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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하고도 조용하게 그만의 길을 걸어오다 - 피에르 프레노 드뤼엘

고독하고도 조용하게 그만의 길을 걸어오다

 
피에르 프레노  드뤼엘(Pierre Fresnault-Deruelle)과의 인터뷰
 글 | 한상정 (파리 1대학 미학과 박사과정 만화미학전공 hsj870@empal.com)
 
눈이 내리진 않으나 목도리 없이는 참을 수 없는 냉기를 애써 뿌리치며 약속이 잡혀 있는 파리 15구, 몽파르나스 역 근처로 종종걸음을 쳤다. 예상보다 5분 일찍 도착했지만, 밖에서 기다리기엔 추운 날씨가 자택의 벨을 누르게끔 강요했다. 프레노-드뤼엘 선생님은, 프랑스에서 만화에 대한 논의들이 여전히 만화의 부차적인 문제들-만화에 대한 추억담이나 작가들의 인생론 등-으로만 한정되어 있던 1970년대 초에, 최초로 만화 그 자체를 분석하기 시작한 분이다. 어떤 만화에 대한 분석론을 읽더라도 그의 저서들이 항상 언급될 정도로 역사적으로도 또는 논의의 깊이에 있어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에 이번 인터뷰의 가장 적합한 대상자로 선정한 것이다. 어느 저서의 뒷편에 “아직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충분히 흰 머리가 남아 있다.”라고 썼던 것처럼, 아직은 풍성한 흰 머리에 주황 색 와이셔츠를 입고 팔을 넓다랗게 필자를 벌리며 맞이했다.
 
한상정 1월의 클레르-몽페랑(Clermond-Ferrand)에서 열렸던 3일 간의 만화 세미나 이후 처음 뵙네요. 별일은 없으신지요?
프레노 드뤼벨 여전히 일이 많긴 하지만 뭐, 괜찮아요.
한상정 음, 아마도 사람들이 가장 처음에 던지는 질문을 저도 던져 보겠습니다. 언제부터 만화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
프레노 드뤼벨 어릴 때는 아마도 웬만한 다른 아이들이 읽은 것처럼은 읽었을 거예요. 특히 벨기에에서 출간된 <저널 땅땅>(Journal de Tintin)과 <저널 스피루>(Journal de Spirou)는 놓치지 않고 봤던 기억이 있어요. 전자는 가톨릭 재단에서 출간된 것이었고, 후자가 더 질이 좋았죠. 또 공산주의 재단에서 나온 만화들이 있었지만 저는 접해 보지 못했었고…. 고등학생 때까지는 만화를 보다가, 막상 대학생이 된 무렵 아마 62년인가… 그때부터는 한동안 보지 않았어요.
한상정 대학생이 되고 나서 주로 관심을 둔 분야는?
프레노 드뤼벨 프랑스 문학사, 영국 문학사, 스페인어, 언어학, 기호학 등에 빠져 있었고, 파리에서 열리던 롤랑 바르트(Roland Bathes)의 세미나에 기차를 타고 강의를 들으러 가기도 했죠. 그러다가 다시 만화를 붙잡게 된 것은 석사논문을 쓰면서부터인데, 그 당시 나는 이미지를 말하면서 기호학을 논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아주 개성 있는 주제를 찾고 있었어요. 결국은 지도교수를 찾아가서 에르제의 <땅땅>을 바르트의 기호학을 통해서 해석하려는 시도가 논문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 상담을 했죠. 그 당시의 분위기로 봐서 정말로 예외적이었지만 지도교수가 그걸 허용했습니다. 아마 다른 사람이었다면 일거에 거절당했을 거예요, 단지 만화를 연구대상으로 삼는다는 이유로 말이죠.
한상정 별 무리 없이 진행되었나요?
프레노 드뤼벨 아주 좋은 평가를 받은 논문이 되었고, 저도 굉장히 즐겁게 논문을 썼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네요. 재미있었던 것은, 그 석사논문을 100부 복사해서 교내에서 이틀 만에 다 팔았답니다. 복사기도 없었을 시기에…. 원체 그런 주제로 쓰여진 글 자체가 희귀했을 때니까, 아마도…(웃음).
한상정 60~70년대가 프랑스 지성사에 있어서나 또는 만화사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고 알고 있습니다. 최초로 만화가 어린이들의 점유율에서 벗어난 시기라고들 평가되죠. 간단하게 이 상황을 요약하신다면요?
프레노 드뤼벨 아마도 63~64년 정도, 알제리 전쟁이 끝날 무렵에 들어서 만화가 점점 중요해지기 시작했어요. 이 당시 아주 중요한 잡지가 등장하게 되죠. <필로트> (Pilote)라는 잡지인데, 이 잡지는 ‘새로운 만화를 보여 주겠다.’라는 의도 하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노선을 세웠어요. 원래 이 잡지의 구독대상은 13~15살 사이였지만, 한번 이 잡지를 읽은 독자들을 대상으로 해서 점점 더 그 구독대상의 연령을 높여가는 거였죠. 결국 <필로트>의 주 독자는 고등학생부터 시작해서 성인까지 모두 포함하게 되는 상황을 끌고 옵니다. 물론 그렇게 된 것에는 이 잡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새로운 작가군의 등장도 결코 무시 못하죠. 타르디(Tardi), 프레드(Fred), 브레테셔(Bretecher) 등의 작가들이 이 잡지를 통해 활동하던 작가들이었고, 그리고 드디어<아스테릭스(Aasterix)>의 열풍이 몰아닥치죠. <필로트>와 비교하자면 약간은 더 예술적 성향을 띠는 만화들도 등장합니다. 예컨대 쟝-클로드 포레스트(Jean-Claude Forest)의 <바바렐라>(Barbarella) 같은 훌륭한 작품(브리짓드 바르도를 닮은 여주인공에 아주 현명하게도 약간의 누드가 가미된, 그 이유로 그 당시 판매금지가 되었던)도 슬슬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죠. 또 <하라키리>(Harakiri)라는 잡지 역시 이러한 움직임들에 포함됩니다. 때로는 극도로 폭력적이기도 한 만화를 실었죠. 이런 활동과 작품들은 1967년 파리의 장식미술관에서 열렸던 만화전시가 엄청난 성공을 거둠으로써, 슬슬 만화를 감상하고 소비하는 계층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 주게 됩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만화에 관한 책들이 출판되기 시작하죠. 하지만 이 당시만 하더라도 거의 필자들의 어린 시기 만화책을 읽던 기억과 추억에 관련한 글들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음, 그리고 75년에 <메탈 위를랑>(Metal Hurlant)이라든가 많은 잡지들이 생겼다가 사라지고… <까이에 드 라 방드 데시네>(Cahier de la bande dessinee)라는 최초의 만화이론잡지가 모습을 드러내요.
좌로부터 Herge, ou, Le secret de l’image(ditions Moulinsart, 2000) 표지,  Petite iconologie de l’image peinte(L’Harmattan, 2000) 표지,  L'image placardee, Nathan(collection “fac”, 1997) 표지,  Herge ou la Profondeur des images plates(ditions Moulinsart, 2002) 표지,  La peinture au peril de la parole(Marseille : 긠itions Muntaner, 1995) 표지
한상정 그 당시에 선생님은 어떻게 지내셨나요? 선생님께서는 70년에 박사논문을 제출하셨으니까… 그 당시의 분위기라면 꽤나 주목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프레노 드뤼벨 이런… 엄청난 오해를 하는군요. 의외로 제 논문은 ‘만화판’에서 활동하는 사람에겐 받아들여지지 못했죠. 만화는 당시에 천천히 지식인 계층에게 받아들여졌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학교 시스템 안으로 만화는 전혀 침투할 수 없었고, 만화판의 입장으로 보기엔 저는 아카데믹한, 자신들의 입장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일 겁니다. 여하간, 만화를 연구대상으로 해서 최초로 박사논문을 제출한 사람이 나일 겁니다. 논문을 쓰는 도중에 입영통지가 왔고, 논문을 끝낸 건 군대 안에서였어요.
한상정 그게 <만화에 대한 기호학적 접근>이죠? 1,000페이지에 달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국가박사학위를 취득한건.
프레노 드뤼벨 그래요. 박사학위 취득 이후, 고등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1980년에 <만화와 공간>이란 국가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했어요. 그건 거의 10년 간 써왔던 글들을 모았던 거죠. 1983년에 대학교 교수로 선정되었어요. 하지만 그 이후 한참 동안은 만화에 대해 거리를 두었지, 아마…. 여하간 만화에 대한 열정은 천천히 살아났어요. 실제로 파리 1대학에서 만화를 정기수업에 넣은 건 2년 전부터랍니다. 학생들이 원체 싫어하니, 참….
한상정 앗, 재미있어 하지 않나요?
프레노 드뤼벨 글쎄… 들뢰즈니, 크리스테바니, 푸코니… 실컷 이런 수업을 듣고 나서 내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들이…? 내가 볼 땐 한 반 정도만 그래도 흥미 있어 하고 나머진 아주 싫어하는 듯한 분위기가…(웃음).
한상정 왠지 선생님께서 그걸 재미있어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제 오해일까요?
프레노 드뤼벨 (웃음)내 지도교수는 비록 언어학자이긴 했지만 알프레드 자리(Alfred Jarry : 전위극 작가)와 쟝 크리스토프 아베르티(Jean-Christophe Averty : <텔레비전의 멜리에스>)라는 훌륭한 미장센을 만든 두 사람을 엄청 좋아했어요. 뭐랄까, 이런 작가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전혀 권위적이지 않고, 좀 삐딱하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버린달까… 여하간 나도 영향을 많이 받았죠. 아마도 내가 만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만화는 충분히 사람들을 엄청 ‘열받게’ 할 수 있거든요.
한상정 하하하…(화제를 바꾸자) 아니, 근데 프랑스의 군대생활은 논문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널널한가요?
프레노 드뤼벨 군대는… 군대랍니다. 아주 고생했어요. 처음에 대학을 다니다 왔으니 행정병을 하라고 하는 명령을 면전에서 거절했죠. 그러면 거의 개인적인 시간이 안 나니까, 일반병을 하겠다고 우겼고…. 음… 덕분에 아주 힘든 생활을 했어요. 그러고 보니, 에르제의 <소비에트에서의 땅땅>이라는 만화가 담긴 책을 소포로 받은 것 때문에 역시 문제를 일으켰죠. 물론 에르제는 공산주의 반대자였지만, 일단 만화제목이 그러니…. 나중에 에르제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편지에 썼더니 아주 엄청나게 웃어대었다고 답장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한상정 오오. 에르제와 직접 서신 교환도 하셨군요.
프레노 드뤼벨 논문을 쓰기 시작하면서 편지 교환을 했으니까, 한 40여 장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로서도 학교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작품이 처음 다뤄지는 것이니 흥미가 있었을 테구요. 오리지널 원고를 선물로 보내기도 했어요. 그 당시만 하더라도 오늘날처럼 비싸게 팔리지 않을 때였고…. 3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조금씩 팔 수밖에 없었어요. 오랫동안 공부를 했으니, 부인과 자식이 둘인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죠.
한상정 하지만 아깝군요.
프레노 드뤼벨 마지막으로 원고를 판 것은 작년이었어요. 아들이 1년 간 쉬면서 고등학교 교수 시험 준비를 한다고 하면서 경제적 원조를 요청했어요. 뭐, 일단 나는 수집가도 아니고, 또 그 원고를 팔아서 자식이 공부를 할 수 있다면 훌륭한 사용법이라고 봅니다. 그게 진짜 보물이니까요. 편지 역시 모조리 팔았고, 그 복사본은 브느와 피터즈(Benoit Petters)가 에르제에 관한 책을 쓸 때 자료로 보내 주기도 했죠. 뭐, 이런 정도라면 에르제도 얼마든지 만족할 겁니다. 지금은 에르제 재단이 너무 과도한 저작권문제를 걸고넘어지기 때문에 사이가 좀 나빠졌어요. 여하간 에르제와의 편지 교환에서 나는 그의 작품에 대한 여러 가지를 문의하곤 했었죠.
한상정 작가들과 자주 교류하시는 편입니까?
프레노 드뤼벨 그다지 자주는 아니고, 기껏해야 타르디와 에드가 야곱(Edgar Jacobs) 정도일까. 작가들과의 대화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때론 나도 ‘당신이 이 작품을 할 때 이런 의도로 하지 않았나?’라는 걸 물어보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기도 하지만(웃음). 뭐 어떤 이들은 작가의 약력에 신경을 쓰는 입장도 있겠지만, 나야 내 고유의 방식으로 읽어내는 거니까요. 작품이라면, 어떤 새로운 시대에 새롭게 읽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주는 거 아니겠어요. 몰리에르가 자신의 작품이 20세기에 어떤 식으로 읽힐지 어떻게 알까요… 에르제가 내가 한 분석에 모두 공감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또 하나 자주 일어나는 멍청한 생각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들은 <시각적 사유 pensee visuelle>, 즉, 논리 정연한 이성적 사유로 작품을 형성하지 않고, 작가들 특유의 사유방식인 시각적 사유를 통해 작품을 형성하므로, 그건 거의 본인이 논리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죠.
한상정 선생님이 박사논문을 쓰시던 때와 지금에서 연구대상에 접근하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십니까?
프레노 드뤼벨 굉장히 많이 달라졌죠. 그 무렵엔, 롤랑 바르트와 기호학에 주로 기반했었다면, 지금은 기호학에서 많이 벗어나 있어요. 사실 기호학의 모델이 언어에서 시작한 것이니만큼 이미지를 분석하는데 있어서의 기호학의 한계는 지속적으로 비판되어왔고, 현대의 기호학은 언어학으로부터 많이 분리되었어요. 지금은 미국의, 특히 퍼어스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죠. 그러나 나의 관점은 글쎄, 굳이 이름 붙이자면 <신-바르트주의>라고나 할까. 바르트와 동일한 길을 나가지만 전혀 같은 길은 아니에요. 이미지에 대한 모든 방법들, 정식분석학, 수사학, 도상학, 파노프스키, 바르부르그(Warbourg), 예술사… 이 모든 게 일종의 도구상자로 작용할 뿐입니다. 방법론에 따라서 사물을 분석하는 것을 비웃고 있어요. 그 무엇이든지 간에 나는 오로지 그 대상에게만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글을 쓰면서, 내 고유의 방식으로,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나가고… 굳이 말하자면 그 분석의 유일한 방법론은 나의 ‘열정’입니다. ‘내가 어떻게 이것을 이해하고, 왜 이것은 나를 끌어당기는가?’를 제기하고 거기에 답하려고 노력합니다. 거의 매일 글을 쓰는 것, 이것이 나의 유일한 즐거움이에요.
한상정 당시 바르트의 세미나의 분위기는 어땠었나요?
프레노 드뤼벨 바르트는 정말 무슨 위대한 지도자 같은 느낌을 주었어요. 그 세미나에서 크리스티앙 메츠(Christian Metz)를 만났고, 2년 간 그의 세미나에도 참가했었죠. 메츠 역시 아주 친절했지만, 엄격했고, 자신의 지도 밑에 있는 학생들에 대한 걱정을 끊이지 않고 했어요. 바로 그가 내게 <꼬뮤니까시옹>(Communication), 그 당시 가장 유명한 잡지 15호에 에르제에 대한 아티클을 실어 준 사람이죠. 당시의 그 감동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 당시만 해도 이 잡지는 잡지 중의 잡지였으니까요. 마찬가지로 동일한 잡지 24호, 만화 특집호를 나와 내 동료 한 명이 책임 구성하도록 도와 줬습니다. 그 당시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에게 글을 청탁해서 거기에 실었고, 로브-그리예(Alain Robe-Grillet)에게도 글을 부탁했지만 너무 바쁘다고 거절당했죠. 아아,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있었죠. 그 원고들 중에 한 연구자가 쓴 글, 그 당시 굉장히 유명한 언어학자였는데, 그건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 글이었어요. 우리가 메츠에게 그 글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묻자 그는 답했죠. “걱정하지 말게나. 잡지의 각 호마다 항상 UFO가 있기 마련이라네.” ‘미확인 비행물체’, 이해가 가지 않는 글에 대해 그가 붙인 이름이었죠.
한상정 선생님은 만화만이 아니라, 사진, 광고, 회화, 캐리커처 등 다양한 ‘정지된 이미지(Image fixe)’를 다루시는데, 혹시 움직이는 이미지를 포착하기 어려운 점이라도 있으신지요?
프레노 드뤼벨 신체물리적인 어려움은 없어요. 몇 번인가 영화 시퀀스에 대해 쓴 적도 있고, 지금 1대학에서 하고 있는 <정지된 이미지의 움직임화> 작업공정에도 참여 중이고… 오히려 정지된 이미지가 내겐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겠죠.
한상정 이 난무하는 이미지 시대, 왜 정지된 이미지에 대해 글을 써오셨는가라는 질문과도 상통하겠네요.
프레노 드뤼벨 글쎄, 굳이 생각해 보라면 한 세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겠군요. 일단 정지된 이미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적어요. 그러니 상대적으로 조용하죠. 그리고 움직이는 이미지를 다루려면 좀 더 복잡한 기계들을 소유해야 하는데… 그게 참 힘들고…. ^^ 세 번째 이유는 정지된 이미지가 움직이는 이미지들이 만들어낼 수 없는 아주 특정한 부분들을 형성해내기 때문입니다.
한상정 저도 동감입니다. 거기엔 그만의 특별한 힘이 있죠. 선생님께서 다양한 ‘정지된 이미지’의 영역을 다뤄오셨던 것은 만화에 대해서만 하기엔 지겨워졌기 때문이었습니까?
프레노 드뤼벨 아니. 그 질문은 틀린 겁니다. 나는 한 번도 스스로의 연구대상을 만화라는 장르로만 한정시켰던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내가 만화만 다루어야 했다면 미쳐 버릴지도 몰라요. 내가 찾는 것은 언제나 ‘미적 대상’입니다. 그것이 어떤 장르에 속해 있더라도, 그것이 내 눈과 사고를 자극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다루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킵니다. 예컨대, 나치의 포스터를 보면, 어떤 것들은 정말 잘 만들었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가를 생각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전혀 이론가가 아닙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나는 전통적인 미학과의 입장에선 벗어나 있죠. 이론을 위한 이론, 이론가의 길은 나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나는 언제나 대상을 이야기해 왔지, 방법론을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이건 실지로 프랑스 대학에선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태도이고, 또 그렇기 때문에 내 지도 밑에 박사과정들이 얼마 없죠. 프랑스는 약간 과대하게 이론에 치중하는 나라라고 봅니다. 뭐 여하간 덕분에 나는 아주 조용하고 때론 고독하게 내 길을 걸어온 셈입니다. 다양한 칵테일파티를 피하면서 말입니다. 인사를 위해 인사를 하고, 허무한 친목만이 날아다니는 그런 장소와 시간이야말로 내가 가장 회피하는 곳입니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혼자 조용히 산책을 하겠어요. 이런 성향 때문에 파리의 저널계에 글을 쓰지 못하죠. 실상 내 글은 분석적이긴 하지만, 저널식 ‘분석’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기도 하구요. 그래도 우연찮게 올해엔 <디자인>이란 잡지에 내가 원하는 어떤 이미지라도 하나씩 분석에서 올리는 섹션을 청탁 받았습니다. 이건 아주 기쁘게 쓰고 있죠.
한상정 만화를 볼 때 어떻게 보십니까? 어떤 걸 가장 많이 신경을 쓰시는 지요?
프레노 드뤼벨 일단 시각적인 측면입니다. 음… 시각적인 측면이 일단 맘에 들지 않으면, 아주 힘들게 결심하고 책을 펴야 합니다. 그림체가 마음에 들면 일단 잘 시작하는 편이지만, 별 가치 없는 시나리오라든가, 여러 형식적인 면에서 동일한 것이 반복된다면 그걸 느끼는 동시에 그만둡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고전을 한 번 더 읽는 편이죠. 그러나 내가 아무리 윈저 맥케이(Winsor MacCay)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건 단지 하루에 2~3페이지만 읽어야 하는 거예요, 마치 <스누피>를 하루에 2~3단 이상은 절대 읽어서는 안 되듯이 말이죠. 그건 그렇게 읽도록 형성된 거니까요. 그 기본적인 물질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상정 몇 년 안에 은퇴하실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이후 계획은 어떠신지요?
프레노 드뤼벨 그냥 학교 일에서 손을 놓는다는 것만 제외하고 나면 동일하겠죠. 외국의 어딘가에 가서 너무 길지 않게, 한 한 달 정도씩 수업을 하는 것은 좋을 것 같습니다. 중국이건 이탈리아건 인도건… 여행을 하기 위해 여행을 가는 것은 싫지만, 그렇게 가서 여행을 하는 건 좋을 것 같아요.
한상정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막무가내의 질문에 친절히 답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진을 몇 장 찍어도 될까요?
 
 
* 피에르 프레노 뒤뤼엘

1943년생
1970 박사학위 취득
1972~1992 투르(Tours)  
 IUT(대학부설직업학교)에서 기호학 강의
1980 국가박사학위 취득
1983 대학교 교수로 선출
1992 파리 1대학 교수로 선출
2005 -현재 파리 1대학 4단과
 (UFR) 조형예술학과
 예술학 교수.
 -1대학 부설 IUP에서
 문화적 매개, 도상학,
 이미지의 수사학 강의.
 - 인터넷 사이트 개설, 관리
 (prefigurations. Com:
 mucri.univ-paris1.fr:
 imagesanalyses.
 univ-paris1.fr:
 imagesmag.com) 
 -파리 1대학 부설 이미지
 연구소(CRI) 소장
저서 - 만화와
정지된 이미지들에 대한 분석들
1972 <만화, 기호학적 분석 에세이>,
 3판 인쇄, 현재 절판
1972 <데생과 말풍선>, 절판
1977 <엮임에 의한 담론과
 이야기>, 절판
1977 <말풍선의 방>,절판
1982~1984 아이들을 위한
 예술적인 서적 시리즈 제작.
 그 중 6권의 시나리오
 작업 담당. 이 중의 한 권이
 프랑스 재단상을 획득.
1983 <조작된 이미지>
1989 <단어들에 잡힌 이미지들>
1993 <이미지들의 웅변>
1995 <말의 위험에 빠진 회화>
1997 <벽보의 이미지>
1998 <천천히 형성된 이미지들-
 에드워드 호퍼의 회화에 대해>
1998 회화에서의 <성모영보>를
 위한 13개의 작품
 시디롬 공동제작
1999 <에르제 또는 이미지의 비밀>
2000 <그려진 이미지들에 대한
 소규모 도상학>
2002 <에르제 또는 평면적
 이미지들의 깊이>
 …그리고 3권의 서적이 출판 예정 되어 있다.
 
2005-11-21 20: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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