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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기사
스타일리쉬! 이미지로 말하다 -
인 더 만화 수프 | 만화, 타 문화와 만나다
 
글 | 박소현
 
프랑스어로 ‘연출’을 의미하는 미장센(mise en scène)은 연극에서 출발하여 오늘날에는 영화에서 감독의 의도에 따라 만들어지는 독특한 세트 배치와 카메라의 움직임, 인물의 움직임 등을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용어로 발전한다.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흔히 “스타일있네”라고 말할 때는 사실 이 미장센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은데, 따라서 다른 감독과 차별되어지는 고유의 개성은 곧 그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인지된다. 국내 감독 중 가장 스타일리쉬하다 일컬어지는 이명세 감독의 최신작 <형사>는 미장센을 극도로 추구한 영화로 최고의 악평과 최고의 호평을 동시에 얻었다.
 
스타일이 강한 영화의 득과 실
 
나는 이 영화를 두 명의 친구와 함께 봤는데, 당시 극장에 앉은 세 사람의 극단적인 반응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친구 H는 시종일관 하품을 해대며 낮은 목소리로 욕을 해댔고, I는 단정한 자세로 앉아 영화를 감상한 후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분명 이런 감독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고,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을 흘리며 중반 무렵쯤에는 이거야말로 올해 최고의 영화, 라고 확신했다. 이후 네티즌들의 반응을 살피던 중 H처럼 저주의 말을 남긴 이가 유독 많고 나처럼 ‘올해 최고의 영화’ 운운하며 감탄하는 이 또한 지나치게 많은 것을 발견했다.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사람마다 평가는 다르기 마련이지만 대체적인 여론이라는게 있는 법인데 유독 <형사>는 그 평가가 제각각이다. 한편에서는 111분짜리 뮤직비디오라 하고 전국 관객은 100만을 약간 웃도는 평균적인 성적이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재상영(CGV 강변에서 12월 23일부터 일주일간)을 결정했다. 국내의 저조한 흥행과 대조되게 토론토 국제영화제, 두바이 국제영화제에서는 호평을 받았고, 국내에서도 영화평론가들이 주축이 되는 25회 영평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등을 수상했다. 이처럼 보는 이에 따라 극단적인 평가가 갈리게 된 이유는 <형사>의 이야기 전달 방식에서 오는 낯설음 때문이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빨간 저고리에 녹색 치마 등 오색찬란한 옷을 입은 상인들과(이들의 옷 색깔은 겹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형형색색의 꽃들로 뒤덮인 저자거리가 보인다. 떠들썩한 함성 속에 조선시대 형사들이 가면 쓴 자객을 뒤쫓고 남순(하지원)과 자객(강동원)의 대결 끝에 반쯤 부서진 가면 뒤로 보이는 강동원의 조각 같은 얼굴. 가짜 돈의 유통과 관련한 사건을 추적하면서 남순과 슬픈눈의 대립은 극에 달하고 연모의 정 또한 정점에 이르러, 두 사람은 춤을 추듯 칼부림을 하며 은밀하게 사랑을 교감한다.
 
영화는 친절하게 두 사람이 어떻게 사랑에 빠졌는지 각자 처한 입장이 어떤 절망감과 갈등을 안겨주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짧은 몇 마디 대화는 사랑의 절박함을 느끼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나누는 칼부림은 갈등의 깊이를 세심하게 더듬지 못한다. 보이는 것은 그저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색의 향연과 끊일 듯 이어지는 음악, 지나가는 조연 하나조차 계산된 완벽하게 짜여진 움직임 뿐이다.
 
불평하는 관객들은 바로 이 점에 한탄한다. 개연성이 떨어진다, 멋있게 찍기만 하면 다냐, 영화에 몰입할 수가 없다 등등. 감탄하는 관객도 동일한 이유에 매혹된다. 대사에 의존하지 말라, 몸놀림에서 표현되는 감정을 느껴라, 음악과 이미지가 이야기를 전달한다 등등. 이 영화를 즐겁게 감상한 한 명의 관객으로 말한다면, <형사>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상상하는 것이다. 언뜻 스치는 눈빛과, 빛과 어둠 속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검무, 시선을 압도하는 배경을 통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라. 그전에 <형사>만의 화법을 받아들여라.
 
이미지로 말하는 젊음의 열기
 
영화 <형사>가 재밌다는 관객이라면 카미조 아츠시의 만화 <SEX> 또한 만족할 것이다. 1988년부터 소학관에서 '영선데이'에 연재된 후 내킬 때 한권씩 내는 것으로 악명 높은(!) <SEX>는 그 제목 때문에도 국내에는 오랫동안 라이센스판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가 2005년 북박스를 통해 정식 출간되었다. 이 만화는 오랫동안 만화 마니아들 사이에서 명작으로 손꼽혀왔는데 그 이유는 그림을 통해 전해지는 호소력 있는 감성 전달에 있다. 흑백의 대비와 여백을 활용한 이미지들은 백마디 말보다 많은 것들을 표현한다.
 
사실 줄거리만으로 보자면 허술한 부분이 많다. 6년간 만나지 못한 소꿉친구 나츠를 그리워하는 소녀 카호는 우연히 유키라는 소년을 만난다. 거리낌 없이 차를 훔쳐 달리는 유키는 마치 카호를 알고 있는 듯 행동한다. 알고 보니 그는 나츠의 절친한 친구,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나츠와 카호는 재회하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왜? 유키가 카호에게 보이는 묘한 행동은 무엇을 의미할까? 나츠와 유키는 왜 이유도 없이 총을 집어들고 폭력에 몸을 내맡기는 걸까? 카호는 어째서 아무 저항 없이 이들의 일탈에 합류했을까? 이유를 따져 묻자면 걸리는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마침내, ‘젊음’으로 수렴한다.
 
<SEX>는 주체할 수 없는, 터질 것 같이 열정적이며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젊음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총, 싸움, 스피드 따위는 그들이 대사와 사건을 통해 표현했어야 할 ‘이야기’를 대체한다. 눈부신 태양 아래 짓는 웃음과 욕조 안에서 흐트러진 인물들의 나른함은 그들의 정서를 대변한다. 군더더기 없이 가느다란 펜선은 담백하면서도 불안하다. 젊음은 구구절절 말로 설명하려 드는 순간 퇴색되어 버린다는 점에서 <SEX>가 선택한 방식, 이미지로 승부하기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할 수 있다. 
 
<형사>가 그랬듯 이 만화 역시 극명한 반응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 누군가는 감탄하고 누군가는 지루해한다. 어찌되었건 분명한 것은 서사 위주의 만화에 익숙했던 우리들에게 <SEX>는 톡 쏘는 청량음료처럼 새로운 자극을 줄 것이라는 사실이다.
 
* <SEX>, 카미조 아츠시 글/그림, 북박스, 2005~, 4권 발행중
* <형사>, 이명세 감독, 강동원/하지원 주연, 2005
 

인터넷 서점 리브로 코믹몰 담당 yean1005@libro.co.kr

2006-01-11 13:4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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