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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게임의 행복한 이중나선을 위하여
게임에 묻힌 만화  게임을 넘어서는 만화
 
글 | 김낙호 (만화 연구자, 본지 편집위원 capcold@nownuri.net
 
만화의 ‘위기’를 논하는 거의 모든 자리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청소년들이 다들 게임 하느라고 만화를 안 본다.” 그만큼 게임, 정확히 말하자면 컴퓨터 게임은 불과 십 수 년 동안 빠르게 대중문화의 화려한 승부사로 급부상했다. 정말로 만화의 위기가 게임 때문인가의 문제는 차치하고, 여기서 얻을 수 있는 한 가지 확실한 함의는 바로 만화가 게임에게 무언가를 뺏겼다고 느낄 만큼 지금껏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속에서 OSMU니 하는 식으로 협력을 구가하든지(‘라그나로크 온라인’, ‘열혈강호’ 등), 아니면 만화의 뜻을 접고 게임 업계로 투신하든지 나름대로 현실은 움직이고 있다. 그 호환성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하이퍼 어쩌고 하는 뜬구름 잡는 이론과 낯선 용어들로 치장하기보다는 그냥 단순하게 질문해 보자. 왜 나는 아직도 만화가 여전히 즐겁고, 게임도 즐거운가. 더 즐겁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표현의 호환성
만화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속칭 ‘만화(체 그림)’이라고 일컬어지는 일련의 약호화된 그림양식, 즉 카툰화법이다. 또한 만화가 게임에 대해서 가장 먼저 행사한 영향 또는 연계지점 역시 이것이다. 게임이 ‘핑퐁’ 같은 단순한 화면상 신호 점멸의 시대를 넘어서 캐릭터와 줄거리가 있는 문화로 발전하는 과정 속에서, 그 이미지는 카툰화법이라는 틀을 취하며 적극적으로 만화와 이웃을 자처했다. ‘팩맨’의 둥그런 주인공이든, ‘스페이스 인베이터’의 귀여운 곤충형 외계인들이든, 만화의 특기분야인 카툰화법의 형상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점 두 개와 곡선 하나만으로 구성된 추상적인 형체 속에서 미소 짓는 얼굴을 연상시키도록 하는 기술이 바로 만화라는 장르에서 그토록 갈고 닦아온 카툰화법이며, 항상 정보 저장·처리 용량의 한계와 싸울 수밖에 없는 컴퓨터 게임이라는 장르에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파트너였다. 한 유명한 사례로는 닌텐도 왕국의 일등공신인 ‘슈퍼 마리오2’를 꼽을 수 있는데, 역동적인 배경화면을 구사하면서도 한정된 용량을 극복하기 위해서 구름 그림과 수풀 그림을 같은 형상에 색만 바꿔서 처리했다. 둥근 돌기들이 부풀어 올라있는 전형적인 카툰화법 특유의 표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용량문제가 대부분 해소된 현재도,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서 카툰화법을 채용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또한 만화는 잡식성 복합매체의 모범으로 군림해왔다. 만화와 게임의 호환성에 어떤 ‘기질’적인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그 복합성이다. 만화는 각각 따로 추구되기 십상이었던 그림과 글을 마음대로 합쳐 버렸고, 여러 그림들과 공간을 적극적으로 재구성해 버린다. 오감과 감정의 흐름을 시각이라는 틀로 공감각적 재구성해 버렸다. 만화가 현재의 컴퓨터 게임 양식에 미친 영향력은 바로 이런 잡식성이다. 글로 설명하는 것이 효율적일 때는 화면에 글자로 표시되고, 연속적인 그림들이 필요할 때는 그렇게 한다. 특정 캐릭터의 발언은 말풍선이나 박스 구조물로 연결한다. 캐릭터들의 대사와 줄거리가 중요한 RPG 계열 게임의 경우 특히 이러한 진행방식을 중용하고 있다. 고전적 진행형인 ‘울티마’든, 온라인 생활 커뮤니티에 가까운 ‘마비노기’든 마찬가지다. 이것 역시 초창기에는 음성 구현 문제라든지 하는 기술적 한계가 작용했지만, 그 이상으로 표현 자체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 기대고 있다.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전혀 관계가 없는 두 컷이지만, 연속해서 읽고 해석해 나가는 과정의 독자의 시선을 통해 작품은 완성될 수 있다. <만화의 이해>, 스콧 맥클루드, 시공사, 76P.상호작용성도 마찬가지다. 만화의 독서를 위한 독자 자신의 역할은 지대하다.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길어지겠지만, 요약하자면 만화독자는 만화 속 사건의 과정과 시간의 흐름을 직접 통제하면서 읽는다(여기에 대해서는 <만화의 이해>(맥클루드 저)라는 고전 이론서를 펼쳐볼 것을 권한다). 만화는 작가가 ‘보여 주는’ 방식과 독자가 ‘보는’ 방식이 밀접하게 상호작용해야 비로소 제대로 감상될 수 있다. 수용자의 노력이 사건을 진행시키는 이러한 상호작용성의 기본 아이디어는 컴퓨터 게임에 있어서는 아예 기본 존재기반이 된다. 특히 미연시(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장르는 대부분 아예 만화식의 페이지 넘김 효과를 그대로 이식해 넣기도 한다. 하지만 만화가 게임의 아버지라고 친자확인소송을 걸 생각인 것은 아니며, 복합매체적 표현 시도가 만화만의 고유한 것이었다고 거짓 증명을 하는 것도 어리석다. 다만, 만화에서 중점적으로 연마해온 여러 기법들이 컴퓨터 게임의 가장 근본적인 보여지는 방식에 일정 부분 흡수되어 있다는 점이 바로 이 두 장르의 호환성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열쇠가 되어 준다는 것이다.
 
문화의 호환성
표현적 기반만큼이나, 문화적 속성 역시 중요하다. 만화는 대중문화 부흥의 시대 속에서, 가장 대중적인 대중문화로서 탄탄한 지위를 쌓아올렸다. 쉽고 효율적인 독해, 저렴한 대량생산, 창작과 수용 사이의 상대적으로 낮은 진입장벽 등 매체 자체의 장점을 십분 살리며 자리 잡아 나간 것이다. 대중음악보다 구체적이며, 대중영화보다 제작이 쉽다는 점을 무기삼아 대중만화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대중들과 호흡하며 장르문화의 정수를 쉽게 점할 수 있었다. 가장 탄탄한(또는 나쁘게 말하자면 뻔한) 장르적 속성들은 대중만화 속에서 대중적으로 미연시 계열 게임인 ‘월희’는 만화·애니메이션·게임에서 숱하게 사용되어온 장르 클리셰들의 조합 그 자체다.대량 재생산되었다. 가장 소란스러운 개그는 개그만화에, 가장 황당한 액션은 액션만화에, 가장 처연한 로맨스는 로맨스만화에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대중성을 노리는 다른 대중문화 장르가 만화가 지니고 있는 장르규칙 및 이야기 구조들과 어떤 식으로든 공통분모를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컴퓨터 게임 특유의 단계적 문제 해결과 성장의 서사구조는 대중적인 장편 연재만화의 그것과 맞닿아 있으며, 판타지, SF, 무협 장르에 대한 선호경향 역시 만화와 공유점을 이루고 있다. 나아가 성장에 대한 동경과 미형 캐릭터에 대한 강한 집착은 특정 장르의 만화와 게임들을 하나의 취향문화로 묶어주기에 충분하며, 특히 아동 및 청소년층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런 측면에서, 미연시 계열 게임인 ‘월희’의 일본 성공 사례는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져 준다. 만화·애니메이션·게임에서 숱하게 사용되어온 장르 클리셰들의 조합 그 자체인데다가 심지어 대중 그 자신들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마추어 동인에 의해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독창적 완성도를 갖췄을 뿐 아니라 주류의 영역인 상업적 성공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사람들이 이것을 하나의 공통 취향 시장으로 묶어서 접근하고 OSMU를 강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닮았으면서 다른
자, 그럼 매체로서 만화가 컴퓨터 게임보다 선배이고, 호환성이 있다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그 말을 뒤집어 보자면, 게임이 그만큼 더 첨단의 무엇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매체적 범용성이다.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현재의 컴퓨터 장비는 모든 기존 미디어의 속성들을 재현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음성, 고화질 동영상, 실시간 대화는 물론, 인공지능 시스템 역시 경악스러운 속도로 발전했다. 출판매체로서 만화가 지니는 모든 표현기법은 기술적으로 컴퓨터 게임 속에 흡수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덧붙여 한층 강력해진 상호작용성 - 즉 아예 직접 캐릭터 자체를 컨트롤해서 줄거리를 이끌어나간다는 매력이 있기에, 게임은 궁극의 간접체험으로 높은 몰입도를 자랑한다. 덕분에 대중문화 전 분야에서 가장 높은 산업 성장력을 인정받게 된 지 오래다.
이런 환경이기 때문에 만화가 게임에게 ‘먹혀 버린다는’ 공포의식이 범람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만화에서 얻던 대중적 장르문화 오락의 즐거움 가운데 상당부분을 게임이라는 매체에서 더 효과적으로 충족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부분은 솔직히 아쉬워할 것도 애석해할 것도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TV가 발명되었다고 영화산업이 망하거나, 혹은 영화가 TV의 하위 분야로 전락했던가? 한탄만 하고 있기에는 오히려 게임이 못하는 부분, 하지만 만화이기 때문에 해내는 부분들이 여전히 명확하게 존재하고 있다.
어려운 이론은 다 걷어 버리고 말하자면, 게임 내러티브의 가장 확고한 속성은 ‘조작성’이다. 높아진 쌍방향성이니 상호작용성이니 하는 이야기는, 게임이라는 장르는 결국 플레이어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 캐릭터의 선택을 직접 조작한다는 것이다. 버섯을 밟고 점프를 할까, 아니면 돌진할까, 투명망토를 쓸까, 아니면 불의 검을 살까…. 이 조작성이라는 것은 바로 게임의 기본 존재 조건이다. 직접 선택하고 조작을 할 때 그것이 게임이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에 다를 바 없다.
“지금껏 당신이 떠나셨던 모든 휴가여행, 어디든지 항상 똑같았던 게 있습니다. 바로… 당신입니다! 어딜 가든 당신은 그냥 당신입니다! 이제 자신으로부터 한번쯤 휴가를 떠나십시오.”
지금도 닌텐도의 최고 게임 캐릭터로 대표되는 ‘슈퍼 마리오’ 시리즈. 용량 문제가 해소된 현재도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서 카툰화법을 채용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기억을 주입시켜서 가상휴가여행을 다니는 미래를 다룬 ‘토탈리콜’이라는 영화에서, 여행사 직원의 호객 행위 대사다. ‘이야기’라는 것의 매력은 무엇일까? 어떤 특정한 상황 속에서 주인공들이 행동하는 방식들을 간접적으로 바라보는 행위가 우리에게 왜 즐거움을 주는 것일까. 여러 가지 설명이 나올 수 있겠지만, 크게 바라보자면 한 가지는 공감의 재미, 즉 주인공들의 감정과 활동상에 이입을 해서 같이 난관을 극복해 나아가는 듯한 쾌감을 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외성의 재미, 즉 자신의 상상을 초월하는 세상과 ‘나라면 결코 했을 리 없는 선택’을 내리는 주인공을 보면서 자신의 인식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소를 얼마나 잘 배합할 수 있는가에 따라서 이야기의 재미가 좌우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게임은 조작성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게임의 몰입도를 높여 주는 강점이자, 결정적인 한계이기도 하다.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자신의 상상 범위를 벗어나는 초월적인 선택이 불가능한 것이다! 동네 조기축구회에서 직접 운동화를 신고 뛰는 것과, 월드컵 경기를 관전하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면 쉽다. 직접 뛰는 즐거움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관전’의 재미를 인정하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게임은 조작성을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효과적인 완성형 서사연출을 직접 만들어내기가 훨씬 힘들다는 점이다. 거꾸로 서사연출에 더 신경을 쓰면 조작성(속칭 ‘자유도’)이 줄어든다. 완성된 시나리오로 가면 그것에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선택의 폭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게임이기 때문에 선택을 강요받아서 점점 OX 문제처럼 돼 버린다. 게임으로서 최소한의 조작만을 남기고는 이야기 진행의 완성도에 힘쓰는 ‘비주얼 노블’ 계열 게임들이 좋은 예다. 이야기 흐름뿐만 아니라 시각연출 자체도 마찬가지다. 플레이어의 조작 자체가 최대한 잘 드러나도록 하는 인터페이스 중심의 비주얼이 필요하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직접적 행위에 의하지 않은 이야기 진행에서 다양한 시각표현에 제한을 받는다. <바이오해저드> 시리즈처럼 비교적 다양한 카메라워크를 구사한다 할지라도 기본적으로는 1인칭 전지적 또는 관찰자 시점일 수밖에 없다. 만화에서 종종 쓰이는 회상이나 갑작스러운 사건 국면전환 등은 플레이어에 의한 ‘이야기 진행’을 방해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각 단계 사이의 간막극으로 진행할 뿐이다. 아무리 게임이 발전하더라도, 만화의 완성된 연출의 일방향 선형 내러티브가 지니는 매력은 감소하지 않는다.
 
만화와 게임의 동료관계
그렇다면 게임의 존재라는 전제조건 위에서 만화가 걸어가야 할 길은 대략 윤곽이 잡힐 듯 싶다. 게임과의 호환성을 극대화하거나, 게임과의 차별성을 극대화하는 두 방향으로 갈라지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가 소위 말하는 OSMU 중심형 접근일 테고, 후자의 경우가 만화 특화형 접근이다. 앞의 것은 이미 수도 없이 논의되고 있으니(심지어 필자도 본 지면의 이전 호에서 논의한 바 있을 정도다) 생략하고 뒤의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
 
우선 만화가 만화로서 특화된 자기 지분을 점유하고 싶다면, 게임이 스스로 못 만들어내는 내러티브까지 제공해줄 수 있을 정도로 지속적으로 이야기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방향이 필요하다. 같은 수준의 깊이를 갖추었다고 볼 때 게임 한편 제작보다는 만화 한편 제작이 더 시간과 비용이 덜 들고, 창작자 개개인이 더 큰 창작지분을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게임, 즉 플레이어의 자율적 선택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강력한 내러티브로 승부해야 한다. 기독교의 ‘성경’이 컴퓨터 게임으로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대중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게임으로 이식하기에 워낙 까다로운 내러티브이기 때문이다. 시각적 표현기법 역시 마찬가지다. 만화 특유의 방식인 칸 간 공간배치가 지니는 연출효과의 매력들을 미묘한 부분까지 극대화하는 것이다. 역동적인 다중시점, 그리고 이야기와 밀접하게 연계되는 칸 배치의 묘를 발휘하는 것이다. 단순히 주인공 캐릭터를 묘사하기 위한 연출이 아닌, 이야기 자체를 가장 효과적으로 진행시키기 위한 묘사를 구현해야 한다.
물론 만화의 자체적인 매력에 특화된다고 해서 게임과의 교류 자체를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예를 들어 만화 <간츠>의 경우, 게임의 내러티브 구조를 만화로 역수입해왔을 때 어떤 흥미로운 재미를 창조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최적의 텍스트 가운데 하나다. 이 작품에서는 한 ‘판’이 넘어가면 아무리 그 전에 거의 죽어가던 주인공들이라도 다시 처음 수준으로 회복되고, 불가사의한 적을 물리쳐야 하는 등 아케이드 액션 게임의 문법을 현실로 적용할 때의 험난함을 실감나게 그려낸다. 그 결과, 오락물로서의 궁극적인 쾌감이 만들어진다. 만화 자체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자세는 바로 만화의 근본적인 정신인 ‘효과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전달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흡수해 주마’ 주의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속에는 당연히 게임도 포함된다. 
 
게임은 과연 만화를 무너트릴 것인가? 또는 만화는 게임의 원작공급처로 만족해야 할 것인가? 대답은 ‘아니오’다. 물론 산업적 수치와 청소년들의 반응에 주눅들 수는 있지만 그것은 게임과 경쟁을 한다고 해서 되찾아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화와 게임이 겹쳐있는 부분에서 게임이 더 적합하기 때문에 그 쪽이 수치와 반응을 잡아낸 것뿐이다. 만화로서는, 만화만이 갈 수 있는 길을 더욱 개척하고 추구해서 지분을 다시 넓혀나가는 것이 바로 정공법이다.
2005-11-16 14: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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