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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정치, 그리고 만화저널 ‘코믹뱅’
글 | 이재식
 
만화와 정치.
둘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만화는 정치를 몰랐고, 정치는 만화에 정을 주지 않았다. 정치는 만화에 대해 인정을 두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적지 않은 폭력을 행사했다. 만화 심의는 폭력의 일상이었고, 만화가 지고 온 짐이기도 했다. 97년의 ‘만화사태’는 곱게 보아 ‘사태’이지  전쟁이었다. 대테러 전쟁. 그때 정치는 만화를 주 테러범(청소년 유해물)으로 호되게 몰아붙이지 않은가.  
만화와 정치. 한 자리에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둘이다. 그런데 요즘 이 둘이 굉장히 친해졌다. 언젠가부터 제법 티 나게 어울리는가 싶더니, 정치가 이제 내놓고 만화에 구애를 한다. 만화도 덩달아 정치하겠다고 야단이다.
지난 9월 30일 세계만화대회가 열린 부천 복사골문화센터.
세계 만화가들의 유일한 이 행사의 개막에 맞춰 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차례대로 연단에 올라 인사를 하는 것을 보니, 주최측의 만화인들을 빼고는 모두 정치인들이다. 홍건표 부천시장, 손학규 경기도지사, 민병두 국회의원, 부천시 의장 등. 세계만화대회라고 하지만, 사실상 만화인들의 친목행사인 자리에 정치인들이 줄지어 찾은 데는 만화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진 때문일까. 슬슬 다른 나라 만화가들의 반응을 살펴봤다. 짐작대로 정치인들의 행렬에 적잖이 당황해 하는 기색이었다.
 
위정자들이 참석하는 자리에서 볼거리는 당연 정치적 제스처이다. 홍건표 부천시장은 부천을 세계적인 만화도시로 키우겠노라며 만화도시 부천을 알렸다. 손학규 지사의 관심사는 한류우드에 있을 텐데, 한류 열풍에 만화가 선도적인 역할을 해주길 당부했다. 하이라이트는 민병두 의원. 민의원은 놀랍게도 해외 만화(일본만화)의 수입을 규제하는 법안(쿼터제로 통용됨)을 입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깜짝 놀랄 만한 사건이었다. 정치는 만화에 서프라이즈 프러포즈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개막식에 참여한 해외 만화가들은 이 신선하고 충격적인 프러포즈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익숙지 않은 만화 국제행사에 통역이 온전했을 리 없지만, 정치가 만화에 프러포즈하는 것을 상상하기 힘든 것은 우리 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뒷 얘기지만, 이 민감한 사안을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을 느낀 <코믹뱅>팀은 다음 날 일본의 만화작가 치바 테츠야, 사토나카 마치코 씨, 그리고 만화신문 발행인인 기무라 타다오 씨한테 인터뷰를 신청했다. 만화 쿼터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상했던 대로 그들은 쿼터제가 금시초문이었다. 어제의 프러포즈는 전혀 세계적이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 편집팀이 부연설명을 하자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한눈에 드러났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하느냐, 개막식에서 그런 일이 있었냐고 때늦게 충격을 받는 듯했다.
이런 맥락에서라면 우리팀도 상당히 정치적이었는지 모르겠다. 전날 한국 정치가 만화에 한 일을 홍보하는 ‘정치공작’을 인터뷰 이름으로 포장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한국 현실 정치가 만화에 대해 충격적으로 구애한 것에 대한 다른 해석도 나오고 있다. 그다지 충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아 보인다. 솔직히 의외이다. 저마다 사정이야 있겠지만, 이 또한 만화와 정치의 익숙하지 않은 동행으로 인한 일 정도로 해석하고 여기에 대한 논의는 다른 자리로 돌린다.
이 자리에서 이슈로 삼은 것은 만화와 정치에 대한 표피적 해석, 즉 만화행사에 정치인들의 참여가 눈에 띈다는 것이 아니다. 세계만화대회에 이어 11월 3일 있은 ‘만화의 날’에는 정치인들이 더 많이 참여했다. 문화관광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미경 의원을 비롯해 문광위 의원을 중심으로 10여 명의 국회의원이 나왔다. 이미경 의원조차 인사말에서 민간 문화행사에 이렇게 국회의원들이 대거 참여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을 건넬 정도였다. 믿기지 않겠지만, 만화행사에 국회의원 수십 명과 감사원장, 여야 정치인들이 참여한 적이 있다. 90년 말 만화가협회와 한 시민단체가 정치인 캐리커쳐전을 열고 모금행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자신의 얼굴이 나온다니 민감해서였던지 정치인 수십 명이 참여한 적이 있다. 시사만화는 정치가 주요 소재가 되다 보니, 시사만화가들의 행사에는 정치인들의 발걸음이 분주한 것이 통례이기도 하다. 
결국 만화와 정치에서 이슈는 민병두 의원의 해외 만화 출판 쿼터제이다. 그리고 이는 솔직히 말해 굉장히 욕심나는 이슈이다. 그것은 우리가 이슈에 목말라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슈를 만들지 못하는 만화계의 현실에 대한 새로운 문제제기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이번 이슈에 주목하는 것은 마침 만화계 안에서도 만화저널에 대한 논의가 있고, 여기에 대한 준비가 다양하게 모색되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평론가 몇 사람이 모여 만화저널을 이야기 하며, 주간 만화정보지를 논의의 테이블에 올리기도 했는데, 현실과 거리가 너무 멀다고 생각해 온라인으로 결의를 모으고 실행단계에 있다. 서찬휘의 ‘만화저널 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또 이번 쿼터제의 제안자인 박인하 교수도 만화무크지 발행 구상을 진작 밝혔다.
이때 <코믹뱅>이 문을 연다. 이전의 만화사이트와의 차별성을 만화저널에 두고 만화뉴스의 일상화, 만화 공론장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만화담론은 그만두고, 소식조차 온전하게 소통되지 않는 만화 환경에서 뉴스를 생산하고, 환경을 감시하고, 이슈를 부각시켜 확대하고, 통합해 대안을 모색해 보겠다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만화저널이다. 예를 들면, 쿼터제 이슈야 말로 ‘철저하게 만들어진 이슈’이다. 급조된 탓인지 뒷심이 받쳐주지 않는 것이 현저하게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급조된 이슈라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슈가 확대되기 위한 소통통로가 부재한 것이 문제다.
우리는 만화저널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이는 만화저널 <코믹뱅>의 모태가 <계간 만화>에 있기 때문이다. <코믹뱅>은 만화정론지 프로젝트로 출범한 <계간 만화>의 뒤를 잇는 작업이다. <계간 만화>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간에 우리는 <계간 만화>에 맡겨진 사업을 일단락 짓고 온라인으로 옮겨와 저널을 잇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이번 작업은 이전과 달리 온라인에 대한 기대와 배려를 크게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온라인 만화저널 <코믹뱅>에 와서 가장 크게 기대하고 주안점을 두는 것은 공공저널리즘(Public Journalism)의 문제이다. 공공저널리즘이란 언론이 사회적 쟁점에 대해 시민들의 토론과 참여를 유도하고, 나아가 정책의 입안에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는 너무 거창한데, 좁혀서 공공저널리즘의 구체적인 실현방안으로서의 공론장(Public sphere)의 활성화이다. 요컨대 우리 만화환경에 대한 공론장의 실현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여기에 대해 우리가 특별히 준비하거나, 할 수 있는 것은 솔직히 별로 없다. 다만 공론장의 실현이 온라인저널리즘의 특성과 장점을 온전히 살리면 가능하다는 것이 저널리즘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즉 온라인에서 사용자와의 상호작용성, 분량에 제한 없이 지속적인 보도가 가능한 것 등이 온라인저널리즘의 장점일 것이다. 우리는 이 작업을 만화 환경에서 <코믹뱅>의 이름으로 실현하는데 힘을 쏟을 것이다.
자, <코믹뱅>에 대한 다짐은 이 정도로 하고, 이 글의 화두인 만화와 정치에 대해서도 마무리하고자 한다.
먼저, 쿼터제에 대해서 <코믹뱅>은 이렇게 말문을 떼고 싶다. 우리는 특정의 입장을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뒷심이 약하다고 불평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입법화가 최선인가를 반문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제일 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역할은 그 장을 펼치고 끊임없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참, 쿼터제 프러포즈가 적잖이 어설프고 성급했다는 풍자화 정도는 준비할지도 모른다.
다음은 만화와 정치로 포문을 연 이 글에서 ‘정치’를 모조리 ‘정책’으로 바꿔 다시 읽어 주길 부탁한다(이런 무례가 있나!).
만화와 정책, 아니 다시 고치면, 만화 정책! 만화와 정치는 어색해도 만화와 정책은 이제 너무 익숙하다. 만화에도 어느덧 정책이란 것이 개입했으니까. 그리고 그 정책의 수준과 범위와 실효가 어떻든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서 우리 만화의 내일을 기약하기는 힘들 것이다. 말하자면 정책을 세우고 정치를 하자는 것이니까. 일본 만화를 통째 베껴 온 우리 만화가 일본 만화와 다른 몇 가지 중 하나가 정부와 지자체에서 보란 듯이 지원을 한다는 것이다. 그럼 다음은 효율적인 정책이다. 이때라면 만화도 정치를 해야 한다. 정치 잘하는 만화가 어디 없나? 
사족을 하나 달면, 정치나 정책 같은 게 있어야, 저널이란 게 놀 만하고 신이 나는 거다. 이제 한번 놀아 볼까. 얼쑤! 잘~ 부탁드립니다!  
 
<코믹뱅> 편집주간, <계간만화> 발행인  bigbang@comicbang.com
2005-11-10 17:4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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