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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만화 3

1968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Comix

 

글  |김성훈 (한국만화문화연구원 연구원 wasoung@hanmail.net)

 
2003년 2월, 미국 플로리다 대학에서는 전년도에 이어 두 번째 만화 컨퍼런스가 열렸다. 회의의 주제는 '언더그라운드'였으며, 로버트 크럼(Robert Crumb), 빌 그리피스(Bill Griffith), 킴 데치(Kim Deitch), 아트 슈피겔만(Art Spiegelman)등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언더그라운드 만화(이하 Comix)의 무대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였던 여러 작가들이 이 회의에 참석했다. 30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이들이 모인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것은 ‘만화의 언어를 창조적으로 확장했고 만화의 서사적 잠재력을 새롭게 인식’했던 Comix에 대해 한 세대(世代)가 지난 뒤 다시 평가하기 위해서였다. 30여 년 전,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으며,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창작 그리고 연대
 
Psot-Comix를 이끌었던 <Raw>. 1979년에 아트 슈피겔만이 앞장서서 만들었다. 사진은 1980년에 발표된 두 번째 이슈.1960년대 후반 샌프란시스코 거리에서 포문을 열었던 Comix는 당시 미국 반문화(counterculture)의 상징들, 이를테면 반전·마약·성(性) 등에 관한 이야기를 주요 테마로 다루었다. 그 내용의 핵심은 미국 사회가 지니고 있던 기존 가치관에 대한 저항이었다. 잘 짜여진 중산층 가정의 이미지도, 슈퍼맨으로 덧씌운 강한 미국의 모습도 Comix에서는 비판과 풍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므로 Comix는 새로운 힘이었고, Comix 작가들은 미국 사회의 새로운 인종이었다. 그들이 대중을 만나는 방법은 상업적인 지면을 통해서가 아니었으며, 미술관의 벽면에서도 아니었다. 거리에서 독자들을 만나 대중성을 키웠으며, 그것은 예술과 삶을 하나로 일치시켜 나가는 과정이었다. 그곳에는 자신들이 원하는 형태와 스타일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존재했다.
언더작가들은 자신들의 모험을 지속시키기 위해 안정된 직장과 학교를 기꺼이 버렸다. 언더매체 가운데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었던 <Berkely Barb>나 <East Village Other>(이하 E·V·O)와 같은 경우는 작가들에게 얼마간 재정적 지원을 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언더작가들이 자신들의 판타지를 표현할 수 있었던 자유의 대가로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돈은 생존의 문제라기보다는 창작된 작품들의 출판과 판매로 이어지는 생산적인 문제와 상관이 있었다. 작가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는 출판사와는 등을 돌렸으며 그것은 언더작가로서 자존심에 관한 문제였다. 그래서 한번 메이저 무대 혹은 상업적인 지면을 떠나 언더그라운드에 몸을 담았던 작가들은 애써 다시 명성과 돈을 쫓아가지는 않았다.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믿어주는 편집자와 일하기를 원했다. 그런 믿음이 윌리 머피(Willy Murphy)나 아트 슈피겔만(Art Spiegelman)와 같은 작가들이 물리적으로 좋은 창작환경을 지닌 상업만화를 떠나 언더만화계로 뛰어들게 만들었던 요인이다.
거리의 풀꽃처럼 성장했던 언더만화의 속성은 작가들을 연대의식 속으로 묶이게 했다. 작가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그것을 공론화시킨다. 이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데 한 가지가 지난 여름호에서도 이야기된 바 있는 ‘Cartoonists Co-op Press’(이하 Co-op)이다. 작가들이 모여 자신들의 책을 직접 찍어냄으로써 독립출판의 선례를 남겼던 이 출판사는 빌 그리피스(Bill Griffith), 킴 데치(Kim Deitch), 제이 린치(Jay Lynch)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책을 출간한 이후, 매체가 없어서 작품을 선보이지 못했던 다른 신진언더작가들의 인큐베이터 역할도 하게 된다.
미국만화가동맹의 로고. 언더작가 데니스 키친이 만든 언더만화 전문출판사인 Kitchen Sink Press에서는 UCWA의 로고를 상품화했으며, 현재도 판매되고 있다. 작가들을 하나로 모이게 했던 다른 한 가지는 미국만화가동맹(United Cartoon Workers of America, 이하 UCWA)이다. 1970년 여름, 스페인 로드리게즈(Spain Rodriguez)를 비롯한 몇몇의 언더작가들이 이 명칭을 정한 이후, 모임은 작가와 출판사 사이의 명확한 관계, 자신들의 작품에 관한 저작권, 로열티의 표준화 등 현실적인 문제들을 고민해 나갔다. 여러 매체에 발표된 자신들의 작품에 관한 권리에 대해 작가들 스스로 공론화시킨 것이다. 가령, 표지에서 책정된 가격의 10%에 대한 로열티를 작가들의 권리로 만든 것이나, 인지도가 낮은 작가일지라도 작품에 대한 물리적인 가치는 동등하게 하는 것 등을 통해 자신들의 열정과 가치를 지켜나가고자 했다. 한편, UCWA는 모임이 최초 시작된 샌프란시스코 이외에도 언더작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진 지역에는 지부가 설치되었다. 예를 들면, 언더작가 데니스 키친(Denis Kitchen)이 만든 출판사 Kitchen Sink Press가 위치했던 밀워키가 대표적이다.
 
부흥기, 초판 만부 매진신화
 
1973년 <Bijou Funnies>를 통해 발표된 제이 린치의 <Geek Brothers>. 히피 삼형제의 모습을 통해 현실을 풍자한다.Comix가 규모면에서 가장 융성했던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반에는 한 달에 10만부씩 판매가 되는 작품도 있었다. 독립출판사였던 Co-op의 경우만 하더라도 초판 인쇄 만부가 모두 소비되었을 정도이다. 각각의 잡지는 고정 독자들이 즐비했고, 매주 새로운 만화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이처럼 양적으로 정점에 다다랐던 시기에 생산된 Comix의 대표적인 잡지와 이슈, 출판사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Print Mint : Yellow Dog(잡지), Arcade(빌 그리피스), Mom's Homemade Comics(데니스 키친) 
* Rip Off Press : Wonder Wart-Hog, Fat Freddy's Cat, Freak Brothers(이상 길버트 쉘톤), Flamed Oot Funnies(윌리머피), Mother Oats Comix(잡지)
* Kitchen Sink Press : The Spirit(윌 아이즈너), Snarf(잡지)
* Last Gasp  Eco-Funnies : Wimmen Comix(잡지), It Ain't Me Babe(잡지), Slow Death Funnies(잡지), Air Pirates(잡지),
언더출판사들이 만든 작품집의 형태는 크게 두 가지 형태를 띄고 있다. <Freak Brother>, <The Spirit>의 경우처럼 한 작가의 특정 작품이 하나의 이슈(issue, 미국 만화책 제본단위)로 만들어진 경우가  한 가지이며, <Slow Death Funnies>나 <Yellow Dog>처럼 2명 이상의 작가가 모여 앤솔리지(작품 모음집)의 형태를 보이는 것이 두 번째이다. 특히 작가 사이에 연대의식이 강했던 언더작가들의 경우, 메이저 출판사보다 앤솔리지의 형태를 많이 보여 준다. UCWA가 결성된 이후에는 작품이나 잡지 표지에 UCWA의 로고를 삽입하여 자신들의 생각과 의지를 대외적으로 표명하기도 했다. 한편, <E·V·O> 같은 언더매체가 <The Gothic Blimpworks>같은 언더만화 전문지를 만들기도 했다. 이외에도 <Snatch>, <Bijou Funnies>와 같은 작품집들이 당시에 많은 이들의 입에서 회자가 되었다.
언더작가들 역시 주류 작가들의 경우처럼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개별 작품들은 흔히 시리즈로 구성되어 하나의 에피소드가 하나의 이슈를 구성했다. 언더작가들이 만든 캐릭터의 경우 대부분 독특한 개성을 지닌다. 그 개성은 이쁘게 포장되거나 무조건적인 승리자의 모습을 가진 것이 아니라 많은 경우 현실부적응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지럽고 혼란했던 당시 미국사회에 대한 비판을 현실부적응자들의 모습을 통해 비꼬고 풍자화 했던 것이다. 대표적인 캐릭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좌측 상단으로부터 시계방향으로 Trashman, Zippy, Crumb, Wonder Wart-Hog▲ Trashman : 폭주족 출신 만화가인 스페인 로드리게즈의 대표적 캐릭터. 자본가와 권력자를 매우 혐오하며, 급진적인 행동을 보여 준다.     
▲ Zippy : 광대옷을 입은 철학자. 빌 그리피스에 의해 탄생된 이 캐릭터는 현재 국제적인 아이콘이다. 베를린 장벽에서조차 등장했다고 전해진다.
▲ Wonder Wart-Hog : 길버트 셀톤이 슈퍼맨을 희화화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캐릭터. ‘변태’라는 단어가 떠오를 만한 외모에서 그의 엉뚱한 행동이 이미 예견되어진다. 
▲ Crumb : 크럼의 자화상격인 캐릭터. 주로 자폐적인 증상을 많이 보여 준다. 소외, 고독, 우울 등이 이 캐릭터의 주요 테마다. 

변화를 위한 모색 그리고 Post-Comix
 
1960년대에 나타났던 언더신문(반문화매체)의 가공할 만한 양적 팽창은 도리어 1970년대에 들어서며 급속한 쇠퇴를 경험하게 된다. 1968년에 발행되던 500여 개의 언더매체 가운데 70년대에는 단지 40개 정도만이 생명을 이어나간다. (이들 가운데 샌프란시스코 태생의 대표적인 언더매체인 <Ralling Stones>처럼 오늘날에도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극히 드물다.) 언더매체의 몰락은 한 시대가 끝났음을 말해주는 상징적인 의미였다. 더러는 대기업에서 주는 광고를 싣다가 자본의 논리에 잠식당했고, FBI 등 국가기관을 통한 정치공작에 의해 사라지기도 했다. 그와 함께 사회·문화적인 환경도 바뀌었다. 베트남전은 끝났고, 블랙팬더당(무력을 통한 흑인인권운동 주도)은 해체되었으며, 히피들은 사라져갔다.
Comix 활동이 정점에 다다랐던 1973년, 연방최고법원이 ‘포르노’에 대한 범위를 각 주(州)마다 자의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허용한 후, Comix의 무대는 급격히 축소된다. 작품의 판매대행을 맡아주던 ‘hip 샵(히피전문매장)’은 위험(포르노상점이 아닌 일반상점에서 포르노를 판매할 경우 당할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Comix를 판매할 수 없었다. 게다가 성(性)과 폭력을 얄팍한 상술로 팔아먹으려는 이들에 의해 초기의 정신들이 퇴색되었는데, Comix라 불리는 작품 가운데서 ‘불량품’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반문화의 기치를 올리며 기성문화를 비판했던 Comix의 순수성에 이것은 치명적이었다. 더 이상 Comix는 자신들의 이상(理想)을 이야기하기 어려웠으며, 자신들만의 개성을 보여줄 수 없었다. 우후죽순 발표된 작품들은 그저 'Comix'라는 브랜드 아래 히피를 상품화했으며, 마약과 성의 ‘놀이’를 정당화했다. 이제 Comix라는 의미는 그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게 된 것이다.
70년대 중반 이후, 과잉생산과 의미의 상실 그리고 검열과 법정기소 등으로 몸살을 앓던 Comix는 돈을 노리고 들어왔던 출판사와 허풍쟁이 아마추어들이 사라지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70년대 말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소위 대안만화(Alterantive Comics) 혹은 뉴코믹스(New Comics) 움직임이 그것인데 이들의 작품은 <Arcade>, <Weirdo>, <Raw>, <Cascades>등의 잡지를 통해 나타난다. 살아남은 Comix 세대의 정신은 20년의 창작기간을 걸친 <MAUS>(아트 슈피겔만)를 통해 증명된 바 있다. 또, Kitchen Sink Press와 같은 언더출판사는 사업영역을 확대 Comix 작품들의 재생산과 팬시상품화 등의 다각적인 접근을 통해 현재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빌 그리피스의 ‘Zippy’는 조직적인 배급망을 통해 세계 수백 개의 신문에 실리고 있으며, 크럼과 쉘톤은 상업주의에 팽배한 미국을 떠난 보다 자유로운 환경을 위해 프랑스로 건너가 창작을 이어가고 있다.
1968년 9월에 17번째 발행된 언더매체 <Rolling Stone>한 시대를 풍미했던 언더그라운드 만화가들이 1980·90년대를 거치며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당연히 아니다. 많은 작가들이 자신들이 있어야 할 곳으로 자리이동을 했으며, 언더그라운드의 무대에서 계속 버티어 낸 몇 명의 작가는 여전히 만화를 업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좋아했던 것을 했고, 그에 대한 물질적 보상이 돌아오지 않음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들이 좋아했던 공간에 비록 자신이 아니더라도, 자신들의 동료가 지키고 있음을 축복해 준다.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는다고 해서 언더그라운드의 정신이 사라져버렸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어느 시점에서 어떤 내용이 아래에서부터 떠올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고 맞지 않고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요는 작가들 스스로에게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을 이야기했다. 
Comix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시대정신이 담긴 강한 메시지였다. 그 안에 풍자가 있었고 주류의 문화에 비수를 던지는 의미가 존재했다. 작품을 발표했던 작가들조차 자신들의 작품이 이처럼 오랜 기간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을 줄 몰랐다고 이야기하는 그 이면에는 무엇보다 시스템이나 구조에는 상관없이 자신들이 꼭 표현하고자 했던 내용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는 파격적인 내용이나 개성적인 스타일로 향하기 위한 작품 내적인 문제만이 아니다. Comix 작가들은 자신이 작가이자 동시에 판매상이었다. 작품이 실릴 매체 역시 자신들이 만들었으며, 자신들의 돈으로 인쇄와 출판을 담당했다. 그 실험이 꽃을 피어 지루한 중산층 가정의 이념과 미국식 영웅주의에 식상해 있던 독자들에게 보다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부여해 준 것이다.
2005-11-23 12: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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