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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기사
일본 OSMU 역사와 발전
창작 환경에 발맞춰 성장하고
창작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 지향
 
글 | 하기와라 요시히로 (일본 만화잡지 <강강YG> 편집기자)
번역 | 이현석 (일본 통신원 warmania@hitel.net)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먼저 용어에 대한 정의를 내려 보자. 일본에서 OSMU란 말은 “하나의 소재를 디지털화 하고, 이를 다양한 종류의 매체와 그 매체에 걸맞는 가장 적합한 형태의 결과물을, 아날로그 소재를 이용하는 경우보다 더욱 싸고 간단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즉, 이는 ‘콘텐츠 매니지먼트’, ‘디지털 자산(assets) 매니지먼트’(디지털 자산관리)를 전제로 한 개념으로서의 OSMU이며, 한국에서와 같이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다.
 
일본어를 전자화 시키면서 등장한 OSMU 개념
컴퓨터 매체를 이용하여 만화를 표현한 첫 사례로 <시끌별 녀석들> 사건을 들 수 있다. 당시 최고 인기를 얻고 있던 이 작품은 유명 전자상가인 아키하바라의 퍼스널 컴퓨터를 통해 표현되어 지나가던 고객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OSMU 경향이 현저해지는데, 그 특징을 보자면 일본어를 전자화 시킬 때의 표현방법 진화와 함께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일본어 문자 체제는 한자와 히라가나, 가타카나, 라틴어계 문자가 일체화되어 기술되며, 다양한 문자종류를 가진다. 더구나 독자의 편리를 위해서 독음을 붙이는 것이 표준화되어 있는데 이런 표기방법은 하나의 단어를 써놓고 거기에 좀 더 깊은 의미를 담아내게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복잡한 일본어 문장을 디지털화시키면 다양한 아웃풋(출력물- 예를 들자면 원고지에 글을 쓰던 것을 컴퓨터를 통해서 문서를 작성(즉, 전자화)하면 이를 이용하여 수월하게 서적을 작성한다든지 웹 페이지에 글을 올린다든지 하는 식으로 응용이 가능하다)을 별다르게 수고를 들이지 않고, 또 별다른 오차도 없이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해진다. 즉, 전자화시킨 하나의 데이터를 가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한다는 사고방식은 일본어를 전자화된 데이터로 만들기 시작한 시점에서부터 존재한 것이다.
 
만화 애니메이션 분야의 OSMU적 사고는 1980년대 말부터
만화와 애니메이션 분야에서의 OSMU는 사정이 좀 다르다. 위에서 언급한 텍스트 방면에서의 소스와는 다르게 일본에서는 디지털 혁명이 진행되기 훨씬 이전에 아날로그적 사고방식에 기초한 제작기술이 확립되어 있일본의 OSMU 개념의 시초는 산업적으로 접근하는 한국과는 달리 창작자의 편의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으로,  대표적인 예로 한 장의 일러스트가 포스터, 광고, 팸플릿, 각종 상품 등 다양한 형태에 적용되는 과정을 들 수 있다. 었기 때문이다. 퍼스널 컴퓨터를 이용하여 만화를 표현한 것은, 1980년대 전반, 8비트 컴퓨터의 시대에 아키하바라와 같은 컴퓨터 전문점이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타카하시 루미코의 만화 <시끌별 녀석들>의 주인공인 ‘람’을 컴퓨터 화상으로 만들어 가게 앞에 전시해둔 것이 최초라고 할 만하다. 당시 이 그림은 320*200 도트 정도의 해상도에 8색으로 표현되어 있었다(당시, 이 그림의 데이터를 조작하여 람이 가슴에 걸치고 있는 호랑이 가죽 비키니를 벗긴 야한 그림을 가게 앞에 전시하여 손님을 끌어모은 가게도 있었는데, 이에 격노한 팬들이 이러한 저질 가게에 전시된 컴퓨터의 전원을 꺼 버리는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 걸쳐 일본은 16비트 컴퓨터 시대로 접어든다. 이 당시는 컴퓨터의 거칠어 보이는 도트 표현을 거꾸로 이용한 만화 표현의 등장과 함께, 로컬 BBS가 일본 각지에서 생겨나, 여기서 효율적으로 화상을 다루기 위한 화상 압축/전개 기술을 각 로컬 BBS의 프로그래머들이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었다. 그리고 직업 만화가나 애니메이션 제작자들도 당연히 이러한 기술들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일부의 선구자들이 실험적 프로젝트를 내어놓고 여기에 착수하기 시작하는데, 그렇다고는 해도, 당시의 디지털 기술을 현장에서 사용 가능할 정도의 레벨까지 발전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제작현장에 OSMU가 등장하다
디지털 기술을 현장에서 사용한다는 인식이 겨우 가능해지는 시점은 1990년대 후반 이후, SGI(실리콘 그래픽스)사의 GWS(그래픽 워크 스테이션)이 등장하여, 퍼스널 컴퓨터가 32비트 시대에 접어든 시기였다. 가장 의일본에서 기획, 제작된 작품 <유희왕>은 해외에서 얻은 폭발적 인기에 힘입어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북미에서 제작되어 일본으로 역수입되는 결과를 낳기에 이른다. 미디어 전파속도의 발달과 함께 OSMU는 원작과 파생 상품간의 상호 보완적 광고로서 자리 잡았으며, 국적을 초월한 창작의 장이 되고 있다. 욕적으로 디지털 기술을 도입한 곳은 현재의 도에이 애니메이션과 애니메이션 제작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던 ‘세르시스’였다. 세르시스의 프로그램 기술자는 도에이 애니메이션의 전면협력 하에, 애니메이션 제작 현장에 들어가, 애니메이션의 제작현장에서는 대체 어떤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는가, 거기에 어떤 디지털 기술을 적용시키면 어느 정도로 현장 업무가 편해질 것인가, 어떤 새로운 표현이 가능해질 것인가 등의 점에서 현장의 디지털화를 추진했다. 즉, 영상의 OSMU라는 사고방식이 등장한 것이다.  세르시스가 개발한 ‘스타일러스’라는 응용 프로그램은, ‘일러스트레이터’와 유사한데, 벡터 데이터를 가져와 애니메이션의 원화/동화를 그려내고 이를 디지털 애니메이션 생성 시스템 ‘레터스 프로’에 원용하는 응용 프로그램이었다. 벡터 데이터가 아니면, 진정한 OSMU는 달성하기 어렵다. 포토샵으로 아무리 수려하게 그림을 그려도, 그것이 일정한 해상도를 가진 러스터 데이터인 이상, 큰 그림으로 인쇄해 버리면 도트로 뒤범벅이 된 엉망진창 그림으로 출력될 뿐이다. 벡터 데이터로 인쇄된 그림의 경우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것은 즉, 원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용으로, 720*480 해상도로 준비된 일러스트 한 장을 가지고 전철 역 매점 광고용 포스터, 버스에 붙이는 광고판, 각종 캐릭터 상품(예를 들자면 끝도 없다. 아이들이 베고 자는 베개에서 도시락, 연필, 가방에 이르기까지)에 이용 가능하고, 장래에 등장 예정인 1920*1080 해상도의 하이비전에까지 사용 가능한 것이다.
 
창작자에 대한 부담 경감 장치로서의 OSMU
일러스트레이터이든 만화가이든 애니메이션 감독이든 재능 있는 인재의 숫자는 제한되어 있고, 이러한 인재들조차 그 재능을 발휘하는 시기는 매우 짧다. 이러한 제작자, 창작자들은 이러한 매우 짧은 기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작품을 세상에 발표하고,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그 대가로서 최대한 많은 수입을 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점에선 프로 스포츠 선수보다 가혹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일본에 있어서의 OSMU는, 그러한 제작자들의 부담을 최대한으로 줄이고, 오리지널 창작물을 되도록 많이 만들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편집자 측/제작자 측/프로듀서 측이 준비하는 하나의 장치인 셈이다. 상업적인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제작자들간의 ‘아이디어의 교배’와 윈윈 전략
마지막으로 일본에 있어서 OSMU 비지니스의 성공사례로는 북미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둔 <포켓 몬스터>와 TV 애니메이션을 통해 세계적인 작품으로 발돋움한 <포켓 몬스터>는 최초 게임 제작자의 제안을 통해 만화와 게임이 동시에 진행된 작품이다. 현재 일본에는 기획 단계부터 미디어 믹스를 전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획자들의 역량이 나날이 강화되고 있다.<유희왕>을 들고 싶다. <포켓 몬스터>는 게임 제작자인 타지리 사토시가 발안하여, 미디어 프로듀서인 이시하라 히사카즈와 쇼가쿠칸 프로덕션의 쿠보 마사이치 프로듀서와 같은 사람들의 지원 하에 성립된 OSMU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엄밀하게 분류하자면 ‘게임을 모체로 한 멀티미디어 전개의 성공 사례’). 타카하시 카즈키의 <유희왕>의 경우, 슈에이샤의 <소년 점프> 연재가 시작될 당초에는 지구상의 게임 전반을 모두 다루는 만화로 출발하여, 코나미가 카드 게임 사업을 추진하게 되면서 만화도 카드 게임 배틀 만화로 방향전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전략이 초, 중학생들 사이에서 대성공을 거둬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극장용 애니메이션 등으로 발전하게 된 OSMU 콘텐츠다. <포켓 몬스터>에 비해서 유희왕은 비교적 세인의 입에 덜 오르내리지만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더해서 실제 세계에서 발매되는 카드 게임을 링크시킨 사업 전개전략은, 이제부터 예상되는 MMORPG(한국의 ‘리니지’와 같이 여러 명의 유저가 동시에 접속하여 펼치는 온라인 RPG게임)의 OSMU 전개에도 유효한 한 방침이 되지 않을까 한다. 실제로 <유희왕>은 <소년 점프> 본지에서 연재가 종료된 이후에도 오리지널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북미에서 제작, 공개되어 이것이 일본에 역수입 되는 현상이 벌어질 정도였다. 콘텐츠 시장자체가 세계 규모로 확대되어가는 현재, 하나의 원소스가 각 유저에게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차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전략이 이제부터는 반드시 필요해 질 것이다.
2005-11-22 10: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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