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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정치를 만나다 - 민병두 & 이희재

만화 광장의 중심에서  정책을 외치다


글 | 김기홍 (본지 객원기자 firefox9@nownuri.net)  사진 | JAY’S STUDIO

 

진행 이재식(본지 발행인)
시간 2월 24일 
장소 국회의원 회관 민병두 의원 사무실

얼마 전 백 명이 넘는 국회의원들이 장기기증 확산운동의 일환으로 각막기증을 약속해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열린우리당의 민병두 의원이 제안한 일이다. 국회 문광위 소속인 민의원은 동남아시아를 방문해 한류실태를 조사한 뒤 냉정한 경고성 보고서를 제출해 호평을 얻은 바도 있다. 젊은 시절 노동운동을 하다 고초를 겪었고, 문화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워싱턴 특파원과 정치부장을 거쳐 국회의원이 된 전형적인 진보성향 언론엘리트 출신 정치가다.
그런 그가 만화계 출신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20여 년 전 우리 만화사에 한 획을 그었던 성인만화잡지 <만화광장>의 편집자로 몸을 담았던 것. 그래서 2004년 11월 3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4회 ‘만화의 날’ 기념행사에 문광위 소속 의원 자격으로 참석했던 그는 과거에 인연을 맺었던 많은 만화인들에게 가족적인 환대를 받기도 했다.
<계간 만화>는 당시 함께 활동했던 만화가들 중 이희재 화백과 민의원의 대담을 마련했다. 젊은 시절 작가와 편집자로 만났던 두 사람이, 세월이 흘러 국회의원과 우리만화연대 회장으로 다시 만나 인연을 이어가게 된 것이다. 만화계 출신으로 문광위 일을 보는 국회의원과 침체된 만화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후진을 양성할 책임 있는 만화가의 만남인 만큼, 특히 정책의 문제에 있어 좋은 구상들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대담을 기획하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만화광, <만화광장>은 소중한 안식처였다
 
민병두 (표본으로 가져간 <만화광장> 1986년 12월호를 뒤적이며) 박흥용 씨의 ‘검’이 있네요. 제가 있었을 때 신“문광부, 만화산업 관계자, 학계, 평론가, 협회에 계신 분들을 모아서 정책세미나도 하고, 외국사례 연구하고, 그래서 제대로 된 정책을 개발하고 싶어요.”인공모전을 했었고 박흥용 씨가 ‘백지’라는 만화를 냈었죠. 심사위원장이었던 이원복 교수가 만화의 수준이 대단하다고 놀라면서, 작가 학력이 고졸인데 본인이 그린 것이 맞는지 확인을 좀 해봤으면 좋겠다고 그러더라구요. 작가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굉장히 불쾌해 하더군요. 학력하고  무슨 상관이냐고(웃음). 그 정도로 작품 수준이 높았다는 거죠. 공수부대원이 휴가 나와서 사람들 패고, 광주민주화운동 빗대가지고 구역질하고, 그런 내용이었거든요. 그때 박흥용 씨 부인이 같이 만화담당 기자였었고. 승영란 씨라고 여성지 편집하셨던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 남편이 <프레시안> 편집국장 박태견 씨인데, 그 분이 저를 <만화광장>에 소개시켜 줬죠.
이재식 그랬군요. <만화광장>과 인연을 맺게 되신 이야기를 좀 더 들었으면 합니다.
민병두 기본적으로 어릴 적부터 만화를 좋아했습니다. 60년대에 10원에 다섯 권인가 그랬죠. 특히 이상무 선생의 팬이었어요. 그 분 작품은 거의 다 볼 정도로. 소외된 아이의 세계와 그 시각으로 본 사회상, 한과 응어리를 갖고 자라면서도 꿋꿋이 극복해 내는 삶. 대학 시절까지도 좋아했죠. 가요사로 치면 ‘이웃집 순이’ 노래 부르는 김민기 선생이라고 할까.  아무튼 그 당시 저는 만화 마니아였어요. 그러다 86년 1월 25일 결혼을 했고, 반국가단체 구성죄로 한번 감방에 들어갔다 나왔어요. 그 뒤에 무슨 사건만 터지면 이 사람이 배후에 있지 않나 조사받는 처지가 되다보니, 어떤 때는 합법적 신분을 취했다가 어떤 때는 피해 다니고 이런 생활의 반복이었죠. 결혼했는데 가진 건 없고, 좀 벌긴 해야겠고, 그래서 친구인 박태견 씨에게 말을 했더니 <만화광장>을 소개시켜 주더라구요. 느낌이 딱 왔어요. 1985년 12월에 <만화광장> 창간했다는 신문광고는 봤었거든요. 그때 굉장히 화제였어요. 품격이 있었으니까요. 빌려 보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다닐 수 있고. 그런 잡지사에 들어가게 돼서 참 좋았어요. 유명하신 만화가 선생님들도 만날 수 있었고. 그때 발행인이 이원우 선생이셨죠. 금호그룹에 계셨던 분인데, 문화에 참 관심이 많았어요. <만화광장> 운영해서 돈을 버시진 못한 것 같아요. 은퇴하셔서도 지금 논의 중인 당인리 화력발전소 문화시설화 계획에 구겐하임 미술관 진출 사업을 추진하시는 등, 그런 쪽으로 관심이 있으세요. 그 분이 제가 전과가 있다는 걸 아시면서도 신경을 안 쓰시더라구요. 전과가 있으면 위장취업 아니면 취직을 할 수가 없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하셔서 그냥 흔쾌히 들어가게 됐죠.
이희재 어릴 때는 부모한테 구박 받고 만화방에 피신했고, 또 이렇게 장발장처럼 쫓길 때는 안아 주고. 만화가 그런 역할을 하는 거죠.
이재식 그때 마침 <만화광장>이란 자리가 있어서 다행이었네요.
민병두 참 좋고, 자부심이 느껴지더라구요. 안 그럴 수도 있거든요. 가령, 당시 인기와 격이 있었던 지적인 잡지들, <광장>이나 <뿌리 깊은 나무> 같은 잡지는 안 되나, 이런 생각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았어요. 제가 만화를 좋아했으니까. 만화를 얼마나 좋아했냐 하면, 한때 노동운동을 인천, 부천 쪽에서 했었는데, 거점을 만들려고 제 동생이 안산에다 차린 게 만화가게였죠. 다 들어먹었지만(웃음)….
이재식 담당하셨던 만화가 선생님들은 어느 분이셨습니까?
이희재 특별한 담당제가 아니었어요. 지금과 좀 다르죠. 제 경우도 민의원님이 담당자라면 담당자였죠. 생각“만화가 봄을 맞이하고 온기를 찾으려면 외형과 하드웨어를 갖추는 일도 필요하지만, 창작의 진원, 샘터를 만드는 작업이 더욱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나는 게, ‘성질수난’이라고, 지하철에서 공수부대원이 술취해가지고 신문 파는 애를 때리고, 그걸 본 한 젊은이가 군인하고 맞짱을 뜨는 내용의 만화를 그렸었죠. 광주 민주화운동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라 그걸 암암리에 상징한 것인데, 앞집 사는 아주머니가 보고 와서 흥분해서 말씀하셨던 실화를 작품화 한 거였죠. 당시는 군인의 힘이 커 보이던 시기였어요. 군인이 누구를 때린다 그래도 감히 못 건드리던 때였는데, 한 젊은이가 나서서 대들다가 깨진 이야기를 만화로 낸 거죠. 민의원께서 저한테 전화를 주셔서, 공수부대 다니는 군인이 편집부로 전화를 해서 항의했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나는 그런 쪽 일은 잘 모르니까 고민이 되더라고요. 나중에 편지가 오면 주소를 달라고 해서 제가 편지를 썼어요.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잡지이고, 예술 창작에 대한 이해가 있으시길 바란다. 다만 개인적으로 군인 아저씨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으면 사과드리겠다, 그렇게 써서 보낸 기억이 있는데, 그 뒤로 별일 없었죠?
민병두 아마 이원우 사장이 안기부인가 어디서 전화를 받았던 것 같아요. 그때 <만화광장>이 굉장히 인기가 있었거든요. 많이 팔리기도 했고. 그 만화는 공수부대를 은근히 공격하는 건데, 당시 군인이란 신성하고 절대적인 거여서 만화가 군을 그렇게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했거든요. 단행본 만화였다면 읽어보질 않으니 문제가 없었을 텐데, 잡지다 보니 안기부에서도 읽어본 사람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이 사장은 그냥 “그런 일이 있었어.” 그러고 말았던 것 같아요.
 
낮에는 <만화광장> 일하고, 밤에는 민주화 운동했던 시기
 
이재식 <만화광장>이라는 그릇 자체는 지금 생각해도 대단히 파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민병두 만화평론도 아마 최초로 실렸을 거예요. 당시 승영란 씨 남편, 박태견 씨 있죠? 필명이 박만기인데, 글 잘 쓰거든요. 그 당시 최초로 만화평론을 시도했었어요. 만화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던 시기에 평론을 통해 만화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죠.
이희재 평론을 통해 안내하고, 비판하고, 경우에 따라 부추겨 주고, 이런 역할을 하면서 만화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죠. 물론 70년대에도 깜빡별처럼 있었고, 일제시기엔 최영수라는 분이 계셨어요. ‘예술가는 인민에 봉사해야 된다.’ 그런 얘기를 할 만큼 일찍 깬 분이었죠. 그런 만화평론의 전통이 있기는 했지만, 대중사회 전반에서 보자면, 만화에 대해 논하는 것은 우습다고 생각해 온 게 사실이죠. <만화광장>이 나온 무렵부터 본격화되면서 대중들과 생생하게 교감하기 시작한 겁니다.
이재식 최열 선생도 이때 활동하지 않으셨나요?
이희재 조금 나중이죠. 박만기 선생은 시작하는 멤버고, 최열 선생은 그 바로 뒤에 들어왔죠. 미술의 시각으로 만화를 보는 건데, <만화광장>이란 잡지가 워낙 활력이 있으니까 가세를 했던 거죠.
이재식 출판편집자는 대개 그런 얘기를 합니다. 작가의 최초의 독자라는 점에서 대단한 매력이 있다고요. 그래서 작가와 크게 교감을 하게 되죠. <만화광장>에서 편집자로 일하시면서, 또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당시의 느낌 같은 거 기억나는 것 있으신지요?
민병두 글쎄요. 식자 붙이느라고 바빠서(웃음)…. 구체적인 만화제작에 대해서는 몰랐기 때문에 무척 신기했어요. 만화가 이렇게 그려져 오는 거구나 하고요. 스토리에 대해서 편집자가 말을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그려 주시면 그대로 냈죠. 최고의 만화가들이 그려오는 거니까. 다만, 너무 재미없다 싶으면 승영란 씨가 상대방 기분 나쁘지 않게 말을 참 잘 하시는 분이셔서, 웃으면서 만화가 선생님들과 작품 방향에 대해 얘기하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한 4개월 정도 있었죠. 낮에는 <만화광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민주화운동 했는데, 경찰이 아침 8시에 덮쳐서 끌려갔어요. 아파트 경비가 신고한 거죠. 밤마다 이상한 놈들이 온다고. 근데 다행히 파출소에다 신고를 했어요. 파출소는 하도 많이 들어가 보고 원체 큰 사건도 겪어 보고 그래서, 어떻게 금방 나오게 됐죠.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안 되겠다. 낌새를 차렸구나. 그래서 불쑥 전화하고 그만두게 됐어요. 박흥용 씨 부인하고 친했었는데, 오빠동생 하면서. 나중에 섭섭했다고 그러더라구요. 전화도 한통 없이 그만뒀다고(웃음). 그 뒤에 제 아내 목혜정 씨하고 부부 혁명가라고 신문에 크게 나오고 그랬으니까, 아마 그것 보고 사연을 알았을 거예요. 개인적으로 <만화광장>에서 일할 때가 참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편안하고, 좋으신 분들 만나고, 사무실도 양지바른 곳이었고…. 인사동 사거리 올라가다 첫 번째 골목 2층인데, 퇴근할 때 포장마차에서 해삼에다 소주 한병 먹고 집에 가곤 했던 기억이 나네요.
 
창작의 샘터가 될 웹진 만들기에 만화단체가 전력 중
 
이재식 다음 주제로 넘어가서, 의원님께서 만화계 출신으로서 문광위 활동을 하고 계시니까 정책 얘기를 좀 해봤으면 합니다. 검열에 시달리던 암흑기도 있었지만, 이제는 적극적으로 문화부흥을 주창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만화 또한 지원정책이 개입하면서 몇 해가 지났고 일정한 성과도 거두었습니다. 전에 없던 일이어서 만화계로서 환영하는 바인데요, 최근의 상황과 운영에 대한 평가를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이희재 만화가로서 국가의 지원은 참으로 감지덕지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다만 욕심이 있다면, 어차피 국민의 세금으로 예산을 마련해 지원하는 거라면 급소를 찔러서 가려운 데를 제대로 긁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죠. 어떤 부분은 제대로 하고 있지만, 어떤 부분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이걸 의논해 가면서 풀어야죠.
이재식 문광위에서 활동하시다보면 만화 얘기가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까?
민병두 사실 드뭅니다. 작년과 올해 문광위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대개 만화정책보다도, 예를 들어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이 <그리스 로마신화> 표절문제를 제기했고, 김재원 의원이 <오세암>애니메이션에 대해 얘기했었죠. 만화는 작년 국정감사 때 한번 했었고, 오늘  콘텐츠진흥원의 예산 600억 원 가운데 만화 예산이 14억도 채 안 되는 부분에 대해 질의를 할 예정입니다. 그동안 제가 만화계 출신으로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당의 기획위원장을 맡다보니 회의가 너무 많아서 대단히 바빴습니다. 4월 전당대회가 끝나고 나면 현장도 찾아다니고 열심히 활동할 계획입니다. 문광부, 만화산업 관계자, 학계, 평론가, 협회에 계신 분들을 모아서 정책세미나도 하고, 외국사례 연구하고, 그래서 제대로 된 정책을 개발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만화산업이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30개국 정도에 수출되고 있고, 우리 만화만 출판하는 잡지도 예닐곱 개고, 프랑스의 <도깨비>, 인도네시아의 <챔프> 이런 것들이 발간된다고 하는 걸 보면 말이죠. 경쟁력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게 인식제고인데, 마침 지금의 40대 부모들이 80년대에 만화를 보면서 성장하고 푹 빠져있던 세대들이어서 만화가 조금만 품격 있게 나오면 기꺼이 사줄 수 있는 소비자들이라고 봅니다. 수준 높은 작품이 히트를 쳐 주면 당당하게 부모들에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박물관을 좋아해서, 만화도 박물관을 만들면 발전에 많은 보탬이 될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이미 있죠?
이희재 부천에 있습니다. 부천이 만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원혜영 시장 때부터 만화에 대한 활용과 지원을 가다듬어 오고 있죠.
민병두 마침 원혜영 전 시장이 우리당 정책위 의장이 됐습니다. 그 분이 워낙 만화에 관심이 많은 분이잖아요. 부천을 만화도시로 만들고, 만화박물관 지을 생각도 하고, 만화축제도 열고, 애니메이션 영화제도 하고 이랬던 분이 정책위 의장이 됐다는 게 만화계로 보면 행운이 아닌가 합니다. 그 분 잘 활용해서 만화계에 도움 될 일 많이 해야겠네요.
의원 회관에 위치한 민병두 의원 사무실에서 진행된 이번 대담은 만화 정책과 관련하여 열심히 활동하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명과 다르지 않다. 우로부터 이희재, 민병두, 이재식.이희재 지원정책 얘기를 하고 있잖아요. 지금 만화가 다소 움츠려 있고 추위를 타고 있는 형국입니다. 다시 봄을 맞이하고 온기를 찾으려면 외형과 하드웨어를 갖추는 일도 필요하지만, 창작의 진원, 샘터를 만드는 작업이 더욱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원도 그런 방향이어야 하죠. 저희 만화가들은 창작의 전초기지로서 온라인 웹진을 만드는 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지원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만화가협회와 우리만화연대 할 것 없이 총력전을 펴서 창작 역량을 발산해 어려움을 정면으로 뚫고 나갈 생각입니다. 온라인은 창작 자체에도 장점이 있지만 독자들과 직접 교류가 가능하다는 큰 이점이 있죠. 독자가 참여해서 작가가 그리는 만화의 일부분을 그려도 보고, 스토리에 참여도 해 보고, 그걸 발전시켜 만화계의 일거리를 만드는 작업도 수행할 수 있고, 링크를 걸어서 확대 확장할 수도 있고, 전체적으로 만화계의 총 중심기지가 될 만한 웹진을 만들 생각입니다.
이재식 요즘 만화가협회 회장이신 이현세 선생께서도 인터뷰 때마다 말씀하시더군요.
이희재 2005년에 그런 웹진을 만들면, 만화계의 기본 기지가 되고 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이걸 기점으로 해서 만화계가 탄력을 받고 살아나야죠.
민병두 웹진이라는 방향은 잘 잡으신 거 같아요. 쌍방향 소통된다는 점에서, 아이들도 편하게 들어올 수 있잖아요.
이희재 종이만화도 고려를 했었는데, 예를 들어 <만화광장> 같은 성인잡지를 만든다면, 당장 어린이들을 위한 잡지는 따로 하나 만들어야 하나 고민이 됩니다. 돈도 더 들고 복잡해요. 온라인에서는 어린이 섹션만 만들면 되죠. 성인전용도 별도로 붙이면 되고요. 장점이 있죠.
민병두 그러네요. 자기 그림 업로드 하고, 캐릭터 개발하고, 아이디어 교환하고, 그렇게 하기 용이한 구조죠. 만화애니메이션 학과 다니는 학생들이 수천 명이 넘는다는데, 그 학생들을 위한 교과서도 되고, 공동의 토론장이 될 수도 있죠. 또 한중 합작사업 아이디어도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좋은 방향입니다. 지금 중국에 우리 드라마가 많이 진출했잖아요. 가수 HOT가 들어가서 10대를 잡아놨단 말이에요. 만화가 중국에 진출하면 초등학생부터 한국에 완전히 빠지는 것 아니겠어요? 드라마 보는 30, 40, 50대부터 노래 듣는 10대 20대에다 만화 보는 10대와 그 아래까지. 큰 포인트들을 잘 잡으신 것 같습니다. 
 
만화진흥위원회 - 사회적 관심과 국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힘을 모아야
 
만화와 정치. 서로 어색할 듯하던 양쪽의 만남은 금세 친해져 봇물처럼 이야기를 쏟아냈다. 예전의 기억을 더듬고, 정책 개발 방향을 잡고, 정치 소재의 만화를 추천하기도 했다.이재식 마침 의원님께서는 한류 현장을 직접 취재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작년 콘텐츠진흥원 발표로는 600만 달러 가량 만화 수출이 있었고, 사겠다는 곳은 많은데 콘텐츠가 없어서 못 판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지금부터 열심히 만들어야 될 텐데, 만화계가 위축이 돼 있고, 그 원인이 작가들이 놀 마당이 없어서 그렇다는 거죠. 그래서 지원방향의 변화 필요성 얘기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다소 앞서가는 느낌도 있습니다만, 이런 분위기에서 만화계에서 제기하는 만화진흥위원회의 설립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이희재 우리의 소망은 만화진흥위원회가 생겼으면 하는 것이지만, 콘텐츠진흥원이 3년 전에 생겼어요. 그래서 믿고 기다린 거죠. 영화의 경우를 보면, 영화진흥공사였다가 위원회 체제로 변경되었잖아요. 기존에는 관료체제였는데, 영화인들이 나서서 자신들이 신뢰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고민하고 연구하고, 예산은 국가에서 받아 집행을 하는 구조로 완전히 개편이 된 거죠. 궁극적으로 모든 문화계의 방향은 위원회 방향으로 가는 게 옳다고 봅니다. 아직 콘텐츠진흥원에 일임해서 가고 있는 우리 만화 역시 독자적이든 애니메이션과 함께 가든, 위원회가 바람직합니다. 그게 힘들다면, 개편을 통해 진흥원 속에 만화애니메이션 전문위원회를 만들어서 분야의 책임 당사자인 만화인들이 결정을 하고 콘텐츠진흥원은 실행을 하고, 이런 구조라도 필요합니다.
민병두 제 생각에, 당장 만화진흥위원회로 독립하기에는 힘이 좀 부치지 않나 싶어요. 영화는 오랫동안 그런 힘을 키웠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죠. 힘이란 게 사회적 관심과 국민들의 지지 아니겠습니까? 만화는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어서 행정조직을 통해 지원을 하는 건데, 그게 일정한 한계에 봉착해 있다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만화애니메이션이 가진 현실과 개선의 필요성을 절충해서 조금 전 말씀하신 방식의 접근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캐릭터나 음반도 마찬가지죠. 게임은 독립해 있는데, 그것도 게임위원회로 발전하기엔 아직은 힘이 약하죠.
 
정치 토론회에서 만화가 거론될 날 기대, 정치 소재 만화도 생각해 볼 만해
 
이재식 이제 만화와 정치라는 주제로 마무리를 했으면 합니다. ‘정치인이 본 만화’를 주제로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민병두 위상제고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기자하던 때도 그렇고, 지금 정치하면서도 정치인들이 만화 얘기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관훈클럽 토론회라고, TV 토론회 이전에는 대통령 후보들의 가장 중요한 시험대였죠. 거기 가면 기억에 남는 책이 있느냐는 질문을 해요. 예를 들어 김대중 씨 같은 경우, <토지>를 읽었다고 말했다면 주인공 서희의 인물평을 부탁받죠. 실제로 읽었으니 청산유수로 답도 하고, 그런 데서 국민들이 감명을 받기도 합니다. 정치인들이 관훈 토론회 나가서 자신이 읽은 만화책에 대해 얘기를 하고 어필을 하는 그런 시대가 왔으면 좋겠어요. 물론 시사만화의 경우는 정치 쪽에서도 위상이 높고 굉장히 영향력이 있죠. 대선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실제로 작년에 박재동 화백 쪽에서 노무현 후보의 만화를 그리기도 했고, 상당히 기여를 했을 거예요. 그런 분야는 정치의 영역 안으로 들어왔죠. 잘못하면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는데, 아무튼 이번 대선에서도 여야 할 것 없이 상당히 많이 쓰일 겁니다. 이렇게 위상제고를 통해 만화계가 발전하는데 정치가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이재식 정치를 다룬 작품도 전문소재만화로서 매력이 있을 것 같은데요, 정치가로서 만화로 다룰 만한 우리 현대사의 소재를 추천해 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민병두 많죠. 이철우 의원 사건도 그렇고, 정형근 의원의 경우 대단히 독특한 캐릭터예요. 재미있을 겁니다.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하셨던 황태현 씨도 굉장히 재미있는 분이에요. 강단 맑스주의자로 한때 유명한 좌파였는데, 탄핵사태와 관련해서 큰 역할을 했죠. 사주를 보니 노무현 대통령이 중간에 쫓겨나는 궤다, 탄핵하자, 이런 얘기를 계속 했다는 거예요. 탄핵 발의하는데 의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죠. 가령 그 분을 통해 한국정치와 탄핵문제를 짚어 본다면 흥미진진할 겁니다.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청와대 공보수석 하셨던 박선숙 씨를 통해서 마음의 안정을 찾으셨죠. 평생 핍박받으며 늘 상처받은 분이셨잖아요. 가녀린 인상의 여성이 편안하게 해 주니까, 토론회 나가도 맞은편에 앉아 있게 하고 그러셨죠. 모 여성지에서 말했던 것처럼 무슨 남녀관계 이런 것은 아니고, 시대의 큰 바위였던 사람이 가녀린 한 인간에게 마음을 기댄다는 설정이 의미 있는 거죠. 박선숙 씨를 통해 정치를 바라보는 것도 흥미 있겠네요. 기자와 정치인들 간의 서로 속고 속이는 머리싸움도 재미있어요. 기자출신이다 보니 저도 많이 겪었습니다. 정치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슬쩍 흘린 정보인지, 아니면 진짜 계획이 노출된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특종도 있었죠. 그런 만화 그리신다면 제가 적극적으로 소재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이재식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대담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미래 산업인 만화의 부흥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시기입니다. 꾸준한 정책적 지원이 요구되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문광위에서 활동하시는 의원님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민병두 잘 알겠습니다.
 
대담이 진행된 민병두 의원의 의원회관 사무실 벽에는
‘與民同樂(여민동락)’ 이라고 쓴 액자가 붙어 있다.
맹자의 한 구절로, 원래는 임금이 백성과 더불어 즐긴다는 뜻이다.
군림하고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뒤엉켜 즐기는 것이
이 시대가 원하는 진정한 정치라는 뜻이 아닐까.
만화도 결국 모두 더불어 즐기자고 만드는 것이다.
모두가 즐거운 정치, 그런 만화 세상이 오길 기대해 본다.
2005-12-06 16: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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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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