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뱅을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 등록하기 VIP
HOME | 로그인 | 회원가입 | 고객센터
통합검색
인기검색어
이상세    |    묵검향    |    박인권
상세검색
이벤트 툰크샵 충전소
미니 코믹뱅
만화
무료
순정9+
뱅스DB
마이페이지
array("/images/main/top/top_menu_right_event_160.png","/regular_exposure/event_detail.php?ce=160"), array("/images/main/top/top_menu_right_WEBTOON.png","http://www.comicbang.com/free/webtoon_detail.php?idx=11262"), array("/images/main/top/top_menu_right_1.png","/regular_exposure/mini_introduction.php"), 코믹뱅
인기만화 핫클릭 평점순위 베스트댓글 스마트 만화검색 도서검색 만화기사
결제안내
찜목록
책갈피
마일리지 응모
최근본만화
운영자에게 쪽지 보내기
순정9+ 블로그로 가기
코믹뱅 트위터로 가기
아이디저장
본인인증로그인
아이디/비번찾기
뱅's DB
뱅스 만화방 정보
인기만화
핫클릭
평점순위
베스트 댓글
스마트 만화 검색
운영자 추천 정보
테마만화
한 줄 재잘재잘
뱅스 만화방 정보
도서검색
만화기사
event
코믹뱅은 면세사업입니다.
19세
만화기사
도표로 정리해 본 우리 만화잡지의 역사
너희가 만화잡지의 힘을 믿느냐 
 
글│이승남 (만화 연구자 schizonom@empal.com)
사진 │JAY’S STUDIO
 
 
아직까지 만화잡지는 우리나라 만화계의 메이저 시장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그 영향력은 90년대의 전성기 시절과 비교한다면 크게 약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최초의 만화잡지가 등장한 지 6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우리 만화잡지의 역사를 되돌아보자면 언제나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만화계의 또 다른 주축이었던 만화방의 기세에 눌려 무더기 폐간이라는 쓴맛을 보기도 했으며, 정책의 희생양으로 선택되어 어린이 종합교양잡지에 몸을 숨겨야 했던 시기도 있었다. 이번 코너를 통해 우리 만화잡지의 역사와 사건들에 대해 시기별로 정리해 보고, 사건과 이야기를 돌아보며, 이후의 만화잡지 시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끊임없이 제시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1 만화잡지의 태동기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50년대까지
1945년 해방 후 만화가의 세대교체가 일어났다. 일제시대에 활동했던 최영수, 노수현, 안석주, 이주홍 등의 구세대가 은퇴하고 김규택, 김용환, 김의환, 김성환, 신동헌 등의 신진 만화가들이 출현했다. 김용환은 1948년에 최초의 만화잡지인 <만화행진>을 창간했다. 김용환은 만화가들의 친목모임인 한국만화가 동인회를 조직하여 필진을 모집하는 열의를 보였지만 통권 2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하지만 그는 <만화뉴스>와 <만화신문>을 발행하는 등 만화잡지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국전쟁 전까지 발행되었던 <만화뉴스>는 초창기에는 4만 5천 부까지 발행하여 시사만화의 대중적 인기를 보여 주었다.
한국전쟁 기간에도 <자유의 벗>, <만화승리>, <사병만화>, <육군화보>와 같은 군기관지가 창간되었고, 김용환, 김성환, 김의환, 김규택, 이상호, 고상영, 정한기 등이 필진으로 참여했다. 김성환은 대구에서 <만화만문전람회>와 <만화천국>을 발행하였고, 김용환은 <만화주보>를 창간하여 성인 시사만화잡지의 명맥을 이어나갔다.
1950년대 중반부터 어린이 만화잡지가 증가하면서 김종래, 박기당, 박광현, 김기율, 김경언 등 많은 만화가들이 등장했고, 1960년대 아동만화의 황금시대를 연 젊은 만화가들이 배출되었다. 1956년 1월에 창간한 <소년소녀만세>는 만화잡지 시대의 개막을 알린 잡지이다. 이어서 1965년 2월에 김상옥이 창간한 <만화세계>는 만화와 그림이야기, 그림소설 등으로 구성된 만화전문 월간지로 어린이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리면서 만화잡지 창간 붐을 일으켰다. <만화학생>, <만화소년소녀>, <7천국>, <만화왕>, <만화왕국> 등의 만화전문잡지가 1956년과 1957년 사이에 창간됐다. 이들은 만화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여러 장르의 만화를 연재하면서 신인만화가들을 발굴했다. 김원빈, 김산호, 박기준, 신동우, 권영섭, 이정문, 황정희, 이범기, 고우영 등이 이 시기에 데뷔한 작가들이다. 박수동, 오성섭, 윤승운, 신문수, 사이로 등이 <아리랑>을 통해 등단한 작가들이다. 1956년부터 시작된 만화잡지의 전성기는 1960년대 초반 대본소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점차 수그러들게 된다.
 
해방 후 최초의 만화책과 딱지만화 1946년경에 나온 김용환의 <토끼와 원숭이>가 단행본 만화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당시 전업만화가들이 출현하면서 아동만화 출판이 유행했다. 열악한 인쇄상황으로 1950년대 초반까지 인쇄원판에 직접 그림을 그리고 복사하는 방식을 사용한 ‘딱지만화’가 유행했다. 4×6배판에 16쪽으로 한국전쟁 동안 부산을 중심으로 문구회사, 과자회사 등의 판촉물로 만들어졌다.

만화전문출판사의 등장 만화잡지의 인기와 함께 아동만화를 출판하는 광문당(1955), 성문당(1956), 독수리문고(1957)의 설립과 함께 제일문화사, 성문사, 승리사, 부엉이문고, 크로바문고 등 출판사들이 탄생했다. 인기 만화가를 전속작가로 두고 만화책을 발행했다. 1950년대 후반 만화가 지망생들에게 등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해방 후 김용환의 활동 김용환은 1930년대 일본 유학시절부터 키타 코지(北宏一)라는 필명으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으며, 일본의 소년잡지 <니혼쇼넨>, <쇼넨구라부>, <신쇼넨>에 만화를 연재했다. 1942년 <도쿄조선민보>에 처음으로 선보인 ‘코주부’는, 해방 이후 <서울타임즈>에 연재되기 시작했다. 1948년에 최초의 시사만화잡지인 <만화행진>을 창간을 했지만 2호의 표지에 실린 만화가 정부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강제 폐간되었다. 1949년에 송태일과 함께 창간한 주간신문 <만화뉴스>는 시사만화 중심의 신문이었으며, 창간 초기 4만 5천 부가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그 후 발행인과의 마찰로 <만화뉴스>를 나와 <만화신문>을 창간하기도 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인민군 부역혐의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지만 전쟁 기간 중에도 그의 대표작인 ‘코주부 삼국지’를 청소년잡지인 <학원>에 연재하는 등 신문과 잡지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소년소녀만세>의 창간 <소년소녀만세>는 성인대상의 대중잡지인 <아리랑>을 발행하던 출판사 삼중당에서 1955년 12월에 창간한 어린이 잡지이다. 이 잡지가 만화잡지로 평가받는 이유는 만화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기 때문이다. 이전의 잡지들을 보면 동시, 동요, 동화와 모험소설, 역사소설 등의 아동소설이 주를 이루고 만화는 2~3페이지의 짧은 단편이 실리는 정도에 그쳤다. 이에 비해 <소년소녀만세>는 지면의 절반을 만화에 할애하여 많은 작품을 연재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만화가 실렸다. 이 잡지의 성공에 힘입어 만화전문잡지인 <만화세계>가 창간했고, <만화학생>, <7천국>, <만화소년소녀>와 같은 아동만화잡지가 나오게 되었다.
 
 
2 만화잡지의 준비기 1960년대~1970년대까지
1960년대 만화잡지 시장의 특징은 두 가지로 들 수 있다. 하나는 만화방의 전국적 확산으로 인한 만화잡지의 폐간이다. 만화방을 대상으로 한 만화전문출판사와 유통을 담당하는 총판이 생겨나면서 이른바 대본소 체제가 형성되었다. <만화세계>, <만화소년소녀>와 같은 만화잡지들은 싼값에 대량 제작된 대본소 만화에 밀려 폐간하게 되었다. 1960년대의 또 다른 특징은 성인만화잡지가 쇠퇴했다는 점이다. 1961년 <월간만화타임즈>와 1965년 <주간만화>가 창간되었지만 성인독자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폐간되었다. 성인만화잡지에 대한 시도는 1970년대에 <만화시대>와 <만화춘추>로 이어졌지만 실패했다. 성인만화잡지의 실패 이유는 만화가 아이들이나 보는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성인들의 수준에 맞는 본격적인 성인만화를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1970년대는 어린이 종합잡지와 성인대중지의 인기에 힘입어 명랑만화와 성인만화의 발전을 가져온 시기이다. 1964년 <새소년>을 시작으로 <어깨동무>(1967), <소년중앙>(1968)이 창간되면서 1970년대 명랑만화의 대부인 윤승운, 고우영, 이정문, 신문수, 박수동 등의 만화가 연재되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잡지는 1969년 11월에 창간한 <만화왕국>이다. 대본소 시장에서 인기를 얻었던 아동만화가들이 모두 참여한 만화전문잡지로, 1960년대 초반 사라진 만화전문잡지의 명맥을 잇는 잡지로 평가받을 만하다. 성인만화는 성인대중지의 출현과 함께 발전했다. 1968년에 창간한 <선데이 서울>은 1974년부터 박수동의 ‘고인돌’, 방학기의 성인극화, 강철수의 성풍속 만화가 연재되면서 성인만화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이 시기의 잡지들은 만화가들에게 대본소 단행본 체제에 묶이지 않고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으며, 새로운 신인작가들이 등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합동의 출현 1967년 최대 유통업체인 ‘합동’이 등장하면서 부엉이문고, 오성문고 등을 흡수하여 출판과 유통판매를 독점했다. 합동의 창립자인 이영래는 신촌대통령이라 불리며 만화가 위에 군림했다. 만화가들은 합동의 독점에 여러 차례에 걸쳐 저항했다. 이후 1973년 소년한국일보가 만화출판을 시작하면서 합동과 시장을 양분했다. 합동의 독점은 1980년대 중반 만화방의 쇠퇴와 함께 해체되었다.

어린이 만화잡지의 폐간 1960년대 초반 어린이 만화잡지들은 만화방이라는 강력한 경쟁자를 만나게 되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생겨난 만화방들은 비싼 만화잡지를 사볼 여력이 없는 어린이들에게 싼값으로 만화를 볼 기회를 제공했다. 만화전문출판사들은 만화방의 수요에 따라가기 위해 인기 만화가들뿐만 아니라 잡지로 데뷔한 많은 신인 만화가들을 스카우트했기 때문에 만화잡지는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 후 군사정권에 의해 만화가 탄압을 받으면서 만화가 일정 분량 이상이 들어간 어린이 잡지의 창간을 막았기 때문에 만화전문잡지가 나오기 힘들었다.

성인만화의 시작 1960~70년대 성인만화잡지는 <월간만화타임즈>, <주간만화>, <만화춘추> 등이 있지만 대부분 1년 이내에 폐간되었고, 성인만화들은 주로 <아리랑>, <야담과 실화>, <사랑>과 같은 대중지에 실리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성인만화잡지들이 인기를 얻지 못했던 이유는 첫째, 만화는 어린이용이라는 인식이 높았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잡지의 구성을 보면 짧은 단편 중심의 세태풍자만화로 구성되어 읽을거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기존의 성인 대중지들과 차별화된 장점이 없다. 본격적인 성인극화만화가 시도된 시기는 고우영의 ‘임꺽정’이 1972년 <일간스포츠>에 연재된 1972년이다.

어린이잡지의 3강 시대 1960년대 만화전문잡지가 사라진 이후 아동만화의 흐름을 주도한 잡지는 <새소년>, <어깨동무>, <소년중앙>과 같은 어린이 종합교양잡지이다. 세 잡지는 동화, 소설, 과학상식, 취미, 특기 교실 등 학습교양 기사와 함께 만화를 부록으로 싣는 형태를 보였기 때문에 만화전문잡지로 보기는 어렵다.
 
 
3 만화잡지시대의 개막 1980년대
1980년대의 특징은 만화전문잡지의 등장과 종합교양지의 몰락이다. 만화잡지 시대를 연 최초의 잡지는 <보물섬>이다. 육영재단에서 발행한 <보물섬>은 500여쪽 분량으로 당시 최고 인기 만화가들의 작품을 연재함으로써 어린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1988년에 창간된 <아이큐점프>는 일본식 주간 발행 시스템의 도입과 인기 작가의 영입으로 만화잡지 시장을 장악하며 1990년대 만화잡지의 호황기를 예고했다. 이에 반해 <소년경향>과 <어깨동무>는 만화잡지에 버금가는 만화부록과 장난감과 같은 경품을 선물하는 과열경쟁으로 인해 재정난을 겪다가 1987년에 폐간되었고, <새소년>은 1989년 5월 25주년 기념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1985년에 창간한 <만화광장>은 현실 비판적인 리얼리즘 만화와 수준 높은 만화비평을 게재하여 성인만화잡지의 수준을 높였다. 1987년에 창간한 <주간만화>는 격주간으로 발행되어 성인만화잡지의 인기를 주도했다. 두 잡지의 성공으로 1988년부터 <매주만화>, <만화선데이>, <만화세계>, <주간만화 플래쉬> 등의 만화잡지와 함께 <만화시대>, <무크 시사만화>와 같은 시사만화잡지까지 등장하면서 성인만화잡지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1970년대 이후 단절되었던 순정만화는 신일숙, 김혜린, 강경옥, 황미나 등 새롭게 등장한 만화가들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이들은 대본소 만화체제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창작을 위해 순정만화 무크지인 <아홉 번째 신화>를 1985년에 창간했다. <아홉 번째 신화>의 성공으로 순정잡지의 창간 붐이 일어났다. 도서출판 서화에서는 1988년 최초의 순정만화잡지 <르네상스>를 창간했다. <모던 타임즈>, <로망스>, <요요>, <미르> 등이 뒤이어 창간되었지만 사전조사 미비와 컨셉트의 부재로 오래 가지 못하고 폐간되었다.
 
만화비평이 본격적으로 시도 <만화광장>, <주간만화>와 같은 성인만화잡지에 본격적인 만화비평이 실리기 시작했다. 이원복, 최열, 위기철, 김창남, 하종원 등이 만화비평, 작가비평 등을 시작하면서 만화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이 시도되었다. 이들은 1987년 만화비평지인 <만화시대>를 발간했다.

순정만화가들의 인기 상승 황미나, 김진, 김혜린, 신일숙, 한승원, 강경옥 등 새로운 순정만화의 새로운 세대가 출현하면서 1970년대 침체되었던 순정만화가 활력을 되찾는다. 무크지인 <아홉 번째 신화>의 인기에 힘입어 창간된 <르네상스>는 열혈 독자층을 형성하면서 여성이 만화잡지의 중요한 소비층임을 입증했다.

만화잡지시대를 연 <보물섬>과 <아이큐점프> <보물섬>은 어린이 잡지인 <어깨동무>를 발행하던 육영재단에서 1982년에 창간했다. 어린이 잡지에 일정 분량 이상의 만화의 만화를 싣는 것을 금지하고 있던 상황에서 <보물섬>이 창간될 수 있었던 것은 육영재단의 이사장으로 있던 박근혜의 힘의 컸다는 소문이 있다. 창간 당시 대본소와 어린이 잡지에서 활동하던 스타급 작가들을 영입하여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이면서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까지 폭넓은 독자층을 형성했다. <아이큐 점프>는 일본식 잡지시스템을 도입한 최초의 주간 소년지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잡지 컨셉트는 창간호 초판을 10만 부 발행하여 대부분을 판매하는 성공을 거두면서 이후의 소년지 창간에 모범을 보여 주었다.

김영숙의 <하이센스> 1989년 11월에 창간한 <하이센스>는 도서출판 하얀샘에서 창간되어 <르네상스>와 함께 1990년대 초반까지 2강 체제를 형성한 순정지이다. 발행인 김영숙은 1970년대부터 일본풍의 순정만화를 그려 인기를 얻었으며, 1980년대에는 김영숙 마니아를 형성하며 대본소에서 인기 높은 순정만화가로 통했다. 1988년에 창간한 <르네상스>의 인기에 자극 받아 자신의 작품과 출판사 소속 작가들, 문하생들로 필자를 구성하여 월간지인 <하이센스>를 창간했다. 인기 작가들이 들어가 있는 <르네상스>에 비해 김영숙 개인 중심의 잡지라는 평을 받았지만, 5년여 동안 지속되면서 연재 지면을 찾지 못한 신인들에게 데뷔 공간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4 만화잡지의 전성기 1990년대
1990년대는 만화가 대중예술의 하나로 인정받으며 문화적 위상이 높아진 시기이며, 산업적으로는 대본소 체제의 몰락과 함께 만화잡지 출판이 만화산업의 중심이 된 시기이다.
소년지는 서울문화사의 <아이큐 점프>(1988)와 대원에서 창간한 <소년 챔프>(1991)가 양대 경쟁체제에 들어갔다. <아이큐 점프>와 <소년 챔프>는 각각 일본 최고의 히트작인 ‘드래곤볼’과 ‘슬램덩크’를 연재함으로써 일본만화가 정식으로 출판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여기에 학산문화사에서 <찬스>(1995)를 창간하면서 3대 소년지 체제가 형성되었다.
서울, 대원, 학산은 일본식 잡지시스템에 따라 독자층을 세분화하여 여러 종의 잡지들을 창간했다. 대원은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팡팡>(1994)과 영(Young)지인 <영챔프>를 창간했다. 같은 해 서울문화사는 <영점프>를 창간하여 2대 영지체제를 구축했다.
성인만화잡지는 1990년대 초반 잡지사 간의 경쟁과 스포츠신문의 창간 등으로 인해 대부분이 폐간되면서 침체기를 겪었다. 1995년에 <미스터블루>(세주), <빅점프>(서울문화사), <투엔티세븐>(대원)의 창간이 연이으면서 부활하는 듯했지만 1997년 청소년보호법의 여파로 판매 부수가 줄면서 폐간되었다.
순정지는 1990년대 초반 한 해에도 몇 개의 잡지가 창간되었다. 그 중 두각을 드러낸 것은 육영재단의 <댕기>(1991)와 서울문화사의 <윙크>(1993)이다. 서울문화사와 대원으로 양분되어있던 순정만화잡지는 1999년 시공사가 <케이크>를 창간하면서 삼파전으로 확산되었다.
1990년대 중반 만화잡지의 또 하나의 뚜렷한 경향은 언더만화의 탄생이다. 기존의 잡지시스템과 상업만화를 거부하고 작가 정신을 내세운 젊은 만화가들을 중심으로 <만화실험 봄>, <화끈>, <네모라미>, <히스테리>, <코믹스> 등이 출현했다.
 
<빅점프>, <투엔티 세븐>, <미스터 블루>가 주는 교훈 서울문화사와 대원은 일본식 잡지시스템을 도입하여 독자층을 세분하여 소년지, 영(Young)지를 발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각각 <빅점프>와 <투엔티세븐>을 창간한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여기에 서점용 성인만화를 출판하면서 인지도를 높인 세주문화사가 <미스터 블루>를 창간하여 성인지 시장에 뛰어들면서 3파전 양상을 띠었다. 새로운 소재의 발굴과 신인발굴의 성과를 일궈내었던 세 잡지는 1997년 청소년보호법의 제정으로 판매부수가 급락하며 성인잡지 불황의 시작을 알렸고, 1998년 <투엔티 세븐>과 <미스터 블루>가 폐간되었고 2000년에 <빅점프>가 폐간되었다. 이들 잡지 폐간의 주된 이유는 새로운 독자층의 개발에 실패했다는 데 있다. 직장, 금융, 정치 등을 소재로 한 일종의 교양만화로 승부한다는 컨셉트에도 불구하고 20, 30대 성인들의 취향을 잡아내지 못하면서 청소년들이 주 독자층이 되었다.

언더만화의 출현 인디만화로도 불리는 언더만화는 기존의 주류 잡지시스템과 상업만화의 유통시스템을 거부하는 만화가들이 독자적으로 시도했던 출판방식과 만화들을 일컫는 말이다. 인디만화의 시작은 1985년에 나온 순정 무크지 <아홉 번째 신화>가 있다. 기성 순정만화가의 동인지 형식으로 만든 이 잡지는 자비출판과 통신판매 방식의 독자적인 출판방식을 보여 주었다. 1990년대 중반 주류 시스템에서 활동하지 않는 신인 만화가 집단이 출현하면서 인디만화라는 용어가 정착되었다. 홍대 만화동아리에서 나온 <네모라미>, 신일섭이 편집장을 맡아 창간한 <만화실험 봄>과 <히스테리>, 모해규가 편집장을 맡고 ‘저예산 독립만화지’를 표방한 <화끈>, 언더그라운드만화를 표방한 순정지 <믹스>, 한겨레문화센터 만화아카데미 출신들이 주축이 된 <오즈>가 있다. 주로 무크지와 월간지였던 이들 잡지들은 실험성과 작가주의를 내세운 만화와 상업주의 만화에 대한 전문적인 비평을 보여 주었지만 대부분 단명으로 끝을 맺었다. 
 
 
5 만화잡지의 침체기 2000년 이후
2000년 이후 만화시장의 침체와 함께 만화잡지는 창간과 폐간이 이어지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97년 IMF와 청소년보호법의 제정 등 악재가 겹치면서 출판만화시장이 위축되는 가운데서도 잡지의 창간과 폐간이 이어졌다. <샤크>, <캡틴>, <히트>, <코믹팬티>, <코믹엔진>, <코믹펀치> 등 많은 잡지들이 창간되었지만 1년을 넘기지 못하고 폐간되었다. 2000년 시공사가 소년지인 <쎈>과 영지인 <기가스>를 잇달아 창간하면서 4대 메이저 체제를 구축하는 듯했지만, 두 잡지 모두 2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여기에 2003년 서울문화사의 <영점프>가 폐간됨으로써 소년지는 <소년 챔프>, <영챔프>, <팡팡>, <찬스>, <부킹>, <아이큐 점프> 총 6종만이 발행되고 있다.
1990년대 중·후반까지 전성기를 구가하던 순정지도 쇠퇴의 길을 걸으면서 주 독자층의 연령대에서 변화가 나타났다. 1980년대와 90년대 후반까지는 <르네상스>, <윙크>, <이슈> 등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잡지가 시장을 주도했지만,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아동으로 대상층이 내려갔다. 서울문화사의 <밍크>(1995)와 학산문화사의 <파티>(1997), 대원씨아이의 <해피> 등 많은 아동 순정잡지가 창간되었다. 이들 아동 순정잡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중학생까지를 아우르는 연령대로 확대되고 있다. 반면 <윙크>, <이슈>의 구독층은 점차 연령대가 낮아지는 현상을 보인다. 2003년 시공사가 <오후>를 창간되면서 성인 순정지가 부활했지만 일 년 만에 폐간되었다. 2005년 현재 서울문화사의 <윙크>와 <밍크>, 대원씨아이의 <이슈>, 학산문화사의 <파티>, 도서출판 허브의 <허브> 등 총 5종의 잡지가 발행되고 있다.
2004년 시공사가 <비쥬>의 폐간과 함께 잡지출판사업을 접게 되면서 일각에서는 일본식 잡지시스템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만화잡지가 만화산업의 근간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1990년대 이후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폭넓게 사랑받았던 만화잡지가 만화산업의 중심으로 다시 서기를 기대해 본다.
 
온라인만화의 흥망성쇠 ‘온라인 만화방’을 시작으로 2001년에는 ‘엔포’, ‘코믹스투데이’, ‘X2코믹스’, ‘코믹플러스’ 등의 온라인만화사이트가 등장했다. 이들 상업사이트들은 수익성을 맞추지 못하고 사라졌으며, 그 후 다음과 네이버, 넷마블 등 포털업체를 중심으로 유료만화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2003년에는 만화가 지망생이나 언더만화가들을 중심으로 웹툰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만화가 유행했다. 강도영, 심승현, 메가쇼킹, 최인종, 아이완 등 인기작가가 나왔다.

1년을 넘기지 못한 잡지들 1999년 중반을 기점으로 단행본 출판사들의 잡지 창간이 붐을 이루었다가 1년을 넘기지 못하고 폐간되었다. 시공사에서 나온 <쎈>을 제외하면 1997년에 창간한 <캡틴>을 비롯해서 서울미디어랜드의 <히트>, 삼양출판사의 <코믹엔진>과 <코믹펀치>, 대명종의 <코믹팬티>는 모두 메이저 출판사가 아닌 단행본 출판사에서 만든 잡지들이다. 이들 출판사들이 잡지를 창간한 이유는 대여점 시장에 공급할 만화를 확보한다는 측면과 일본만화를 수입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과 대여점에서 인기 있는 학원물 중심의 구성으로 기존 잡지와 차별성을 갖지 못했고, 일본만화의 수입에도 어려움을 겪으면서 하나둘씩 폐간되었다.

만화잡지의 최근 경향 현재 <코믹 챔프>, <아이큐 점프>, <찬스>와 같은 소년지는 새로운 초등학생 독자층을 개발하지 못한 채 중·고등학생을 타깃으로 삼으면서 영지와 독자층을 공유하고 있으며, 여성 독자층의 증가로 인해 중성적인 성격이 강해졌다. 오는 7월 <아이큐 점프>는 격주간지로 바꾸면서 A급 작가진을 구성하고 작품연재 수를 늘리는 개혁을 단행할 예정이다. 순정지는 <밍크>, <해피>, <파티>와 같은 아동순정지가 중학생을 포괄하며 주류를 이루고 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윙크>와 <이슈> 역시 독자층을 하향 조정하는 형태를 보여 주고 있다.

 
2005-11-18 12:32:46
이전  다음  목록
코믹뱅
저작권보호센터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