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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기사
<습지생태보고서>와 반기업 정서
글 | 이재식 
 
만화출판사의 한 직원이 모 그룹의 홍보실을 찾았다. 자신의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선물하기 위해서다. 이 직원은 홍보실에 있었는데, 만화가 너무 좋아 만화출판사로 자리를 옮겼다. 출판사에서 공을 들인 첫 책이 나와 옛 직장을 찾아 선배들한테 인사라도 할 요량이었던 것이다. 책은 <습지생태보고서>. 만화계의 무서운 아이로 통하는 최규석의 두 번째 작품집이다.
뿌듯한 마음으로 책을 내미는데, 홍보실 선배의 첫 마디는 전혀 뜻밖이었다.
“이거 반기업 정서를 담은 책 아니야?”
 
이 이야기를 듣고 박장대소했다. 요즘 반기업 정서가 가볍지 않은 이슈이기도 하고, 이 그룹이 이런 데 워낙 민감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더라도 <습지생태보고서>가 왜 곧바로 반기업 정서로 비약됐을까.
이유인즉 이 책이 여느 만화책과 달리 표지에 그림 이미지가 없고, 지하실에서 자취하는 젊은이들 이야기라는 설명까지 덧붙여져 빚어진 결과란다. ‘보고서’라는 이채로운 제목도 반기업 정서를 자극한 데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희한한 해석을 낳는 과정만 놓고 보면, 기발할 수도 있고, 기가 막힐 노릇이기도 하다.
물론 오랜만에 만난 선후배 사이에 웃자고 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래도 세태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쓰레 한 뒷맛이 남는 건 사실이다. 뜻밖에도 이 홍보실 직원이 대학에서 같이 공부했던 친구라는 사실을 알았다. 덕분에 오랜만에 연락도 했다. 이 친구와는 만화에 얽힌 추억도 있다. 9년 전, 병아리 기자시절 한 만화가가 기업 홍보실을 무대로 한 작품을 구상하는데, 도움말이 필요해 이 친구를 불러내 밤새 만화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다. 내가 알기로 홍보실 사람들은 만화에 대해 제법 이해가 있는 사람들이다. 친구야, 니가 좀 심했어!
 
그런데 반기업 정서가 만화계에도 완연한 생각이 든다. 최근 3대 만화출판사를 두고 DHS라는 표현이 왕왕 회자되는 것을 본다. 대원씨아이, 학산문화사, 서울문화사를 이른 말이다. 이렇게 싸잡아 부를 때는 대체로 부정적인 뉘앙스가 짙다. 말하자면 “차별성도 없는 너희들, 일본 만화나 찍는 한통속” 정도의 함의를 담은 메시지이다. 물론 DHS라는 말이 처음부터 반드시 이런 의도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아마 처음에는 이들 출판사들을 약칭해서 부르는 정도의 의미였을 것이다. 추적해 보니, DHS란 말이 한 만화교수가 정책연구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쓴 말인 듯 보인다. 이렇게 보아 가치중립적인 말로 보는 것은 마땅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부정적인 뉘앙스를 띠고 있을까.
우선 DHS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부정적인 문맥에서 사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침 출판만화 쿼터제 등이 이슈를 타면서 DHS의 출연도 더 잦아진 것으로 보인다. 급기야 이 말을 처음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교수는 블로그에서 ‘DHS-GSA 논쟁’까지 벌였다. 상대는 ‘빈칸’이란 아이디의 필명을 쓰는 만화팬으로 보이는 이. 그는 DHS라고 몰아붙이는 것을 못마땅하게 보고, “그럼 GSA는 허물이 없고, 우리 만화의 미래를 맡길 만하냐”고 반박했던 것이다. GSA는 또 어딘가. 딱히 어느 출판사라고 꼬집지는 않았는데, 대략 짐작은 간다. 그에  따르면, GSA는 ‘원고료 거저 먹기의 구조화 폐단’을 저지르고 있는 출판사이다. 작은 규모의 기획출판사로 지원사업이나, 복간작, 혹은 다른 지면에서 연재한 작품을 단행본으로 내는 것을 두고 한 말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빈칸이 GSA라는 가공의 명분까지 들고 나온 것은, DHS를 제창한 교수가 대형 출판사들이 기획력이 부재하고, 안이하고, 시대 변화에 쫓아오지 못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한 데 따른 반발이었다. 그런데 빈칸은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 편을 드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DHS가 워낙 헛짓거리를 많이 하다 보니 욕먹는 건 당연지사지만, 다른 데서 헛짓거리하는 GSA한테도 대안은 찾을 수 없고 앞으로도 좀처럼 생길 것 같지 않다”고 밝혔다. 또 GSA보다 DHS를 선택한다면 이는 “차선이 아닌 차악에 투표하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결국 어느 일방의 편에 있지 않은 열혈 만화팬의 논박에서 확인한 것은, 그 배경에 김은희 작가의 <더 칸> 연재 중단에 대한 입장 차이는 있었지만, 대립과 반목보다는 현실을 고려한 차이 좁히기였다. 문제가 있다면, 사소한 데서 자칫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부주의나 혹은 조금이라도 개입된 편가르기의 그릇된 접근법이다. 
DHS가 어떻든 간에 만화판이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함께 힘겨운 짐을 지고 있는 동료들이다. 가령 쿼터제를 이야기한다쳐도 함께 대화로 풀어야 할 파트너이지, 터부시하고 몰아붙여야 할 적은 아닌 것이다. 더욱 우리 만화의 발전에도 한 몫을 담당하고 있고, 만화시장의 70% 이상을 떠맡고 있는 것이 DHS인데,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공인이(교수) 예의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것은 옳지 못하다. 어려운 시기에 상처를 주는 말 한 마디에 당하는 상대는 얼마나 괴롭겠는가. 독자들한테 편가르기로 비칠 수 있는 억지를 쓸 때는 절대 아니다.
마지막으로 대형 출판사들은 자신들이 만화계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을 생각해 이제 스스로 토론장으로 적극 나서길 부탁한다. 뭇매를 퍼부어도 묵묵부답이요, 한번씩 불려나오다시피하는 토론장에 와서는 반성문을 쓰듯 고개를 조아리는 풀죽은 모습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방어하고, 토론해 힘든 시기를 뚫고 나갈 지혜를 찾길 바란다.
DHS(라고 부르는 것)는, 내 친구마냥, 너무 했다. 살짝 바꿔 주자. 어디 다른 말이 없을까. 가능하면 ‘만화적 상상력이 담긴 말이면 좋을 텐데. 한꺼번에 불러야 할 일이 자주 있을 것은 피하기 어려운 사정이니까.
 
 
<코믹뱅> 편집주간, <계간만화> 발행인  bigbang@comicbang.com
2005-11-15 12:5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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