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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만화의 게임화, 그 산업적 전략
게임의 성숙, 다변화 발맞춰
만화의 구체적 접근 모델 필요
 
글 | 박상우 (게임평론가, sugy@madordead.com)
출판만화, 애니메이션, 그리고 비디오 게임은 대중문화의 총아인 동시에 일본 문화를 상징하는 존재다. 일본에서는 이들 영역 사이에서 다른 영역으로의 전환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그 성과는 곧 세계 각지에서 벤치마킹 대상이 되어 산업의 주요 방식으로 자리잡는다.
출판만화와 게임의 교류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70년대 후반 아케이드 게임 시장이 ‘아타리’사의 게임기를 통해 안방으로 침투해 들어가면서부터다. 미국에서는 마블 코믹스로 대표되는 여러 슈퍼 히어로들이 게임 주인공으로 바뀌어 TV 브라운관을 차지하였고, 80년대 초반 게임 산업의 주도권이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출판만화와 게임의 만남은 더 활발해졌다. 86년 패미콤으로 만들어진 <게게게의 귀태랑>이나 <북두의 권> 등은 일본에서 출판만화의 게임화를 알린 기념비적인 작품들이다.
하지만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출판만화의 게임화가 게임 산업에서 중요한 콘텐츠 생산 방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산업적 측면에서의 시너지 효과를 감안한다면, 오히려 놀라울 정도로 저조하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다. 여전히 제한적으로만 이뤄지는 출판만화의 게임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산업적 의미를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게임화의 산업적 의미
출판만화가 게임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역시 시장의 유사성 때문이다. 초창기 비디오 게임 시장을 주도했던 것은 14~18세 정도의 남자 아이들이었다. 일본에서 이들은 소년 만화잡지의 중요 고객들로 주로 액션 만화나 스포츠 만화 등에 열광한다. 게임 업체들이 우선 주목한 것은 출판만화와 게임산업의 주요 고객층이 사실상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콘텐츠를 생산해도 이 두 시장 모두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콘텐츠로 두 개 시장 모두를 노리기 때문에 자원 사용의 효율성이 극적으로 높아진다. 
다른 하나는 브랜드의 상승효과다. 하나의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다른 시장에서의 판매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지적 재산권(IP)을 가진 업체 입장에서 보면 추가적인 수익을 발생시킬 수 있는 중요한 통로다.
출판만화와 게임의 만남을 가져오는 산업적 측면에서의 두 계기 중 더 중요한 것은 후자였다. 대표적 예가 비디오 게임 초창기 가장 적극적으로 만화의 게임화를 추구했던 ‘반다이’다. 반다이는 완구와 애니메이션을 주력으로 하는 회사로, 이미 많은 출판만화의 저작권을 확보해둔 상태였다. 이들이 만화의 게임화에 발 벗고 나선 것은 이미 가지고 있는 IP의 활용이라는 의미에 집중한 셈이다. 
‘닷핵 프로젝트’는 미디어믹스 개념이 도입된 초기 작품 중 하나이며, 애니메이션, 게임, 만화의 세 매체를 이용해 동일 고객층을 집중 공략했다.이는 그 반대, 즉 게임을 출판만화화하는 데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만화의 게임화에서 독보적 역할을 한 것이 반다이였다면 게임을 소설이나 만화화하는 것에서는 <드래곤 퀘스트>를 만들었던 에닉스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그러나 이 경우에는 게임의 성공 이후, 게임을 즐긴 게이머를 겨냥한 일종의 파생 상품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출판만화의 게임화에 비해서는 시장의 규모나 실제적인 성공 정도가 비교할 바가 못 되긴 한다).
전자의 산업적 의미, 즉 시장의 유사성에 기초한 미디어믹스적 성격을 가진 작업은 90년대 후반에 와서, 역시 반다이에 의해 시도된 ‘닷핵 프로젝트’에 이르러서야 나타났다.
 
왜 출판만화의 게임화는 제한적인가
출판만화의 게임화는 그 상업적 잠재성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그다지 활발하지는 않다. 특히 초창기 비디오 게임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닌텐도나 남코 등은 다른 브랜드를 사용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고유 브랜드를 개발해 게임의 지적 재산권(IP)만을 유지하는 형태를 취했다. 이는 고유 IP를 확보하는 것의 가치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이미 판권을 가지고 있는 반다이를 제외하고는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 이유만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출판만화를 게임화한다는 것 자체가 산업적으로는 많은 제약과 리스크를 안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1986년, 페미콤을 통해 만들어진 <북두의 권>은 일본에서 출판만화의 게임화를 알린 기념비적인 작품들이다. 그러나 게임의 단순한 전개라는 한계로 인해 만화의 재미를 얻을 수 없었다.출판만화를 게임화할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것은 소재의 제한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게임 시장과 출판만화 시장에서 가장 많이 겹치는 층은 청소년층이고, 따라서 이들이 선호하는 액션 만화나 스포츠 만화가 게임화의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러나 이런 만화들이 모두 게임화되기 쉬운 건 아니다.
출판만화 중 게임의 문법에 적합한 만화는 의외로 많지 않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이야기는 주인공 캐릭터의 외적 성장 혹은 외적 능력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1992년에 RPG 형식을 빌어 새롭게 태어났지만, 여전히 원작의 재미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반면 만화에서는 주인공의 심적 고민이라든가 미묘한 감정적 갈등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만화는 게임화하기가 힘들다.
등장인물들 사이의 관계도 문제가 된다. 게임에서는 모호한 인물이나 불분명한 관계를 가지고 진행의 동기부여를 하기 어렵다. 캐릭터의 선악이 분명하고, 갈등과 대립 관계가 분명해서 대결 구도가 명확한 만화일수록 게임으로 구현될 때 원래의 이미지를 살리기 수월한그러나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플레이스테이션용으로 발매가 되면서 원작의 느낌을 살리는 것이 가능해졌다. 경향이 있다.
소재 자체만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원작의 이미지에 맞춰 게임이라는 형태로 형상화할 것인가 역시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출판만화는 하나의 면으로 구성된다. 다양한 분할과 연출을 통해 독자가 상상할 공간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게임에선 이런 영역을 표현할 공간이 없다. 대신 게임에선 게이머가 직접 조작을 해야 하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으로 나뉠 뿐이다. 작가의 글과 그림이 우선이고, 그 틈에 독자가 개입하는 출판만화와 게이머의 조작이 우선이고, 게이머가 관객으로 바뀌는 순간이 보조적인 게임은 정반대의 전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역전을 쉽게 해결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게임 자체가 가지는 표현의 한계 역시 출판만화의 게임화를 제한해 온 요소다. 가장 많이 게임화되는 액션 만화를 생각해 보자. 주인공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싸움에서 주인공만의 특성을 보여주는 강한 기술이나 화려한 연출이 뒤따르게 된다. 이런 장면을 원작 그대로의 느낌을 살려서 재현할 수 있게 된 건 아주 최근에 와서의 일이다. 이전에는 기술적 한계 때문에 주인공의 핵심 기술이나 거기에 뒤따르는 연출이 제대로 살아나지 못했다. 이 수준으로는 원작의 팬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은 게임 제작자도 알고 있다. 이전에 게임화된 작품들은 ‘원작을 좋아하면 이것도 하나 더 사라’는 수준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았다.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원작을 게임화했다고 하기 어렵다.
가장 먼저 게임화되었던 작품 중 하나인 <북두의 권>을 통해 이런 문제를 확인해 볼 수 있다. <북두의 권>은 86년 처음으로 반다이에 의해 게임화되었다. 이 만화의 핵심은 역시 주인공이 사용하는 비전의 암살권인 ‘북두신권’이다. 아무리 강한 적이 나와도 적의 비공을 누른 후 ‘너는 이미 죽어 있다’고 중얼거리면 적은 잠시 후 온몸이 터져 죽게 된다. 만화 내용은 다 잊었더라도 이 장면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북두신권이야말로 <북두의 권>을 <북두의 권>답게 해주는 핵심인 것이다. 그런데 86년 당시에는 이 장면을 표현할 방법을 찾기가 힘들었다. 게이머가 적의 비공을 찌르는 장면을 직접 구현할 인터페이스도, 게임 시스템도 찾기 힘들었다. 결과적으로 나온 것은, 다른 횡스크롤 액션과 마찬가지로 주인공 캐릭터가 이동하면서 오는 적을 주먹으로 쳐서 쓰러뜨리고 공격은 점프해서 피하는 게임이다. <북두의 권>이라는 제목에 <북두의 권> 주인공이 나오지만 이 게임에서 만화 <북두의 권>에서 느꼈던 재미를 얻을 수는 없었다.
패미컴에서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반다이는 92년에 패미컴 다음 기종인 슈퍼 패미컴에서     <북두의 권>을 재발매했다. 이때는 RPG 형식을 취해 주인공이 포스트 뉴클리어 세계를 돌아다니며 각지의 강적들을 물리친다는 원작의 이야기 흐름과 주인공의 성장을 표현했다. 한결 원작의 세계관에 가까워진 셈이지만 여전히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만화 <북두의 권>에서 발견한 재미의 경험을 게임 <북두의 권>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었다. 이런 어려움이 해결된 것은, 캐릭터의 이미지 구현이 확실해지고 실제 비공을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의 인터페이스가 개발된 플레이스테이션의 시대가 된 후다.  
최근 동향과 산업적 전망
플레이스테이션2 용으로 개발된 <하지메의 일보>나 <나루토>는 원작의 이미지를 재현하는데 최소한 그래픽 상으로는 큰 문제가 없는 수준이다. 이제 남은 것은 게임이란 환경에 맞는 만화 소재를 선택하는 일이다. 출판만화의 게임화에서 새로운 경향을 보여 주는 것은 오히려 우리나라의 사례다. 한국에서 출판만화가 게임화된 건 손꼽힐 정도지만 대신 외국과 근본적으로 다른 특징을 지닌다. ‘열혈강호’처럼 스탠드 얼론 게임으로 제작된 경우에는 앞서 살펴본 일본 비디오 게임과 유사한 어려움을 겪었다. 게임 제작사를 가장 괴롭힌 과제는 원작의 이미지의 형상화 부분이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스탠드 얼론 게임보다는 MMORPG(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접속할 수 있는 롤플레잉 게임)의 게임화 쪽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MMORPG들인 ‘바람의 나라’, ‘리니지’, ‘라그나로크’가 모두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MMORPG에서는 원작의 스토리 라인이나 주인공 캐릭터를 재현할 필요가 없다. 대신 원작에서 제공되는 세계와 기본적 뼈대가 되는 이야기만을 차용하면 된다. 비교해야 할 준거점이 없기 때문에 개발사 입장에서는 한결 편하게 게임을 제작할 수 있다. 게임 형식 자체가 변하면서 이전의 제약 조건이 사라지는 특수한 상황이다.
또한 기술적 발전으로 플레이스테이션용 <북두의 권> 게임에서처럼 원작의 느낌을 살리는 작품이 가능해졌다. 출판만화를 원작으로 개발된 지금까지의 게임들은 대체로 그다지 좋은 평을 받지도 못했고,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저 주인공 캐릭터와 제목만을 차용했을 뿐, 전혀 원작의 재미를 살릴 수 없었다. 이는 캐릭터 게임, 심하게 말하자면 사기성 게임이라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양측에서 게임 제작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했다. 이제 원작의 이미지를 재현하는데 최소한 그래픽 상으로는 큰 문제가 없는 수준이다. 시스템 개발 면에서도 지금까지 쌓아온 게임 제작의 노하우 덕분에 만화의 느낌을 게임에서 좀 더 잘 살리게 되었다. 86년 시작된 출판만화의 게임화가 2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온전히 실현될 수 있는 상황적 조건을 갖춘 것이다. 플레이스테이션2로 개발된 <하지메의 일보>나, 게임 큐브로 개발된 <나루토> 등이 좋은 예다. 이제 조건에 맞는 원작만 확보한다면 그것을 게임으로 구현하는 것 자체의 어려움은 대부분 해소됐다고 말할 수 있다. 
게임 시장의 다변화 역시 출판만화의 게임화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20년 전 게임 시장의 소비자는 청소년 남자 아이들이었다. 지금 역시 이들이 중심적 고객층이지만 20대에 진입하는 남성 게이머나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 게이머들 역시 결코 적지 않은 시장을 형성하게 되었다. 지금껏 이들을 대상으로 개발된 게임은 많지 않고, 어떤 게임이 호소력을 가질지에 대한 연구 역시 미비하다. 하지만 이들이 즐겨 보는 만화가 어떤 것인지는 이미 알고 있다.
최근 들어 일본 게임 시장에서는 <테니스의 왕자>와 같은 여성 만화 독자를 겨냥한 작품들이 출시되고 있다.20대, 특히 여성이 즐겨 보는 출판만화에서 소재를 찾으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 일본 게임 시장에서 부쩍 많이 쏟아져 나오는 BL(보이스 러브, 속칭 야오이)계 게임, 혹은 <테니스의 왕자> 같은 게임은 여성 게이머 층을 겨냥해서 이뤄진 출판만화의 게임화인 셈이다. <벡> 같은 만화가 게임화 기획이 잡혀 있는 것 역시 새로운 게이머 층을 겨냥해 게임이 외연을 넓혀가는 과정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제작사들의 빠른 소재 소진 현상 역시 출판만화의 게임화 현상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불과 십 수 년 사이에 놀랄 만한 성장을 한 게임 업계는 이제 어떤 게임을 만들어야 할지 모르는 일종의 창작에서의 소진 현상을 보여 주고 있다. 그 결과 게임화할 수 있는 소재를 외부로부터 적극적으로 찾게 되고, 앞으로 상당 기간 출판만화가 중요한 원천이 될 것이다.
 
출판만화의 게임화는 게임 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전략 중의 하나로 매우 일찍부터 고민되어 왔다. 하지만 여러 조건 때문에 제한적으로만 시도되었고, 그 결과도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 산업적 의미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출판만화의 게임화는 그 폭과 깊이를 빠르게 더해갈 것이다.
2005-11-16 14:5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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