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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노 히데아키 감독, 한 오타쿠 사내의 脫 오타쿠기 - <감독 不적격>

인 더 만화 수프 | 만화, 타 문화와 만나다

글 | 박소현

오타쿠를 향해 ‘脫 오타쿠’를 외친, ‘에반게리온’ 감독 안노 히데아키

지난 1995년에 방영된 일본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애니메이션계의 역사적인 작품으로 회자된다. 기존의 로봇 만화는 정의로운 10대 주인공들이 자발적으로 세계의 구원을 위해 악의 무리와 싸우는 영웅 신화였다. 그러나 ‘에반게리온’ 주인공들은 에바기와의 싱크로율을 기초로 착출된 비자발적 조종사들이며, 무엇보다 어떠한 결함을 가지고 고뇌하는 불완전한 인물로 묘사된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또한 사도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악당들은 회를 거듭할수록 점차 인간과 닮아가고, 그들의 침략 목적은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한편 ‘에반게리온’은 기존 거대 로봇 애니메이션의 공식을 무시하면서도 이전 애니메이션들의 특징을 카피하고 패러디한 갖가지 장치들을 심어 놓기도 했다.


또한 이 작품은 ‘오타쿠’라는 존재를 수면 위로 끌어내었고, 전세계적으로도 오타쿠의 증식에 기여하게 된다. 오타쿠(お宅)는 본래 일본어로 상대편이나 집안을 높여 부르는 말이었으나 특히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에서 팬이나 마니아를 넘어 전문가를 선회하는 지식과 비평능력을 가진 창조적인 대중문화 향유자를 지칭하게 된다. 오타쿠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하는데 1988년 일본에서 있었던 4명의 여아 유괴 살인 사건의 범인 미야자키 츠토무가 방 안에 비디오테이프와 만화, 잡지를 가득 쌓아놓은 사건을 계기로 오타쿠는 곧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사회성이 결여된 이상한 인간이라는 인식을 심기도 했다.

아무튼(오타쿠와 에반게리온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필자 이상으로 많이 아실테니 여기서 마무리하고) 오타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한 가운데 오타쿠 출신의 감독 안노 히데아키가 만든 ‘에반게리온’은 많은 오타쿠들을 열광하게 만들었고 그가 TV와 영화 일련의 에바 시리즈를 통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 오타쿠여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가라는 외침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에바에 열광한 오타쿠들은 감독의 외침에는 아랑곳 않고 에바를 통해 더욱 더 자기들만의 세계 속으로 침잠했다는 것이지만.

사실 이것은 상업적인 성공과는 별개로 안노 감독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좌절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10년이 흐른 지금까지 안노 히데아키는 실사 영화와 단편 애니메이션, TV 시리즈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제 슬슬 의문이 든다. 그렇게 ‘오타쿠여 현실로!’를 외치던 감독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증을 해결할 책 한권이 나와 여러분에게 소개한다. 이름하여, <감독 不적격>.

안노 히데아키, 그의 일상이 궁금해

이 만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한 가지. 안노 히데아키와 2002년 결혼한 안노 모요코에 대해서 아시는지? 순정만화 팬이라면 이름 정도는 알만한 이 사람, <젤리빈즈> <해피 매니아>의 작가다. 이 만화는 평범한 사람과 결혼해 ‘남들처럼(?)’ 사는 삶을 꿈꿨던 작가가(하지만 만화가인 그녀에겐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일본 최고의 오타쿠 안노 히데아키와 살면서 점차 오타쿠의 아내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첫 페이지에서 ‘이 만화는 픽션이며 실제 인물․단체와는 관계없습니다’라고 너스레를 떨기는 하지만 이 만화가 안노 부부의 실제 삶에 근거해 만들어졌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내는 남편을 ‘감독군’이라 부른다. 감독군은 날밤을 새며 애니메이션을 보는 건 기본이고 허구한날 특촬물 포즈를 따라하고 가면라이더 벨트를 차고 어린애처럼 신나 한다.(참고로 그는 현재 40살이 넘었다) 몇날 며칠이고 같은 옷을 입고 목욕을 싫어하는 장면들은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오타쿠 그대로다. 차안에 깔리는 BGM은 각종 애니메이션 주제가, 방안에는 온갖 DVD와 피규어가 산처럼 쌓여있다. 그런데 이 부부에게 점차 변화가 생긴다. 평범할 것을 요구하던 아내는 남편의 취향을 이해하고, 남편은 과거의 고밀도 오타쿠의 삶에서 점차 범인(凡人)의 세계로 들어온다. 어쨌든 그는 이제 목욕도 자주 하고 옷도 자주 갈아입으니까. 그의 이런 변화는 그가 에바 시리즈를 통해 외쳤던 탈 오타쿠와도 일맥상통하는 걸까? 만화 말미, 안노 히데아키 감독이 인터뷰에서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아내 만화의 대단한 점은 만화를 현실의 도피처로 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지금의 만화는 독자를 현실로부터 도피시키고 거기서 만족을 찾는 장치에 불과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마니악한 사람일수록 그쪽에 너무 파고들고 일체화되어 그 이외의 것을 인정하지 않게 되어버립니다. 아내의 만화는…(중략)…읽은 사람이 안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바깥으로 나가서 행동하고 싶어지는 그런 힘이 샘솟는 만화입니다. 현실에 대처해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살기 위한 만화인 겁니다. …(중략)…<에바>에서 제가 끝까지 할 수 없었던 일을 아내의 만화는 실현시킨 겁니다.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확실히 안노 히데아키는 오타쿠다. 그는 여전히 특촬물을 사랑하고 만화 주제가를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여전히 탈 오타쿠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되 사회의 한 일원으로 다른 인간들과 상호교감하며 유기적으로 살아가는 건강한 오타쿠가 되는 것에 있다. 그것은 평범한 삶의 중요성을, 강요하지 않지만 끈기있게 설득하는 아내의 노력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나아가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갑자기 사랑이라니 난데없게 들리겠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사랑은 곧 이해하고자 하는 바람이고 이해받고픈 욕망 아니던가. 그러니 이 만화는 가공의 애니메이션, 특촬물 주인공(허구 속의 판타지)에 향해 있던 안노 감독의 사랑이 현실의 아내(인간)에게로 이동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안노 히데아키의 아내를 향한 고백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마음 속에선 고독과 소외감과 싸우면서 매일 아슬아슬하게 정신적 균형을 잡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일하는 시간 외엔 전부 아내에게 투자하고 싶었습니다. 그 때문에 결혼도 했고 앞으로도 온힘을 다해 지켜주고 싶군요.’

오타쿠의 신에서 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건강 오타쿠’로 탈바꿈한 안노 히데아키. 그의 근황이 궁금하다면 이 만화를 읽어보자. 부록으로 실린 인터뷰도 놓치지 말 것.

*<감독 不적격>, 안노 모요코 글/그림, 대원씨아이, 2006, 단권 완결
*<신세기 에반게리온>, TV 시리즈 총 26화, 안노 히데아키 감독, 가이낙스, 1995

인터넷 서점 리브로 코믹몰 담당 yean1005@libr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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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6 10: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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