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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만화기사
자기 팔은 자기가 흔드는 것
글 │주재국
 
아마추어와 프로는 종이 한 장의 차이
만화가를 포함한 예술가들은 어느 날 갑자기 프로가 된다. 그 재능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로부터 뚝 떨어진다는 말이 아니라 프로 작가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그렇다는 말이다. 오랜 시간 습작을 하고 스토리를 구상하고 자료를 모으면서 준비하는 과정을 거치지만 그것으로 만화가가 되지는 않는다. 그냥 지망생이거나 아마추어일 뿐이다. 누군가가 돈을 지불하면서 창작물을 세상에 내보내자고 말할 때, 그리고 그렇게 하자고 했을 때 프로 작가가 된다.
 
이십여 년 전에는 이 땅에서 만화가가 되기 위하여 필기시험을 통과해야 했지만, 강산이 바뀌었다. 데뷔하는 통로도 공모전과 연재 지면의 데뷔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로로 프로 작가가 될 수 있다. 개인의 홈 페이지에 재미 삼아 시작한 만화 몇 컷이 쌓이고 그것의 반응이 뚜렷한 경우 출판제의가 들어오기도 한다. 때론 졸업 작품집으로 준비한 단편이 상업 잡지에 발탁되어 실리기도 한다. 이번 부산 영화제에서 주목 받았던 영화 <용서 받지 못할자>도 졸업작품으로 기획됐지만 점차 주목을 받아 지원이 추가되어 개봉영화로 발전했다. 흔히 말하는 ‘입봉’(데뷔)을 졸업작품으로 한 것이다. 이처럼 독자와 작가의 경계도 뚜렷이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자신이 챙겨야 할 두 가지
독자 또는 아마추어에서 어느 날 갑자기 프로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모든 창작자들이 경험할 가능성이다. 그것은 온전히 자신이 노력한 결과이며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 창작자는 그 노력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 프로 창작자란 사적인 권리에 더해서 창작자로서의 권리를 지니게 된다. 작품이라는 유형의 창작 소유와 달리 그 작품에 대한 금전적 또는 권리적 소유는 법으로 내 것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한다. 창작과 동시에 저작권이 발생하지만 이것은 계약을 통해서 사고 팔 수 있는 권리이다. 당연히 이것에 대한 권리 소유 또한 창작자로서의 노력과 함께 자신이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것을 못 챙기는 현실
그런데 현실은 간단치 않다. 먼저, 창작자의 일반적 단계가 그렇듯이 열심히 노력을 하는 중에 자의든 타의든 계약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프로창작자가 된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사전 지식을 지니고 있는 예비 창작자들이 그리 많지 않다. 만화학과는 물론 다른 분야의 창작예술인 양성 과정에 저작권에 대한 강의가 개설되어 있지 못한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대학이 이런 상황인데 일반 경로로 데뷔를 하는 문하생이나 '나홀로' 데뷔작가라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둘째는 설사 사전지식이나 경험을 전해 들었다고 해도 현실에서 이를 적용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작용하고 있다. 해프닝으로 정리됐지만, 개그맨의 노예계약 파문이나 연예인의 소속사 분쟁은 신인만화가의 불공정 계약 체결과 결국은 같은 배경을 지닌다.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을 때, 즉 지원자가 많고 선택되는 경우가 제한적일 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지원자가 약자임을 알고 있다. 신인 가수라면 그저 음반을 내는 것이 더 큰 기쁨인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작가도 마찬가지이고 사회 모든 분야가 그렇다. 이 같은 구도에서 처음 데뷔하고 프로가 되려는 창작자들이 무슨 계약서의 항목을 따지고 조건을 저울질하겠는가? 설사 그럴 여유가 있더라도 계약조항의 내용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전보다 저작권 준수 실태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아직도 처음 프로가 되는 창작자들이 겪는 대표적 사례는 하나를 계약하려고 했는데 전부를 계약하는 것이다. 만화로 풀어 말하자면, 연재를 하기 위해 '연재 계약'을 맺었는데 저작권의 모든 계약을 팔게 되는 '저작권 양도계약'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연재되는 만화는 역동적으로 가지를 치는데 책으로 나오고 게임,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음반, 캐릭터, 해외진출 등 어디까지 확장할 지 아무도 모른다. 그 확장의 모든 것은 이득과 연관된 것이라 당연히 누가 주인이고 누가 적절한 배분을 받는지, 누가 더 기여를 해야 하는지를 밝혀 두어야 한다. 미리 예상하기 어렵고 매 확장마다 별개의 상황이 전개될 수 있으므로 각각의 계약으로 가는 것이 타당하다. 물론 창작물을 이용하여 상품화하는 입장에서는 어느 하나의 권리로는 수익률이 저조할 수 있으니 많은 권리를 계약해 두려는 경향이 있다. 이 경향은 잘못이 아니다. 다만 권리의 양도 범위를 정확히 설명하고 그에 합당한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미흡한 경우라면 일방의 의도에 상대방이 이용당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몰랐다는 말은 안 통한다
불합리한 계약 상황을 시일이 지난 후에 알게 된다고 해도 이미 법적 효력은 계약서의 내용에 따른다. '몰랐다'는 말은 법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실제로 계약 분쟁에서 나오는 질문 중 하나는 '한글을 모르셨나요?' 쯤 된다. 한글로 쓰인 계약 조항을 보고도 몰랐다는 것을 인정해 주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창작자의 자기 노력과 더불어 최소한 자신의 창작물이 최상의 상태로 소비자와 만나게 하려면 스스로 계약을 알아야 한다. 이것 또한 1차적으로는 자신이 흔들어야 할 팔의 움직임과 같다.
 
작은 변화
그럼에도 개인의 책임으로만 떠넘길 수 없는 것은 위에 언급한 구조적 입장의 불리함 때문이다. 또한 사전 지식의 습득 기회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관련 업계가 도모해야 할 부분이 발생한다. 이와 관련하여 12월 중에 만화학과를 중심으로 한 '저작권 특강'이 시작된다. 만화/애니메이션 학과는 물론 관련 창작인, 관계 단체들에게 최소한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을 전달하게 된다. 현재 서울 및 경기권을 대상으로 시작되는 이 강의는 정부가 지원하는 '만화저작권 보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결과에 따라 정식 교과목으로 확대하려는 생각이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대학 교과과정에 '만화애니메이션 저작권'이 포함되어 있어 어느 날 찾아 온 프로데뷔의 순간을 준비하게 한다.
저작권에서 계약이 지니는 중요성은 어느 한 쪽이 우세한 조건을 획득하려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창작자와 창작물을 상품화하는 입장보다 해당 창작물이 가장 좋은 작품으로 자리할 수 있도록 최상의 조건들을 협의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이 문화전반과 만화 계약 분야에 일반화될 때 문화산업의 역동적 움직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만화 칼럼니스트  jjk8646@hanmail.net
2005-11-28 18: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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