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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는 눈, 도망갈 곳은 없다 - <플라토닉 체인>

인 더 만화 수프 | 만화, 타 문화와 만나다

글 | 박소현

 
한때 인터넷을 돌며 유명세를 떨친 사진이 있다. 어느 남학교 교실의 급훈을 찍은 것이었는데 급훈에는 단 한마디 ‘지켜보고 있다’라는 문장이 있고 담임선생님인 듯한 남자의 얼굴이 크게 클로즈업 되어 있었다. 필자는 ‘근면, 성실, 친절’ 같은 식상한 급훈 천지였던 학창시절과 비교하며 박장대소하고 말았다. (그후 신나서 다른 엽기 급훈들도 찾아보았는데 이 글과 무관하지만 ‘굳이’ 늘어놓자면 ‘동포사랑, 국가경영, 세계정복’ ‘삼십분 더 공부하면 내 남편 직업이 바뀐다’ ‘잘!’ ‘올인’ 등이 있더라. 하하.)
 
그런데 ‘지켜보고 있다’라니 이거 가만 생각하니 오싹하다. 수업시간에 슬며시 졸다 문득 눈을 떠보니 ‘지켜보고 있다’, 뒷자리에 앉아 몰래 만화책 보다 고개를 드니 ‘지켜보고 있다’, 선생님 당신 ‘빅브라더’(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완벽하게 통제되는 미래사회의 감시자)였던가요?
 
누군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조지 오웰의 상상력이 아니더라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영역은 사라진지 오래다. 거리에, 엘리베이터에 심지어 백화점 화장실에도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CCTV가 돌아간다. 무엇보다 디지털 카메라와 핸드폰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사생활의 영역은 제로가 되어버렸다. 지하철에서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아 네티즌들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은 ‘개똥녀’는 현대 감시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녀의 행동이 자신도 모르는 새, 당사자의 동의 없이 무차별 노출된 것이다. 솔직히 이건 끔찍한 일이다.
 
바꿔 말하면 누군가 원하기만 한다면 나의 모습을 1년 365일, 하루 24시간 관찰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가끔은 나도 거스름돈 많이 받고도 시침 뚝 떼기도 하고, 3일째 안감은 머리를 긁적이며 벌렁 누워 자기도 한다. 추한 모습으로 울기도 하고, 곤드레만드레 취해 비실거리기도 한다. 그것이 나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것 또한 나 자신이다. 감추고 싶은 그러나 내 안에 분명히 존재하는 또 다른 나. 그런 모습이 누군가의 웃음거리가 되거나 비판거리가 되면 견딜 수 없다. 그렇다고 매순간 완벽을 연기할 수도 없지 않는가.
 
<플라토닉 체인>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오늘날 다양한 형태의 카메라가 세계를 뒤덮고 있다. 그리고 그 카메라들이 모은 방대한 정보가 어느 대국 군사기지에 실재한다. 그런데 이 철벽 같은 시스템을 해킹한 사람이 단 한 명 있다. 어떤 정보라도 즉석에서 입수하여 제공하는 만능탐정, 일설에 따르면 여성이라고 알려진 ‘플라토닉 체인’, 통칭 ‘플라체’. 핸드폰으로 의뢰하고 돈만 지불하면 누구든 원하는 자료를 구할 수 있다. 맘에 안드는 친구가 남몰래 무슨 짓을 하는지도 알 수 있고, 카메라의 사각지대를 예측하여 도심 한복판을 나체로 걸어다닐 수도 있다.
 
문제는 의뢰자의 요구에 대해 플라체 자체는 어떤 가치 판단도 하지 않는다는 것. 플라체는 광신도 집단의 무차별적인 살인이나 자살희망자들의 동반자살에도 협조한다. 플라체가 가진 원칙은 단순하다. 자료가 있으면 제공한다. 의뢰자의 신분은 철저하게 보장한다. 그리고 자료를 어떤 용도로 사용하든 관여하지 않는다.
 
기술은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다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보며 필자는 엉뚱한 장면에 발목이 잡혔다. 살인자의 오명을 쓴 존 앤더튼(톰 크루즈)은 자동차를 타고 도망간다. 무인자동운행 시스템의 자동차는 탑승자의 신원을 파악하고 그의 희망과는 무관하게 경찰서를 향해 달린다. 이 차 저 차를 뛰어다니며 간신히 탈출에 성공하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가는 곳마다 존의 홍채에서 정보를 인식해 “안녕하세요. 앤더튼씨” 각종 물건을 광고한다. 찰칵~찰칵~ 어디를 가든 사방에서 기계들이 존의 눈을 스캔한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속 세계는 홍채인식 기술로 완벽한 중앙감시가 가능한 미래사회, 유토피아처럼 보이는 무시무시한 디스토피아다.
 
<플라토닉 체인>속 세계에서도 같은 현상을 발견한다. 당신이 어디에서 무얼 하든 어떤 카메라가 당신을 감시한다. 영상자료는 슈퍼컴퓨터 속에 저장되었다가 원하는 사람에게로 전송된다. 영상 자료 뿐 아니라 기계를 이용한 원격조정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시부야 센트럴 호텔 1513호실에 묵은 남자는 다른 사람들을 살해하고 자신도 상처를 입었다. 그는 어그러진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다 권총자살을 시도한다. 그 순간 8년 전에 돌아가신 엄마로부터 전화가 온다. “엄마는 언제나 네 편이다”
 
이런 일쯤 플라체에게는 누워서 떡먹기다. 먼저 호텔 투숙객 정보를 찾고 그의 전 과거를 조사한 후 그가 가장 듣고 싶은 목소리를 파악한다. 다음 효과적인 시나리오를 만들고 합성을 통해 그의 방 전화로 전송하면 끝. 카메라가 없는 곳은 없고 기계가 없는 곳은 없다. 그렇다면 해킹의 천재 플라체가 할 수 없는 일이란 없다. 자살희망자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주다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대신 정반대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의 살인 같은 것. 근처에 있는 대형 크레인의 원격조정을 의뢰하여 살해한 후 제 자리로 돌려놓으면 된다. 자살자와 원격 살인은 정반대 사례 같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다. 누군가 당신을 감시하고 당신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당신의 동의는 필요하지 않다.
 
기술은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은 불완전하다. 너무 거대한 힘이 인간에게 주어졌을 때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공포로 탈바꿈한다. 존 앤더튼이 사는 세계는 편의를 위해 홍채인식기술을 도입했지만 역으로 개인의 익명성을 위협하기에 이른다. 그가 어디에 있든 기계는 그가 존 앤더튼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 마침내 존은 익명성을 위해 안구를 교체한다. 플라체를 이용해 사건을 해결하던 세 소녀는 거꾸로 플라체의 정보력을 이용한 광신도 집단의 표적이 된다. 어디든 카메라가 없는 곳은 없으니 그녀들은 적에게 완벽하게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익명성이 사라진 시대, <마이너리티 리포트>과 <플라토닉 체인>은 경고한다. ‘누군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 와타나베 코지 원작 토우노 야마 그림, <플라토닉 체인>, 학산문화사, 2005~, 3권 발행중
* <마이너리티 리포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 톰 크루즈 주연, 2002
 
 인터넷 서점 리브로 코믹몰 담당 yean1005@libro.co.kr
2005-12-15 11: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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