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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기사
실용학습만화시장과 창작 시스템
 
에듀테인먼트 개념의 확산과
기획이 성패 결정짓는 창작방식
 
글 | 김기홍 (객원기자 firefox9@nownuri.net)  사진 | JAY’S STUDIO
 
 
처음에 ‘이건 또 뭔가’ 했던 실용학습만화의 새삼스러운 열기가 출판시장에 정착해 당연지사가 된 지 2, 3년이 흘렀다. 가나출판사가 발간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성공이 기점이다. 그 규모는 당시의 시장인식으로 분석이 잘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다. 그저 ‘마시마로’와 비슷한 유형의 로또형 행운대박이라고 치부하기도 했다. 아류와 새로운 작품들이 쏟아져 나와 경쟁하다 몇 편의 대박이 추가로 터지면서 한때의 우연이 아님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너나 없이 덤벼들어 공급은 과잉에 이르렀고, 경기침체의 여파가 이 바닥에도 미치기 시작했으며, 강자와 약자 사이에 뚜렷한 구분이 생기고 있다. 와중에도 베스트셀러는 계속 나오고 있으며 새로운 도전이 반복되고 있다.
특집 ‘다시 문제는 창작이다’ 이번호는 지난호의 주류 만화에 대한 분석에 이어 실용학습만화에 주목하고자 한다. 시장과 창작시스템 분석을 통해 실용학습만화가 인기를 끄는 이유와 시장과 창작시스템의 성격, 기존 만화와의 관계에서 실용학습만화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등을 짚어 본다. 
 
 
어째서 실용학습만화가 인기인가
실용학습만화의 인기는 새삼스럽다. 학습만화라는 장르가 새로울 게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새마을운동 시절에도 ‘천재학습’ 류의 학습만화가 있었고, 가깝게는 <먼 나라 이웃나라>의 성공이 있다. 그러나 요즘처럼 메이저 시장에서 독자적인 색깔의 시장을 형성하며 재생산 구조를 확립했던 적은 없었다. 어째서 실용학습만화는 새삼스럽게 인기를 끌고 있는가.
초대형 ‘대박’을 터뜨리며 실용학습만화 붐의 출발점이 된 <그리스 로마 신화>(가나 출판사).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됐으며, 7월 말에 개봉할 예정이다.첫째, 시장의 이동에 의해 일반인의 체감영역 안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전의 학습만화는 대부분 방문판매를 통해 이루어졌다. 성공한 콘텐츠와 실패한 콘텐츠의 정보가 일반에게 자세히 공개되지 않았다. 이 ‘닫힌 시장’의 콘텐츠가 일반 서적들과 함께 진열, 판매되어 경쟁하는 ‘열린 시장’으로 진입해 새삼스러운 광경을 연출한 것이다. 이는 실용학습만화의 인기 저변에 어느 정도 역사적 맥락의 인프라가 깔려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둘째,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 개념의 확산과 만화의 궁합이다. 기존의 ‘학습’은 ‘학교 공부’를 지칭하는 용어였고, 교과서를 제외한 학습관련서적은 ‘자녀들의 학교성적 향상에 이바지하는 과외서적 일체’를 의미했다. 그래서 현재 혹은 미래의 학교 교과과정과 직접 관련성이 쉽게 입증되는 ‘수학교실’ 류가 대세를 이루었고, ‘기타’ 영역 또한 역사와 과학상식, 위인전 등 고전적인 아동교육물 개념을 넘어서지 않았다. 지금도 이 원칙에는 변함이 없지만, ‘똑똑한 요즘 젊은 부모’들은 경직된 학습서적을 강요한다고 자녀들이 자신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줄 만큼 의욕적인 학습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그림과 텍스트가 결합해 즉시적인 기호를 생산하는 만화는, 재미와 학습의 결합을 통한 아동들의 학습효과 증진 요구를 적절하게 수용할 힘을 지닌 매체이다.
만화 전문 출판사인 서울문화사가 발간해 성공을 거둔 코믹북 <메이플 스토리>. 이 작품 외에 실용학습만화 히트작은 만화와 관련이 없던 출판사들이 낸 경우가 대부분이다.셋째, 실 구매자인 부모들의 인식변화이다. <새소년>, <어깨동무>를 보고 자란 이들은 만화에 대한 거부감이 이전 세대의 부모들에 비해 현저히 엷다. 게다가, 개발독재시기 획일화 교육에 대한 염증과 다양성에 대해 갈증을 지니고 자란 이들 세대의 교육관은 그 전과 차이가 있다. 학교성적 제일주의의 틀에 감금되지 않을 부모는 드물지만, 예전과 같이 경직된 군대식 교육을 선호할 부모도 많지 않다. 인식부터 구체적인 실천방식에 이르기까지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생각은 유연해졌으며 요구도 다양화 되었다. 이들은 ‘실용학습만화’를 받아들일 준비된 수용자였다.  
 
시장의 성격은 어떠한가
코믹스, 대본소 만화시장이 대여 위주인데 반해 실용학습만화는 서점판매 중심의 시장이다. 이 성격적 차이는 유통과 관련한 시장진입장벽을 규정한다. 즉, 대여 위주의 코믹스 시장은 닫힌 구조여서 시장진입 문턱이 높다. 대본소 바닥을 잘 알거나 인맥이 지방 곳곳의 총판을 넘어 일본의 출판사까지 닿지 않는 ‘보통사람’은 섣불리 나서지 않는 게 좋은 사업이다. 반면, 서점판매 중심의 실용학습만화는 구조적인 진입장벽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메이플 스토리>를 출간한 서울문화사를 제외하면 최근 실용학습만화 히트작을 만들어 낸 출판사들은 모두 만화와 관련이 없던 회사다. 판매시장에서 이들 비만화 출판사들은 기존의 오프라인 서점출판유통라인을 활용하는 한편, 할인점, 온라인서점, 학급문고, 학교바자회, 특정도서단체를 통한 영업을 추진하는 등 새로운 판로를 모색하는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완전경쟁에 가까운 열린 시장구조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광고마케팅도 대단히 적극적이다. 남들 다 하는 미디어광고, 학교주변 전단지 광고뿐 아니라, 책을 사기만 하면 정가의 40~80%짜리 문화상품권을 주거나, 고가의 가전제품을 경품으로 내건 행사를 하기도 한다. 최종 소비자가 만화방, 대여점 점주들인 기존의 코믹스, 대본소 만화의 영업시장문화와 비교할 때 대단히 경쟁적이고 공격적이다.    
 
창작 시스템은 어떠한가
'서바이벌 만화 과학상식 시리즈’는 현재까지 총 9권이 발간돼 230만 부가 판매됐다. 학습지로서의 성격과 오락성이 적절히 맞물려 구매대상에게 어필한 대표적인 사례다.기존의 코믹스 작가들이 실용학습만화 제작시장으로 대거 이동하고 있다. 실용학습만화시장이 커지면서 만화 제작이 가능한 작가들이 다수 필요하게 되어 수요가 발생했고, 불황 속에 발표지면이 줄어든 작가들이 공급자로 나서게 되었다. 이 중엔 코믹스와의 병행을 포기하고 학습만화에 ‘올인’하는 작가들도 있다. 작업 시스템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제작과정에 특별한 변화는 없다. 코믹스와 구분되는 올 컬러라는 특징이 있지만 그 또한 익숙하게 처리할 수 있는 공정이다. 창작 시스템의 핵심적인 변화는 기획의 중요성이 극단적으로 부각된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존 코믹스 창작에서 편집팀이 기획을 통해 개입할 여지는 본질적으로 좁을 수밖에 없다. 작가 개인의 재능이 훨씬 중요하다. 편집팀은 대체적인 이야기 진행과 주제, 소재에 대한 토론, 결과물의 수정 정도에 관여할 수 있을 뿐이다.
실용학습만화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예컨대, ‘살아남기’ 시리즈에서 중간중간 삽입되는 화산, 동굴, 바다, 빙하에 대한 과학상식은 그 내용과 수준, 위치와 크기, 편집까지 기획자가 준비해 제공한 것이다. 이 정보 페이지가 기획학습만화의 핵심 요소인데, 그 자체의 교육성뿐 아니라 책의 성격을 규정하고 학습적 성격을 웅변해 판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결국, 특정 학습만화의 성공여부는 정보 페이지를 비롯한 학습서 성격이 전반적인 내용의 오락성과 맞물려 구매대상에게 적절하게 어필하느냐에 달려 있는 만큼 성공적인 기획에 철저하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스토리작가는 이 정보 페이지를 제시하기 위한 과정을 모험으로 엮는 역할을 담당하고, 그림 작가는 가장 합당한 그림 연출을 맡는다. 결국 얼개 자체를 기획자가 짜는 구도여서, 전반적인 제작과 편집상황까지 영화감독과 흡사한 책임 진행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향은 전문성과 학습성이 강조되는 <서바이벌 만화 과학상식>, <초등과학 학습만화>, <마법천자문>, <교과서를 만화로 공부해요> 등 대다수의 학습만화 시리즈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성공한 실용학습만화는 기획이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말은 타당하다. 그렇지 않은 만화도 있다. 예를 들어, 문정후의 <영웅 초한지>, 신일숙의 <아라비안 나이트> 류의 만화가 그렇다. 기획자는 일반 코믹스의 편집자 정도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며, 문정후, 신일숙 ‘급’의 작가에게 만화를 의뢰한 것은 그들이 ‘알아서 잘 해’줄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름 대면 알 만한’ 유명작가들의 역사물 위주의 학습만화들이 대거 쏟아져 나오게 되는 올 여름께 이런 경향은 더욱 짙어질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시장전망에 다소 회의적이다. 학습만화적 기획 포인트도 부족하고, 기존의 코믹스와 크게 차별화되지 않는 이들의 시도가 학습만화 수용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할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본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코믹스와 실용학습만화는 시장의 성격이나 성공의 요건이 서로 다르다. 창작 또한 그에 발 맞춰서 달라질 수밖에 없다. 특징적으로 기획이 창작의 중요한 요소로 참가하고 있다. 결국 실용학습만화는 기존의 스토리작가와 그림작가에 기획자가 포함된 삼각구도의 공동창작형태이다. 만화가들이 실용학습만화로 이동하는 현상에는 시장불황 등 사회경제적 요인도 있지만 만화가가 이런 저런 형식의 만화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다만, 창작 방식이 기존의 것을 답습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실용학습만화는 기획을 중심에 두고 그림과 스토리, 재미가 균형을 맞췄을 때 수준 높은 창작에 이를 수 있다. 작가 주관적인 코믹스식 창작만이 창작의 본질이라고 우기며 기획과 대치한다면 이 바닥에서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실용학습만화도 분명 만화다. 만화가 살아가는 수많은 형식 중 하나다. 만화가가 만화를 그리는데 코믹스, 학습만화를 차별할 이유는 없다. 중요한 것은 결과다. 시장의 성과도 중요하고, 작품 자체의 퀄리티 또한 중요하다. 이 기본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실용학습만화가 가진 기획 중시 성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역량을 키워가는 일이 될 것이다.
 
 
Interview / 코믹컴 홍재철 실장
 
‘살아남기’ 위한 철저한 기획과 열린 대화
홍재철 실장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작가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현장감을 담아내기 위해 책의 주제가 되는 각종 레포츠를 배우거나 탐사 체험에 직접 나서기도 한다.코믹컴의 홍재철 실장은 명함이 없다. “여러 출판사들의 집요한 자문요청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하지만 그것 자체가 특별한 사연’이다. <무인도에서 살아남기>(아이세움, 2001년)를 시작으로 현재 9권까지 발행된 ‘서바이벌(살아남기) 만화 과학상식 시리즈’가 총 판매부수 230만 부라는 ‘대박’을 터뜨리면서 기획을 담당했던 그의 이름 앞에는 ‘아동학습만화 전문 기획자’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프리랜서를 선언한 후 선보인 ‘레포츠 만화 과학상식 시리즈(아이세움)’도 6권에 40만 부라는 연타석 홈런을 날리자 학습만화를 기획 중인 출판사들이 그 비결에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체험에 바탕을 둔 기획
대박을 터뜨린 ‘서바이벌(살아남기) 시리즈’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작가들의 역할이 컸죠.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는 소재와 과학상식을 접목해 교육적인 요소와 오락적인 요소를 합친 이른바 에듀테인먼트 콘텐츠로 개발한 것도 주요했습니다. 특히 책 중간에 삽입한 학습정보 페이지는 만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던 학부모들로부터 책을 구매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됐다고 봅니다.”
그의 작품 기획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현장 체험이다. ‘레포츠 과학상식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작가들과 실제로 주제가 된 레포츠를 배우고, 탐험도 다녔다. 비용과 시간이 드는 일이지만 결코 아깝지 않은 투자라고 한다. “물론 <빙하에서 살아남기>를 기획할 때 직접 북극에 가지는 않았습니다(웃음). 무리하지 않고 실행이 가능한 선에서 계획을 세우지요. <동굴에서 살아남기>를 준비하면서 작가와 함께 실제 동굴 탐험을 했는데 엄청나게 고생했습니다. 하지만 다루고자 하는 소재를 이해하고 정보를 얻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완성도를 위해 작가와 끊임없이 대화
대형 서점에 마련된 학습만화 코너. 불과 2, 3년 만에 서점 한 귀퉁이를 크게 차지할 정도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코믹스와 잡지 시장이 어려워지자 많은 작가들이 학습만화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상당수가 시장에 대한 이해와 고민 없이 생계를 위해 무작정 시작하면서 부작용도 있다고 한다. “저연령층이 주 독자라고 해서 낮은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건 곤란합니다. 재미가 없다고 판단되면 아주 냉정하게 외면하는 게 아이들이거든요. 처음 시작하는 작가들은 기획자, 스토리 작가와 함께 충분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홍 실장이 작품을 진행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작가와의 커뮤니케이션이다. “학습부분이 강조될수록 기획의 중요도는 높아집니다. 때문에 작가들과는 최대한 대화를 많이 나누려고 노력합니다. 학습정보를 어디에 어느 정도 넣어야 할지, 어느 부분에서 코믹한 연출이 필요한지 끊임없이 서로 의견을 내고 수정을 반복하죠.” 평균 예닐곱 번의 원고 수정은 예삿일이다 보니 의견충돌이 없을 수 없다. “서로 끝까지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는 경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절충점이 보이죠. 높은 완성도의 작품을 만들겠다는 공동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반기를 기점으로 시장 판도의 변화 예상
그는 현재 학습만화 시장은 한창 달아오르던 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위축된 상태라고 평가하면서 올 하반기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수기인 여름 방학을 기점으로 각 출판사들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대작 타이틀이 대거 시장에 나오기 때문이다. “백성민, 이충호, 오세영, 박산하 등의 유명 작가들이 준비 중인 이 작품들의 성공 여부에 따라 학습만화 시장의 규모와 질적인 면에서 변화가 예상됩니다. 비록 유명 작가의 이름이 부수를 담보하진 않지만 소설 대작을 만화화 한다는 점에서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현재 ‘서바이벌(살아남기) 시리즈’와 ‘레포츠 시리즈’의 후속권 작업을 진행 중인 홍 실장은 하반기에는 청소년 만화를 기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황제성 기자
2005-11-15 14:3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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