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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기사
네러티브를 중심으로 바라본 만화 원작 게임
만화와 게임, 공존에서 공생으로
 
글 | 조은하 (게임아카데미 게임디자인과 교수, 스토리 작가 whaty@unitel.co.kr)
과거의 게임은 일반적으로 서사적 인과성을 인지할 수 없는 단순한 여가나 소일을 위한 유소년층의 오락 중 하나였다. 그러나 작금의 게임은 단순한 인터페이스의 오락에 그치지 않고, 텍스트 기반의 시스템에서 비주얼 기반의 시스템으로의 구조적 전환, 멀티미디어의 발달과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 그리고 IT산업의 낙관적 성장론이 가세하여 촉망받는 미래 산업의 총아로 대두되었다. 특히 브로드밴드의 산업적 이점을 적극 활용하면서 장르적 다양화와 세분화를 추진한 결과, 게임은 과거의 단순한 오락실용 아케이드 게임과는 변별되는 독창적인 내러티브의 지경을 구축하였다. 이러한 게임의 급성장 이면에는 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뮤직비디오, 커뮤니티 문학(SF, 판타지, 무협 등의 통신 문학), 출판만화 등 다양한 기존 매체의 장단점을 신속하게 분석하고, 과감하게 수렴한 개척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
 
‘오락적 체험’으로서의 게임과 수혈자로서의 만화
게임 환경의 급속한 발달에 따라 게임 개발에 요구되는 정보와 자료의 양은 무한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하이퍼미디어의 영향으로 텍스트 기반에서 진일보하여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비견되는 영상성에 기대고 있다. 영상성의 중시는 게임의 서사성을 영화의 범주로 볼 것인가, 문학의 범주로 볼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국외의 연구서들은 게임 서사의 특성에 대해 ‘narrative’를 강조하고, 국내의 경우는 ‘narrative’와 ‘scenario’를 혼용한다. ‘내러티브’는 서사성을 가진 모든 서사물에 해당되는 일반적인 용어지만, 게임에 있어서는 서사물 일반이 아니라 ‘문학적’ 서사물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한다. ‘시나리오’의 경우는 게임의 영상성에 초점을 둔 용어로 국내에서 통용된다. 게임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은 문학성과 영상성, 양측에서 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본고에서는 주로 문학적 접근에 무게중심을 두고자 한다.
게임 ‘열혈강호’는 원작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는 소소한 인물과의 관계나 배경스토리 등을 게임 시나리오 상에서 오히려 상세하게 다루고 있어, 원작을 읽지 않고 게임을 접한 게이머뿐만 아니라, 기존 원작의 독자도 흥미를 잃지 않고 게임에 임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게임 서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독서를 통한 단순한 ‘문학적 감상’이 아니라, 게임을 통한 ‘문학적 체험’에 있다. 물론 문학작품을 감상하면서 문학의 허구 속에서 핍진한 실감을 얻고, 작품 속의 인물들의 행동과 심리를 통해 추체험할 수는 있다. 하지만 게임 서사의 체험은 본질적인 의미의 체험이다. 게임은 상품화되었다고 해서 게임 자체의 서사성이 완성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을 사용하는 게이머가 게임을 실행 및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개별적으로 인터렉티브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게임 서사가 완성된다. 게임의 서사적 층위는 게임 디자이너(작가)에 의해 텍스트나 강제된 영상으로 고정된 서사구조와, 게이머가 직접 게임에 참여하여 개인차에 따라 다르게 추체험하는 유동적 서사구조의 이중구조를 가진다. 게임 서사에서 게이머의 반응은 단순히 텍스트 기반이나 스토리 기반에 영향을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술적인 부분과 영상적인 부분에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준다. 따라서 게임의 서사는 게임 디자이너에 의해 고안된 루트(root) 내러티브와 게이머의 선택에 따른 리좀(rhizome) 내러티브의 상호작용에 의해 구축되는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의 특성을 보여 준다.
물론 서사성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검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게임은 문학이 아니며,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 게임은 문학과는 전혀 다른 목적에서 배태되고, 전혀 다른 토양에서 성장한 별개이다. 이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문학이라 칭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이다. 문학이 ‘교훈’과 ‘감동’의 사회적 기능을 위해 존재하는 반면, 게임은 ‘오락’과 ‘여가’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따라서 게임 서사는 게임을 모태로 하는 만큼 빈약한 주제의식과 작가의식의 부재, 노골적 상술과 말초적 유행 등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브로드밴드와 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기간산업으로서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해 문학의 수혈이 시급하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오락적 기능에 충실한 게임이 교훈적 기능에 충실한 문학을 직접적으로 수혈하다간 부작용이 명약관화하다. 그렇다고 영상성에 중점을 두어 영화로부터 수혈을 받는다는 것도 무모하다. 영상성은 게임에 대한 흥미와 몰입도를 상승시킬 뿐, 영상 자체가 게임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다 실리적이고 실행 가능한 현실적인 대안이 요구된다. 그것이 바로 출판만화이다.
 
텍스트 중심의 기획, 컷과 대사를 통한 서사성의 획득
<바람의 나라>는 세계 최초의 MUD 게임 ‘바람의 나라’로 부활했다. 그러나 원작의 중추가 되는 ‘스토리’의 측면은 온라인 장르의 한계로 인해 실질적으로 게임상 내러티브화 되기 힘든 것이 실상이다. 완성된 결과물로서의 게임은 유통 및 구현방식 등 영화나 애니메이션과 유사하지만, 시나리오의 기획 및 제작과정에서 게임은 출판만화와 유사하다. 즉 게임은 기획단계에서부터 독자적인 텍스트 형태로 작업이 이루어진다. 즉 공간적 배경과 시간적 배경, 사회적 배경과 문화적 배경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세계관’, 이야기의 단초가 되는 대강의 줄거리와 사건발생 원인 및 해결방법 등을 간략하게 진술하는 ‘시놉시스’, 중요한 미션과 스테이지의 근간이 되는 다양한 ‘에피소드’, 주요 등장인물로서 외모와 성격, 성별과 연령, 신분과 계급 등을 묘사하는 ‘캐릭터’, 중요한 상황을 암시하거나 캐릭터 간에 감정을 교류하는 과정 중 주고 받는 ‘대사’ 등은 텍스트 형태로 구체화된다. 
이러한 복잡한 설정단계와 요구조건을 충족시키는 텍스트 위주의 기획단계 이후, 실제 게임 상에서 구현될 때는 대개 ‘지문’과 ‘대사’로 이루어진다. ‘지문’은 배경(공간적 배경과 시간적 배경)과 인물(신체적 특징과 의상 및 무기)을 ‘시각적’으로 묘사하고 설명하는 기능으로, 대부분의 게임에서 2D나 3D로 제작된다. ‘대사’는 인물간의 대화를 통해 사건을 전개시키는 기능으로, 장르에 따라 캐릭터 컷과 함께 화면 하단에 일정분량의 텍스트로 제시되기도 하고, 전문 성우에 의해 후시 녹음되기도 한다. 이러한 게임의 기획과정은 영화와 출판만화의 기획 및 표현기법을 동시에 차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게임의 동영상은 일부 중요한 장면과 사건에 대해 강한 인상을 주는 주목성을 가지지만, 서사적 기능보다는 주로 게임의 사전 홍보기능을 한다. 오히려 게임의 대부분은 일러스트와 컷을 활용한 다양한 장면구성에 있다. 따라서 출판만화의 다양한 컷 활용 기법은 게임에 적극 활용될 필요가 있다.
 
네러티브의 적극적 활용이 승패의 여부
출판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게임 중에서 ‘열혈강호’는 내용면에서 전극진·양재현의 동명 출판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형식면에서 마다(MADA : Matial arts Action-Drama Adventure) 장르를 지향한다. 마다는 기존의 롤플레잉, 대전 액션, 어드벤처 등의 게임 장르에서 무협 활극의 특징을 살릴 수 있는 요소를 융화시켜 하나로 만든 새로운 게임장르이다. 이 작품은 무공을 통해 심신을 단련하고 궁극적인 인간의 완성, 즉 도(道)를 이루려는 무림고수들로 가득한 중원을 배경으로 정파와 사파, 화룡도, 천하오절 등 원작만화에서 메인 테마로 다루는 주제와 내용을 고스란히 계승하면서도, 원작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는 소소한 인물과의 관계나 배경스토리 등을 게임 시나리오 상에서 오히려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따라서 원작을 읽지 않고 게임을 접한 게이머뿐만 아니라, 기존 원작의 독자도 흥미를 잃지 않고 게임에 임할 수 있도록 배려했으며, 게이머들은 게임을 통해 중원의 존재감과 정파사파의 대결, 천마신군 캐릭터의 과거와 천하오절, 그리고 화룡도와 복마화령검을 둘러싸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는 무림고수들을 추체험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출판만화사상 드물게 고구려사를 배경으로 진지한 역사적 담론과 창의적 허구를 본격적으로 접목시킨 김진의 대하서사극 <바람의 나라>는 세계 최초의 MUD 게임 ‘바람의 나라’로 부활했다. 원작의 내용은 고구려 2대왕 유리왕과 그의 미움을 받아 결국 자결한 태자 해명, 유리왕의 뒤를 이어 왕좌에 오른 대무신왕 무휼, 주작을 다루는 무휼의 누나 세류, 무휼의 차비가 되는 갈사왕 충구의 손녀 연, 낙랑의 공주와 비극적인 사랑을 하는 무휼의 아들 호동 등 역사적 등장인물들과 허구의 인물들을 교묘하게 변주하여 역사의 이면에 흐르는 소소한 가족사의 비애와 기울어가는 국운에 맞서는 위대한 인간의 운명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원작의 중추가 되는 ‘스토리’의 측면은 온라인 장르의 한계로 인해 실질적으로 게임상 내러티브화 되기 힘든 것이 실상이다. 원작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라고 하면, 전체적인 게임진행의 방향성과 원작의 등장인물들이 게임 캐릭터로 디자인되었다는 것, 그리고 특정 인물들이 게임상 도우미 역할을 해 준다는 정도이다. 이밖에 원작에 묘사된 고구려인들의 수렵생활이나 주막, 성황당, 대장간 등의 건물, 삼국시대 고유의상을 게임 상에 구현했다는 것만으로 원작을 제대로 살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원작의 특징이라기보다는 고구려의 시대적 특징이며 고증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게임 ‘리니지’의 경우, 원작의 스토리를 안다는 것이 게임 진행상 플러스요소가 되지 않으며, 다만 게임 외적인 흥미 자료의 역할에 그치고 있다. 출판만화를 원작으로 게임화 된 대표적인 두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출판만화와 게임의 상호교류는 단순한 ‘매체’ 간의 이식문제가 아니라, 게임의 ‘장르’에 따른 전략적인 내러티브 구축이라는 점이다. 즉 스토리의 진행과 게임의 진행이 일치하는 어드벤처나 RPG 장르의 경우는 스토리에 기여도가 높은 원작의 역할과 비중이 커지지만, 캐릭터의 성장이나 게이머들의 커뮤니티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온라인 장르의 경우는 설정이나 원작의 인지도에 기대는 홍보 역할에 머물게 된다. ‘바람의 나라’와 더불어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온라인 게임 ‘리니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때 법정비화까지 이르게 된 계기가 바로 원작의 기여도 문제 때문이다. 장기간 게임을 접한 게이머들도 원작이나 원작의 스토리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원작의 스토리를 안다는 것이 게임 진행상 플러스요소가 되지 않고, 다만 게임 외적인 흥미 자료의 역할에 그치고 있다.
 
만화 작품에 따른 게임 장르 선택이 필요하다
이처럼 기획단계에서 원작의 스토리를 게임에 반영했다 하더라도, 게임의 내러티브는 게이머와의 상호작용에 의해 완성되기 때문에, 내러티브가 약한 온라인 게임의 특성상 게임을 통해 원작을 소추하거나 스토리를 재구성하기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결국 출판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게임은 실상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받으며, 내러티브가 약한 게임 장르의 경우는 원작의 타이틀과 캐릭터, 배경 및 소재와 같은 표피적인 설정만을 활용하게 된다. 출판만화는 게임과 달리 이미 탄탄한 문학성과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출판만화의 문학적 요소를 제외하고 단순한 소재활용에 그친다는 것은 게임 산업적 측면에서 소모적이다.
따라서 출판만화의 게임화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서는 스토리 중심의 내용 측면과 설정 및 기획의 형식 측면을 면밀히 검토하여, 가장 적합한 게임 장르를 선택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출판만화가 초고속 정보화 시대의 전장(戰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구책은 작품 자체의 질적 수준 향상이라는 교과서적인 조언이 아니다. 독불장군의 악조건을 최대한 빨리 극복해야만 한다. 부실경영과 방만한 인사구조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타매체와의 교류와 결합에 능동적으로 나서야 한다. 게임은 출판만화가 현시점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하고 실리적인 파트너이다. 이것은 일종의 ‘합병’이다. 출판만화는 다양한 화면의 분할과 표현방식의 노하우를 게임에 전수함으로써 게임의 후광을 통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게임은 출판만화의 다양한 기법을 효과적으로 접목시킴으로써, 대규모 자본을 요하는 단발적 전시효과가 아닌 장기적 안목을 통해 기획과 시나리오의 내밀화에 투자하는 전략적 비전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적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정신이 필요하다. 단순한 매체의 교류나 이식이 아니라 서로의 본질과 생리를 검토하고 전략적으로 구체화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융통성 있는 파트너십을 통해 단순한 공존에서, 함께 살아남는 공생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2005-11-16 14:3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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