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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기사
육칠십 년대 명랑만화의 전성기를 찾아서

작가, 그 오래된 기억 속으로 - 신문수 윤승운 이정문

 
 글 | 김영진 기자 (innakim@qcomic.com) 사진 | JAY’S STUDIO
 
얼핏 둘러보면 최근 우리 주변에서 정통 명랑만화를 찾아보기가 많이 힘들어졌다는 걸 깨닫는다. <도깨비 감투>, <맹꽁이 서당>, <심술첨지> 등 기발한 표현법과 과장된 대사로 우리들의 어린 시절을 즐겁게 해 주었던 명랑만화. 하지만 이제는 각종 만화 매체에서 자그마하게 한쪽 귀퉁이를 차지할 뿐이다. 그러나 아는지? 한때는 명랑만화가 만화잡지의 절반 이상을 점령하다시피 한 시절이 있었다는 걸. 그 전성기를 끌어냈던 신문수, 윤승운, 이정문 세 분의 선생을 한 자리에서 만나 봤다.
 
지금이야 너무나 세분화 되어 버린 장르 개념으로 인해 오히려 ‘명랑만화’라는 장르에 대해 확실한 구분을 규정하기가 어려운 점도 있지만, 60년대만 해도 국내의 만화 장르는 극화, 순정만화, 명랑만화 세 가지밖에 없었다. 그 시기를 이끌어 왔다는 자신감 때문일까, 혹은 수 십 년 동안이나 함께 해 왔던 끈끈한 우정 때문일까, 세 분들은 서로의 말꼬리를 물고 물어 한 걸음씩 명랑만화의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서로를 칭찬하는가 싶더니,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하기도 하고, 또 특유의 유머감각을 터뜨리면서 한 편의 만화를 그리듯 재미있게 이야기를 쏟아냈다.
 
명랑만화의 선생님 길창덕
명랑만화의 전성기는 아동잡지가 막 생겨나던 1960년대라고 볼 수 있다. <새소년>과 <어깨동무> 등이 창간되던 당시, 만화가 없는 아동 잡지는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만화는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당시 극만화는 대본소를 이용하는 성인용 위주로 발간되고 있었으나, 명랑만화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장르였다. 세 분은 그러한 명랑만화 전성기를 이룩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길창덕 선생이라고 입을 모았다.
“사실 선배님이지만 선생님이라고 불러. 아주 묘하게도 재미있는 명랑만화를 보여 줬는데, 선생님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지자 기존에 활동하던 다른 작가들은 빛이 죽더라구. 조선시대 서예에서 파격을 보여 줬던 연암 박지원처럼, 기존의 것보다 더욱 재미있는 명랑만화를 길창덕 선생이 선보였던 거야.”(윤승운) 길창덕 선생에 대한 칭송에 여념이 없던 세 분은 길창덕 선생의 작업실에 자주 드나들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특히나 선생의 투철한 작가정신이 그러하다. “정말 고민을 많이 하셨지. 당대 최고 인기 작가였지만, 고작 2페이지 원고를 진행하면서, 중간에 딱 한 칸을 비워놓고 한참을 고민하더라고. 그 한 칸에 어떤 장면이 가장 어울릴지 도저히 생각이 나질 않아서 그런다며. 그런 자세는 정말 본받아야 해.”(신문수)
 
명랑만화, 결코 만만히 볼 게 아니다
명랑만화가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기까지는 작가들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제대로 된 연재를 따내기 위해 최소한 10년 이상은 공을 들여야 했고, 작품의 반복에서 오는 단순함을 탈피하기 위해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민해야 했다.
1, 2 명랑만화에서 달리는 다리 모양에 대한 변천사. 윤승운 선생이 간단한 몇 개의 선으로 생동감 있는 표현을 만들어냈으며, 신문수 선생은 더욱 심화시켜 단순한 동그라미만으로 표현했다.   3 이정문 선생의 <철인 캉타우>. 한국적인 SF 만화를 만들기 위한 시도를 통해 <알파칸>이후 선보인 대표작이다.  4 모험 명랑만화라는 컨셉트으로 선보인 <한심이 표류기>는 결국 심의 문제로 인해 <두심이 표류기>로 제목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5 신문수, 윤승운, 이정문 선생이 자신들의 ‘선생님’처럼 생각한다는 길창덕 선생의 작품 <꺼벙이>. “10페이지 정도의 연재물을 그릴 때의 얘기인데, 잡지로 연재되는 걸 보면 정말 재미있어. 등장인물이 뭣 때문인지 깜짝 놀라서는 하늘로 펄쩍 뛰면서 ‘헉!’이라는 의성어를 손으로 붙잡기도 하고, 그 외에도 재미있는 표현들이 많이 있었거든. 그런데 그 연재물이 책으로 묶여서 나온 걸 보면 똑같은 표현이 여러 번 나오니까 좀 그렇더라구. 또 내용적인 면에서도, 주로 명랑만화의 내용이란 게 동네 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거였어. 그 당시에 명랑만화란 스토리가 중요한 게 아니고, 상황에서 보여 주는 표현 자체가 재미있는 거였거든. 그런데 그 좁은 무대에서 매일 하는 일이 똑같아지니까 지겹더라고. 그래서 ‘명랑 모험’이라고 생각을 바꾸다 보니 우주여행을 떠나고, 오지 아프리카 탐험도 하고. 그러다 보니 스토리도 생겨난 거지.”(신문수)
이정문 선생의 <알파칸>은 한국 SF 로봇 만화 역사의 초기를 이끌었던 작품으로 유명하다. “언젠가부터 TV에 아톰이 앵앵거리면서 왔다갔다 그러더니, 좀 있다가 마징가가 나오고… 뭔가 이상하다 싶더라구. 우리만의 SF 만화를 만들어야겠다 싶어서 <알파칸>을 시작했지. 한 10년 동안 열심히 그리면서 노하우를 쌓았고, 75년부터 <철인 캉타우>를 그렸지.”
이런 갖가지 고민 속에서 태어난 작품들이기 때문일까, 신문수 선생조차 윤승운 선생이 만들어낸 독창적인 표현에 끊임없이 감탄한다. “명랑만화를 보면 사람이 뛰어갈 때 다리를 제대로 표현하지 않고 간단히 선만 여러 개 겹쳐서 표현을 하잖아. 그게 윤형이 시작한 거야. 당시 뛰어가는 사람을 그릴 때는 항상 앞다리와 뒷다리가 고정되어 있었는데, 더욱 간략하게 표현을 하려다 보니 그런 그림이 나왔던 거지. 그 후로 다른 사람들이 그 표현을 따라서 사용하고, 이후에는 아예 동그라미를 여러 개 겹쳐서 표현하는 방식이 나오기도 하고.”
 
심의, 명랑만화도 예외는 아니다
갑자기 세 분의 목소리가 격해지나 했더니, 심의가 도마에 올랐다. 결국 명랑만화도 심의를 비껴가지는 못했구나 싶었더니, 오히려 더 심했다고 한다. “왜 대사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한 글자만 크냐고 따지잖아. 만화는 과장법이란 게 있어서 ‘아!’ 하는 말을 크게 쓸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런데 그게 왜 크냐 이거지. 또 명랑만화는 작가가 직접 대사를 손으로 넣는 게 하나의 재미야. 그런데 그런 걸 가지고 글자가 조잡하다고 그러면서 뭐라고 하더라고.”(신문수)
“<요철 발명왕>에서 교장이 뛰어가는 것을 그렸더니, ‘교장은 점잖은 사람이라 뛰어가면 안 된다.’ 그러더라구. 또 동아일보에서 <한심이 표류기>를 연재했는데, 책으로 나올 때 ‘한심이’는 안 된다고 하더라구. 주인공 이름이 ‘한심이’인데도 책 제목에 ‘한심이’라는 말을 써서는 안 된다잖아. 그래서 결국 <두심이 표류기>로 책을 냈다니까.”(윤승운)
“어느 스포츠 신문에서 <심술통>을 그리는데, ‘왜 괜히 심술을 부리느냐!’며 항의도 많이 들어왔다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중에 문광부에서 그 만화에 만화문화상을 주더군. 점점 나아지고는 있는 것 같지만, 그 당시는 정말 말도 못 했어.”(이정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명랑만화이기에 오히려 심의의 수준이 한층 더 높았던 것은 아닐까.
 
명랑만화의 단절?
문하생 제자를 키우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에 신문수 선생은 대뜸 화를 낸다. “그건 정말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 내가 누군가를 내 밑에 두고서 키운다는 것은 나와 비슷한 모방품을 만드는 일밖에 안 되는 거야. 우리가 오랜 시간에 걸쳐 스스로 노력해서 성장했듯이, 지금 작가들도 열심히 자기만의 뭔가를 찾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해.” 문하생 제도 같은 것에 상당히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스스로 성장한 세 사람이기에 더욱 자립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명랑만화를 그리려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는 많은 안타까움을 느낀다. “대학 만화과에 가 보면 50명의 학생 중 명랑만화를 하는 놈은 단 둘이야. 학생들이랑 얘길 해 보면 돈이 안 되기 때문에 안 하겠다는 거야. 그러고 보면 사실 요즘 제대로 된 명랑만화가 없어. 일본에 ‘짱구’ 같은 게 있고, 프랑스에는 ‘띠떼프’ 같은 게 있는데, 한국에는 자기만의 특별한 스타일을 가진 그런 게 안 보여.”(윤승운) 강단에 서고 있는 윤승운 선생은 명랑만화의 맥이 끊기는 기색을 대학 학생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며 가슴 아파한다.
“예전과 같은 아동잡지가 없기 때문이야. 지금 명랑만화가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스포츠 신문이나 학습만화밖에 없어. 그런데 스포츠 신문이야 어린이를 위한 게 아니잖아. 그리고 학습만화는 단지 학습만화지 진짜 ‘명랑만화’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이정문)
자신들의 뒤를 이은 진짜배기 후배로는 김수정 선생을 꼽는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선뜻 다른 후배 작가의 이름을 딱 부러지게 말하지 못하는 선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쩐지 마음 한 켠에 아쉬움이 자리잡는다.
 
아직도 끝나지 않는 ‘명랑만화’
한 세트마냥 40년을 함께 하면서도 서로 경쟁하며 자기 일을 해 온 세 분은 최근 공동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들이 모여서 한자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어. 각각 200페이지짜리 한 권씩을 릴레이 만화 형식으로 그리고 있다고. 우리의 온갖 진수를 쏟아 부은 작품이 될 거야.” (이정문)
얼마 전 신문수 선생이 첫 권을 펴낸 한문 학습만화 <놀부 한자>가 그 공동작업의 시작이다. 신문수 선생에 이어 지금 작품을 준비하는 사람은 윤승운 선생이다. “이번에 나온 신형의 원고를 보면 아직도 팔팔하더만. 나도 이제 70페이지째 그리고 있는데, 힘들긴 하지만 참 재밌더라고.” (윤승운)
“요즘 젊은이들에게 명랑만화의 진수를 봤느냐고 물어보고 싶어. 우리가 만화를 그린 지 4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현역이야. 안 늙었어. 어린이 잡지가 있다면 그 수준에 맞게 할 수 있다는 의욕이 넘치고 있어. 솔직히 요 몇 달간 그렸던 것들도 정말 재미있게 했어.” (신문수)
마치 명랑만화를 스스로 일궈낸 주인공들이 다시 그 토양을 되살려 내겠다는 공동 프로젝트처럼 보이기도 한다.
60이 넘은 나이, 그러나 아직 녹슬지 않았다. “작가란 함께 살아야 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며, 오랜만에 만난 김에 술자리로 자연스럽게 옮겨가는 세 분을 보면서, 오랜 기간을 이어온 명랑만화의 뿌리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신문수 1939년생. 1964년 대중잡지 <로맨스>에 ‘카이젤 상사’로 데뷔. 남녀노소를 불문한 다양한 종류의 잡지에 명랑만화 작품을 발표했으며, 대표작으로는 <도깨비 감투>, <로봇 찌빠>, <오대리 행진곡>, <신판 봉이 김선달> 등이 있다. 현재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으로 재임 중이다.
윤승운 1943년생. 1960년 잡지에 투고하여 데뷔, <만화왕국>에 ‘꼴찌와 한심이’ 연재.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명랑만화작품을 다수 발표했으며, 80년대 중반부터 역사만화 집필에 집중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두심이 표류기>, <요철 발명왕>, <맹꽁이 서당> 등이 있으며 한국만화가협회 부회장으로 재임 중이다.
이정문 1941년생. 1959년 월간 <아리랑>에 ‘심술첨지’로 데뷔. 심술을 주제로 한 명랑만화작품을 다수 발표했으며, 작품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캐릭터들을 만들었다. 특히 <알파칸>은 명랑 SF 만화의 본격 시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심술첨지>, <알파칸>, <철인 캉타우>, <심술통> 등이 있으며 한국만화가협회 이사로 재임 중이다.
2005-12-06 15: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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