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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기사
생사의 역설과 한국만화의 스펙트럼

<구르믈 벗어난 달처럼>, <남자이야기>, <노말시티>, <레드문>,

<야후>, <폐쇄자>, <프리스트>, <해와 달>을    중심으로

글 | 박종천 (한신대 디지털문화콘텐츠학과 강사 baummensch@hanmail.net)

  최근 한국만화는 역사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포착하거나 인간의 복합적이고 다채로운 면모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질적인 도약과 성숙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삶과 죽음의 문제를 만화적 상상력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은 현실을 체험하고 해석하는 감성의 ‘깊이’와 그러한 체험을 재구성하고 표현하는 개성의 ‘넓이’를 통해 진지한 통찰력, 예리한 사회의식, 미학적 완성도를 선보이고 있다.

생사의 역설을 포착하는 만화적 감성의 깊이
[그림1-1] 지팡이와 칼의 역설적 공존 | 삶과 죽음을 상징하는 지팡이와 칼의 공존을 통해 생사의 역설을 내향적으로 수렴하는 대표적 장면이다. 스승은 욕망의 노예 단계에 머물고 있는 주인공에게 남을 향한 칼을 쓰지 말도록 명령하는데, 제자는 욕망의 승화 단계에 진입한 뒤에 자기를 겨눈 죽음의 칼이 자신을 삶으로 인도하는 지팡이임을 깨닫게 된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2권, 268-269쪽.

죽음은 삶의 종결이다. 따라서 삶과 죽음은 서로 단절적인 관계이다. 그러나 삶을 매듭짓는 것이 죽음이므로, 삶에는 언제나 죽음의 그림자가 깃들고, 죽음에는 삶의 흔적이 배어든다. 그리하여 삶은 죽음을 회임하고 출산하는 과정이고, 죽음은 삶의 목적지이자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삶과 죽음은 서로 연속적인 것이다. 이처럼 삶과 죽음은 단절과 연속이 함께 어우러진 역설적 긴장관계를 맺고 있다.
[그림1-2] 키퍼와 클로저의 양면성 | ‘뒤의 앞’, ‘앞의 뒤’라는 권수 표시도 세계의 유지와 삶, 곧 삶과 죽음의 역설적 표현과 잘 어울린다. <폐쇄자>, 1권 표지.최근 한국만화가들은 삶과 죽음이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다. 그리하여 삶의 진상을 폭로하는 계기로서의 죽음과 죽음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서의 삶이 어우러지고 있다. 예컨대, 박흥용이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삶을 인도하는 ‘지팡이’와 죽음을 부르는 ‘칼’이 동일한 도구의 양면임을 묘사했다면, [그림1-1] 유시진은 <폐쇄자>에서 세상을 유지하는 ‘키퍼(keeper)’와 폐쇄하는 ‘클로저(closer)’를 동일한 인물로 설정하고 있다.[그림1-2]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만화 속 죽음이 사회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그림1-3] 사회적 죽음의 반복적 양상 | 죽음의 반복적 양상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장면. 건물의 붕괴로 인해 죽음이 반복되는 장면을 두 페이지 안에 두 컷으로 병행 배치하고 그러한 죽음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과 고통을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극적으로 대비시키고 있다. <야후>, 13권, 56-57쪽. 만화 속에서 죽음은 개인의 사적 영역에 속한 것이 아니다. 일본 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후세계에 대한 관심이나 기괴한 죽음의 이미지 묘사와는 달리, 거듭해서 죽음을 빚어내는 사회적 원인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 강조된다. 만화 속에서 묘사되는 죽음의 반복적 양상은 죽음의 사회적 성격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림1-3]

이런 인식에 따라 죽음은 생물학적 생명보다는 사회적 생명이 종결되는 현상으로 부각된다. 그리하여 삶은 ‘욕망’과 ‘의지’를 지닌 사회적 존재의 자기실현과정이며, 죽음은 이러한 ‘욕망’과 ‘의지’를 짓밟는 폭력에 의한 사회적 희생으로 이해된다. 실제로 생사관을 보여 주는 한국만화들은 대체로 삶을 죽음이 강요되는 현실 속에서 생명을 찾고 지키려는 ‘투쟁’의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는 80년대 이후 지속된 죽음의 경험을 반영한 것이다. 특히 남성만화가들이 주로 기존 사회질서의 정치경제적 불평등과 억압에 대한 투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여성만화가들은 주로 가부장적 폭력에서 파생되는 문제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처럼 만화가들은 당대의 억압적인 정치사회적 부조리와 남성중심적 사회구조의 문제점을 포착하고, 그러한 사회적 경험을 각기 다른 맥락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박흥용은 <구르믈 벗어난 달처럼>에서 신분적 한계 때문에 출세의 욕망이 좌절되는 가운데 민중반란이 일어나는 상황을 그려내었고, 권가야는 <남자이야기>에서 권력자들에 의해 죽음의 전쟁터로 내몰린 상황을 표현하였다.
[그림1-4] 윤태호는 <야후>에서 아무런 욕망이나 의지도 인정받지 못한 채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처럼 살도록 강요받는 사회상을 비판하였고,[그림1-5] 형민우는 <프리스트>에서 종교권력에 의해 희생되는 자의 투쟁을 다루었다. [그림1-6]

[그림1-4] 전쟁터 같은 삶 - <남자이야기>, 2권, 24-25쪽.

[그림1-5] 억압적 사회화에 대한 분노의 표출 -  <야후>, 14권, 4-5쪽(左), 8-9쪽(右).

[그림1-6] 폭력적 종교권력과의 투쟁 |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서 악마에게 자신의 육신을 넘기면서도 복수를 위해 자신의 영혼은 지키려고 악마에게 저항하거나 믿음을 시험하는 신에게 분노의 절규를 표출하는 장면이다. <프리스트>, 8권, 24-25쪽(左); 5권, 64-65쪽(右).

  [그림1-7] 소수자 혹은 초능력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뇌 | 자신이 가지고 있는 초능력으로 인해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아버지에게 자신의 존재를 추궁하는 장면이다. <노말시티>, 1권, 171쪽.한편, 강경옥은 <노말시티>에서 이른바 정상인들의 상식에 의해 배제되고 소외된 채 희생되는 초능력자의 고뇌를 그리는 한편, 욕망과 의지를 지닌 존재로 인정받지 못한 채 가부장적 권력에 의해 성적 착취대상이 되는 여성성을 표현하였다. [그림1-7] 이러한 경향은 황미나의 <레드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유시진도 <폐쇄자>에서 표식으로 상징되며 강요되는 사회적 역할이 개인의 욕망과 의지를 제한한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림1-8]

 [그림1-8] 표식에 의해 강요되는 사회적/외적 인격 | ‘표식’을 넘겨받는 순간 사람들은 ‘쿤’으로서의 쿤보다 ‘키퍼’로서의 쿤에게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폐쇄자>, 1권, 104쪽.이처럼 최근 한국만화에서 묘사하고 있는 삶과 죽음은 사회적으로 욕망과 의지를 발휘하고 실현할 수 있는가 여부에 따라 분명하게 나뉜다. 여기서 우리는 욕망과 의지를 실현하려는 개인과 그러한 개성을 억누를 것을 강요하는 사회의 대립구도를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참된 자기를 실현하려는 욕망과 의지가 삶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자기실현을 막는 사회적 억압과 강제는 죽음에 속하게 된다.
욕망과 의지를 둘러싼 사회적 억압과 자기실현의 대립은 외적 인격과 내적 인격의 대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융(C. G. Jung)의 분석심리학 이론에 따르면, 욕망과 의지의 의식적 주체인 ‘자아(Ego)’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회가 요구하는 생각과 태도, 규범과 역할, 곧 ‘페르조나(Persona)’ 또는 ‘외적 인격’을 형성한다. 외적 인격은 사회적 적응을 위해서 필요하지만, 그것이 바로 삶의 궁극적 목표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아’는 흔히 ‘아니마(Anima)’-‘아니무스(Animus)’로 불리는 ‘내적 인격’을 통하여 무의식을 적극적으로 의식화함으로써 본원적인 ‘자기(Self)’로 통합되기를 추구하는데, 이를 ‘자기실현’ 또는 ‘개성화(Individuation)’라고 한다. 그러므로 최근 한국만화에 나타나는 ‘생사의 역설’은 사회적 적응/사회화 과정과 자기실현/개성화 과정이 동시적으로 진행되면서 발생하는 개인과 사회, 내적 인격과 외적 인격의 긴장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며, 이것을 포착해낸 ‘만화적 감성’은 한국만화의 ‘깊이’를 한 층 더 끌어올린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개성적 구성을 보여 주는 만화적 표현의 넓이 

만화로 수용된 사회적 경험이 만화 텍스트가 공유하는 ‘토포스(topos, 位相: 다양하게 변형가능한 경험의 공통분모)’를 구성한다면, 경험 주체가 처한 상대적인 ‘맥락(context)’에 따라 다양한 편차를 지니게 되는 경험을 만화적으로 재구성/표현하는 것은 ‘유형(pattern)’으로 구체화된다. 한 사회가 공유하는 집합적 성질인 ‘토포스’가 일반적인 경험-수용의 측면을 반영한다면, ‘토포스’와 ‘맥락’의 관계구조가 정형화된 ‘유형’은 개성적인 구성-표현의 측면을 드러낸다.
[그림 2-1] 악몽의 현실 | <야후>, 13권, 62-63쪽(上), <프리스트>, 1권, 4-5쪽(下).이런 관점에서 볼 때, 최근 한국 만화가들이 공유하는 ‘토포스’는 ‘욕망’과 의지의 억압인 ‘죽음’과 그러한 ‘죽음의 반복성과 사회성’으로 정리할 수 있지만, 그러한 ‘토포스’의 구체적인 표현은 작가마다 다르다. 여기서 작가들이 처한 상대적인 ‘맥락’에 따라 만화에서 생사관을 다루는 일정한 ‘유형’이 성립한다.
첫째,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기준으로 해서 ‘외향적 발산형’과 ‘내면적 수렴형’으로 나뉜다. 반복적으로 죽음이 강제되는 현실 속에서는 두 가지 유형의 반응이 가능하다. ‘외적 인격’을 강요하며 개인의 욕망과 의지를 억압하는 사회에 대해 분노를 밖으로 표출하거나 ‘내적 인격’을 중심으로 삶을 향한 욕망이나 의지를 안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개인에게 외적 인격을 강요하며 내적 인격을 억압하는 사회적 폭력에 대한 분노가 삶을 자기 상실의 ‘악몽’으로 인식하게 한다면(윤태호, 형민우), [그림2-1] 내적 인격을 통하여 자기실현을 하려는 욕망이나 의지는 삶을 진정한 자기를 찾아가는 ‘구도(求道)적 개성화’ 과정으로 수용하게 한다.(박흥용, 권가야) [그림2-2] 양자는 외적 인격과 내적 인격, 외부적 적응/사회화 과정과 자기실현/개성화 과정 중 어느 측면에 더 관심을 두는가의 차이에 따라 나뉜다.

[그림2-2] 구도적 개성화 |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2권, 58-59쪽(左), <해와 달> 3권, 290쪽(右).

이러한 차이는 스토리 전개상 각각 비극과 희극의 경향을 띄게 된다.
[그림2-3] 비극적 결말 |  폭력적 사회화에 대한 적극적 거부로 인한 사회적 죽음의 결말. <야후>, 20권, 166-167쪽.외향적 발산형의 경우에는 대체로 무의식에 잠긴 내적 인격을 의식화하지 못하여 자기실현/개성화를 이루지 못한 채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사회화에 대한 강한 분노가 결국 죽음에 이르는 극단적인 결말로 이어지기 쉽다. 예컨대, 남성만화와 여성만화의 차이는 있지만, 윤태호의 <야후>는 주인공의 자살 공격이라는 비극적 결말로 끝나고, [그림2-3] 유시진의 <폐쇄자>는 ‘키퍼’가 아닌 ‘클로저’로서 마감하게 되는데, 이는 구원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악몽의 세계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림2-4] 구도적 자아완성 |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3권, 18쪽.이와는 반대로, 내면적 수렴형의 경우에는 대체로 내적 인격을 의식화함으로써 자기실현/개성화를 이루기 때문에, 죽음을 빚어내는 사회를 욕망과 의지가 실현될 수 있는 생명의 터전으로 바꾸어 놓거나 최소한 자기 구원의 가능성만이라도 확인하는 결말에 이르게 된다. 예컨대, 박흥용은 죽음을 상징하는 칼과 삶을 인도하는 지팡이가 하나라는 깨달음에 이르는 주인공의 모습을 ‘구름을 벗어난 달’의 구도적 자아완성으로 표현하였고, [그림2-4] 권가야의 작품은 죽음에 맞서서 의연히 뜻을 함께 하는 동지들을 얻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림2-5]

[그림2-6] 자기희생의 내면적 수렴형 결말  | <레드문>, 8권, 165쪽. 재생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신의 피를 온 세상에 흩뿌림으로써 세상을 구원하는 자기희생적 장면이다.그러나 이 두 가지 유형이 서로 배타적 관계인 것은 아니다. 어떤 작품이든지 이 두 가지 유형이 함께 나타나고 있는데, 그 두 가지 유형 중 하나가 상대적으로 주도적인 흐름을 이루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경향은 여성만화에서 더 두드러진다. 쌍둥이 주인공을 등장시킴으로써 하나의 자아에 공존하는 두 가지 성향을 각각 독립적인 캐릭터로 형상화한 황미나의 <레드문>은 대체로 두 유형이 대등하게 진행되다가 마지막에는 내면적 수렴형인 필라르의 자기희생이 빚어낸 기적적 구원에 도달하였고, [그림2-6] 강경옥의 <노말시티> 역시 초월적이고 가부[그림2-7] 초월적/가부장적 권력과의 대면 | <노말시티>, 15권, 140-141쪽. 가부장적 창조주의 역할을 하고 있는 트롤박사와 대면하면서 삶의 의미와 자기정체성을 확인하고 선언하는 주인공.장적인 권력자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자아정체성 모색이 어우러지는 흐름을 보여 주었다. [그림2-7] 형민우의 <프리스트> 역시 외향적 발산형이 주도하면서 전개되고 있지만, 내면적 수렴형의 가능성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둘째, 내적 인격 중 성적 차이에 따라 ‘아니무스형’과 ‘아니마형’으로 나뉜다. 앞서 서술한 첫 번째 분류가 자아가 바깥세계와 맺는 관계에 따른 유형론이라면, 이 분류는 자아가 내면세계와 맺는 관계에 따른 유형론이다. 융에 의하면, 남성의 무의식에는 여성적 인격이, 여성의 무의식에는 남성적 인격이 내적 인격으로 자리잡는다. 여기서 여성 속의 남성을 ‘아니무스’, 남성 속의 여성을 ‘아니마’라고 한다. 양자는 모두 자아가 무의식의 내면세계와 관계를 맺는 매개자이다.
[그림2-8] 양성 인간의 구도 설정 | <노말시티>, 12권, 22-23쪽. 가이와 마르스가 동일 인물이라는 설정은 남성성과 여성성의 통합이야말로 온전한 인격의 실현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사회가 부여하는 외적 인격 위주의 성적 차별성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일반적으로 ‘아니무스형’은 여성적 자아가 남성적인 내적 인격과 만나 자아실현을 이루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아니마형’은 주로 남성적 자아가 여성적인 내적 인격을 통해 개성화를 이룩하는 유형이다. 상대적으로 ‘아니무스형’은 ‘내면적 수렴형’인 여성적 자아가 ‘외향적 발산’을 통해 거듭나는 데 비해, ‘아니마형’은 ‘외향적 발산형’인 남성적 자아가 ‘내면적 수렴’으로 성숙하는 흐름을 보여 준다. 그러나 양자 모두 자기실현/개성화 과정을 통해 ‘逆의 합일(coincidentia oppositorum)’을 이룬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대체로 여성작가들이 그리는 여성만화(순정만화)가 ‘아니무스형’인 데 비해, 남성작가들이 그리는 남성만화는 ‘아니마형’으로 나타난다.
[그림2-9] 내면적 수렴형의 형과 외향적 발산형의 동생 | <레드문>, 11권, 102-103쪽.실제로 박흥용이나 권가야의 작품에서는 죽음이 부정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욕망과 의지를 자아완성의 구도적 경지로 승화시키기 위한 계기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삶은 죽음의 계기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아를 찾아 완성하는 ‘구도’의 과정 또는 지속적 ‘성장’의 과정으로 묘사되고 있다. 죽음은 삶의 소멸이 아니라 변화이며, 그 변화의 끝에는 변화와 성장의 과정으로 생사를 인간에게 부여한 ‘내재적 근원자’(어머니 또는 모성적 신)가 자리한다. 결국 남성성만 있는 주인공이 자기 안의 여성성과 만나 통합을 이루면서 자기실현의 과정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에 비해 강경옥의 작품은 ‘마르스’라는 여주인공이 동시에 ‘가이’라는 남성이기도 한 양성인간의 구[그림2-10] 여성적 아들과 남성적 아버지 | <폐쇄자>, 1권, 10-11쪽.도를 설정하고 있고, [그림2-8] 황미나의 작품은 쌍둥이 형 ‘필라르’와 동생 ‘아즐라’로 한 인격의 양면성을 분리시키고 있으며, [그림2-9] 유시진의 작품은 같은 남성이면서도 아들 역할의 여성적 ‘쿤’과 아버지 역할의 남성적 ‘히이사’의 역할분담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그림2-10] 이러한 만화적 구성은, 비록 남성만화는 내면적인 여성성과 만나고 여성만화는 내면적인 남성성과 만난다는 차이가 있지만, 인격의 완성이 내면과 외면, 음과 양의 통합일 수밖에 없음을 표현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한편, 한국 만화 속에서 반복되는 죽음은 ‘생존(生存)’만 있고 ‘양육(養育)’은 없는 현실로 표현할 수 있[그림2-11] 생존의 父性, 절대적 초월자 | <야후>, 7권, 166-65쪽(上), <프리스트>, 5권, 60-61쪽(下).다. 또한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네.”라고 하는 전통적인 부모관(父母觀)에 입각할 때, ‘생존의 아버지’만 있고 ‘양육의 어머니’가 없는 현실은 생존만을 추구하는 초월성의 과잉, 내재성의 부재로도 묘사할 수 있다. 그리하여 ‘외향적 발산형’에서 양육 없이 생존만을 부여하는 부성 과잉의 아버지나 초월적 신이 부각된다면, ‘내면적 수렴형’에서는 생존을 포함한 양육을 제공하는 어머니, 여성적 아버지, 내재적 근원자가 강조되고 있다. 한 개인을 사회가 제공하는 생존의 질서에 편입시키는 것이 주로 초월적 절대자와 연계된다면, 개성적 자기 실현을 위한 양육의 가르침으로 이끄는 것은 주로 내재적 근원자의 몫이다. 그리하여 ‘외향적 발산형’에서는 초월적 절대자의 가시적 구현인 사회구조나 종교적 위계질서, 생존의 아버지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내향적 수렴형’에서는 내재적 근원자나 스승 혹은 여인이나 모성적 아버지의 양육적 지도가 드러난다. [그림2-12] 이에 따라 전자는 상대적으로 악몽 같은 삶을 향해 강력하게 분노를 발산하고 투쟁하는 경향을 띠게 되고, [그림2-1] 후자는 개성적 자기완성을 추구하는 구도적 삶으로 유연하게 전개된다. [그림2-2]

[그림2-12] 양육의 母性, 내재적 근원자 |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3권, 265쪽(左), <해와 달>, 3권, 97쪽(中), <레드문> 16권, 33쪽(右)실제로 외향적 발산형 일변도로 전개되는 윤태호의 작품은 아버지의 위치에서 내면적 인격을 억압하는 초월적 사회구조를 향해 거침없이 분노를 표출하고 있고, 이와 유사한 경향을 보이는 형민우의 작품은 신앙의 시험이라는 미명 아래 악과 죽음을 방관한 초월적 신의 오만에 대한 분노와 거기에 기생해서 죽음의 폭력을 행하는 종교권력에 대해 강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에 비해 내면적 수렴형이 주조를 이루거나 외향적 발산형과 비등한 정도를 차지하는 경우는 그 양상이 상당히 다르다. 박흥용이나 권가야의 경우에는 양육의 모성 혹은 내재적 신에 대한 묘사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으며, 황미나와 강경옥의 경우에는 생존의 부성, 억압적 남성성, 초월적 신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면서도 양육의 모성, 화해의 여성성, 내재적 신성으로 볼 수 있는 요소를 작품 전반에 배치하고 있다.

한국만화의 문화적 역량과 스펙트럼

최근 한국만화가들은 생사관의 문제를 형상화하면서, 죽음의 반복성과 사회성을 ‘생사의 역설’로 포착해내고 있다. 그리하여 삶과 죽음을 각각 욕망과 의지를 지닌 주체의 자기실현과정과 그것을 억누르는 흐름으로 설정하였다. 이러한 안목이 한국만화의 감성적 깊이를 보여 준다면, 이러한 감성을 작가 개인이 처한 맥락에 따라 재구성하여 표현한 개성적 구성은 만화적 표현의 넓이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 한국만화에 나타나는 ‘생사의 역설’은 욕망과 의지를 둘러싼 사회적 억압과 자기실현의 대립 혹은 외적 인격과 내적 인격의 긴장관계로 이해할 수 있으며, 그러한 ‘토포스’는 맥락에 따라 외형적 발산형과 내면적 수렴형, 아니무스형과 아니마형으로 그 유형을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분류가 고정불변의 절대적 위상을 갖지는 않는다. 모든 작품은 특정한 하나의 유형으로 일관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유형 중 주도적인 유형과 보조적인 유형이 어우러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유형론에는 부성과 모성, 남성성과 여성성, 초월성과 내재성의 상징이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초월적 신이나 가부장적 아버지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캐릭터 역시 불쌍한 희생자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실제로 만화에 등장하는 대다수의 인물들은 빛과 어둠을 겸하는 복합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한편 이러한 유형론을 통해서 남성만화와 여성만화가 지닌 상대적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남성만화가 상대적으로 공식적인 사회적 관계에서 빚어지는 외적 인격의 문제에 치중하고 있다면, 여성만화는 내밀한 개인적인 관계로 파고드는 내적 인격의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강경옥, 황미나, 유시진 등의 작품을 보면, 복잡하게 엇갈리는 사랑 혹은 집착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순정만화의 전형적인 관계 설정과 이야기 전개가 공통적인데, 이는 남성만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특징이다.
한국만화는 이제 생사의 역설을 다루는 장인의 솜씨를 선보이면서 질적 성숙을 알리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질적 성숙의 깊이와 넓이에 대해 살펴보았으나, 그 분석 결과는 미숙하고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 창작이 언제나 비평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 글의 비평을 무색하게 만드는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 이 글은 박종천, ‘삶과 죽음의 토폴로지: 최근 한국만화의 새로운 흐름’, <한신인문학연구> 제4집 (한신대학교 학술원 인문학연구소, 2003)의 후속작업입니다.

2005-10-19 21:3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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