꾸로 , , 등과 같은 주류 상업잡지에서 차용하기도 한다. 이들 실험적인 언더매체들의 성격은 당시의 록 밴드, 지하방송국, 독립영화 등과 동일한 움직임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들과 어우러져 Comix 역시 자생적인 구조를 만들기 시작한다. 기존 상업적인 주류 출판회사가 아닌 자비출판을 통해 작품활동을 하고자 하는 작가들이 속속 등장했으며, 이들을 돕기 위한 (이하 Co-op)가 나타나기에 이른다.
언더작가로 출발하여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만화가가 된 저스틴 그린(Justin Green)은 당시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하여 “지속되어야 하는 유일한 미덕을 가진 것은 몇 가지뿐이다. 예술에 관련된 하나의 신화는 경제적인 상황과 더불어 돈에 관하여 실용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Comix 역시 마찬가지여서 금전적인 사실로부터 그것을 분리시킬 수는 없으며, 이에 독자가 작가의 성공을 결정하게 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즉, Co-op의 목표는 유통업자와 출판업자들로부터 독립된 작가들이 독자들에게 스스로 다가가는 방식으로 생존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지독히 상업적인 주류에 흡수되는 것으로부터 Comix를 지키는 것 이상의 가치를 보여준다. “Comix는 매스미디어가 그것을 흡수하는 것보다 더욱 빠르게 진화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언더만화가인 제이 린치(Jay Linch)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Comix는 사람들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충격을 줄 수 있어야만 한다.”

히피운동의 발상지, 헤이트 애쉬베리

 마리화나 남용에 대하여 유머스러우면서도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제이 린치의 작품 <The Great Marijuana Debate>(1972).1967년에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로버트 크럼(Robert Crumb)은 헤이트 애쉬베리(Haight-Ashbury)거리에서 친숙한 얼굴이 되어갔다. 당시에 크럼은 자신과 미국의 억압적 질서에 관한 끔찍한 뒤틀림을 표현하는 것에 대하여 매료되어 가고 있었다. 그는 때때로 ‘해방’된 히피들조차 거칠면서, 달콤하며 섹슈얼한 행위로서 표현하거나 저능아 혹은 단순하면서도 목표가 없고 따분한 존재로 나타내기도 했다. 그가 히피들과 함께 했던 헤이트 거리는 히피 운동의 발생지였던 곳이다.
1960년대 말, 샌프란시스코 시내 골든게이트 공원 동쪽에 위치하면서 부에나비스타 공원과 팬핸들 공원에 둘러싸여 있는 헤이트 애쉬베리 거리에 미국 전역으로부터 히피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 공동체인 코뮨을 형성하였으며, 연일 록 콘서트를 열었다. 지금도 기발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활동적인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곳을 기점으로 캘리포니아 대학 샌프란시스코 분교, 샌프란시스코 대학 등이 자리 잡고 있어 젊은 문화의 상징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1968년, 뜨겁던 여름에 크럼이 자신이 직접 만든 만화책 을 아내와 나눠서 직접 팔러 다닌 거리도 이곳이었다. 말하자면, 자비출판에 자비유통의 선례를 남긴 실질적인 언더만화의 지리적 출발점이 이곳인 셈이다.
 길버트 쉘톤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여 자신의 동료들과 만든 언더만화출판사 <Rip Off Press>의 광고 전단지. 언더만화를 전문출판한 대표적인 회사.크럼이 (구조에 있어서나 작품에 있어서나)언더만화의 모범사례를 준비하고 있을 때, 길버트 쉘톤(Gilbert Shelton) 역시 남부의 텍사스로부터 이 거리를 향하고 있었다. 쉘톤은 자신의 친구인 잭슨 등 세 명과 함께 단돈 천 불을 가지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여, 그 돈을 중고 옵셋 프린터를 사는데 모두 투자한다. 이것이 언더만화 출판사인 (이하 Rip Off)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스스로가 대규모 출판사를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을 시작했고, 이 출판사는 1970년대를 거치는 동안 지속적으로 성장한다.

Left Hand World

샌프란시스코의 피에르(Pier) 39 거리에는 일반적인 상점과는 다른 형태의 가게들이 즐비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상점으로 왼손잡이들을 위한 상품으로 가득 찬 ‘Left Hand World’을 꼽을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샌프란시스코에 갈 일이 있다면, 이 상점에 들를 수 있길 희망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가게의 여러 상품 가운데서도 티셔츠에 새겨진 ‘Left is Right’ 문구를 통해 샌프란시스코가 어떠한 도시인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당연한 왼손잡이의 권리가 당연히 보장되는 곳, 자신의 표현이 보장받고 타인의 개성이 존중되어지는 곳. 샌프란시스코를 향한 언더작가들의 발걸음은 1968년 이후에도 줄을 잇게 된다. 펜실베니아에서 활동하던 테리 리차드(Terry Richards)는 1969년에 샌프란시스코로 들어와 캘리포니아 지역의 첫 번째 페미니스트 언더매체인 에서 작품 활동을 하게 된다. 같은 해 킴 디치(Kim Deitch)와 트리나 로빈스(Trina Robbins)도 이 도시에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낸다. 1972년에는 위스콘신의 매디슨으로부터 샤론 루달(Sharon Rudahl)이 샌프란시스코로 이동, 꼬뮨에서 살며 언더신문에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당시 언더만화작가들, 특히 여성작가들의 힘겨움을 표현한 루달의 만화. <Comix Book> #2에 실렸다.
한편, 남성작가 중심의 언더만화 풍토에 반발, 여성만의 시각을 확보해 나갈 수 있었던 것도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내재된 ‘편견 없는 자유로운 사고’에서 비롯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작의 자유와 소통에 대한 욕구는 여성들 스스로가 자신들만의 매체를 만들어 독자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하게끔 만든다. 물론, 그 출발점이자 핵심지가 되는 곳 또한 샌프란시스코이다. 
 <El Perfecto Comics>(1973)에 실린 마르스의 작품. 미국 사회에 퍼져 있는 ‘중독’에 대하여 풍자하고 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갈 때까지 언더그라운드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이야기한 리 마르스(Lee Marrs)는 이전에 등 신디케이트 계열의 만화를 그렸으나, 샌프란시스코에 온 후, “마블(Marvel)과 디씨(D.C)-(미국 양대 메이저만화 출판사)-에서 작업하던 것보다 더욱 흥미롭고 재미있는 무엇인가가 그곳에 존재했다.”고 회상한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차이나타운이 도시중앙에 펼쳐져 있으며, 러시인들의 생활지역과 이탈리아인들의 거리 그리고 재팬타운과 코리아타운까지 다양한 문화들이 펼쳐져 있는 도시. 이처럼 개방적 문화의 감수성과 진보적 의식을 바탕으로 가지고 있었기에 수많은 개성적인 작가들이 활동할 수 있었다. 이제 1968년의 시대 정신과 샌프란시스코가 가진 문화적 환경, 그 큰 터를 기반으로 만났던 Comix, 그 구체적인 작품과 잡지에 대하여 다음호에서 갈무리해 보고자 한다.

2005-10-19 18:15:20
이전  다음  목록
코믹뱅
저작권보호센터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